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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상사가 파고들면 (7)화 (7/70)

7화

‘대표님은 몇 층에 있을까.’

연락처라도 알면 전화할 수 있는데.

수상한 여자가 뭔 짓을 하는 건 아니다 보니 성급하게 굴기가 모호했다.

‘어떡하면 알릴 수……. 아!’

이러면 되겠다 싶어 세연은 걸음을 멈췄다.

위쪽에 온 신경을 기울이는지 여자는 세연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세연은 여자가 조금 빨리 걸음을 재촉할 때 맞춰 소리쳤다.

“대표님! 같이 가요!”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여자가 돌리려던 고개를 재빨리 숙였다.

어느 모로 봐도 의심이 가는 행동이었다.

“당신 뭐예요……!”

떳떳하지 않은 모양새로 여자가 3층 출입구로 달려갔다.

눈앞에서 놓칠세라 세연은 두 계단씩 건너뛰었다.

3층의 문을 열고 잽싸게 들어간 여자가 문을 세게 닫았다.

몇 발 차로 늦은 세연이 쾅 소리 나게 닫힌 문의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도망간 여자를 쫓아가려는데 순식간에 세연의 몸이 뒤로 당겨졌다.

뭐, 뭐야.

“……!”

고개를 돌린 세연은 뒤에서부터 저를 끌어안은 도하를 보고 깜짝 놀랐다.

몸이 겹쳐진 듯 그와 붙어 있자 얼굴이 달아올랐다.

새까만 동공에 제 얼굴이 비쳐 보이자 세연은 온몸이 건조해지는 열기를 느꼈다.

“놔둬요.”

세연의 허리를 감은 팔을 떼어 낸 도하가 몸을 뒤로 물려 계단 난간에 등을 기댔다.

“하지만, 저 여자가…….”

“압니다. 날 따라붙었다는 걸. 안 지는 얼마 안 되었고, 꼬리를 잡기 위해 계단을 이용했던 겁니다.”

“네엣?! 그러면 빨리 잡아야죠.”

“붙잡는다고 해도 실상 처벌이 어렵습니다. 후, 보안 카메라가 달려 있지 않은 이곳에서는 더더욱.”

빠르게 내려오느라 말소리에 정제되지 않은 숨소리가 드문드문 섞여 있었다.

“확실한 증거물이 없다면 말할 것도 없죠.”

“아…….”

“그래서 적당한 곳으로 유인하려고 했는데.”

“제가 방해했군요…….”

돕자고 한 일이, 그의 계획을 틀어지게 했다.

“죄송합니다.”

그것도 모르고 여자를 도망가게 했으니, 면목이 없어 세연은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렇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 일로 조심할 테니 한동안 나타나지 않을 테죠. 그러면 나도 숨 돌릴 수 있고.”

저를 생각해 주는 말이라는 걸 알았다. 발 벗고 나서서라도 도하에게 힘이 되고 싶은 세연은 고개를 들어 견실한 눈빛을 내보였다.

“제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말씀해 주세요.”

“…….”

너무 나간 건가.

아무 말 하지 않는 도하를 마주하자 세연의 가슴이 제멋대로 두근거렸다.

‘날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떡하지?’

그가 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불쑥 그런 생각이 든 건, 고개를 돌리고 싶게끔 하는 눈빛 탓도 있지만 그에게서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입을 지그시 다문 도하는 세연을 검은 눈동자 속에 가둬 둘 것처럼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생각을 알기라도 하면 좋을 텐데.

그녀의 얼굴에 눌어붙을 것 같은 시선을 마주하기가 버거울 무렵,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다는 듯한 미소가 정교한 입가에 걸렸다.

“어떻게요?”

“네?”

“어떻게 도와줄 겁니까.”

“그,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대표님께서 하라는 대로 하겠습니다.”

“그거.”

세연의 말에 도하가 올라간 입꼬리를 가볍게 문지르며 뒷말을 느릿하게 붙였다.

“꽤 위험한 발언인데.”

매력적인 입가가 야릇한 음영을 자아내며 올라가 있었다.

“도움을 요청할 일이 생기면, 그리하죠.”

결코 부드럽지 않은 미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빨리 잡아야 하겠군요.”

그런 일이 뭔데.

그녀를 생각해 주는 듯한 어감이 도리어 궁금증을 폭발시켰다.

속뜻을 파헤치고 싶은 그 말에 세연은 혼란스러웠다.

더운지 그가 체크 셋업 슈트의 재킷을 벗는다.

숨을 내쉬는 대로 검은 셔츠로 덮인 몸에 굴곡이 지고 있었다.

숨을 고르는 복식 호흡에 세연은 이 장면을 혼자 봐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저도 모르게 사방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아무도 없음. 이상 무.

“어딜 보고 있는 겁니까.”

“아무것도 못 봤어요!”

세연은 얼뜨기처럼 고개를 젓다, 도하의 미소를 보고서야 자신의 행동을 자각했다.

소리만 내지 않을 뿐이지, 그 웃음을 보니 그가 제 행동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이런 식으로 알고 싶은 게 아니었단 말이야!’

그렇지만, 무표정한 그보다 웃음이 곁들어진 그가 더 보기 좋았다.

활짝 웃는 모습도 보고 싶은데.

‘그것까지는 무리겠지.’

제 생각이 과하다는 자각은 있었다.

이어진 생각도.

문득 도하의 옆에 설 여자의 얼굴이 궁금해졌다.

다 가진 얼굴은 보기만 해도 가슴을 설레게 했다. 그의 얼굴을 본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는 본능이었다.

‘누군지 몰라도 나와는 정반대의 사람이겠지.’

이 이상의 관심은 그녀의 영역 밖이었다.

“여기서 엘리베이터 이용하세요.”

세연을 줄곧 응시하고 있던 도하가 계단 난간에 기댄 등을 뗐다.

“스토커를 속이려고 한 일이 아니었나요?”

“시간이 없을 때 이렇게라도 운동하고 있습니다. 그 여자도 그걸 알기에 의심하지 못했던 거고.”

실생활에서 다져진 몸매였구나.

자연스럽게 도하의 몸으로 향한 시선을 막을 수 없어 세연은 침을 몰래 삼켰다.

꿀꺽.

뜻하지 않게 소리가 크게 울리자 놀란 세연은 도하의 표정을 살피고야 말았다.

그러자 그는 웃음으로 돌려주었다.

큭-

“덕분에 웃는군요.”

웃음을 숨길 생각이 없는 도하가 적당한 위로의 말을 건넸다.

‘모른 척해 주시지.’

그런 맘이 들었지만 직장 동료와 대화를 나누는 듯한 이 분위기가 싫지 않았다.

“저도 같이 해도 될까요?”

“안 될 것 없지만 꽤 힘들 겁니다. 괜찮겠어요?”

“네.”

“힘들면 말해요.”

긴 다리의 그는 수월하게 계단을 올랐다. 세연이 잘 따라오고 있나 고개를 돌려 확인하다가 보이지 않으면 멈춰서 기다려 주었다.

“저 신경 쓰지 마시고 올라가세요.”

헉헉.

말하면서도 가쁜 숨이 연신 터지고 있었다.

벅찬 호흡에 자신이 말했어도 설득력 없이 들려 세연은 난간을 붙잡으며 멈췄다.

섣불리 따라간다고 해서는.

도저히 안 돼 보였는지 그가 내려왔다.

“제, 제가 올라갈게요.”

“쉬고 있어요.”

내려오는 그의 피지컬이 완벽하게 잘 빠져 있었다.

같이 운동한 사람 맞는지, 힘들어 보이는 기색조차 없는 도하의 얼굴은 퍼펙트한 피지컬과 맞물려 완벽한 비주얼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 화장 번진 건 아니겠지.’

얼굴에 맺힌 땀 때문에 생각이 꼬이는데 그가 그녀의 앞에 멈춰 섰다.

고개를 올려다봐야 하는 건 좀 전과 다를 바 없었지만, 그녀의 이마가 너른 흉곽에 닿을 것처럼 밀접해 있었다. 그 때문에 시선 처리가 힘들었다.

“이만 나가서 엘리베이터 타죠.”

“저 때문이라면.”

“나도 슬슬 힘들었습니다.”

더 올라가도 끄떡없을 듯한 숨소리가 나직이 울려 퍼졌다.

이도하를 감싸는 분위기는 녹록지 않아 물리적인 강제력 없이도 따르게 하는 힘이 있었다.

세연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본 도하가 그녀를 지나쳐 계단을 내려갔다.

엘리베이터 앞에 다다른 도하의 뒤로 세연이 위치를 잡자 그가 시선을 옆으로 두었다.

“안 오고 뭐 합니까.”

도하의 눈빛에 세연은 쭈뼛대며 그의 옆으로 걸음을 옮겼다. 땀 냄새가 날 만도 한 그에게서 전해지는 시트러스 향에 세연은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어제는 맡지 못한 향이 엘리베이터를 타자 진해지고 있었다.

의식할수록 짙어지는 것 같았다.

톡 쏘듯이 시원하면서도 전혀 가볍지 않은 묵직한 향이 저를 감싸는 듯해 세연은 기분이 묘했다.

“정세연 씨.”

슬쩍 숙인 고개를 들어 도하를 쳐다보는데, 그의 미간 사이가 한껏 좁혀져 있었다.

“무슨 향수를 뿌립니까.”

그건, 제가 묻고 싶은데요.

유미가 생일날에 사 준 향수가 있기는 하지만 특별한 날이 아니면 사용하지 않았다. 오늘도 샤워한 후에 바디로션만 발랐…….

‘아! 로션. 근데 그건 향수가 아니지 않나.’

그의 시선이 대답을 재촉하는 듯해 세연은 도하가 알고 싶어 하는 부분을 먼저 짚었다.

“향수는 뿌리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럴 리가 없는데.”

그녀의 뒷말을 채 듣지도 않은 그가 그녀에게로 너른 상체를 숙였다.

“그럼 이 향은 뭡니까.”

책망하는 듯한 숨결에 세연은 정지된 것처럼 굳었다. 그가 자신의 체향을 맡는 듯이 숨을 들이켠다.

‘안 좋은 냄새가 나면 안 되는데.’

가까워진 그의 몸에 세연은 뒤로 물러나다가 그만 스텝이 꼬였다.

넘어지려는 몸을 도하가 붙잡아 주어 고꾸라지는 건 면할 수 있었다.

두 팔로 세연의 어깨를 잡은 도하가 그녀를 뒤로 조심히 밀었다. 그리고 담담하게 손을 떨어뜨린다.

벽에 닿은 등이 차갑게 느껴질 정도로 그의 손이 닿았던 어깨가 뜨거웠다.

“향수 안 쓴 거 맞네요.”

그녀에게 박혀 있는 눈동자는 촘촘한 속눈썹에 가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나른하게 올라간 입술의 선이 선연해 금욕에서 벗어난 듯 야릇해 보였다.

<15층입니다.>

내려야 하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세연에게 있어서 이도하는 그에 관해서 궁금하게 만드는 남자였다.

중저음에 실린 의도가 뭔지. 그리고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세연은 도하에 관한 것이라면 사소한 것이라도 알고 싶은 마음이 들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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