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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죽일 남주를 길들여버렸다-171화 (171/186)

?171화

“황자 저하, 이걸 드세요. 흑마법이 어느 정도 풀릴 거예요. 어서요!”

라티아는 얼른 최상등급의 바람개비 꽃 뿌리를 잘게 찢으려고 했다. 하지만 손이 너무도 떨려 잘되지 않았다.

“이리 줘. 내가 할게.”

라티아에게 바람개비 꽃 뿌리를 건네줬던 카르시안이 강한 힘으로 뿌리를 삼키기 좋게 찢었다.

“물은 여기에 있다.”

클로드가 물통을 건넸고, 라티아는 숨이 미약해지는 아론의 입을 억지로 벌렸다. 카르시안이 삼키기 좋도록 잘게 찢은 바람개비 꽃 뿌리를 밀어 넣었고, 라티아가 물을 흘려보냈다. 아론이 잘 삼킬 수 있도록 목을 조금씩 주무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꿀꺽, 꿀꺽.

아론이 간신히 물과 뿌리를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뿌리가 목에 걸리는 감각이 있는지 인상이 더욱 찌푸려졌다.

“괜찮아요. 괜찮을 거예요.”

라티아는 어느새 울고 있었다. 이유는 모른다. 그냥 눈물이 나왔다.

황도가 봉쇄된 시간 동안, 라티아는 바람개비 꽃 뿌리가 루니아의 해독제뿐만 아니라 흑마법의 해주약이라는 것도 알아냈다.

다시 말해 루니아는 일반 병이 아니라 흑마법에 걸려 죽어 가고 있었단 소리였다.

“황자 저하!”

“황자 저하!”

루니아의 시녀인 아이리스와 시종들이 급히 달려왔다.

“응급처치는 마쳤어요. 안정을 취하게 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의원과 시녀들이 아론을 데려갔고, 라티아는 곧장 우거진 수풀로 향했다.

“라티아, 위험해!”

뒤에서 카르시안이 불렀지만 라티아의 귀엔 닿지 않았다. 아직 젖살이 다 빠지지 않아 귀여운 뺨에 눈물이 말라 붙은 라티아의 눈에선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어느 정도 수풀 속으로 들어왔을 때, 라티아는 바람처럼 빠른 손놀림으로 권총집에서 리볼버를 꺼냈다.

철걱, 탕!

조준할 시간도 없었다. 라티아는 마치 다 알고 있었다는 듯 한곳을 향해 총을 쐈다.

푸드덕, 푸드덕―!

총성에 놀란 새들이 날아가는 소리가 부산스러웠다.

“크윽!”

그 사이로 한 남자가 고통에 찬 신음을 뱉더니 나무 위에서 아래로 풀썩 쓰러졌다. 그의 주변엔 얇은 막이 처져 있었는데, 남자의 입술 새로 보글보글 기포가 나오는 걸 보니 물로 만든 막인 모양이었다.

“공작님! 이 사람이에요!”

라티아가 외쳤다. 카르시안의 어깨를 잡고 있던 클로드가 한달음에 달려왔다. 주변을 살피고 있던 호위병들도 허겁지겁 모여들었다.

남자의 얼굴에 낭패란 기운이 스쳤다.

“이 남자를 조사하세요. 그럼 배후를 알 테니까요.”

라티아가 싸늘하게 말했고, 괴한은 호위병들에게 호송되어 갔다. 라티아는 여전히 리볼버를 쥐고 있었는데,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마법탄을 가져왔어야 했어…….”

후회가 됐다. 안일했다. 설마 황성에서 라움디셀 공작가의 마차를 노리는 바보가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해서, 라티아는 호신용으로 자주 쓰이는 워터웰(water wall) 탄환만 가득 챙겨 왔다.

‘시간을 삭제하는 그 마법탄환이 있었더라면…….’

잘 쓰지 않아서 1년 치가 모여 있는데 왜 아꼈을까. 라티아는 침울한 얼굴로 괴한이 쓰러졌던 곳에 남은 추적 마법의 흔적을 더듬었다.

아론은 독에 당해 쓰러지는 와중에도 괴한을 놓칠까 봐 그에게 추적 마법을 걸어 놨었다.

그 짧은 틈에, 라티아를 노린 남자를 쫓기 위해서.

덕분에 라티아는 조준도 없이 남자를 맞춰 쏘아 쓰러뜨릴 수 있었던 것이었다.

“믿을 수가 없군.”

어느새 라티아의 곁으로 다가온 카르시안이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중얼거렸다.

“정말 황자 저하의 말씀대로 라티아를 노리는 괴한이 숨어 있었다니.”

공작저의 마차가 막 황후궁의 정문을 넘으려던 때였다. 갑자기 함께 온 삐로리가 가방에서 빼꼼 얼굴을 내밀더니, 창가에 찰싹 달라붙었다.

왜 그러나 싶어 창문을 바라보자, 아론이 나무 위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는 뭔가 알리고 싶은 게 있다는 양 종이를 흔들었다. 라티아는 창문 밖으로 삐로리를 내보내서 아론이 흔든 종이를 가져오게 했고, 그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도망쳐. 암살자가 있을지도 몰라.]

뜬금없는 소리이며, 설령 암살자가 매복해 있다 한들 상관없을 줄 알았다. 그 누가 감히 이 마차를 습격한다고?

하지만 라티아는 아론이 괜히 이런 언질을 준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삐로리가 어서 탈출하자고 닦달한 것도 신경 쓰였고.

해서, 클로드는 외투로 허수아비를 만들어 두고 황후궁 정문 검문소에서 몰래 빠져나가자고 했다. 세 사람은 무사히 빠져나와 아론과 접선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가 전복되었다.

“그런데 황자 저하는 이 일을 대체 어떻게 아신 걸까요?”

“음…….”

라티아의 질문에 클로드는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아 길게 침음했다. 카르시안도 함께 고민해 봤지만, 결국 마땅한 답을 내놓지는 못했다.

친자 검사는 다음으로 밀렸다.

* * *

아론 폐태자가 괴한에게 습격당한 라움디셀 공작가를 지키려다가 치명상을 입고 중태에 빠졌다.

이 슬픈 소식은 하이페디움 제국 전역에 퍼지지 않았다. 루니아가 감췄기 때문이었다.

‘제국은 이미 혼란스러워요. 황도가 개방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론 황자를 복위시키자는 여론은 이제야 힘을 받고 있죠. 이런 와중에 황자가 휘청거리고 있단 걸 알게 되면 다들 불안해할 거예요.’

‘하지만 언젠가는 소문이 퍼지고 말 겁니다.’

‘오히려 그걸 노려야 해요. 그 소문이 어디서부터 퍼졌는지를 역으로 조사하다 보면…… 자결한 암살자의 입으로 미처 듣지 못한 배후를 알게 되겠죠.’

루니아의 판단은 정확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론이 괴한에게 당해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소식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미리 대비를 하고 있던 클로드는 소문이 퍼진 곳을 곧장 추적하기 시작했고, 드디어 그 끝에 있는 인물을 알아냈다.

“또 에메르나 황비군.”

클로드의 말을 들으며, 라티아는 ‘또에황’이라는 줄임말을 떠올렸다.

그랬다. 또, 지긋지긋하게도 배후는 에메르나 황비였다.

이것을 알아냈을 때, 아론이 어떻게 라티아를 노리는 이가 있다는 걸 알았는지도 알게 되었다.

“꿈이라…….”

루니아가 말하길, 그녀가 친자 검사를 해 보자고 결심하게 된 이유는 아론이 꾼 꿈 때문이라고 한다.

“제가 여동생, 으로 나왔다니……. 솔직히 잘 믿기지 않아요.”

그것도 라티아가 아론의 여동생, 즉 루니아의 친딸로 나오는 꿈을 말이다.

아론은 이 꿈이 너무도 생생해서 일어났을 때 온 얼굴이 눈물로 흠뻑 젖어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방엔 누군가가 침입했던 흔적이 있었다고 한다.

만약 아론이 잠꼬대를 했다면 그가 꾼 꿈의 내용, 라티아가 잊힌 황녀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아론 황자의 복위의 뒤엔 라움디셀이 있는데, 여기에 나의 명예 딸이었던 라티아가 사실은 황녀였다는 것이 밝혀지면.”

“아론 황자의 입지가 더욱 단단해지겠죠. 라움디셀이 절대로 아론 황자를 배신할 리가 없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니까요.”

클로드의 말에 카르시안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그러니 라티아가 황녀라는 것이 밝혀지기 전에 없애려고 했다, ……인가.”

하마터면 라티아에게 큰일이 날 뻔했다는 사실에, 클로드의 목소리가 음산하게 낮아졌다. 표정이 냉랭하게 가라앉은 건 카르시안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직 라티아가 정말 황녀인지, 아닌지도 불명확한 상황에 이렇게 움직이다니. 어지간히 급한 모양이군.”

싸늘하게 뇌까린 카르시안은 슬쩍 라티아의 눈치를 살폈다.

아론이 당한 이후, 라티아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혼자 생각에 잠겨 있는 시간이 늘었으며, 초조한 듯 뭔가를 중얼거리는 습관이 생겼다.

카르시안은 그런 라티아를 걱정스레 바라보다 한숨을 삼켰다. 소문의 근원지가 에메르나라는 건 확실하다. 그런데 이것은 에메르나가 괴한을 사주했다는 물질적인 증거가 되어 주지 못했다.

물질적인 증거를 대려면 에메르나 황비가 무려 ‘흑마법사’라는 진실을 밝히든지, 아니면 현행을 잡아야 했다. 하지만 그 어느 쪽도 쉬운 길은 아니었다.

이렇게 답답한 시간이 흘러, 아론이 쓰러진 지도 벌써 2주일이 지났다.

바람개비 꽃 뿌리 덕분에 독에 섞인 흑마법은 제거되었다지만, 독마저 중화된 건 아니었다.

“여러 가지 독을 섞어 쓴 것 같다던데.”

“계속 중화시킬 방법을 찾고 있지만 어려운 모양이에요.”

클로드와 라티아가 답답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태 친자 검사도 미뤄졌다. 아론이 쓰러졌단 사실이 제국에 퍼졌기 때문에, 루니아가 무척이나 바빠졌기 때문이었다.

“황자 저하가 쓰러졌어도 아직 공고하단 것을 알리기 위해서 굉장히 노력 중이시라고 들었어요.”

“에메르나 황비가 지속적으로 방해하고 있기는 하지. 어쩐 일인지 다시 사이가 좋아진 듯 보였던 제네스 황태자와는 틀어진 모양이지만.”

클로드가 어깨를 으쓱이곤 차를 마셨다. 그의 말마따나 에메르나와 제네스의 관계는 다시 틀어졌다.

제네스는 라티아가 아론의 여동생일지도 모른다는 정보를 가지고 가서 루니아와 아론을 죽이라고 했지만, 에메르나는 그 둘이 아닌 라티아를 노렸기 때문이었다.

제네스는 제가 준 정보로 자신의 말이 아닌 멋대로 행동한 에메르나가 짜증 났다.

‘차라리 다 죽여 버릴까.’

라티아 빼고 다 죽여 없애 버리면 깔끔해지지 않을까?

저를 치워 버리려고 했던 친모 에메르나도, 에메르나가 사랑해 마지않는 클로드도, 저를 선택하지 않은 라티아와 가까운 카르시안도, 라티아의 친가족일 수도 있는 루니아 황후와 아론 황자도, 모두 다.

‘그럼 라티아도 어쩔 수 없이 나를 사랑하게 될 텐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썩 괜찮은 계획인 것 같았다.

해서, 아론 황자가 괴한에게 당해 몸져누워 있는데 제네스는 사냥대회를 개최했다.

“침전된 제국 전체에 활기를 좀 돋우고 싶을 뿐이니 괜한 추측은 삼가게.”

황태자의 말에 다들 기함했지만, 이를 거역할 수 있는 이는 없었다.

에메르나도 가만히 있고, 아론의 생사가 어찌 될지 모르는 이 상황에서 섣불리 황후의 쪽에 힘을 실어 줬다가 아론이 잘못되면? 그대로 끈이 떨어지니까.

아론이 독에 당해 쓰러진 지 3주째가 되는 날.

하이페디움 제국에 사냥대회가 열렸다.

참 기묘한 일이었다.

황제가 죽은 이유인 사냥을 하는 대회가, 그의 아들인 아론이 죽을지도 모르는 이 시기에 열린다니.

제국민들은 제네스의 폭정 아닌 폭정에 다들 혀를 내둘렀지만, 오랜만에 열린 황실 국고에서 내놓은 보물을 노리고 다들 호기롭게 참가했다.

그 덕분에 사냥대회는 그 어느 때를 능가하는 성황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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