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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죽일 남주를 길들여버렸다-170화 (170/186)

?170화

* * *

다음 날, 라움디셀 공작가의 마차가 황성 정문을 넘었다.

“곧장 황후궁으로 오고 있다고 합니다.”

시종의 말에 루니아는 가슴이 떨렸다.

어제 그녀는 아론이 심사숙고 끝에 말한 꿈 내용을 듣고 곧장 펜을 들었다. 아론은 꿈에 불과하다며 그녀를 말렸지만, 적극적이지는 않았다. 루니아가 이렇게 편지를 써 주길 바라서 꺼낸 말이었으니까.

아론은 여동생의 꿈을 꿨는데, 등장한 이는 다름 아닌 라티아였다.

누군간 루니아와 아론의 머리가 어떻게 됐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달리 말하면 두 사람은 증거조차 될 수 없는 꿈에 매달릴 정도로 절박했다.

잃어버린 딸, 잃어버린 여동생이.

그리고 놀랍게도 클로드는 친자 검사를 할 수 있는 하인리드 대신관과 함께 바로 다음 날 황성에 방문하겠단 의사를 밝혔다.

‘분명 라움디셀 공작도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걸 거야.’

사실 루니아와 라티아는 지나칠 정도로 닮았다. 루니아가 혼자 낳았다 해도 믿을 정도로.

그러니 클로드도 의심을 하고 있던 차였을지도 모른다.

루니아가 떨리는 가슴께를 꾹 누르며 긴장된 숨을 뱉은 때였다. 초조하게 손가락 끝만 갉작거리던 아론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제가 마중을 나가겠습니다.”

“네? 굳이 그러지 않아도 곧 도착할 텐데요.”

루니아가 의아한 듯 바라봤지만, 아론은 단호했다.

“이대로 기다리고만 있을 수가 없어서 그럽니다. 다녀오겠습니다.”

순간 루니아는 가슴이 이상하게 술렁거리는 걸 느꼈다. 뭔가 불안했다. 하지만 어째서 이런 기분이 드는지 몰라서.

“네, 알겠어요. 부디…… 몸조심해요.”

이런 당부나 하는 게 고작이었다. 손님을 맞이하러 가는 길인데 이런 말이라니. 스스로도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루니아는 어쩐지 더한 걱정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황후궁을 나선 아론은 곧장 수풀 속으로 파고들었다.

“루카오!”

“끄르륵?”

자신의 둥지에 웅크리고 있던 루카오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아론을 보고서는 날개를 퍼덕거리며 강아지처럼 달려왔다.

요즘 따라 부쩍 자리를 비우는 날이 잦았는데, 다행히 오늘은 이 공터에 있었다.

[무슨 일이야?]

아론이 루카오의 목에 매달린 동물어 번역 팬던트를 켜자, 루카오가 곧장 말을 걸어 왔다. 아론은 그런 루카오의 맹금류다운 금색 눈을 가만히 보며 말했다.

“지금 내 여동생일지도 모르는 사람이 오고 있어. 너도 아는 사람이야. 라티아 라움디셀.”

[삐로리!]

“그래. 네 친구 삐로리의 주인이지. 어쩌다 보니 라움디셀 영애가 나의 여동생일지도 모른단 의혹이 생겼어. 터무니없는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희망을 걸어 보려고 해.”

“끄르륵.”

“그런데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아. 뭔가 일이 생길 것만 같아. 그래서 지금 난 라움디셀 영애를 데리러 갈 거야. 아니, 숨어서 지켜보러 갈 거야.”

“끄르륵?”

숨어서 지켜본다고? 왜? 고개를 갸웃거리는 루카오가 그렇게 묻는 것만 같았다.

“내가 곁에 있는다고 해서 뭔가 막아질 것 같지가 않아서 그래. 하지만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면 이상한 점을 금방 발견할 수 있겠지.”

모든 건 다 예감뿐이었지만, 아론은 자신의 감을 믿어 보기로 했다. 어쩐지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그런 강한 확신이 들었다.

“그러니까 루카오. 만약에 내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땐 네가 라움디셀 영애를 지켜 줘.”

“끄륵…….”

“물론 그런 일이 없도록, 나도 노력할 거야.”

루카오가 걱정스러운 눈빛을 하자, 아론이 빙긋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루카오는 눈을 지그시 감으며 생각했다.

‘곧…… 떠날 때가 오네.’

아론은 루카오에게 잘 부탁한다고 신신당부를 하고 황후궁의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그 뒷모습에선 비장함마저 엿보였다.

* * *

― 라움디셀 공작가의 마차가 들어올 때가 적격의 때다.

남자는 나뭇잎과 풀이 쌓인 곳을 소리 없이 걸으며 한 여인의 목소리를 계속해서 떠올렸다.

그 목소리엔 기묘한 힘이 있었다. 세간에 떠도는 흉물스러운 소문, 흑마법에 세뇌된다면 이러한 기분일까.

‘황후궁에 초대받은 라티아 라움디셀 영애를 죽이라니…….’

평소라면 절대로 맡지 않을 위험한 임무였다. 하지만 이 임무를 맡지 않으면 자신이 죽을 것만 같았다. 그뿐이면 다행일까.

‘세상이 멸망할지도 몰라.’

그러니 라티아 라움디셀 영애를 죽여야 한다.

남자에겐 일종의 사명감마저 생겼다. 암살이라는 지저분한 일만 하며 살던 자신이 세상을 구한 영웅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꿈 같은 희망도.

스스로도 이상하다고 생각은 한다. 고작 어린 소녀 한 명 죽이는 게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이라고.

하지만 이 순간, 안광이 사라진 남자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휙―!

잘 굴러가는 마차의 바퀴에 부러지지 않을 두꺼운 쇠잣대를 던져 넣었다.

감히 황성에서 라움디셀 공작가의 마차를 습격할 이는 없을 거라 생각한 모양인지, 주변엔 호위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기실 제국의 영웅이자 무술 대회의 최연소, 최다 우승자가 보호하는 영애를 대체 누가 건들 수 있단 말인가.

그 타당한 근거가 있는 자만은 오만으로 이어져 결국 허점을 만들었다.

덜컹!

쇠잣대가 아주 제대로 들어갔다. 한쪽 바퀴가 완전히 망가지며 곧장 빠져 버리자, 마차가 전복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아악!”

마차를 몰던 마부가 튕겨 나갔고, 안전을 위해 묵직하게 만든 마차는 속절없이 쓰러졌다. 다행히 길이 잘 정비되어 있어 박살이 나거나 마력으로 인한 폭발이 일어나진 않았다.

‘아쉽군.’

하지만 이정도쯤이야 예상하고 있었기에 암살자는 소리소문없이 옆으로 쓰러진 마차 위로 올라가 창문을 내려다봤다.

예기치 못한 공격에 완전히 당한 듯, 내부에 타고 있는 이들은 모두 정신을 잃은 채였다.

성인 남성 둘에 여성 하나. 클로드 라움디셀과 카르시안 라움디셀, 라티아 라움디셀이 분명했다.

“저기다! 저기에 사고가 났다!”

“당장 의원을 대기시켜!”

생각보다 소란이 빠르게 일어났다. 이렇다면 아마도 3분 내외로 사태가 진정될 터.

‘칫, 증거 인멸은 어렵겠군.’

어쩌면 꼬리가 잡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라티아 라움디셀을 죽일 수만 있다면!

남자는 곧장 찌그러진 마차 문을 열고 그 속으로 검을 찔러 넣었다. 마차 안이 넓어 봐야 얼마나 넓겠는가. 이렇게 칼을 찔러 넣은 채 아무렇게나 휘저으면 되리라. 물론 이에 그치지 않고 마차 안으로 독가스가 든 마도구를 던져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검은 복면을 쓴 남자는 여유로운 눈빛으로 독가스가 스멀스멀 퍼지고 있는 마차 안에 작은 불씨를 떨어트렸다.

사아아악, 연기가 퍼지는 소리는 곧 치이익 하고 불꽃이 터지기 일촉즉발의 소리로 바뀌었다.

남자가 마차에서 훌쩍 뛰어내릴 적, 콰아앙!

마차가 폭발했다.

“으악! 폭발했다!”

“소방부서도 불러와!”

“물을 길어라!”

호위병들이 다급히 외치는 소리를 뒤로한 채, 목적을 이룬 남자는 유유히 숲속으로 숨어들었다.

그런데 이때였다.

“움직이지 마.”

스릉, 날 선 소리가 들리더니 남자의 복면을 쓴 목에 차가운 칼날이 닿았다.

괴한은 마른 침도 삼킬 수 없었다. 목젖이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저 예리하게 벼려진 칼날에 베이고 말리라.

“모든 무기를 버려라.”

잔뜩 소리를 낮춘 채 말하는 목소리에선 스산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 자는 정말로 괴한을 죽일 생각이었다.

괴한은 숨통마저 속박당한 착각을 느끼며 천천히 쥐고 있던 검을 떨어트렸다. 사부작 하고 푹신한 풀 위로 날붙이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옷 속에 숨긴 단검도.”

등 뒤에 숨긴 단검을 떨어뜨렸다.

“팔뚝에 있는 것도.”

그것도 버렸다. 남자는 괴한이 얼마나 많은 무기를 숨기고 있는지 전부 알고 있는 듯했다.

그렇게 모든 무기를 버린 괴한이 완전히 무장해제됐다고 생각했을 때.

쉭!

“큿!”

괴한은 신발 밑창에 숨겨 둔 뾰족한 비수로 남자의 종아리를 찔렀다. 그 통각에 남자가 휘청거릴 때, 괴한은 제 목을 노리던 검을 뺏으며 뒤로 훌쩍 물러섰다.

“네 놈……!”

괴한을 노린 남자가 비틀거리며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종아리를 감싸 쥔 남자의 얼굴에 창백한 식은땀이 흘렀다.

그는 다름 아닌 아론이었다.

“움직이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황자 저하. 흑마법으로 만든 독이 더 빠르게 퍼질 테니까요.”

으득…… 아론이 종아리를 감싸 쥐며 이를 갈았다. 남자는 가만히 놔둬도 알아서 죽을 아론을 굳이 해하지 않았다.

그는 라티아 라움디셀만 죽이면 되었으니까. 아니, 머릿속에서 목소리로 명령하는 여자가 아론을 죽이란 말은 딱히 하지 않았으니까.

남자가 사라진 풀숲에서 아론이 쓰러졌다. 그때였다.

“황자 저하!”

“황자 저하! 어떡해!”

저 건너편에서 누군가가 달려왔다. 남자 둘에 여자 하나, 마침 괴한이 노린 마차 속의 표적과 인원수가 같았다.

그중 유일한 소녀가 아론의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을 때 호위병이 외쳤다.

“다행히 마차엔 아무도 안 계신다!”

그 소리를 들은 왼쪽 눈에 긴 자상이 난 남자가 말했다.

“이쪽이다! 우리는 이쪽에 있다!”

그는 다름 아닌 클로드였다.

남자가 터트린 마차에 타고 있어야 할 그 클로드 라움디셀 말이다.

“황후 폐하를 모셔 와!”

지금 이렇게 외친 이는 카르시안 라움디셀이었고.

“카르시안, 빨리 가방에서 바람개비 꽃 뿌리를 꺼내 줘!”

얼굴이 까맣게 죽어 가는 아론을 부여잡고 눈물을 흩뿌리며 부탁하는 이는 라티아 라움디셀이었다.

남자가 죽였어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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