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를 죽일 남주를 길들여버렸다-152화 (152/186)

152화

[라티아에게.

봄볕이 따사로운 날 편지를 보내. 황도 봉쇄령은 여전하지만 나는 아주 잘 지내고 있어. 황도가 봉쇄되었다고 해도 일상은 여전하더라.

얼마 전 열린 아카데미 배 무술 대회에서 우승을 했어. 트로피 무게가 만만치 않아, 길버트는 이걸 어떻게 들고 갈지 벌써부터 고민하더라.

난 몇 개 정도는 버려도 좋다고 생각하는데, 라티아. 네 생각은 어때? 하운드도 매일같이 자라서 지금은 두 발로 서면 나보다 커. 네가 아버지의 일을 돕느라 바쁜 건 알지만 그래도 건강 챙기는 걸 우선시했으면 좋겠어.

그럼 하운드 사진을 동봉하며 이만 편지를 마칠게. 삐로리가 전해 줘야 하니 긴 이야기를 적지 못해 아쉬워. 그리고 이번 답장은 여름이 가기 전에 받고 싶은데 어려울까? 기다릴게.]

[카르시안에게.

먼저 미안해. 여름이 가기 전 답장을 받고 싶다고 했는데 난 이 편지를 가을에 쓰고 있어. 그래도 잘 지낸다니 다행이야. 하운드는 정말 엄청나게 컸구나. 또 편지할게.]

[라티아에게.

벌써 가을이 끝나 가. 그래도 다행인 건 황도와 라움디셀 영지는 똑같이 중앙 지방이라 같은 계절을 공유할 수 있다는 거야.

하운드는 그사이 더욱 자랐어. 생물학 선생님이 그러는데 하운드가 평범한 개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하시더라.

멸종한 검은 눈늑대의 후손일지도 모른다고 하셨어. 하운드와 이야기해서 털과 빠진 발톱 등, 연구 샘플을 건네긴 했는데 난황을 겪고 있나 봐. 사실은 나도 하운드가 평범한 개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어.

덩치로 보나 영특한 머리로 보나 가끔 정말 신기할 때가 있어. 마치 삐로리처럼 말이야. (중략) 황도가 봉쇄된 이후 전서구 역할을 계속해 주느라 단련이 된 건지, 삐로리가 전해 줄 수 있는 편지의 양이 는 건 무척 기뻐. 하지만 그사이 나도 하고 싶은 말이 너무도 많아져서 (중략) 다음 봄은 함께 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아쉬워. 하지만 계절은 돌아오니, 봄을 함께 맞이할 날을 기다리고 있을게.]

[카르시안에게.

여긴 벌써 봄꽃이 전부 졌어. 라움디셀 공작령보다 더 멀리 있는 황도엔 아직 봄꽃이 피어 있겠지? 일이 너무 바빠서 꽃구경도 한 번 마음 편히 못 했던 것 같아. 여전히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야. 조만간 그루안 상단이 검문에 통과한다고 들었어. 필요한 것이 있다면 셀트론을 찾아가도록 해. 이만 줄일게.]

[라티아에게.

너의 편지가 도착했을 땐 이미 봄꽃이 다 진 후였지만 그루안 상단이 막 들어온 때였어. 네 편지 덕분에 그루안 상단으로 찾아가 필요한 것을 구입할 수 있었어.

망가졌던 건틀렛도 유리드가 고쳐 줬어. 또 네가 그루안 상단을 통해 보낸 물건들도 잘 받았어. 세이렌 편지지와 마법탄환이라니 내게 귀한 것을 주는구나. 정말 고마워. 나도 그루안 상단을 통해 네게 물건을 보내. 지난 몇 년간 함께 해 주지 못했던 너의 생일날에 샀던 것들이야.

만나서 주고 싶지만 봉쇄령이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아 안타까워. 부디 네 마음에 들면 좋겠다. 오랜만에 만난 셀트론은 (중략) 시엘도 만났어.

하운드의 연구 결과 선조를 알 수 없는 개로 판명 났지만 시엘은 다르게 생각하는 모양이야. 시엘이 조사를 하고 있으니 뭔가를 알 수 있을지도 몰라. (중략) 아카데미에 들어온 노상인이 파는 벚꽃 책갈피를 발견해서 같이 보내. 생화를 유리 사이에 넣어 가공한 거라더라. 같이 봄을 맞이하는 날 꽃구경을 가자. 어렸을 때처럼 그 자리로. 편지 기다리고 있을게.]

[라티아에게.

답장을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지만 급한 일이 있어서 다시 보내. 시엘에게 들었어. 이플란트 백작가에서 약혼담이 들어왔다면서. 어떻게 된 일인지 이야기를 듣고 싶어. 편지 기다릴게.]

[라티아에게.

헨델 이플란트와 약혼을 할 거라는 소문이 사실이야? 뭔가 착오가 있는 거겠지? 아카데미에 이상한 소문이 퍼져 있어. 아니란 걸 알지만 네가 추문에 휘말리는 것이 싫어 다시 편지를 보내. 답장 기다릴게.]

[라티아에게.

약혼식 날짜가 잡혔다고 들었어. 편지 기다릴게.]

[라티아. 답장을 줘.]

[무슨 말이라도 좋으니 내게 답장을 줘.]

[제발 삐로리라도 보내 줘.]

[세이렌 편지가 다 떨어져 가.]

[네 근황이 궁금해. 아버지도 말해 주지 않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걱정이 돼서 미치겠어.]

[아카데미를 빠져나갈 방법을 찾았어.]

[황도 봉쇄령을 어기고 도망친 죄인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지 않아?]

[이 편지는 라움디셀 공작성에서 쓰는 편지야. 아카데미와 황도에서 내게 수배령을 내렸어. 그런데 라티아, 너는 어디에 있어? 너도, 아버지도 보이지 않아. 헥터는 물론이고 메리도, 앤도. 버틀러에게 물어봐야 소용이 없어. 나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해 줘. 그것만 말해 줘. 날 두고 떠난 건 아니지.]

[아버지가 두 번은 없을 거라고 으름장을 놓으면서도 네 이야기는 하지 않더라. 벌써 겨울이야, 라티아. 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예리엘 만물 상단에서 편지지를 보내 줬어. 너지? 네가 준 거지? 넌 계속 내 이야기를 보고 있었어. 그렇지?]

[약속했던 5년이 지났어. 이제 난 열여덟이 되었고 넌 열다섯이 되었겠구나. 예정대로 난 조기 졸업을 했어.

처음부터 조기 졸업을 하면 곧장 네게 돌아갈 생각이었어. 네가 황도에 올라오지 못해도 내가 공작령에 있으면 되니까.

그런데 지금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겠어. 넌 어디에 있는 거야. 대체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 거야? 나는 여기에 있어. 계속 여기에 있어. 너를 기다리고 있어.]

[헨델 이플란트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혹여나 너와 관련이 있는 일은 아니겠지? 그는 너에게 약혼담을 보냈으니까.]

[아버지를 만났어. 헨델 이플란트와 약혼 날짜가 정해졌던 건 소문이 와전된 거라는 진실을 들었어. 미안해, 라티아. 화가 난 거지?

너를 믿지 못하고 의심해서 내게 편지를 보내주지 않는 거지? 정말 미안해. 너를 의심했던 내가 바보 같았어.

아버지의 편으로 선물을 보냈어. 마음에 들길 바라. 그리고 난 아카데미를 졸업해서 지금 황도에서 지내고 있어. 주소를 적어 보내니, 답장은 여기로 해 줘. 기다릴게.]

[라티아. 제네스 황태자에게 청혼을 받았다고 들었어. 너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사람은 난데, 지금은 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의 무엇도 알지 못해. 불합리해. 부조리해. 너를 알려 줘. 라티아. 난 계속 기다리고 있어.]

[세리나 황녀가 내게 구혼을 했어.]

[알았어. 시답잖은 질투심 유발 작전은 그만둘게. 그러니까 제발 답장 좀 줘. 난 누구의 구애에도 응할 생각 없다는 거, 이제 너도 알잖아.]

[아버지를 만났어. 왜 아버지는 네 이야기를 하지 않는 거지? 라티아. 설마 네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아니면 네가 아버지더러 나에게 너의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한 거야? 아무래도 좋아. 넌 안전한 거지?]

[제네스 황태자가 라움디셀 공작령을 습격했단 이야기를 들었어. 너와 동갑인 열여섯 살의 소녀를 납치했단 소리도. 너는 아닐 거야. 그렇지?]

[제발 아무 말이라도 좋으니까 내게 편지를 줘. 미쳐 버릴 것 같아. 네가 너무 걱정돼. 그리고 내가 두려워. 어제도 공작령에 다녀왔어. 내게 걸린 현상금이 높아졌다더라. 상관없어. 너를 만나고 싶어. 편지가 아니어도 좋아, 아버지를 통한 말 한 마디라도 좋아. 네가 안전하단 걸 알려 줘.]

[지금 공작성으로 갈게. 이번엔 거기에 있기를 바라.]

[누군가가 내 보석금을 모두 내줬다고 들었어. 아버지는 오히려 내가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편이 안전할 것이라 말했으니 아버지는 아니겠지.

혹시 너야? 네가 날 풀어 준 거야, 라티아? 날 보고 있었구나. 라티아. 그런 거지? 날 지켜보고 있던 거지?

무슨 사정이 있어서 내게 다가오진 못해도 계속 날 보고 있었던 거지? 알았어. 그렇다면 나도 너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할게. 계속 날 지켜봐 줘. 그리고 이런 식으로 알려 줘. 아직 내 곁에 네가 있다고. 네가 이 세상에 있다고. 아직 날 버리지 않았다고.]

[라티아, 보고 있어? 황도 봉쇄령에 지친 귀족들을 담합시켜 궐기를 일으킨 사람이 바로 나야. 네가 바라는 게 이거지? 네가 외부에서 들어오기 좋게 내부에서 부수고 있을게.]

[멜르조 운하 도시를 폐쇄해서 천정부지로 치솟은 물가를 아론 황자가 안정시켰어. 이건 네가 한 거지? 난 알고 있어. 아론 황자가 예리엘 만물 상단이 우두머리로 있는 상단 협회의 수장, 티아나 아메시스트일 리가 없잖아. 티아나, 티아나. 곱씹다가 알게 되었어. 티아나. 라티아.]

[황도민들이 혁명을 일으켰지만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어. 아직은 내가 성급했던 걸까? 다행히 피해는 크지 않아. 티아나 아메시스트, 네 덕이야. 역시 넌 아직 날 버리지 않았어. 그래, 난 이제 그거면 족해. 이대로 계속해서 날 지켜봐 줘.]

[라티아, 에메르나 황비가 드디어 입장을 밝혔어. 황도 봉쇄령을 거두겠대. 라티아, 넌 이것을 위해서 그동안 티아나 아메시스트로 지냈던 거구나. 모든 걸 알았어, 라티아. 기다릴게. 난 아직도, 여전히, 이 자리 여기에 있어.]

[카르시안에게.

모든 준비가 끝났어. 너를 데리러 갈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