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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죽일 남주를 길들여버렸다-144화 (144/186)

144화

* * *

같은 시각, 황도 구석의 한 카페테리아.

클로드는 그곳에서 홀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제국의 영웅이 일급 레스토랑도 아니고 평민들이 주로 이용할 법한 카페테리아에서 식사를 하다니. 이건 너무도 눈에 띄는 행동이었지만 의아하게도 그 누구도 클로드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 이유는 지금 클로드가 쓰고 있는 안경 덕분이었다.

‘편리하군.’

쓰고 있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이 흐려지고 사람을 잘 알아볼 수 없게 만드는 안경.

이건 라티아가 고안해 낸 물건이었다.

여러 윤리적, 도덕적 문제가 얽혀 있어 상용화되기 까진 시간이 걸리겠지만 라티아가 예리엘 만물 상단과 손을 잡아 만든 합작품이었다.

현재 이 안경은 세상에 딱 두 개뿐인데, 그중 하나는 클로드가 또 하나는.

“커피 향이 아주 좋네요.”

그가 기다리고 있던 여인에게 있었다.

익숙한 목소리를 들은 클로드가 수저를 내려 두고 냅킨으로 입술을 닦았다. 그리고는 그린 듯한 미소를 지으며 앞에 마주 앉는 여인에게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황후 폐하.”

그가 기다리고 있던 여인, 그와 같은 안경을 쓰고 홀로 움직인 여인, 그녀는 다름 아닌 황후 루니아였다.

“매번 누추한 자리로 모셔서 송구합니다.”

클로드의 사과에 그녀가 여분의 의자에 가방을 내려 두며 빙긋 웃었다.

“이렇게 밖에서 만날 때마다 직접 의자를 빼서 앉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지, 당신은 모를 거예요.”

오만하고 귀족적인 말이었지만 생기 넘치는 표정 덕분일까? 그녀가 정말로 즐거운 것처럼 비쳐졌다.

덕분에 클로드는 씩 웃으며 이런 농담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날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아론이 황태자로 복위되고, 제네스가 폐태자가 되어 황비인 에메르나가 힘을 잃으면 더 이상 루니아와 이런 한미한 곳에서 만날 필요가 없으니.

클로드의 말 속에 담긴 원대한 포부이자 확실한 희망을 읽은 루니아의 입가에 아쉬운 듯하면서도 그 날이 기대되는 미소가 걸렸다.

“그렇군요, 더 즐겨 둬야겠어요.”

말을 마친 루니아는 클로드가 나서기도 전에 손을 들어 웨이터를 불렀다.

“커피로 주세요.”

“괜찮으시겠습니까?”

이곳은 일류 레스토랑도 아니고 고급 커피 하우스도 아니다. 그런 곳에서 내린 커피가 황후의 입에 맞을 리가 없다. 더군다나 황후는 열심히 몸을 회복하고 있는 중이다. 카페인을 섭취해서 좋을 건 없을 터.

걱정된 클로드가 만류하자 루니아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 잔 정도는 괜찮아요.”

커피를 마시는 게 대단한 일탈이라도 되는 양 말하는 루니아의 말에 주문을 받으러 온 웨이터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클로드는 혹여나 루니아의 몸 상태가 악화될까 봐 걱정되었지만 루니아의 뜻을 말릴 수는 없었다.

커피가 나오고, 루니아는 투박한 듯 향긋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혀끝에 살짝 시면서도 씁쓸한 커피 특유의 향이 감돌았다.

잠시 후, 루니아가 입을 열었다.

“몸은 괜찮으신가요? 음독하셨다고 들었어요.”

지금 클로드는 너무도 멀쩡하고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지만 그는 며칠 전만 하더라도 침대를 벗어나지 못하던 중환자였다.

“이젠 괜찮습니다. 아직 정확히 무슨 독에 당했는지 알아내진 못했지만 해독약만큼은 확실히 알아냈습니다.”

클로드가 루니아를 안심시키려고 한 말에, 별안간 루니아가 쿡쿡 웃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뇨. 미안해요. 문득 우리가 같은 처지라는 게 웃겨서요.”

“같은 처지요?”

“네. 저도 대체 무슨 병에 걸렸던 건지, 왜 그렇게 쇠약했던 건지 모르지만 약은 정확히 알고 있거든요. 레오나르도도 그랬죠.”

이젠 정말로 달이 되어 버린 황제 레오나르도의 이름에 클로드의 표정이 조금 숙연해졌다. 루니아가 손을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당신도 이미 알다시피 그도 영문 모를 정신 조종을 당했죠.”

에메르나의 곁을 떠나면 극심한 두통이 인다니, 범인은 에메르나가 틀림없지만 이 또한 정황상 증거일 뿐이다. 하여 두 사람은 범인을 짐작하고 있으면서도 에메르나의 이름을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로 해주약을 알아냈어요. 그 약만 있으면 레오나르도는 천하무적이었죠.”

아련한 기억을 더듬는 듯한 말투에 클로드는 그녀가 무척이나 애잔해졌다.

이제 막 오해가 풀려 서로 사랑하며 이겨 낼 일만 남았다 생각하던 때, 거짓말처럼 사랑을 잃었으니.

‘우리들은 참 서글픈 운명들이군.’

루니아의 말마따나 세 사람은 같은 처지였다.

그러던 중 문득 위화감이 느껴졌다.

“생각해 보니 이상하군요.”

“네? 무엇이 말인가요?”

“세 사람 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겁니까? 원인을 모르는데 해법은 안다니요.”

“음…….”

한 명 정도라면 우연의 일치라 하겠지만, 무려 세 사람이나 같다.

‘뭔가 석연찮아.’

하여 클로드는 여태 루니아의 최대 약점이라 생각하여 묻지 않았던 것을 묻기로 했다.

“혹시…… 당신께서 음용하시는 약이 무엇인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그건…….”

루니아의 낯빛이 흐려졌다. 루니아의 원인 모를 병을 싹 낫게 한 약, 그것을 달리 말하면 루니아의 약점이나 다름없었다. 그녀가 사용하는 약을 없애면 루니아는 다시 전에 앓던 병으로 시름시름 앓을 테니.

해서 클로드는 루니아가 ‘어떤 약을 먹고 몸이 호전되었다’는 말을 듣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것은 클로드가 루니아의 병을 낫게 한 약에 손대지 않겠다는 신뢰를 주는 일종의 방법이었다.

실제로 루니아는 제게 ‘어떻게 나았습니까?’라고 묻지 않는 클로드를 보며 그가 정말로 자신과 아론을 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라움디셀 공작에 대한 신뢰는 충분하지만…….’

루니아는 망설였다.

수십 년 쌓아 올린 신뢰도 한 순간에 깨트리는 것이 사람이다. 클로드는 그럴 사람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또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공작도 다 알면서 물어본 게 분명해.’

그가 건넨 물음이 짧은 시간이나마 쌓았던 신뢰를 깨트릴 수 있는 창이 될 거라는 것을.

고심 끝에 루니아는 클로드에게 말했다.

“하면 이 약속을 하나 해 주세요.”

“어떤 것입니까?”

“그 약이 제 병에 듣는다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는 묻지 않기로요.”

설령 클로드가 루니아를 배신하여 약을 없앤다 하더라도, 그 약을 사용하자고 떠올린 이가 있다면 또 다른 방법이 생길 수도 있다.

무엇보다 클로드가 정말로 악인이라면 루니아는 제게 바람개비 꽃 뿌리를 준 이를 지켜야만 했다.

도의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 소녀를 절대로 다치게 할 수 없어.’

그저 마음이 그랬을 뿐이다.

루니아의 말을 들은 클로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한 가지를 더 덧붙였다.

“저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독되었는지.”

“알겠어요. 저는…… 제가 복용하는 약의 주재료는…….”

루니아가 숨을 골랐다. 어쩌면 이게 하나의 갈림길이 될지도 모른다.

이윽고 그녀가 말했다.

“바람개비 꽃 뿌리예요.”

“바……!”

클로드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를 뻔했다. 간신히 목소리를 억눌렀다.

클로드가 이토록 동요하는 모습은 처음인지라, 루니아는 누군가를 연상케 하는 보라색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았다. 그러자 클로드가 아주 익숙한 소녀가 더욱 떠올랐다.

‘그래서였군.’

클로드는 이제야 퍼즐이 맞춰지는 것 같았다.

어째서 라티아가 티아나 아메시스트로 흰뿔 산을 구했는지, 왜 쓸모없는 바람개비 꽃의 뿌리를 그토록 애지중지했는지.

‘내가 황후 폐하를 만날 때마다 바람개비 꽃 뿌리를 왜 전해 달라고 하나 했더니…….’

루니아는 흰뿔 산을 무척이나 사랑하니, 그 산에서만 나는 식물을 선물함으로써 기운을 북돋아 주려는 건 줄 알았다.

‘내가 멍청했군.’

클로드의 말마따나 그는 너무도 간단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기실 무리도 아니었다.

라티아가 제아무리 영특하다 하더라도 황후의 병을 낫게 할 방법을 알고 있다고 그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클로드가 큰 손으로 입가를 감싸 쥐었다.

“큭…….”

그럼에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도무지 삼킬 수가 없었다.

삐로리가 그랬다. 라티아는 클로드가 절대로 만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천재라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클로드는 가끔 삐로리의 그 오만하고 자신만만한 말에 공감을 했지만, 이번만큼은 아니었다.

‘아, 그래……. 라티아는 정말 대단하군.’

대체 어디까지 내다보고 움직이고 있는 걸까, 라티아는.

이로써 확실해진 것이 하나 있었다.

‘라티아는 바람개비 꽃 뿌리의 효능을 정확히 알고 있다.’

그것은 루니아의 병과 클로드의 중독을 낫게 하는 힘이 있었다. 그렇기에 라티아는 망설이지 않고 클로드에게 바람개비 꽃 뿌리를 달인 약을 먹은 것이리라.

이것이 뜻하는 바는 하나다.

‘라티아는 에메르나 황비에게 대적할 유일한 존재이자 승리자다.’

그 어린아이가 대체 어떻게 이 모든 것을 알았는지는 몰라도, 라티아는 처음부터 에메르나를 상대할 준비를 하고 있던 것이었다!

클로드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홀로 웃음만 참고 있자, 루니아는 초조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클로드가 입가를 감싼 손을 내리며 말했다.

“저도 같습니다.”

“네?”

“아무래도 우린,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운명의 길잡이를 만난 모양입니다.”

그의 말에 루니아의 동공이 훅 좁아 들었다.

그녀도 깨달은 것이다. 라티아가 이 얼기설기 엉킨 복잡한 문제를 자를 가위라는 것을.

루니아가 다시 한번 클로드에게 정말로 라티아 덕분에, 그녀가 준 바람개비 꽃 뿌리 덕분에 해독되었냐고 물으려던 때였다.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큰일이기에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말씀드립니다.”

클로드와 함께 왔던 헥터가 루니아에게 정중히 인사하고는 클로드의 귓가에 어떤 이야기를 속삭였다.

그 소리를 들은 클로드의 눈이 왈칵 찌푸려졌다.

헥터가 전한 소식은 세리나 황녀의 느닷없는 방문에 관한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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