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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죽일 남주를 길들여버렸다-140화 (140/186)

140화

* * *

“절대로. 절대로 안 됩니다.”

“집사 된 자로서 아무리 희박한 확률이라도 시도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안일한 생각이 환자의 건강을 악화시키는 겁니다.”

의사가 성분도 모르는 바람개비 꽃 뿌리를 달인 물을 처방할 순 없다며 버티고 섰다. 극구 반대하는 의사에게 버틀러가 은근히 자신의 뜻을 내포했으나 소용없었다.

결국 보다 못한 수잔이 나섰다.

“공작성에 우환이 생겨 객실 준비를 하지 못했습니다. 내일은 꼭 객실을 마련할 테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시지요.”

아예 의사가 공작성에서 지내지 못하도록 내쫓은 것이다. 물론 준비하겠단 객실은 며칠이 지나도 정신이 없었단 이유로 정리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녀는 의사가 자리를 비워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틈을 노리기로 한 모양이었다.

또한 홀로 카르시안이 출전하는 검술 대회에 참석해서 공작성의 사정을 알리고 온 헥터까지 가세했다.

“아, 글쎄! 뭐든 시도해 봐야 할 것 아닌가!”

“이러다가 더 악화되면 어쩌려고 이러십니까, 다들!”

“예리엘 만물 상단에서 다 확인했다니까? 어? 약초 명가로 유명한 그루안 상단에서도 검수한 거라고!”

“그자들이 의사랍니까? 대체 무슨 근거로 바람개비 꽃 뿌리를 달인 물을 마시면 공작님께서 깨어나실 거라 생각하시는 겁니까?”

막무가내로 의사를 몰아붙이는 헥터에게 의사가 강력하게 항의했다. 그는 정말 직업 정신이 투철한 전문가였다.

하지만 숫자 앞에 장사 없다고 했던가, 결국 뜻대로 하는 쪽은 공작성 일원들이었다.

수잔이 의사가 자리를 비운 새벽에 몰래 클로드의 침실에 침입하여 그의 입술을 적셔 바람개비 꽃 뿌리를 달인 물을 먹인 것이다. 물론 의사는 지금까지도 이 일을 까맣게 모른다.

아주 위험천만한 행동인 것이 틀림없지만, 모두 라티아가 클로드를 살려 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기에 망설이지 않았다. 그만큼 클로드가 일어나길 절박하게 바랐단 소리기도 했다.

다행히 라티아의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조금씩 혈색이 돌아오고 계십니다. 바람개비 꽃 뿌리를 달여 마시지 않아도요!”

의사가 아주 반가운 진단을 내린 것이다.?

그는 이토록 기쁜 소식이 있으니 다시는 바람개비 꽃 뿌리를 달인 물을 가져오지 말라고 으름장을 놨다. 그러나 클로드의 침실에 들어온 이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클로드의 호전은 모두 라티아 덕분이라는 것을.

물론 그렇다고 의사에게 이 일을 들먹이며 으스댈 생각은 없어서, 그들은 어쩔 수 없다는 양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나 의사를 향한 불만까지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쯧, 우리 아가씨께서 어련히 다 하실까.”

“맞아요. 우리 아가씨가 설마 공작님께 해가 되는 일을 하겠냐고요.”

“다 아가씨가 세운 공인데 저 의사가 날름 먹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군. 뭐 언제는 이제 손을 쓸 수 없다는 둥,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둥 터무니없는 소리나 늘어놓은 주제에…….”

버틀러와 앤, 헥터가 말을 타고 멀어지는 의사의 등에 대고 투덜거렸다.

“공작님께서 깨어나시면 이 이야기를 꼭 하자고.”

“네, 아가씨께서 노력하셨단 이야기를 들으시면 무척 기뻐하실 거예요.”

헥터의 말에 수잔이 호호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날이 갈수록 클로드의 건강이 호전되니 이제는 이렇게 농담 아닌 농담도 할 수 있고 미약하게나마 웃을 수도 있었다.?

정말 다행인 일이었다.

한편, 라티아는 자신의 방에서 편지를 쓰고 있었다.

클로드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곧장 편지를 보낸 카르시엔에게 보낼 답신을 말이다.

“휴, 공작님에게 정신이 팔려서 카르시안이 걱정하고 있을 거란 생각조차 못 했네. 얼른 써서 보내 줘야지.”

바쁘게 적는 답신에는 검술 대회에 참석하지 못해 미안하고, 헥터 편을 통해 수술을 전해서 아쉽다는 내용을 담았다.

클로드에게 바람개비 꽃을 달인 물을 먹인 다음 날, 라티아는 겨우 헥터에게 검술 대회 당일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헥터는 일부러 검술 대회가 다 끝난 후에야 카르시안에게 당일 아침 클로드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전했다. 물론 대기실에서 무던히 바쁜 척을 하며 수술을 전하는 것까지는 성공했다.

카르시안은 라티아가 직접 건네주길 바란 눈치였으나 별수 없이 이해한 듯 보였다.

‘카르시안이…… 많이 아쉬워했나요?’

‘아쉬워 한 수준이 아니었지.’

헥터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때 카르시안이 얼마나 실망했는지 생생하게 전해 줬다.

그럼에도 카르시안은 라티아가 준비한 두 개의 수술을 모두 검자루에 묶었다. 출전하기 전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수술만 만지작거렸다고 한다. 그 애수에 젖은 모습에, 카르시안에게 수술을 건네기 위해 줄을 섰던 영애들은 눈물을 흘리며 자리로 돌아가야만 했고 말이다.

물론 이윽고 펼쳐진 검술 대회에서 카르시안은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다.?

비록 수술은 헥터가 전해 줬지만 라티아가 관중석에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카르시안은 우승컵을 든 채 바삐 그녀를 찾았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라티아를 발견할 수 없었다.

이후 헥터에게 진실을 들은 카르시안은 곧장 공작령으로 가겠다고 난리를 피웠다.

‘아버지가 쓰러지셨잖아!’

클로드와 투닥거리기 바빴던 카르시안이 이토록 감정적인 모습을 내비치는 것은 처음이었다. 헥터가 당황해서 라티아가 곁에 있다고 말해도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불만 지필 따름이었다.

‘라티아는, 라티아는 지금 어쩌고 있는데?’

클로드와 라티아가 아주 각별한 사이인 것을 알고 있으니 더욱 걱정이 됐을 터.

그러나 카르시안은 하는 수 없이 황성으로 향해야 했다.?

그것도 홀로.

이는 에메르나 황비의 명령이었다.

“하지만 파트너로 참석하겠다 밝힌 황녀의 청은 거절했다고 했지…….”

세리나 황녀.

그녀는 라티아보다 한 살 어려 이제 11살이 된 그녀는 레오나르도 선황제와 에메르나 황비 사이에서 난 딸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겐 이상한 추문이 있었는데, 바로 세리나 황녀가 레오나르도의 딸이 아니란 이야기였다.

에메르나가 세리나를 임신했을 당시 레오나르도는 이웃 왕국에 친교 방문을 하고 있었다. 그 점이 세리나 황녀의 출신 부정에 박차를 가했다.

에메르나도 이러한 소문을 알고 있는지 어떻게든 세리나의 입지를 다져 주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쉽게도 세리나는 무척 소심했다. 또 만사에 워낙 소극적이었기에 에메르나의 극성을 따라가지 못해 오히려 겉돌았다.

그 덕에 지금은 있는 둥 마는 둥 그저 이름뿐인 황녀 신세였다.

‘그런 황녀가 용기내어 카르시안에게 파트너 신청을 했지만 거절당했다 했으니, 한동안 꿈쩍도 안 하겠네.’

편지를 적어 내려가는 동안 우중충하게 가라앉아 있던 라티아의 마음이 조금 밝아졌다.

헥터에게 세리나 황녀가 카르시안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 같단 이야기를 들었을 땐 어찌나 놀랐던지! 그리고 카르시안과 함께 만찬에 갈 수 있는 그녀가 어찌나 부러웠던지!

에메르나 황비가 억지로 세리나와 카르시안을 이어 주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카르시안이 불편함을 감추지 않은 것이다.?

이를 보고 평소의 에메르나였다면 경을 쳤을 테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제네스 황태자가 내 손을 들어 주더라.]

대체 어떻게 제네스가 클로드가 쓰러졌다는 것을 알았는지는 몰라도 만찬 내내 카르시안을 살펴줬기 때문이었다.

[이플란트 백작 영식도 그래서 놀랐었어.]

헨델은 검술 대회에서 2등에 그쳤는데, 에메르나의 조카라서 그런지 만찬에 초대받았다. 그런데 그 헨델 또한 카르시안을 비호해 줬다고 한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어. 뭐, 짐작 가는 일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그 짐작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꾹 눌러 쓴 문장이 유독 두꺼웠다.

“짐작? 대체 무슨 일을 말하는 거지?”

라티아는 의아했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그것까지는 알 수 없었다. 이 부분은 라티아가 유독 취약한 ‘연애’였기 때문이었다.

클로드가 쓰러졌다. 당연히 그와 명예 부녀인 라티아가 충격을 받았을 게 분명했다. 또한 공작성에 라티아가 홀로 있으리란 것은 모두가 예상이 가능한 일.

라티아 홀로 클로드의 곁을 지키고 있는데, 카르시안까지 문제가 생기면 그녀가 무척이나 힘들지 않겠나.

제네스와 헨델은 이 점을 기민하게 파악하고 카르시안이 라티아의 신경을 조금도 뺏지 못하도록 저들 나름의 손을 써 둔 것이었다.

이 마음의 기저엔 라티아를 향한 호의와 연심이 있었고 말이다.

하여 카르시안은 그들의 배려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클로드가 쓰러져 자리를 보전하고 있는 지금. 이용할 수 있는 건 뭐든 이용해야 했다.

‘라티아만 모르면 돼. 라티아는 나만 알면 돼.’

아마도 카르시안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리라.

답신을 쓰다 말고 다시 카르시안의 편지를 주루룩 읽어 내려간 라티아가 얼른 정신을 차렸다.

“빨리 쓰고 공작님께 가 봐야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라티아는 얼른 카르시안에게 저는 괜찮고 클로드도 점차 회복되어 가고 있다는 기쁜 소식을 전했다. 꼭 만나고 싶었는데 보지 못해 아쉽단 이야기를 끝으로 편지를 마무리했을 때였다.

“아가씨, 공작님께서 깨어나셨어요!”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식이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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