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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죽일 남주를 길들여버렸다-139화 (139/186)

139화

모든 사건은 갑작스럽게 발생한다.

카르시안의 검술 대회를 보러 갈 준비를 마친 때였다. 메리의 도움으로 치장을 하고 시간이 좀 남아 차를 한 잔 마시고 있었다.

“꺅!”

“의사를! 의사를 불러라!”

그때 반대편에서 소란이 일었다. 나와 카르시안의 방은 마주 보고 있었고, 클로드의 방은 카르시안의 방 바로 옆이었다.

“무슨 일이지?”

의아하여 창문을 열었더니 어슴푸레 들리던 소란이 더욱 크게 들렸다. 그리고 그 사이로 충격적인 이야기가 들려왔다.

“공작님께서 쓰러지셨다!”

“음독을 하신 것 같다!”

바로 클로드가 독에 당했다는 끔찍한 소식이었다.

* * *

“아가씨, 잠시 눈이라도 붙이시는 게 어떠세요?”

“…….”

“아니면 식사라도 조금 하시는 건요?”

“…….”

“아가씨…….”

나는 수잔의 말에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뒤에 선 메리와 앤이 걱정 어린 시선을 교환하는 게 보였다. 하지만 그걸 신경 쓸 겨를은 조금도 없었다. 내가 엎드려 있는 침대에 클로드가 누워 있었다.

그것도 시체처럼 파리한 안색으로 간간이 막히는 숨을 토해 내는 클로드가.

공작님이 이런데 내가 어떻게 먹고 자겠어.

가까스로 멈췄던 눈물이 다시 흘러, 외출용 드레스의 소매를 적셨다. 난 벌써 이틀째 옷도 갈아입지 않고 식음을 전폐한 채 클로드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결국 보다 못한 수잔이 콧김을 한 번 뿜더니 내게 바짝 다가왔다. 그리고는 내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나를 번쩍 일으켰다.

“아가씨!”

음독한 환자가 앞에 있건만, 수잔은 기꺼이 목소리를 높였다. 난 그녀의 어마어마한 힘으로 상체가 덜렁 일으켜졌다.

“정신 차리세요, 아가씨!”

수잔의 따끔한 호통에도 내 정신은 몽롱하기만 했다. 아니, 고막이 물에 잠긴 듯 먹먹했다. 그녀가 뭐라 말하든 내 귀에는 조금도 들어오지 않았다.

하기야, 들어올 턱이 있나.

늘 이런 식으로 나를 일깨워 주던 클로드가 지금 죽은 듯이 누워 있는데.

어제 의사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어쩌면 이대로 영영, 클로드가 눈을 못 뜰지도 모른다고 한다. 도무지 어떤 독을 먹었는지, 중독된 게 맞기는 한 건지조차 모르겠다고 했다.

그게 이 제국 최고의 명의 입에서 나올 이야기냐고 다그쳐도 소용없었다. 의사는 연신 바닥에 고개를 조아리며 죽여 달라 할 뿐이었다.

이성을 잃은 내 모습에 보다 못한 버틀러가 나섰다. 수잔이 나를 말리고 버틀러가 의사를 내보냈다. 그리고는 탈진하듯 쓰러지는 내게 억지로 이온 음료를 먹였지만 난 전부 게워내 버렸다.

그 이후로 나는 물 한 모금조차 마시지 않았다.

수잔이 내 몸을 가볍게 흔들며 말했다.

“이대로, 이대로 손 놓고 계실 건가요?”

“…….”

“이대로 다 포기하실 생각이세요?”

“…….”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건 아가씨답지 않아요. 어서 생각을 하세요, 아가씨. 아가씨라면 할 수 있잖아요!”

쩌렁쩌렁한 외침이 클로드의 침실을 울렸다. 차라리 그 소리를 듣고 클로드가 정신을 차렸으면 좋겠다.

누가 감히 공작의 침실에서 이리도 소란을 벌이냐며 찌푸린 얼굴로 고개를 들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와 수잔을 보고 아리송한 얼굴로 무슨 일이 있느냐며 물어봤으면 좋겠다.

그럼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그의 품에 뛰어들 텐데. 최근 클로드의 무역을 돕느라 아꼈던 ‘아빠’라는 말을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말하며 안길 텐데.

늘 나의 바람을 귀신처럼 알아채고 말하기도 전에 움직여주던 클로드답지 않게, 그는 지금도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새로운 절망이 나를 덮쳤다.

바싹 말라 까슬하게 각질이 올라온 입술을 간신히 움직였다.

“……하겠어.”

“……네?”

“못, ……하겠어. 아무, 것도.”

방울방울 눈물이 또 터졌다. 클로드가 쓰러진 그 날부터 매일 이랬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지다가, 또 어느새 멎었다가, 다시 눈물이 흐르길 반복했다.

내 몸이 나의 의지를 벗어났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클로드가 돌아와 주길, 다시 일어나 주길 바라는 것밖에는.

난 고개를 푹 숙였다.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여전히 억지로 내 상체를 일으켜 세우고 있는 수잔의 팔에 힘이 바짝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녀는 끝내 나를 놓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더 세게 흔들며 말했다.

“해야 해요.”

“…….”

“아가씨, 생각을 하셔야 해요. 아가씨라면 할 수 있어요.”

“내가, 뭘……. 뭘 할 수 있다는 말이야. 나는 아무것도, 못 해. 의사도 그랬잖아. 이유조차 모른다잖아. 중독된 게 맞기는 한 건지조차 모른다잖아!”

자꾸 나를 다그치는 말에 나도 모르게 큰 소리가 나갔다. 버럭 소리를 지른 탓에 머리가 띵하고 울렸다. 난 바람 빠진 인형처럼 축 늘어져 버렸다. 조금 전 외친 소리가 내게 남아 있던 마지막 힘인 것처럼.

난 수잔이 이대로 나를 다시 놓아주길 기다렸다. 하지만 나의 바람과 달리 내 위로 떨어진 것은.

“그러면…… 그러면 어떡해요.”

툭, 투둑.

뜨거우면서도 묵직한 물방울. 그것은 수잔의 눈물이었다.

난 천천히 언제 감았는지 모를 눈을 뜨고 수잔을 봤다.

“그럼 공작님은 어떡해요.”

“…….”

“도와주세요, 아가씨. 아가씨는…… 아가씨는 우리가 모르는 일을 아는 것처럼 여태까지 모든 일을 해결하셨잖아요. 글라델리스 후작가의 일도, 유리드의 일도……. 그러니까, 그러니까 또 공작님을 도와주세요……. 이대로 포기하지 말아 주세요. 제발요.”

난 수잔이 흐느끼는 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눈을 깜빡거렸다. 수잔이 터트린 울음소리에 물속에 가라앉아 막힌 것 같던 고막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한 번 정신이 수면 위로 떠오르자 여기저기서 억눌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자 모두가 입을 틀어막고, 입술을 악물고 비통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클로드가 쓰러져서 충격을 받은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라는 걸.

클로드를 잃을까 봐 두려움에 떠는 이는 나 혼자가 아니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밖에서 무릎을 꿇고 클로드가 일어나기만을 기다리는 트라이던트 해적단까지, 공작성에 있는 모두가 클로드가 일어나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수잔의 팔에서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후두둑 떨어지는 눈물이 수잔이 입은 수수한 드레스를 얼룩지게 만들었다.

난 동그랗게 퍼지는 눈물 자국을 보다 느릿하게 손을 뻗었다.

“아, ……아가씨?”

그리고는 수잔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흡, ……흑!”

내 온기를 느낀 수잔이 나를 꽉 끌어안았다. 난 어릴 적 수잔이 안아서 재워 줄 때처럼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훌쩍거리는 울음소리가 새어 나갔지만 수잔과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수잔은 내 몸을 터트릴 듯 세게 꽉 안았다. 그녀도 나와 떨어지기 싫은 듯 보였다.

성큼 다가온 가까운 이의 죽음의 위기는 곁에 당연하게 있던 이들의 소중함을 일깨워 줬다.

난 한동안 수잔을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여태 흘렸던 울음, 나도 모르게 울었다가 그쳤던 것과는 달리 내가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는 울음이었다.

잠시 후, 난 완전히 탈진하여 수잔의 품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의사를 불러와!”

“아가씨께서 탈진하셨다, 물을 가져와!”

“메리, 앤!”

수잔의 품에 안겨 늘어져 있는 동안 사람들이 부산스레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 소란도 오래 듣지는 못했다.

까무룩 멀어지는 의식 속에서 클로드가 나를 부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 * *

그로부터 꼬박 하루 후, 나는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아가씨, 정신이 드세요?”

“이온 음료를 좀 드릴까요?”

“수액도 다 들어갔어. 새로운 걸로 갈아야 해.”

수잔과 메리, 앤이 마구잡이로 말을 건넸지만 몽롱한 내 머리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입 모양을 멍하니 구경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는 감이 와서, 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결과 나는 물과 이온 음료, 미음을 동시에 먹게 되었다.

잠시 후, 나는 미음을 절반쯤 비우고 물렸다.

“더 드셔야 할 텐데…….”

“아냐, 처음부터 너무 많이 드셔도 안 좋아. 이제 식사를 거부하지 않으시니 괜찮을 거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이온 음료를 한 모금 더 드세요.”

앤과 수잔, 메리가 걱정스레 말하면서도 내 뜻을 존중해 줬다.

너무 비어서 울렁거리던 속에 뭐라도 들어가니 몸에 기운이 좀 도는 것 같았다.

다시 말해 이제야 정신이 들었단 소리다.

클로드가 쓰러졌다.

늘 나에게 짓궂은 장난을 치던 그 태산 같던 사내가 맥없이 쓰러져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어쩌면 이대로 그를 떠나보낼 수도 있다.

죽음의 무역에서도 살아 돌아온 제국의 영웅이 이토록 허무하게, 마지막 인사도 전하지 못한 채.

그 엄청난 사건이 주는 충격에 허우적거리느라 잠시 나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상한 일이야, 회귀 후 나는 어떤 일을 겪어도 아주 잠깐 동요할 뿐 바로 냉철하게 머리를 굴릴 수 있게 되었는데…….

왜 공작님의 일은 아무 생각도 못 할 정도로 넋을 빼다가 혼절한 걸까? 공작님이 이렇게 될 운명을 모르고 있던 것도 아닌데.

그래, 난 사실 클로드가 언젠가 이렇게 쓰러질 미래를 알고 있었다.

원작에서 클로드는 에메르나 때문에 독에 당한 채, 자신이 중독된 줄도 모르고 무역을 떠나 그곳에서 목숨을 잃지 않나. 그래서 나는 대비도 해 왔다.

바람개비 꽃 뿌리. 내가 그걸 왜 준비했는데.

난 깊은 한숨을 한 번 토하고 수잔에게 말했다.

“수잔, 지금 당장 최상급 바람개비 꽃 뿌리를 깨끗한 정수에 팔팔 끓여 달여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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