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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죽일 남주를 길들여버렸다-138화 (138/186)

?138화

아카데미로 강아지를 보낸 지도 또 몇 달이 흘렀다.

별다른 큰일 없이 흘러가는 매일은 평화로웠다. 유리드의 마법탄환 개발 및 판매도 순조로워 제자로 삼아 달라 찾아오는 이도 있을 정도였다.?

이를 달리 말하면 티아나 아메시스트 계좌에 겨울철 눈덩이가 불어나듯 돈이 쌓이고 있다는 소리지.

난 정말 쉬지 않고 부를 축적했다. 이 많은 돈을 이제 어디에 쓰나 고민이 될 정도다.

그사이 해가 바뀌어 나는 12살이 되었고, 나와 세 살 차이인 카르시안은 15살이 되었다.

물론 그사이 우리는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편지는 계속 주고받고 있지만 그 어떤 꼼수를 써도 만나는 건 어려웠다.

그래도 뭐, 공작님은 계속해서 황도에 드나들 수 있으니까.?

덕분에 루니아 황후와의 접선도 순조로운 듯 보였다.

그리고 오늘, 새로운 한 해의 첫 편지가 왔다.

[안녕, 라티아. 잘 지내고 있어?]

카르시안이 보낸 편지였다.

그가 보낸 편지를 보관해 둔 상자는 벌써 네 개째에 이르렀다.

그러고 보니 슬슬 새 상자를 마련해야 할 텐데.?

나는 대수롭지 않은 생각을 하며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라움디셀 공작령까지 벌써 소식이 닿았을까? 이번 제국 검술 대회에 출전하게 됐어.]

아, 이거라면 알고 있다.?

카르시안이 학년 대표로 출전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땐 얼마나 놀랍고 기뻤던지!

자신의 가르침 덕분이라며 날뛰듯 기뻐하던 헥터와 아닌 척하면서도 카르시안의 이름이 적힌 대진표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클로드가 기억에 남았다.

[아직 3개월 남았지만, 다들 실전처럼 연습하더라. 소문에 의하면 이번 검술 대회 우승자는 자신의 파트너와 함께 황성 축하 연회에 초대되어 축하를 받는대.]

어, 그래?

카르시안의 출전이 확정된 이후 나도 나름대로 이것저것 알아봤는데 이건 또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러니 라티아. 네가 괜찮다면 답신을 보낼 때 내 검에 묶을 수술을 보내 주길 바라.]

난 이 문장을 한참이나 읽었다.

그러니까 이건…… 나를 자신의 파트너로 삼겠단 뜻인 거겠지? 그리고 나를 파트너로 삼아 함께 황성 축하 연회에 초대받고 싶단 말이겠지?

아니, 맞나? 아닌가?

아리송해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검술 대회 이야기는 그게 전부였다.

파트너, 파트너라…….?

그럼 오랜만에 카르시안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수술이라 함은 보통 기사가 레이디에게 청하고, 레이디가 마음에 드는 기사에게 건네는 일종의 증표지 않나??

그걸 생각하자 나도 모르게 푸스스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당당하게 요구하는 기사가 세상에 어디에 있어?”

조심스럽게 ‘제게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고 청하는 것도 아니고 ‘묶을 거니까 보내!’ 하는 기사라니.

웃음이 안 나올 수 없었다. 하지만 카르시안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했다.

“수술은 어떻게 만드는 거더라?”

난 기다렸다는 듯 수술을 만들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아니, 카르시안이 달라는데 당연히 줘야지!

무엇보다 내가 만든 수술이 그의 검에 걸린다니, 카르시안이 그 검으로 대회를 나간다니!?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동시에 내심 심장이 뻐근해질 정도로 뿌듯했다.

황성에 다녀올 때마다 아카데미에 들르는 클로드의 말을 들어 보니 카르시안에게 반한 영애가 굉장히 많다고 한다.

당연히 그러겠지. 카르시안은 제국의 영웅의 아들인 데다가 라움디셀 소공작이니까.

게다가 객관적으로 카르시안은 아주, 굉장히 잘생겼다. 못 본 지 벌써 2년이 지났으니 그사이 어떻게 성장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더 훌륭한 미소년이 되어 있을 터.

그런 카르시안이 모두를 제치고 곧장 나를 선택했다.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다른 의미를 부여하진 않았다.?

남자 주인공은 자고로 조신하고 얌전하며 여자관계가 단순해야 하는 법.

훗날 이리스라는 여자주인공을 만날 남자 주인공의 운명이니 괜한 염문설을 뿌리지 않기 위해 날 선택한 거겠지.

난 애써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기억 속 카르시안과 마지막으로 만난 순간을 되새겼다.

아카데미 앞에 멈춰 선 마차, 오렌지빛 석양이 지고 있는 하늘, 마차의 계단 아래에서 날 올려다보던 생소한 각도의 소년미 흐르는 얼굴.

그리고…… 내 손등에 닿았던 입맞춤.

단 한 순간도 잊은 적 없으나 잊은 줄 알고 지내던 장면이 떠오르자마자 내 얼굴에 화다닥! 불이 붙고 말았다.

“으…… 진짜…….”

그리고 한동안 울렁거림이 멈췄던 가슴도 다시금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당시의 카르시안을, 그가 내 손등에 입을 맞췄던 순간을 떠올리기만 하면 이렇게 몸이 이상해졌다.

얼굴로 피가 바짝 몰리고, 숨이 가빠지고, 괜히 심장이 쿵쾅거렸다.?

“정말 이상한 일이야…….”

?

클로드의 말마따나 카르시안과 나는 ‘친구’인데 왜 이러는 건지.

카르시안은 이 세계의 남자 주인공이야, 그 말은 즉 운명의 짝이 있다는 소리지.

“그러니까 나는 지금이 딱 좋아. 어릴 적 도움을 줬던 사람, 친구. 딱 적당해.”

난 일부러 소리 내어 중얼거리고는 여섯 장이나 쓰인 편지를 몽땅 읽어 내려갔다.

[추신. 수술 색은 보라색이 좋겠어. 볼 때마다 널 떠올릴 수 있게.]

카르시안은 수술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당당하게 색상까지 지정했다.

“뻔뻔해.”

난 카르시안이 듣고 있는 것도 아닌데 편지지를 노려보며 입술을 비쭉거렸다. 하지만 색이 정해졌으니 수술을 만드는 건 정말 금방일 것이다.

“전에 수잔에게 수술을 만들 때 넣는 기교를 배운 적 있었는데…….”

문제는 한동안 만들지 않았더니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어쩔 수 없다. 수잔에게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지.”

난 곧장 설렁줄을 잡아당겨 수잔을 불렀다.

* * *

며칠 뒤 뜻밖의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그게 정말이야?”

“네! 이번 제국 검술 대회장은 황도가 아니고 그 옆의 가스토난 숲에서 치러진대요!”

오늘도 나와 수술을 만들기 위해 빈 시간에 찾아온 수잔이 전해 준 이야기였다.

“그럼…… 카르시안을 만날 수 있겠네?”

“어쩌면요!”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신나서 묻자, 그런 내가 귀엽다는 양 수잔이 후후 웃으며 말했다.

난 황도 접근 금지령 때문에 황도 소재의 아카데미에 있는 카르시안과 그간 만나지 못했던 건데, 그게 아니라면……!

“와, 카르시안에게 직접 수술을 전해 줄 수 있을지도 몰라!”

난 어제 절반가량 완성해 둔 보라색 수술을 꺼내 들며 말했다.?

실 사이사이 동그란 구슬처럼 세공한 자수정을 끼워 만든 수술은 수수하면서도 우아한 멋이 있었다.?

일부러 술의 길이를 짧게 조정했으니, 카르시안이 검을 아무리 거칠게 휘둘러도 손가락에 엉겨 붙지 않으리라.

“혹시 운이 좋다면…… 내가 달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음, 그럼 미리 어느 걸 달지 정해 둬야겠네요.”

“아, 응. 그러게.”

사실 난 보라색 수술 하나만 만든 게 아니었다. 내 머리카락 한 가닥과 실을 꼬아 만든 밀색 수술도 만들었다.

내가 두 수술을 꺼내 들자, 메리가 입을 열었다.

“머리카락을 꼬아 만들었으니 분명 이쪽이 더 아가씨의 마음을 잘 전해 줄 거예요.”

“으음, 전 반대예요. 오히려 아가씨의 마음이 너무 무거워서 도련님이 집중을 못 할지도 몰라요. ‘라티아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수술, 조금도 망가지게 할 수 없어!’ 하면서요.”

수잔의 바로 옆에 찰딱 달라붙어 제 커틀러스에 달 수술을 만들던 앤이 반박했다.

“음…….”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는 것 같아서 나는 완성된 밀색 수술과 아직 만드는 중인 보라색 수술을 번갈아 봤다.

내가 고민하는 듯 보이자 앤이 말했다.

“그리고 도련님이 부탁한 건 보라색 수술이었잖아요. 전 보라색! 하면 아가씨, 아가씨! 하면 보라색이라서 도련님이 그런 부탁을 했다고 생각해요.”

“음…… 아니면 반반씩 섞는 건 어때요? 도련님은 보라색을 달라고 했지만 아가씨가 더 예쁘게 만들려고 다른 색을 섞었다고 말하면 그건 또 그것대로 좋아하실 거예요.”

잠자코 앤의 말을 듣고 있던 메리가 타협안을 내어 줬다.

“절반씩 섞는다라……. 그럼 카르시안이 보라색이 좋겠다고 콕 집었으니까 앞에서 보라색 수술이 좋은지, 밀색 수술이 좋은지 고르게 해야겠다.”

“네, 좋아요.”

“와, 우리 도련님 선택 장애 생기겠는데요?”

“그러게 말이야. 우리 아가씨께서 이렇게 정성스럽게 만드셨으니 무슨 수술을 달아도 우승은 따놓은 당상이겠구나.”

메리가 내게 차분히 고개를 끄덕이자, 앤과 수잔은 쿡쿡 웃으며 말했다.

한창 수술을 마무리하던 중.

“아, 빨리 카르시안에게 전해 주고 싶다…….”

나도 모르게 본심이 흘러나와 버렸다. 난 깜짝 놀라서 내 입을 헙 틀어막았는데, 세 사람은 수술 만드는 것에 열중한 건지 내 중얼거림을 듣지 못한 듯했다.

휴, 다행이야.

난 세 사람이 조용히 시선을 교환하는 것도 모른 채 아무렇지 않은 척 수술 만들기에 전념했다.

하지만 결국 내가 만든 수술은 카르시안에게 직접 달아줄 수 없었다.

검술 대회 전날, 클로드가 쓰러졌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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