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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죽일 남주를 길들여버렸다-137화 (137/186)

?137화

클로드는 진흙탕에 빠진 것 같단 착각을 느꼈다.?

에메르나의 목소리는 늪에 고인 썩은 물 같았다. 달큼한 냄새가 나면서도 끈적거려 움직일 때마다 몸에 엉겨 붙어 그를 늪의 밑바닥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불쾌함과 짜증이라는 늪으로.

클로드는 어느새 제게 바짝 붙어 팔짱을 낀 에메르나를 힐긋 내려다봤다. 제 남편의 장례식임에도 불구하고 풍만하게 강조한 가슴이 노골적이었다.

모순적이게도 늘 뭇 남성들의 이성을 흔들던 에메르나의 육감적인 자태를 보고 클로드는 정신을 차렸다.

“사양하겠습니다.”

에메르나의 살결에 닿는 것 자체가 끔찍하다는 양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팔을 빼낸 클로드가 말했다.

“황성의 낮말은 시녀가 듣고 밤말은 하인이 듣는다지요. 새와 쥐의 귀에 들어갈 새도 없이 말입니다.”

에메르나는 제가 남자에게, 그것도 클로드에게 거절당했단 생각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이런 적은 사교계에 데뷔한 이후 처음이었다.

게다가 클로드는 지금 에메르나를 힐난하고 있었다.

남편의 장례식에서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냐고. 자식을 죽이겠단 말이 가당키나 하냐고.

아론이 복위한다는 것, 그것은 곧 제네스의 폐위를 뜻했으니.

기실 에메르나는 자신이 아론의 복위를 돕는다고 말하면 클로드가 관심을 보일 줄 알았다.?

사실 에메르나도 알고 있었다.

‘제네스는 황제의 재목이 아니야.’

아무리 가꾸려고 해도 태생적으로 불가능한 재능의 한계가 있는 법이다. 그를 말미암아 보았을 때 제네스가 황관을 쓰는 순간 하이페디움 제국은 휘청거리고 말 터.

그럼에도 에메르나가 아론을 폐위시키고 제네스를 황태자로 올린 이유는 뚜렷했다.

‘내 입지가 필요해.’

에메르나는 황비이기 때문에 황제인 레오나르도가 사라지면 그녀를 비추는 빛도 사라질 게 자명했다. 국모인 황후처럼 홀로 빛날 수 없는 위치이니.

하여, 에메르나는 자신을 비출 차기 태양으로 제네스를 선택했을 뿐, 다른 이유는 없었다.

참으로 비정한 어미라면 그러했다.

에메르나가 입지를 다지려고 한 이유는 당연히 클로드 때문이었다. 에메르나는 클로드보다 높은 위치에 있어야 했다. 그래야 클로드를 멋대로 쥐락펴락할 수 있으니까.

다시 말해 에메르나는 처음부터 클로드에게 자신의 부군 자리를 주기 위해 레오나르도를 죽이고, 목적을 달성하면 제네스를 치워 버릴 생각이었다.

이런 무서운 진실을, 에메르나는 가슴 속 깊은 곳에 단단히 묻어 둔 채 지금껏 레오나르도를 사랑하고 제네스를 위하는 어미를 연기해 왔다.

하지만 지금 에메르나는 단 몇 마디의 말만으로 저의 시꺼먼 속이 들통나 버렸다.

그것도 가장 숨기고 싶던 클로드에게.

그가 싸늘한 시선으로 말했다.

“더 하실 말씀이 없으시다면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에메르나는 클로드를 잡을 수 없었다.?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고 있음에도 세로로 긴 상흔이 남은 눈가 속 서늘함이, 붉은 눈동자 속 자리 잡은 경멸이 에메르나를 난도질하고 있었다.

에메르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갈라진 목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왜?”

왜 항상 이런 식이지?

왜 클로드는 매번 이렇게 제게 등만 돌리는 거지?

왜 단 한 번도 제 뜻대로 되지 않는 거지, 저 클로드란 남자는?

어째서?

생각해 보면 클로드는 처음부터 그랬다.?

에메르나는 아이샤보다 먼저 클로드를 좋아했다. 고백도 에메르나가 앞섰다. 그런데 클로드는 아이샤와 약혼을 하고 결혼을 했다. 에메르나에겐 기회조차 없었다.

그것은 아이샤가 죽은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클로드는 혼자가 되었음에도 단 한 번도 에메르나에게 시선을 보내지 않았다.

사실 에메르나는 아이샤를 죽이기 위해 그녀의 가문과 클로드의 가문인 라움디셀 백작가를 가난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클로드가 아이샤의 가문을 돕기 위해 가산을 탕진해 갈 때쯤, 에메르나는 아이샤에게 독을 먹였다.

‘아이샤가 죽으면, 그래서 사라지면 클로드가 내게 올 거라 생각했어. 왜냐면 난 황비니까, 가장 부유한 여인이니까…….’

도와달라고,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그렇게 빌러 올 줄 알았다. 그것만을 바라며, 제 발치에 무릎을 꿇고 빌 클로드를 고대하며 에메르나는 황제에게 사특한 주술을 걸었다. 하지만 클로드는 에메르나가 있는 황성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곧장 죽으러 무역을 떠났다.

에메르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왜 나에게 기대지 않는 거야? 왜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거야?’

돌이켜보면 에메르나의 인생은 온통 클로드뿐이었다.

오로지 그 때문에 황제를 유혹했고, 황제와 잠자리를 가졌고 결국 황제의 아이를 가졌다. 그런데도 에메르나는 클로드를 가질 수 없었다.

“왜? 난 왜 안 되는데, 나는 왜? 내가 뭐가 부족해서, 내가 그 여자보다 대체 뭐가 부족해서……!”

자신을 고르지 않는 클로드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황제를 유혹했다 하지만, 결국 에메르나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클로드의 사랑이었다.

그런데 그 사랑이, 에메르나만의 순정이 몇 차례나 짓밟힌 지금.

애정이 증오로 변모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아이샤가 미웠다. 클로드가 미웠다.

결국엔 이 꼴이 된 자신이 한심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레오나르도에게 걸었던 사특한 주술도, 풀려 버리고 말았다.

아이샤와 루니아는 대체 어떤 여인이기에 죽음으로도, 주술로도 제 남자를 움켜쥐고 놓지 않을 수 있는 걸까.

에메르나는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봤다.

초가을의 날씨가 참으로 평화로웠다. 이 평화로운 날의 아침에, 황제가 죽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뒤로 돌아갈 길은 이미 무너진 지 오래다. 그러니 에메르나는 계속 걸어야만 했다.

설령 이번 생에서 그녀가 움켜쥘 클로드는 싸늘한 주검이라 하더라도.

잠시 후, 에메르나가 떠난 건물의 뒤에서 누군가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

가만히 마른침을 삼키고 있는 이는 아직 어린 소년이었다. 깨끗한 은발과 초목을 연상케 하는 녹색 눈동자를 가진 소년.

현 황태자인 제네스였다.

* * *

황제의 장례식이 치러진 지도 벌써 석 달이 지났다.

장례식이 치러졌던 초가을에 올려다봤던 하늘은 이제 눈을 머금은 희뿌연 구름으로 뒤덮인 계절이 왔다.

전에 클로드와 헥터가 나누는 대화를 어쩌다가 몰래 듣게 되었는데, 그때 듣기로 황제의 장례식은 아주 이상했다고 한다.

시체가 없는 장례식이라니?

이 이야기는 현재 황제궁에서 경비 근무를 서는 기사가 전해 준 이야기라 하였다. 그는 전 트라이던트 해적단이라서 그런지 아직도 헥터와 활발히 교류하는 모양이었다.

또 그 장례식에 황제의 시신이 없었단 이야기를 아는 이는 아주 극소수라고 했다.?

그 말은 즉 누가 작정하고 진실을 숨겼다는 뜻.?

‘어쩌면 빈 관을 먼저 이송할 때 퍼진 헛소문일 수도 있어.’

헥터는 그렇게 말하며 가능성을 열어 두었지만 당시 그 이야기를 듣던 클로드의 표정을 보건대 ‘시체가 없다’는 말은 확실한 것 같았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어떤 의도로 황제의 시체를 숨긴 걸까?

당시 난 무엇 때문에 클로드를 찾아갔던 건지조차 잊어버리고 황급히 방으로 돌아왔다. 그만큼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황제 폐하의 시신조차 없다니. 그런데도 장례식을 강행했다니…….

레오나르도는 아침 사냥을 나갔다가 죽음을 맞이했다고 했다. 그리고 장례식은 그날 오후에 치러졌다.

이상하지 않은가?

사냥을 나갔던 황제의 시신이 없으니 죽었다는 게 확실하지도 않은데, 이토록 빨리 장례식을 치르다니.?

그것도 엄청나게 성대하게!

하지만 이런 의문에도 나는 계속해서 레오나르도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이건 원작에도 있던 이야기니까.

내가 비튼 것은 황후의 건강뿐, 황제의 병과 죽음은 손을 대지 못 했다.

바람개비꽃 뿌리를 한 뿌리 주긴 했지만…… 그 효과가 어떨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여, 나는 황제의 장례식에 대한 생각은 가급적 훌훌 털어 버리기 위해 노력했다.

종종 이상할 만큼 슬프고 괴로운 기분에 휩싸였지만, 거기에 매달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강아지야, 이리 와!”

“멍! 멍멍!”

시간은 계속 흐르고, 오늘은 디케 신전에서 입양해 온 카르시안의 수호천사를 아카데미에 보내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반려동물 사육 허가가 내려져서 다행이에요.”

내가 강아지의 목에 예리엘 만물 상단에서 구입한 동물어 번역기 펜던트를 걸고 있으니, 옆에 선 메리가 말했다.

“응. 카르시안이 허가를 받기 위해 이번 시험을 엄청 열심히 봤대.”

나는 카르시안에게 강아지를 한 마리 입양했다고 편지에 적으며, 카르시안이 그 강아지의 친구가 되어 주길 바란다고 적었다. 카르시안은 동물을 기르지 않았지만, 호냥이나 삐로리를 챙기는 것을 보았을 때 문제없으리라.

“드디어 네 진짜 주인을 만나겠구나.”

“그르응.”

나는 석 달 사이 훌쩍 자란 강아지의 목덜미를 긁어 줬다.?

첫 이름은 카르시안이 지어 주는 게 좋을 것 같아 여태 ‘강아지’라고 부르고 있었는데, 다행히 ‘강아지’를 자신의 이름으로 인식하진 않은 모양이었다.

“그럼 슬슬 출발하지.”

강아지를 데려다주는 역할은 클로드가 맡았다. 여전히 나는 황도에 가지 못한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그래. 아.”

?

무심코 대답하던 클로드가 마침 생각난 게 있다는 양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등나무 정자에도 잠깐 들렀다 올 생각이다.”

“!”

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등나무 정자에 다녀오겠다는 말은 즉 황후, 루니아를 보고 온다는 뜻!

클로드는 원작처럼 아론 폐태자의 복위를 도우려고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황도에 방문할 때마다 은밀히 루니아를 만나고 왔다.

“앗, 그럼 잠깐만요!”

난 황급히 내 방으로 뛰어 올라갔다. 그리고는 버틀러가 만들어 준 테라리움 속의 바람개비꽃 뿌리를 꺼내 상자에 담았다.

“이것도 전해 주세요.”

“음, 그래.”

클로드는 그 안에 든 것이 무엇인지 묻지도 않고 상자를 챙겼다. 내가 왜 자꾸 바람개비꽃 뿌리를 황후에게 주는지 모르겠단 눈치였지만 딱히 묻지는 않았다.

클로드와 강아지가 탄 마차가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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