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올해 들어 삐로리에겐 한 가지 목표가 생겼다.
그건 바로 카르시안의 수호천사를 찾아 주는 것.
‘수호천사와 오래 떨어져서 좋을 건 없어.’
그리고 수호천사가 없는 카르시안과 긴밀한 사이인 라티아 또한 어떤 식으로든 악영향을 받을 게 분명했다. 그렇기에 삐로리는 카르시안의 수호천사를 찾아 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삐로리는 카르시안의 수호천사를 찾을 수 없었다.
‘정말 이상해. 난 대천사야. 어지간한 수호천사의 기척은 전부 느낄 수 있다고.’
그 예로 삐로리는 그 넓은 황성에서 아론의 수호천사, 루카오를 기가 막히게 찾아냈다. 그것도 단번에. 그런 삐로리가 수호천사를 찾긴커녕 단서조차 잡지 못하는 건 확실히 이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호천사가 없는데도 카르시안이 너무 멀쩡해.’
그는 이미 수호천사가 곁에 없을 경우의 극단적인 예를 알고 있다.
바로 라티아의 여동생인 엘레네.
카르시안 또한 수호천사가 곁에 없는 것은 매한가지인데, 그는 엘레네와 달리 너무도 올곧게 자라고 있었다.
삐로리는 이 점이 이상하고 또 궁금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그렇게 고민하던 게 며칠, 삐로리는 드디어 그 해답을 알아냈다.
“끄웅…….”
사육사의 품에 안겨 있는 강아지가 울상을 지었다. 삐로리의 날개에 흠씬 두들겨 맞아 겁에 질린 모양이었다.
“이봐, 이봐. 이러지 마.”
사육사가 부드러운 손길로 삐로리를 밀어냈다. 하지만 삐로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삐, 삐로!”
오히려 방해 말라는 듯 사육사의 손등을 부리로 콕콕 찍어 대기까지 했다.
“힉, 삐로리!”
그에 깜짝 놀란 라티아가 황급히 두 손으로 삐로리의 날개와 몸통을 잡아 공격을 막았다.
“이게 무슨 짓이야, 삐로리!”
라티아가 호통을 치자 삐로리가 억울한 눈빛으로 고개를 돌려 라티아를 바라봤다.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는데, 라티아는 지금 그를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죄송해서 어떡하죠? 삐로리가 이런 아이가 아닌데, 낯선 장소에 와서 흥분을 했나 봐요.”
손등을 쪼인 사육사와 날개와 발톱에 후드려 맞은 강아지에게 사과하기 바빴기 때문이다.
“괜찮습니다. 새에게 쪼이는 것쯤이야 일상이죠. 하지만 새가 많이 흥분한 듯 보이니 눈을 가려 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다행히 사제는 라티아에게 신의 종을 상처 입힌 잘못을 더 묻지는 않았다. 라티아는 반려조 한 마리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여 이 소동을 만든 자신이 부끄러워져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네, 그러는 게 좋겠죠.”
라티아가 가까스로 한숨을 삼키며 삐로리의 눈을 가리려던 때였다.
“삐이익!”
갑자기 삐로리가 거세게 날뛰기 시작했다.
“앗!”
깜짝 놀란 라티아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더니 다시 날아올라 강아지를 향해 쐐액 날아갔다. 동시에 만일을 위해 꺼둔 동물어 번역 펜던트를 켰다.
[왜 날 모르는 척하는 거야, 이 망할 개X끼야!]
새의 입에서 나올 거라곤 생각하지도 못한 욕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쩡 얼어붙고 말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삐로리는 여전히 새의 이마를 발로 탁탁 두드리거나 부리로 쪼는 둥, 작은 강아지의 반응을 끌어내려 했다.
“삐애애액!”
[이 개새X, 내가 널 얼마나 찾아다녔는 줄 알아! 이 새끼야!]
삐로리의 폭언이 마구 쏟아졌다. 라티아는 너무 놀라 입을 틀어막았고, 앤과 메리는 라티아의 눈을 가려 줘야 할지 귀를 막아 줘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사육사 또한 난생처음 보는 동물어 번역기 펜던트에서 나오는 글자에 놀라 얼어붙고 말았다.
결국 삐로리를 막아 주는 이가 아무도 없자, 여태 온순하게 달달달 떨기만 하던 강아지가 본성을 드러냈다.
“크르…… 왕!”
저 자그마한 몸에서 대체 어떻게 이렇게 큰 소리가 나오는 걸까?
보더콜리처럼 끝만 살짝 접혔던 귀가 빳빳하게 펴지더니, 요령도 좋게 사육사의 팔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왕! 왕!”
그리고는 퍼덕퍼덕 날아다니는 삐로리를 물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떽! 이러면 못 써!”
황급히 정신 차린 사육사가 강아지를 말렸지만, 개새X라는 폭언을 여러 차례 들은 강아지는 뵈는 게 없어 보였다. 오히려 자신을 말리는 사육사의 어깨에 앞발을 올려 두고 위로 기어 올라가려 애를 썼다.
‘그런데 강아지가 ‘개X끼’라는 욕을 알아들을 수 있던가?’
그 순간 라티아는 아까 삐로리의 표정에서 읽었던 생각을 떠올렸다.
‘으이구, 이 화상아! 어디 숨어 있나 했더니, 여기에 콕 박혀 있냐? 내가 얼마나 찾은 줄 알아!’
그리고 곧바로 다른 생각으로 이어졌다.
‘지켜야 하는 카르시안은 내팽개치고,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라티아는 불현듯 깨달았다.
‘혹시 저 강아지가 카르시안의 수호천사인 건가?’
사실 라티아도 카르시안의 수호천사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있던 참이었다. 하지만 마땅히 물어볼 곳이 없어 고민만 했다.
‘시엘 선생님에게 여쭤봤어도 아무런 정보가 없으니 소득이 없었고, 그렇다고 삐로리에게 묻자니 그럼 내가 수호천사란 존재를 알고 있다고 밝히는 셈이 되니까.’
그래서 최근에 들어서는 그냥 먼 발치에서 카르시안을 굽어살피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카르시안의 수호천사가 저 강아지라고?’
건물 내부에 있는 푯말을 보아하니 이곳은 유기동물 보호소인 모양이었다. 밀렵꾼에게 당하거나 자연재해로 부모를 잃은 아기 동물들을 인공 포육하여 방생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곳에 어쩌다 카르시안의 수호천사가 흘러들어오게 된 걸까?
‘그리고 카르시안과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셈인데, 왜 카르시안은 멀쩡한 거지?’
그는 결코 엘레네처럼 이상해지지 않았다. 그게 무척이나 이상하고 의아했다.
하지만 그 의문은 곧 삐로리의 표정을 통해 알게 되었다.
‘어쩐지, 내가 어디에서도 네 흔적을 찾을 수 없다 했어! 주신의 결계 안에 있으니 내가 모를 수밖에. 하지만 다행이야. 네가 신의 결계 안에 있으니 신께서도 카르시안을 굽어살펴 주신 모양이지.’
주신의 결계, 그건 분명 이 디케 신전에서 ‘신의 안배’라 불리는 것일 터.
살갗을 에고 뼈를 굳게 만드는 로키울 산맥의 겨울 속에서도 봄을 불러와 꽃을 틔우게 할 만한 힘.
그 힘을 달리 말하면 세상과의 완전한 단절을 뜻했다.
어째서 카르시안의 수호천사가 이곳으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또한 신의 뜻이자 운명. 그러니 신은 수호천사가 자신의 아이와 만나기 전까지 직접 카르시안을 돌봐 준 모양이었다.
라티아는 생각했다.
‘과연 남주야. 남주 버프는 어디에나 있구나.’
그것도 신이 뒷배를 봐주는, 아주 짱짱한 버프가.
‘그나저나 그래서 삐로리도 카르시안의 수호천사가 어디에 있는 건지 몰랐던 거구나.’
신의 권속이 신의 힘 속에 가려졌으니 알 턱이 있나.
라티아는 고개를 주억거리다 멈칫거렸다.
‘그럼 삐로리는 일찌감치 카르시안의 수호천사를 찾고 있었단 말이야? 설마…… 나에게 행선지를 밝히지 않은 외출이 잦아진 이유는 카르시안의 수호천사를 찾기 위해서였나……?’
세상에, 그렇다면 라티아는 큰 실수를 했다. 클로드의 부인인 아이샤의 묘를 이장할 때, 사라졌던 삐로리를 크게 야단쳤지 않나. 그 이후로도 삐로리가 멋대로 사라진다며 투덜거렸고 칭얼댔다.
‘삐로리가 카르시안을 위해 주는 줄도 모르고…… 난 몰라.’
미안해서 어떡한담. 게다가 지금도 삐로리는 카르시안의 수호천사를 알아보고 꽁꽁 숨어 있던 그에게 분노를 터트렸던 것인데, 라티아는 그것도 모르고 삐로리를 말리기 급급했다.
‘사과를 하자니 그럼 내가 삐로리가 내 수호천사란 걸 알고 있다고 알리는 꼴이야.’
라티아는 어떻게 해야 이제라도 삐로리를 도와줄 수 있을지 고민했다. 다행히 그 시간은 짧았다.
“삐로리가 이렇게까지 격한 반응을 보인 동물은 그 강아지가 처음이에요. 어쩌면 특별한 인연이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그러니 그 강아지, 저희 라움디셀 공작가에서 입양할게요.”
라티아는 라움디셀 공작성에서 살고 있고, 라움디셀 공작성은 카르시안의 집이다. 삐로리의 뜻대로 카르시안과 강아지를 만나게 해 주고 내내 곁에 둘 수 있는 방법은 입양밖에 없다. 때마침 이곳은 유기 동물 보호소였고 말이다.
“삐?”
“멍?”
라티아의 느닷없는 선언에 삐로리와 강아지가 깜짝 놀라 그녀를 돌아봤다. 사육사 또한 놀라긴 매한가지였지만 이내 활짝 웃었다.
“그게 정말이십니까?”
새로운 주인이라니! 사육사로서는 기쁜 일이었다.
상대가 누구인지, 강아지를 정말로 사랑해 줄 수 있는지 따위는 걱정하지도 않았다.
라티아가 강아지를 입양하겠다 한 순간 메리가 ‘공작가에서 입양하겠다’는 말을 뒷받침하듯 얼른 외투 단추를 꺼내 보였다. 그 단추엔 속세를 떠나 사는 사제들도 아는 제국의 영웅, 라움디셀 공작가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이 강아지는 분명 아주 강하고 거대하게 자랄 겁니다. 경비견으로는 아주 제격이죠.”
공작성은 무척 넓으니 강아지가 뛰어놀며 자라기 딱 좋은 환경일 터.
입양 절차는 눈 깜빡할 새에 이루어졌다.
‘그러고 보니 완결 때까지 카르시안이 개를 키웠단 소린 없었는데…….’
원작이 어떤 쪽으로 비틀릴지 몰라 뒤늦게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라티아는 후회하지 않았다.
‘좋으면 좋았지, 나쁜 일은 없을 거야.’
어쩐지 출발할 때 좋은 예감이 들더라니, 카르시안의 수호천사를 만나려고 그랬나 보다.
라티아는 흐뭇하게 웃으며 아직도 얼떨떨해 보이는 강아지와 함께 유기 동물 보호소를 나섰다.
“아이 귀여워라.”
“엄청 똘똘해 보이는데?”
메리와 앤도 강아지를 무척 귀여워하며 화기애애했지만, 그 와중에 찬바람을 쌩쌩 일으키는 이가 있었으니.
‘설마, 알아차린 건 아니겠지? 수호천사에 대해서……?’
바로 라티아를 의심하는 삐로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