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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죽일 남주를 길들여버렸다-109화 (109/186)

109화

내 예상대로 남성 위주로 판매되던 총이 여성에게도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난 문가에 서서 지난 일주일간 그루안 상단에서 판매된 총기류의 영수증을 보고 있었는데, 앤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진작 이랬어야 했어. 아무리 호위 기사와 함께 다닌다 하더라도 위험한 순간이 올 때가 있긴 하잖아. 왜, 애당초 내 목숨을 남에게 맡기는 건데 완벽하게 지켜질 거라 생각하는 게 안일한 거 아냐? 아, 물론 저는 제 목숨 버리고 아가씨를 지킬 거지만요.”

맞는 말을 죽 하다가 자신이 나의 호위라는 걸 깨달았는지 얼른 덧붙였다. 민망했는지 앤의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지만, 난 웃을 수 없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왜 앤의 목숨을 버려? 난 메리에게 사격술을 배우고 있어. 메리가 그러는데, 나는 소질이 있대.”

“맞아요. 아가씨는 사격술에 소질이 있어요. 방아쇠를 당기는 게 얼마나 큰 배짱을 요구하는 건데요.”

메리가 얼른 내 편을 들어 줬다. 앤과 매번 티격태격하지만 그래도 두 사람은 무척이나 사이좋은 친구가 분명했다.?

그러니 앤의 ‘제 목숨 버리고’란 소리에 드물게 발끈하는 거겠지.

우리가 즉각적으로 반박하자 앤이 무척 감동받은 표정을 지었다.

“아가씨…… 메리이이…….”

앤은 우리에게 달려와 안기려고 했지만, 나와 메리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양옆으로 갈라지며 슥 피했다.

“……?”

앤이 황당하다는 듯 우리를 봤지만, 나와 메리는 마주 보고 키득키득 웃기만 했다.

앤은 놀리는 맛이 있다니까.

앤이 더 뭐라 말하기 전에, 메리가 적절히 화제를 돌렸다.

“하지만 앤의 말이 맞아요. 호위가 있음에도 때때로 위험에 오롯이 노출되죠. 어쩔 수 없이요. 하지만 그렇다고 그때를 대비하여 호신술을 배우자니 그건 귀족들 사이에서는 격 없는 짓이잖아요.”

호신술을 배웠다는 건 가문의 호위 기사가 아가씨를 위험에 노출시킬 정도로 무능하단 뜻이기도 하니까.

게다가 검은 아무래도 단련해야 하는 기간이 길고 마법은 어지간한 수재가 아니고서야 배우는 것조차 어려운 학문이었다. 그 모습이 어떠한가는 차치하고 말이다.

그에 비해 총은 어떤가!

방아쇠를 당길 힘만 있다면 검이나 마법보다 쉽게 상대를 다치게 할 수도, 위협을 가할 수도, 본인을 보호할 수도 있다. 게다가 유리드가 막 개발에 박차를 가한 ‘마법탄’은 호신술은 물론 사태 수습으로도 제격이었다. 공포탄도 그렇다.?

“참, 저 그 이야기도 들었어요.”

“응?”

“예리엘 만물 상단에서 총을 구매하면 ‘각인된 주인의 손에서만 방아쇠가 당겨지는 마법’을 걸어 주고 있다면서요.”

“아, 맞아. 그러면 혹여나 총을 갈취당할 일도, 역으로 위협을 당할 일도 없지. 내 총에도 걸려 있대.”

아무래도 예리엘 만물 상단 뒤에 마법사의 탑이 있다는 걸 슬슬 드러낼 생각인 모양이었다.?

저번에 앤니스 백작이 그루안 상단에 깽판을 친 걸 보고 시엘이 생각을 바꿔 먹었다고 하더니.

이렇게까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려고 할 줄은 몰랐다.

“아무튼 총의 장점이 이토록 많다 보니 귀부인들 본인은 몰라도 딸의 안전을 항상 걱정하고 있는 ‘어머니’들은 혹할 수밖에.”

하물며 이미 내가 한 차례 사용하여 클로드도 구해 낸 데다가 티파티에서도 활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법은 누구에게나 동경의 대상이었다. 한데 내가 총으로 마법을 쓰는 모습을 본 영애들을 누가 말리랴.

“물론 무기인 만큼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겠지만 말이야.”

“네. 하지만 이미 구매 연령 제한은 걸려 있으니까요.”

만 14세 이상만 구입할 수 있고 미성년자일 경우엔 부모나 후견인 등 보호자의 허락이 필요했다.

난 영수증을 책상에 올려 뒀다.

“자 그러면 나가 볼까?”

오늘 난 메리와 함께 새로 단장한 사격장에 갈 예정이었다. 내가 열심히 연습한 덕분에 사격 연습장이 아수라장이 됐다. 이를 본 클로드가 거금을 들여 아예 ‘라티아 전용 사격장’을 만들어 줬다.

“어떤 모습으로 바뀌었을지 궁금해.”

“저도요. 무려 공작님께서 직접 지시하신 거니까요.”

“앗, 저도 같이 가요!”

나와 메리가 슥 방을 빠져나가자 관심을 바라는 강아지처럼 부루퉁해져 있던 앤이 후다닥 뛰어나왔다.

하여간 귀엽다니까.

난 나보다 머리 세 개는 더 큰 앤을 보고 쿡쿡 웃으며 사격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때였다.

“아, 아가씨. 여기에 계셨군요.”

“응?”

버틀러가 찾아왔다.

“다름이 아니라 아가씨께 급한 편지가 왔습니다.”

“급한 편지?”

“네. 총 두 통인데 그루안 상단에서 온 것이 하나 그리고…….”

버틀러가 내게 편지를 내밀며 드물게 말을 끌었다. 그의 얼굴에 직접 보는 게 나을 것 같단 생각이 쓰여 있었다.

대체 누가 보낸 거길래 그래?

난 별로 깊게 생각하지 않고 버틀러에게서 편지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순간 나도 모르게 움찔거리고 말았다. 버틀러의 입가에 ‘아이고’ 하는 탄식이 스쳤다.

“…….”

나 또한 말을 잇지 못했다. 왜냐면 버틀러가 미처 말하지 못한 발신자는 다름 아닌 카르시안이었으니까.

“아가씨, 무슨 일인데 그래요?”

나와 버틀러가 굳어 있자 뒤에서 손깍지를 끼고 뒤통수를 받친 채 설렁설렁 걸어오던 앤이 내 쪽으로 슬쩍 고개를 뺐다. 메리도 궁금한지 조금 몸을 들썩거렸다. 그러다 편지의 발신인을 봤는지 두 사람 다 쩡 굳어 버렸다.

“음 ……아, 오.”

앤이 영문 모를 소리를 하다 저는 이 일에서 빠지겠다는 듯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그것도 턱, 하고 앤의 어깨를 잡아챈 메리 때문에 얼마 가지 못했지만 말이다.

메리가 “으아.” 하고 약한 소리를 하는 앤을 다시 내 곁으로 끌고 오며 말했다.

“아가씨, 어떻게 하시겠어요? 사격장……에 가시겠어요? 아니면…….”

급한 편지라고 했다. 그러니 바로 확인하는 편이 좋을 듯싶었다. 특히 그루안 상단의 것은 더더욱. 하지만…… 하지만.

“아니. 일단 사격장에 다녀와서 볼래.”

내 말에 앤과 메리, 버틀러가 짧게 탄식했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사격장에 들고 가서 보시는 건 어떠십니까?”

앤과 버틀러가 걱정스레 물었지만, 난 고집스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 이건 나의 투정이다. 그간 나에게 짤막한 편지 이후 단 한 통도 연락을 하지 않았던 카르시안에게 부리는 투정.?

비록 카르시안은 내가 편지를 얼마 만에 읽었는지 신경도 쓰지 않을 테지만…….

그 생각을 하니 얼굴이 절로 찌푸려졌다. 카르시안은 내게 별생각도 없을 텐데 나 혼자 편지 하나 가지고 좀스럽게 구는 게 짜증이 났다. 나 스스로에게 말이다.

“방에 가져다 놔. 사격장에 갔다가 나중에 확인할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앤과 버틀러가 뭐라 말하려 했지만 메리가 얼른 그들을 가로막으며 내게서 편지를 받아갔다. 난 메리에게 편지를 주면서도 손끝에 남았던 종이의 감촉이 아쉬워 입맛을 다셨다. 웃긴 일이었다.

그래 봐야 오늘 안에 확인하고 말 텐데.

난 방으로 향하는 메리를 뒤로한 채 앤과 함께 사격장으로 향했다.

* * *

“흠, 사격장에 먼저 갔다고? 그건 의외인걸.”

복귀한 버틀러에게서 모든 소식을 전해 들은 클로드가 놀리던 펜을 잉크병에 꽂으며 말했다.

“저도 의외였습니다. 바로 확인하실 줄 알았거든요. 무려 급한 편지이지 않습니까. 아가씨라면 카르시안 도련님께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까 걱정할 줄 알았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은 했는데, 뭐. 자업자득 아니겠나. 다 카르시안이 자초한 일이지.”

클로드가 피식 웃었다. 그러며 방금 막 서명을 마친 서류를 한 번 내려다봤다. 그건 곧 수도의 타운하우스에 갈 거라는 전갈이었다.

“아무리 아카데미에서 일이 생겨 라티아에게 걱정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은 알겠지만, 그것도 적당히 했어야지.”

사실 클로드는 그간 카르시안이 왜 라티아를 냉대했는지 알아보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 그 이유를 알게 된 참이었다.

“아마도 그 급한 편지에 적힌 내용은 지난번, 라티아가 연 티파티에 관한 것이겠지.”

클로드에겐 편지가 오지 않았다. 카르시안은 라티아에게만 편지를 보냈다. 그만큼 생각할 겨를이 없었나 보다.

“‘아버지의 명예 딸이 되었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하고 당황해할 게 눈에 훤히 보이는군.”

그런 아들을 두고, 클로드는 재미있는 광대극이라도 보는 사람처럼 킬킬 웃었다. 버틀러는 그런 클로드를 보며 걱정스레 눈을 흘겼다.

“웃으실 때가 아닙니다. 도련님과 아가씨의 사이가 이대로 틀어지면…….”

공작성의 모두가 카르시안과 라티아의 인연을 응원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카르시안이 그 누구보다 절실해 보였다. 요즘 라티아의 태도를 보면 그녀 또한 카르시안의 빈자리를 느끼며 서서히 자신의 감정을 돌아보고 있는 듯했고.

그렇기에 버틀러는 이제야 다 된 밥에 재를 뿌리게 되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었는데, 클로드는 영 아닌 모양이다.

“틀어지면 뭐.”

이렇게 말하며 마냥 재밌다는 듯 입가에 미소만 띠고 있으니 말이다.

“라티아 아가씨가 성인이 되면 더 붙잡아 둘 방법도 없습니다. 알고 계시죠?”

“없긴 왜 없나. 나와 라티아는 이제 라움디셀 제국에 소문이 쫙 퍼진 명예 부녀 사이인데. 성인이 되고 혼기가 차도 딸을 끼고 사는 아버지가 어디 한둘인 줄 아나?”

클로드는 다 생각이 있다는 듯 의자에 깊게 몸을 기대며 말했다. 그에 버틀러는 눈치챘다.

“처음부터 아가씨를 라움디셀 성에서 떠나보낼 생각이 없으셨군요? 아가씨가 도련님과 이어지든, 이어지지 않든…….”

“당연하지. 라티아는 내 딸일 뿐만 아니라 내가 투자하고 있는 상대야. 곁에 두는 편이 여러모로 편리하지. 그리고 라티아도 곧 알게 될 거야.”

“무엇을 말입니까?”

“카르시안의 상황을.”

클로드의 말에 버틀러가 무슨 소린지 모르겠단 듯 눈을 가늘게 뜨다가, 방금 클로드가 작성한 서류를 떠올렸다.

“아, 설마…….”

“그래. 이번 수도행엔 라티아도 함께 한다. 오해는 그쯤 풀릴 거야.”

이미 모든 판을 짜 둔 클로드가 씩 웃었다. 아주 오만하면서도 계략적인 그 미소는 ‘좋은 수’를 떠올린 라티아와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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