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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죽일 남주를 길들여버렸다-108화 (108/186)

108화

영애들은 부끄러워서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나를 재밌어 죽겠단 얼굴로 놀려 댔다. 토드엘 남작가에서 열렸던 티파티 때와 달리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날 시기 질투 하는 게 아니고 호기심과 호의에 비롯한 것임을 알기 때문일까?

진짜 권세가들은 부와 권력, 명예들이 풍족해서 오히려 여유롭다더니!?

정말 그 말대로였다. 왜, 원래 돈이 많은 이들이 다정하고 정이 많다고 하지 않은가. 어쭙잖게 부를 축적한, 소위 졸부들이나 기 싸움을 하지.

“정말…… 그만 놀리셔요.”

“어머나? 놀리다니요. 다정한 ‘부녀’ 사이가 무척이나 보기 좋았을 뿐이에요.”

“맞아요. 세상의 모두가 라움디셀 부녀가 이만큼이나 귀엽다고 알아야 해요.”

영애들은 정말 끝을 모르고 날 놀려 댔다. 하지만 덕분에 이 티파티를 연 목적은 톡톡히 달성했으니, 마냥 나쁘지만은 않았다. 게다가 부끄럽긴 해도 나와 클로드를 좋게 봐주는 말들이 내심 기분도 좋았다.

나를 한참이나 놀리던 영애들은 곧 디저트로 화제를 돌렸다.

“이 말린 과일은 실제로 트라이던트 기사단들이 배 위에서 먹은 거라면서요?”

“어머나, 새로운 경험을 하네요.”

“전 이 구운 마시멜로우가 마음에 들어요. 마시멜로우를 핫초코에 녹여 먹는 건 익숙하지만, 모닥불처럼 만든 초 위에 구워 먹는 건 처음이거든요.”

“전 이 솔트 카라멜이요. 실제로 배 위에서 소금을 만드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만든 거래요. 그래서 그런지 소금 결정이 더욱 커 보이는 것 같아요.”

어린 나이에 이미 내로라하는 파티는 모두 참석했을 그녀들은 다행히 내가 주최한 파티를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해 줬다.

역시, 트라이던트 기사단의 출신이 해적단이라는 걸 숨기지 않고 오히려 오랑제리를 바닷가처럼 꾸미길 잘했어.

이 아이디어는 앤과 메리가 내준 것이다. 난 조금 떨어진 곳에 가만히 서 있는 앤과 메리를 보며 씩 웃었다.

‘아주 반응이 좋아! 고마워!’ 하는 뜻을 담아서. 그러자 앤이 만세 하며 손을 높게 들어 붕붕 흔들었고, 메리는 그런 앤을 말리면서도 내 쪽으로 부드러운 미소를 건넸다.

그 모습을 본 한 영애가 내게 관심을 가졌다.

“듣자 하니 아가씨를 모시는 저 두 사람도 트라이던트 기사단 못지않은 실력을 가졌다면서요.”

“아, 네.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아시나요?”

“왜 모르겠어요. 이미 공작님께서 말씀을 하셨는데요.”

“아, 저도 아버지께 들었어요. 제겐 아가씨의 초대장이 오고 아버지껜 공작님의 편지가 왔어요. 아가씨가 성심성의껏 준비했으니 큰 걱정 말라고요.”

“아…… 정말요?”

세상에, 이건 몰랐다.

티파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클로드는 나에게 모든 것을 전적으로 맡겼다. 어찌 보면 나를 믿고 아예 신경을 껐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뒤에서…… 혹여나 내 초대가 거절당할까 봐 손을 써 주고 계셨구나.

뭔가 가슴 깊은 곳이 찡하고 울려 왔다. 그것을 본 영애들이 다시 쿡쿡 웃었다. 그런 날 흐뭇하게 보던 한 영애가 물었다.

“아, 그런데 혹시 라움디셀 공자님께서 아카데미에 가셨다는 건 정말일까요?”

카르시안 이야기라니. 일순간 토드엘 남작가 파티 때의 일이 생각났지만 난 내색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맞아요.”

“어머, 그럼 그 소문도 들으셨겠어요.”

“그 소문이라니요?”

“저도 오빠가 아카데미에 있어서 들었는데, 요즘 아카데미에서 ‘누가 가진 검이 가장 명검인가’로 불이 붙었대요.”

“맞아요. 가장 뛰어난 명검을 가진 가문이 어딘지 내기까지 건다면서요?”

“남자들은 참 어린애 같아요. 그런 게 뭐라고 내기까지 해요?”

“그러니까 말이에요. 물론 가장 명검은 우리 이안테 공작가가 가진 전설의 성검, ‘루드비히’ 아니겠어요?”

“어머나?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하시나요. 세기의 명검이라면 역시 전설의 명장이 우리 후작가에 바친 ‘나겔링’ 아니겠어요?”

“‘루드비히’와 ‘나겔링’은 모두 예식용 검이잖아요. 자고로 진짜 명검이라 함은 실제로 사용이 가능해야지요. 전 전설적인 전투를 이끈 장군이자 초대 공작님께서 사용하셨단 ‘듀란델’이야 말로 진짜 명검이라고 생각해요.”

“‘듀란델’이라니, 고혈이 묻은 검에 담긴 이야기는 너무 무섭고 잔혹하잖아요.”

“어머, 지금 ‘듀란델’을 야만적인 검이라 폄하하신 건가요?”

영애들의 눈빛에 불꽃이 튀었다. 난 얼떨떨한 얼굴로 영애들을 바라봤다.

아니, 조금 전까지 명검이 무엇이냐로 싸우는 남자들을 어린애 같다고 했으면서…….

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불이 붙은 영애들을 보며 눈만 끔뻑거렸다.?

대체 왜 이런 걸로 싸운담.

하지만 세상 우아하던 이들이 씩씩거리며 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뭔가 웃음이 나왔다.

그렇구나. 또래 영애들은 이런 사소한 일로도 티격태격 싸우는구나. 토드엘 남작가 파티 때처럼 로레나에게 비위를 맞추기 위해 설설 기는 게 아니고, 서로 토론을 하고 조금 언성도 높이고 하면서 노는구나.

그런 이들 사이에 내가 있다는 게 뭔가 기분이 좋았다. 난 혼자 키득 웃으며 찻잔을 들었는데, 한참 떠들던 영애들이 동시에 나를 보며 외쳤다.

“라움디셀 아가씨께서도 ‘듀란델’이 최고의 검이라고 생각하시죠?”

“아니죠? ‘나겔링’이죠?”

“무슨 소리세요? ‘루드비히’라니까요? 그쵸? 맞죠?”

어, 어라.

“라움디셀 아가씨 생각은 어떠세요?”

“어, 어, 음…… 저는 그러니까…….”

불똥이 아주 제대로 튀어 버렸다.

* * *

“아이고…….”

“고생하셨어요, 아가씨.”

내가 어깨를 통통 두드리자 메리가 다가와 내 어깨를 주물러 줬다.

“그럼. 우리 아가씨 고생 많았지. 듀란델이랑 나겔링이랑 또 뭐더라? 아무튼 팔자에도 없는 검 자랑 하느라고 말이야.”

품 안 가득 소품을 안고 옮기던 앤이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 메리가 말 좀 가려 하라며 눈을 흘겼지만, 앤의 말이 맞았다.

“불똥 피하느라 죽는 줄 알았어…… 그거 불똥 맞아? 메테오 아니고?”

“메테오요? 아하하하!”

내가 투덜거리자 앤이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메리도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요. 메테오 피하시느라 고생 많았어요.”

난 두 사람이 왜 웃는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했다.?

이상하다, 나한텐 진짜 재앙이었는데.

메리는 한동안 긴장으로 뭉친 어깨를 꼭꼭 주물러 줬다.

방으로 돌아가자 오늘 하루 종일 방 안에 갇혀 있던 삐로리가 날아왔다.

“삐쪼릭!”

‘파티는 잘 마무리했어?’ 하는 표정에 난 삐로리의 이마를 슬슬 쓰다듬어 줬다.

“응, 마무리 잘했어. 다들 재밌게 놀고 갔어. 아, 그리고 나 총도 팔았다?”

내 말에 삐로리가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난 키득키득 웃으며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한차례 과연 진짜 명검은 무엇인가에 대한 폭풍이 지나간 후.

“어머나, 라움디셀 아가씨. 손에 굳은살이 있으시네요?”

한숨 돌리며 차를 마시고 있는 내 손을 본 영애가 뜻밖이라는 듯 물었다. 내가 아무리 글라델리스 후작가에서 천대받았다 하더라도, 그건 벌써 3년 전의 일.?

아직까지 굳은살이 남아 있을 리 없지.

또 클로드는 직접 티파티 손님을 맞이하고 함께 자리하고 싶어 할 정도로 날 곱게 키우고 싶어 안달이 났다. 그런 클로드가 내게 손에 굳은살이 박일 만한 일을 시킬 리 없어 의아한 모양이었다.

난 검지와 손바닥에 박인 굳은살을 보며 말했다.

“요즘 제가 뭘 좀 배우고 있거든요.”

그리고 나는 하늘을 향해 총 쏘는 시늉을 하고 검지 끝을 후 불었다. 그에 영애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총, 그러니까 사격술을 배우신단 말씀이신가요?”

“설마…… 라움디셀 공작령에 있다는 대장장이, 유리드가 만든 그 후장식 총을요?”

역시. 유리드가 만든 총은 이미 소문이 쫙 난 모양이었다.?

하긴, 예리엘 만물 상단과 그루안 상단에서 독점하여 판매하고 있는 총이니만큼 궁금했겠지.

게다가 그 총은 황제에게 진상되기까지 했다. 난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라움디셀 아가씨께서 살상용 무기술을 배우시다니…….”

“꼭 그러실 필요가 있으셨나요? 트라이던트 기사들이 지켜 줄 텐데요.”

아, 그러고 보니 귀족들 사이에서는 우아하고 근엄한 모습이 최고의 미덕이었지.

진짜 귀족은 비가 와도 달리지 않는다 했던가.

미래 한 가문의 주인 또는 안주인이 될 영애들에게도 이러한 귀족들의 미덕이 강요되었으리라. 그런데 공작가의 아가씨인 내가 무기술을 배운다니, 천방지축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검에 대한 이야기엔 그렇게 열을 냈으면서. 총과 달리 검은 역사가 깊다, 이건가??

하긴, 귀족들 사이에서 ‘총’은 아직까지 기품이라곤 없는 조악한 무기란 인식이 팽배하긴 하지. ‘기사님’의 곁을 지키는 숭고한 검과 다르게.?

내내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살짝 애매해진 때.

“앗!”

한 영애가 차를 들다가 실수로 테이블에 찻잔을 떨어트려 버렸다. 그 바람에 테이블은 물론이고 영애의 드레스까지 엉망이 됐다.

“어머, 이를 어째.”

“세상에 드레스가…….”

“오몽 살롱에서 맞춘 드레스인데 어떡해.”

영애들이 놀라 목소리를 낮추고, 드레스가 망가진 영애는 울상을 지었다. 난 마침 좋은 수습 방법을 알고 있었다.

“걱정 마세요.”

난 곧장 드레스의 리본처럼 만든 홀스터에서 나의 리볼버를 꺼냈다.

“어머!”

무기를 보고 깜짝 놀란 영애들이 몸을 뒤로 물렸지만, 난 그들에게 괜찮다고 말하며 안전을 위해 메리가 바로 확인해 준 탄환을 장전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테이블을 향해 총을 쐈다.

탕!

“……세상에!”

“어머나아……!”

영애들이 너무 놀라 경악에 가까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큰 사고는 생기지 않았다. 왜냐면 내가 쏜 탄환은 바로.

“이게 말로만 듣던, 라움디셀 공작님을 위기에서 구해 냈다는 그……!”

“그 마법탄이군요!”

유리드가 만든 회심의 역작, ‘상황을 삭제하는 마법탄’이었으니까.?

한 달에 한 번 만들 정도로 구하기 힘든 물건이긴 했지만, 그간 사용하지 않고 모아 둔 덕에 여유분이 있었다. 또 이번 일로 인해 영애들의 ‘총’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다면 그다지 비싼 값도 아니다.

“삐쪼?”

한참 생각에 빠져 있는데, 내 어깨에 날아와 앉은 삐로리가 날개로 내 볼을 톡톡 두드렸다. 그 덕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아, 응. 내가 총 쏘는 모습이 굉장히 멋있었나 봐. 게다가 마법을 배우는 건 무척 어려운데, 총만 쏠 수 있으면 마법탄으로 마법을 부릴 수도 있으니까 그 점이 아주 매력적인 모양이야.”

“삐로, 삐.”

음, 그건 맞지. 하듯 삐로리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또 공포탄은 호신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더니, 곧장 돌아가서 총을 구매하고 배우겠다고 하지 뭐야.”

그렇게 해서 영애들에게 있던 총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거둬 낼 수 있게 되었다. 딸들이 열성적으로 이야기하니, 귀부인들도 분명 한 번쯤은 알아보리라.

흠, 본의 아니게 또 총의 판매량에 일조했네. 티아나 아메시스트 계좌에 또 돈이 쌓이겠어.

난 피곤한데도 기분이 좋아져 흥흥 콧노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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