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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죽일 남주를 길들여버렸다-85화 (85/186)

85화

카르시안이 아카데미로 떠난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라티아는 오늘 클로드가 사 준 사격 연습복을 입고 공작성 뒤편의 사격장을 찾았다.

“준비는 되셨나요?”

“응! 아니, 네!”

메리의 말에 라티아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녀의 손엔 유리드에게 선물 받은 리볼버가 들려 있었다.

오늘, 라티아는 사격술 첫 수업을 받는다.

라티아의 사격 선생으로는 메리가 선택되었다. 헥터도 라티아를 가르치고 싶다며 열의를 보였지만 같은 여성이 더 쉽고 잘 가르칠 거란 클로드의 말 때문에 물러섰다. 실제로 메리는 체구가 꽤 작아, 유독 성장이 더딘 라티아에게 알맞은 사격술을 교육시킬 수 있을 듯했다.

늘 단정하게 메이드복을 입고 있던 메리는 오늘 앤처럼 바지를 입고 홀스터를 찬 모습이었다.

그녀가 말했다.

“저는 아가씨가 아직 어리니 살상용이 아닌 호신용의 사격술을 가르치라 명령받았어요. 하지만 이 명령엔 불복할 생각이랍니다.”

메리가 가슴에 찬 홀스터에서 권총을 꺼내 촤르르 돌렸다. 그리고 눈 깜빡할 사이 장전해서 라티아에게 겨누었다.

“메리!”

첫 수업이므로 참관을 온 수잔이 깜짝 놀라 외쳤지만, 그녀의 앞을 앤이 막았다.

“놔두세요. 이 수업은 메리의 것이니, 메리의 방식에 따르는 게 맞아요.”

수잔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앤을 쏘아봤지만, 이내 침착하게 진정했다. 앤의 표정은 메리 못지않게 비장했다. 그리고 강한 믿음도 있었다. 메리는 절대로 라티아를 다치게 하지 않을 거란 확신이 말이다.

메리는 눈앞에 총구가 들이밀어졌는데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는 라티아를 보고 속으로 조금 놀랐다.

‘워낙 강한 분이시란 건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믿고 있는 사이라 하더라도 눈앞에 총구가 들이밀어지면 다들 놀라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라티아는 아주 담담히 총구 너머의 메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메리가 빙긋 웃으며 총을 거두었다.

“전 아가씨께 살상 능력을 가르칠 거예요. 무기를 쥐는 방법을 배운다는 건 곧 내가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을 힘을 가진다는 걸 뜻해요. 아가씨는 비록 고작 열 살이긴 하지만, 이러한 책임감의 무게는 똑똑히 느끼셔야 해요.”

라티아는 긴장으로 마른침을 삼키며 메리를 똑바로 바라봤다.?

“또 호신은 자신의 몸을 지키는 걸 뜻하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는 때로 상대를 공격할 필요도 있어요. 전투에서 방어만 하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라는 걸, 아가씨는 알고 계셔야 해요.”

메리는 라티아를 똑바로 쏘아보며 옆에서 푸드덕 날고 있는 참새에게 총을 겨누었다. 그리고는 새를 쳐다도 보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허공이 찢어지는 것 같은 파열음이 나더니 멀쩡히 날던 새가 바닥에 떨어졌다. 마법 탄환이라서 죽진 않았겠지만 한동안 잠들어 있을 터였다.?

여전히 총을 허공에 겨눈 메리가 말했다.

“때로는 이렇게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렇게 선공을 해야 할 때도 있어요. 상대가 누구든 간에요.”

“…….”

“무서우신가요?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포기하셔야 해요. 어설프게 배운 능력은 상대가 아닌 자신의 목을 조르기 마련이니까요.”

라티아는 잠시 망설였다.?

‘사실 메리가 날 향해 총을 겨눌 때보다 새를 향해 총을 겨눌 때 더 놀랐어.’

메리가 자신을 쏘지 않을 거란 확신은 단단하게 있었다. 하지만 새를 쏘지 않을 거란 확신은 없었다.

‘게다가 새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이는 라티아가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제삼자도 쏠 줄 알아야 한다는 가르침이 분명했다.?

‘일부러 새를 쏜 것은 내가 삐로리와 친하기 때문이겠지.’

무기를 잡는 순간 감정은 배제하고 이성만을 우선시하란 뜻이었다. 솔직히 두려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작조차 하지 않고 포기할 거냐고 물으면 그건 또 아니었다.

‘나처럼 환생을 아는 것도 아니고 회귀를 한 것도 아닌, 진짜 어린아이인 카르시안도 그 무게를 견디고 있어. 그런데 내가 도망칠 수는 없지.’

라티아는 늘 자신을 단련하는 것에 열심히던 카르시안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주먹까지 불끈 쥔 라티아가 강하게 말했다.?

“무서워요. 하지만 그렇다고 그만두진 않을 거예요. 한 번 결심 했으니까요.”

메리가 라티아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녀가 진심을 말한 것인지 확인하는 것 같았다. 라티아는 자신의 진심을 더욱 잘 볼 수 있도록 가슴을 더욱 폈다.

이윽고 메리가 말했다.

“네, 알겠어요. 이만한 각오라면…… 적어도 아가씨께서 허투루 총기를 난사할 일은 없을 것 같네요.”

메리는 언제 그렇게 딱딱하게 굴었냐는 듯 다시 싱긋 웃었고, 그 모습에 바짝 긴장했던 앤과 수잔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요. 오늘은 우선 총기를 손질하는 방법부터 배워 보도록 해요.”

“네, 좋아요.”

라티아가 성실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첫 수업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

* * *

며칠이 흘렀다.?

“흠, 이게 다란 말이야?”

내 물음에 앤과 메리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난 며칠 전부터 내 앞으로 온 편지를 몽땅 확인했다. 하지만 내가 기다리는 이의 답신은 없었다. 바로 카르시안 말이다.

“이제 아카데미에 들어갔을 테니까 슬슬 답장을 쓸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적응하지 못해 바쁜 걸까??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다. 낯선 곳에서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을 테니까. 난 시무룩한 표정으로 아무 봉투나 집어 내용을 확인했다.

“어, 이건…….”

나를 티 파티에 초대한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그간 나는 초대 받은 파티를 모두 거절했다. 공부도 공부였지만, 딱히 다른 사람들과 친하게 지낼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난 사교계에 계속 있을 게 아니고 성인이 되면 귀족 사회를 벗어날 생각이었으니까.

무엇보다 카르시안과 클로드가 번갈아 찾아와서 심심할 틈이 없었다. 하지만 카르시안이 떠나자 비는 시간이 생겨 심심해졌다.?

아카데미와 진도를 맞추려고 해도, 카르시안이 답장을 해 줘야 뭘 알지.

난 손가락 끝으로 가만히 초대장을 두드리다가 말했다.

“파티…… 가 볼까?”

“네? 티 파티를요?”

내가 매번 거절했었단 사실을 아는 앤과 메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네! 아가씨! 무척 좋은 생각인 것 같아요!”

“네, 그렇지 않아도 공작님도 아가씨께서 아무 데도 가지 않느냐며 걱정하셨어요. 혹시 초대장이 오지 않는 건가, 하고요.”

앤과 메리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얼른 파티에 가라고 종용했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은 내가 거절할 때마다 내심 아쉬운 눈치를 보였었지.

앤이 바짝 다가와 발신자를 슬쩍 확인했다.

“토드엘 남작 가문이라면 라움디셀 공작 가문의 가신이죠?”

“제가 듣기로 토드엘 남작저는 번화가 근교에 있다고 했어요. 멀지 않으니 공작님도 걱정 없으실 거예요.”

첫 파티 장소로는 아주 제격이라며, 앤과 메리는 쉴 틈 없이 날 설득했다. 난 그런 두 사람에게 푸스스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진정 좀 하라는 뜻으로 말이다.

“알았어, 알았어. 갈게. 하지만, 음…… 뭐라고 보내야 할까?”

참석하겠단 답신은 처음 써서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묻기가 무섭게 메리가 책 한 권을 가져왔다.?

“수락의 정석?”

“이 책을 참고하시면 어떨까요? 편지 승낙부터 대화의 기법까지 아주 다양하게 기술해 놨더라고요. 물론 ‘수락하는 말’들만요. 거절하는 것도 어렵지만 누군가가 권한 내용을 에둘러 수락하는 것도 어렵잖아요.”

특히 귀족 사회에선 이런 ‘돌려 말하기’가 아주 우아한 화술로 통해, 수락이든 거절이든 대답하는 게 아주 까다로웠다.

“응, 책을 참고해서 답장하면 되겠다.”

난 메리가 얼른 펼쳐 준 ‘편지의 기술’이란 챕터를 읽어 내려갔다.

* * *

“어, 어머니! 어머니! 큰일 났어요! 아니, 큰일은 아니지만, 아무튼요!”

평화로운 오전, 곱게 차려입은 한 소녀가 온화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저택을 우당탕 뛰어다니며 외쳤다. 그 소리가 어찌나 우렁찬지, 목조로 지어진 저택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였다.

“무슨 일이니!”

소녀의 외침에 우아하게 차를 마시며 독서를 하던 여인이 깜짝 놀라 문을 열었다. 그러자 계단을 두세 개씩 껑충껑충 뛰어 올라온 소녀가 얼른 여인에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이, 이, 이것 좀 읽어 보세요!”

소녀는 숨이 차서 헐떡거리며 말했다. 여인은 소녀만큼이나 다급하게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빠르게 읽느라 그녀의 입술도 함께 달싹거렸다.

“……그럼 티 파티에서 뵙겠습니다. 라티아 라움디셀.”

꿀꺽. 여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녀가 마른침을 삼켰다. 여인은 무척 놀란 얼굴로 고개를 번쩍 들고 소녀를 바라봤다.

“이, 이게, 이게 사실이니? 응?”

“네, 어머니! 방금 라움디셀 공작성에서 파발꾼이 와서 제게 직접 전해 준 편지예요. 여기, 여기에 라티아 아가씨의 서명하고 공작님의 서명도 있어요!”

소녀는 얼른 어머니에게 편지 봉투를 보여 줬다. 그것을 본 어머니의 눈이 더욱 휘둥그레 뜨였다. 그녀는 거의 경악하다시피 말했다.

“세상에…… 라움디셀 공작성의 아가씨께서 네가 여는 티 파티에 오신다니……! 아아, 너무 잘됐구나!”

토드엘 남작 부인은 감격에 겨워 딸을 꼭 끌어안았고, 소녀 또한 기뻐서 깡충깡충 뛰며 어머니를 꽉 안았다.

소녀가 흐드러지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말이에요! 드디어 카르시안 공자님와 접점이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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