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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죽일 남주를 길들여버렸다-76화 (76/186)

76화

유리드를 만나고 온 지도 벌써 한 달이 흘렀다.

그동안 난 사흘에 한 번 꼴로 유리드의 대장간에 놀러갔다. 그가 나의 투자를 받았으니 당당하게 말이다.

‘유리드 아저씨, 저 왔어요!’

내가 한쪽 손을 높게 들어 올리고 “얍!” 하고 인사하면, 유리드도 땀에 흠뻑 젖은 얼굴로 활짝 웃으며 날 따라 했다.

‘얍! 오셨습니까, 아가씨!’

이건 우리만의 인사가 되었다. 내가 마법 탄환을 처음 보고 “우와, 마법이다! 얍! 하면 돼요?”라는 부끄러운 말을 한 이후로 말이다. 심지어 그때는 클로드도 함께였는데,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물론 클로드는 날 아주 귀여워했지만…… 아무튼.

난 오늘도 유리드를 만나러 가려고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앤이 뜻밖의 소식을 전했다.

“메리는 오늘 공작님과 함께 잠시 갈 곳이 있대요.”

“갈 곳?”

“네. 그래서 오늘 호위는 저 혼자 가요. 아, 너무 걱정마세요. 제 실력 아시죠? 메리에게 때때로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전 헥터 님께 인정받은 검사라고요.”

앤이 으스대듯 말했다. 난 이제 여름이 성큼 다가왔는데도 꼭 얇은 가디건까지 꼼꼼하게 입혀 주는 앤의 손을 토닥거렸다.

“응, 알지. 앤이 이렇게 괄괄해 보여도 사실은 꼼꼼하고 세심한 사람이란 걸 말이야.”

척 보기엔 앤은 털털해서 덤벙댈 것 같고, 메리는 차분해서 꼼꼼할 것 같지 않나? 그런데 알고 보면 그 반대였다.

메리는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하게 챙겨 주지만 가장 중요한 0.5짜리를 하나 까먹을 때가 많았고, 앤은 열 가지를 하나로 퉁 쳐 간단하게 생각했지만 그 덕분에 0.5짜리도 놓치지 않았다.

내 말에 앤이 부끄럽다는 듯 히히 웃었다. 난 그런 앤을 보다 창밖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메리와 함께 가지 못한다니 아쉽다. 왜냐면 오늘 마법 탄환 실험 발포를 한다고 했거든.”

메리의 주 무기는 총이다. 그것도 전장식 구성의 머스킷총. 유리드가 후장식 총기를 만든다고 했을 때, 메리는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가슴 떨려 했다. 거기다가 마법 탄환이라니, 새로운 탄환을 쓰고 싶어 몸이 들썩거릴 정도였다. 그러한 마음은 내가 딱히 그녀의 생각을 읽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오늘을 무척 기대했을 텐데…….”

“음, 그러게 말이에요. 그래서 저도 오늘 공작님을 따라가는 건 제가 하겠다고 했지만, 메리가 거절했어요.”

메리는 클로드를 생명의 은인이자 스승님처럼 따르고 있다. 총보다 클로드가 좋은 모양이었다.

“뭐어…… 메리의 선택이었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어깨를 으쓱인 때였다. 똑똑, 누군가가 노크를 했다. 상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응, 들어와.”

오늘도 아름답게 치장한 카르시안이 안으로 들어섰다. 한 달 전, 내가 이마를 드러낸 머리 모양이 잘 어울리다 말한 이후로 카르시안은 늘 이마를 드러내고 있었다. 나와 앤은 거실에 나와 옷매무새를 다듬고 있었기에, 그가 바로 보였다.

“준비 다 했어?”

“응!”

“그럼 가자.”

카르시안이 내게 당연하단 듯 손을 내밀었고, 난 그의 세 손가락을 잡았다. 그에 카르시안은 익숙하게 피식 웃었다.

“아직 멀었네.”

“곧 다 잡을 거라니까!”

내가 발끈해서 말하자 카르시안이 진정하라는 듯 맞잡은 손을 토닥거렸다.

카르시안은 내가 유리드의 대장간에 갈 때마다 함께 했다. 자신의 일정만으로도 충분히 바쁠 텐데 말이다. 나중에 이 일을 수잔에게 슬쩍 말했더니, 수잔은 호호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원래 강아지는 주인이 가는 곳은 다 따라가고 싶어 하잖아요.’

강아지? 카르시안 말인가? 하지만 카르시안은 귀여운 깜장 고양이인데?

뜻 모를 소리였지만,

“벌써부터 이러시다니…….”

하며 좋아하는 수잔의 감상을 망치기 싫어 더 묻지는 않았다.

카르시안과 함께 손을 잡고 대문 쪽으로 나오자, 오늘 외출한다는 클로드도 나와 있었다.

“일찍 가는군.”

그가 먼저 아는 척을 해서 난 카르시안의 손을 놓고 달려가려 했다. 그런데 꽈악.

“……응?”

내가 잡은 손을 놓자 카르시안이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내 손을 세게 잡았다. 난 앞으로 몇 발자국 달려나간 상태였는데, 그 바람에 팔이 빠질 것처럼 아팠다.

“뛰지 마. 넘어져.”

내가 살짝 얼굴을 찡그리자 카르시안이 얼른 내 옆으로 다가와 보폭을 맞췄다.

“아, 응…….”

뛰다가 넘어진 적은 딱히 없는 것 같은데, 최근 들어 카르시안은 내가 손을 놓으려고 하면 이런 식으로 날 걱정했다.

결국 난 카르시안과 손을 잡고 나란히 걸어 클로드의 앞으로 다가갔다. 금실로 자수가 새겨진 검은 망토까지 어깨에 두르며 완벽한 정복으로 성장한 클로드가 우리를 흥미롭다는 듯 바라봤다. 그가 흰 예식 장갑을 낀 손으로 매끄러운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걱정도 태산이군. 넘어진다면 내가 잡아 주면 그만인 것을.”

“넘어지면 놀랍니다. 애초에 넘어지지 않는 게 가장 좋습니다.”

클로드와 카르시안이 대립했다. 어쩐지 두 부자의 똑 닮은 붉은 눈동자 사이에서 파지직 하고 스파크가 튀는 기분이었다. 난 두 사람을 말려야 하나 생각하다가, 그냥 화제를 바꾸기로 했다.

“그런데 공작님, 오늘 주택가로 가신다고 했죠? 거기서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

주택가면 오늘 우리가 향하는 번화가와 제법 가깝다.?

클로드가 직접 나설만한 일이, 주택가에서 벌어진단 건가??

걱정 되어 물었더니, 클로드가 내 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냥 시찰이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아, 시찰…….”

클로드가 손을 거두자, 카르시안이 얼른 조금 헝클어진 앞머리를 정리해 줬다. 그 모습에 클로드는 결국 내내 참아 왔던 것 같은 웃음을 터뜨렸다. 난 의아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봤는데, 카르시안은 클로드가 왜 웃는지 아는 듯 짧게 혀를 찼다.?

클로드가 카르시안을 보며 말했다.

“주변 경계도 좋지만 엄한 곳에 힘을 쓰다간 정작 경계해야 할 대상을 놓치고 말 거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카르시안이 딱딱하게 대답했다. 정말 사춘기가 왔는지 그토록 애틋해하던 아버지에게 퉁명스럽기 짝이 없다.

내가 다 민망해져 눈치를 살피자, 카르시안이 얼른 말했다.

“그럼 저희 먼저 가 보겠습니다.”

“그래. 다녀와서 이야기를 해 주면 좋겠군. 나도 마법 탄환에 대해서는 지대한 관심이 있어서 말이야.”

유리드의 연구가 실용화된다면 돈을 쓸어담을 것이다. 클로드도 수저 하나를 얹어 두고 싶은 모양이었다.?

난 꼭 말해 주겠다고 대답한 후 카르시안과 함께 번화가로 향했다.

* * *

아이들이 손을 꼭 잡고 마차에 올라타는 것을 본 클로드는 흰 예식 장갑을 벗고 궐련을 찾았다.

“실례하겠습니다.”

클로드가 궐련을 물자 어디선가 나타난 메리가 지포 라이터로 불을 붙여 줬다. 클로드는 아주 익숙하게 연기 한 모금을 빨았고, 입술 사이로 내뱉으며 아이들이 탄 마차가 멀어지는 걸 바라봤다. 그의 머릿속에 어제 헥터가 말한 내용이 떠올랐다.

‘찾았어. 대도둑, 그 자식이 어디에 있는지 말이야.’

클로드는 아무 말 없이 아주 조용히 궐련의 연기만 들이마셨다.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느라 평소엔 피우지 못하지만, 이렇게 가끔 기회가 생기면 생각을 정리할 겸 한 대 정도 피우곤 했다. 메리가 건넨 크리스탈 재떨이에 꽁초를 비벼 끈 클로드가 말했다.

“한 달인가…… 오래도 걸렸군.”

무려 트라이던트 기사단을 몽땅 풀어 그 뒤를 밟게 했는데도 꼬박 한 달이 걸렸다.?

“과연 대도둑은 대도둑이다, 이 말이지…….”

연기를 흡입한 탓에 낮게 뇌까리는 듯한 목소리는 모골이 송연해질 지경이었다. 젖은 손수건으로 손가락을 닦은 후, 다시 예식 장갑을 낀 클로드가 마차에 올라타며 말했다.

“놈이 있는 곳으로 가지.”

“엉, 맡겨 두라고.”

마부로 변장한 헥터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같은 시각, 상업지구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자리한 한적한 주택가.?

대낮이라 유독 손님이 없는 한 주점가에서 쇠가 긁히는 불쾌한 소리가 났다.

“큭큭, 멍청한 놈들.”

한 남자가 테이블에 다리를 올려 둔 채 럼을 벌컥벌컥 마시며 비웃었다. 남자는 병을 몽땅 비운 후 아무렇게나 집어 던져 깨트렸다.

“에그머니!

쨍그랑! 날카로운 소리에 주점의 주인인 한 여성이 화들짝 놀라며 얼른 몸을 옹송그렸다. 이미 몇 차례나 술병을 집어 던져 깨트린 후인지, 주점 안은 완전히 난장판이었다.

“술! 술을 가져와!”

“예, 예! 알겠습니다!”

여인은 해코지를 당할까 봐 두려움에 떨면서도 얼른 술을 보관한 창고로 향했다. 남자는 고개를 젖히며 느리게 침음했다.

“으음…….”

술 취해 탁해진 눈동자가 멍하니 천장을 보다 끔뻑거렸다. 지저분한 천장 위로 한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수염이 지저분한 남자가 서늘하게 피식 웃었다.

“그래,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는 얼굴이지.”

?

검은 머리칼에 붉은 눈동자가 도통 바다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내, 클로드였다.

“귀족 나부랭이인 주제에 대체 어떻게 트라이던트 해적단을 구워 삶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클로드는 트라이던트 해적단을 이용해 대도둑 해적단을 격파했다. 그 때 당했던 상처가 아직도 시큰거렸다. 남자는 의수를 차고 있는 팔뚝을 움켜쥐며 으르렁거렸다.

“감히 이 몸, 샤벨더러 항복을 하라고 해……?”

치욕스러운 일이었다. 샤벨은 당연히 거절했고, 해적들에게 가장 악명 높은 해적단인 트라이던트 해적단과 맞붙게 됐다. 그리고 그때 샤벨은 팔이 잘렸다.?

다름 아닌 귀족 나부랭이라 무시했던 클로드의 검에 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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