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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죽일 남주를 길들여버렸다-67화 (67/186)

67화

‘분명 흔적이 남았을 텐데.’

삐로리는 올빼미처럼 고개를 갸웃갸웃하며 저택 부지를 살피다가 직접 날아다니며 수색까지 했다. 하지만 결국 아무 소득도 없어, 근처의 고목으로 날아들어 앉았다.

‘이상하네……. 이렇게까지 흔적이 없다고? 설마 죽인 건가?’

일순간 무서운 생각이 들었지만, 삐로리는 곧장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냐, 그런 기색은 없었어. 무엇보다 카르시안이잖아. 걔가 자신의 수호천사를 죽였을 리가 없어.’

삐로리는 더 꼼꼼히 카르시안의 수호천사를 찾아보자고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이렇듯 삐로리가 공작성을 멋대로 벗어난 이유는 다름 아닌 카르시안의 수호천사를 찾기 위함이었다.

‘지난 3년간 살펴봤지만, 수호천사가 안 보여.’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아이들에겐 각자만의 재능이 있기에 수호천사들이 찾아온다. 하지만 아무리 천사라 하더라도 아이의 인생에 직접적으로 개입을 할 수 없어 아이를 올바르게 성장하게 하는 데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해서, 보통은 ‘수호천사의 축복’을 해주기 위해 주변을 맴돈다. 삐로리처럼 라티아의 곁에 딱 달라붙어 반려동물이 되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멀찍이서 지켜만 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카르시안 주변에는 수호천사의 기운도 없고, 딱히 축복을 받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아. 그 말은 즉, 카르시안의 주변엔 수호천사가 없단 뜻이야.’

이건 심각한 일이다. 수호천사의 축복을 받지 못하는 아이는 제대로 성장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삐로리는 기다리다 못해 직접 찾아 나서기로 한 것이다. 물론 다른 아이의 수호천사를 신경 쓰는 건 오지랖이다.

‘그렇지만 카르시안은 라티아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인물 중 하나야. 엉망으로 자라게 놔둘 순 없어.’

이는 카르시안의 아버지인 클로드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일이었다. 클로드가 걱정해서 찾아나섰다가 카르시안이나 라티아에게 수호천사의 존재를 들키기라도 하면 곤란해지니까.

‘카르시안은 여기, 백작저에서 태어나 10년을 살다가 후작저로 갔다고 했으니 여기에 분명 수호천사의 흔적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지난 3년간 흔적이 사라진 건지, 아니면 애초에 없던 건지. 안타깝게도 발자취조차 찾을 수 없었다.

삐로리는 고개를 들어 해가 기운 정도를 확인했다. 아침 일찍 나왔는데 벌써 해가 중앙에서 조금 더 기울어 있었다.

‘라티아가 걱정하겠어.’

슬슬 돌아가야 했다. 삐로리는 조금 실망했지만, 상심치 않기로 했다.

‘첫술에 배부를 순 없지.’

삐로리는 점점 더 불거지는 걱정을 애써 억누르며 다시 공작성으로 돌아갔다.

* * *

오전부터 한바탕 난리가 났던 삐로리 실종 사건은 오후 4시쯤 종결되었다.

“대체 어디에 갔던 거야!”

나는 돌아온 삐로리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동물어 번역기로 나와 의사소통도 가능하면서, 어딜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떠나 걱정하게 만든 게 괘씸하고 서운했다. 난 내 손에 올라와 있는 삐로리를 보며 눈에 불을 켰다.

“왜 대답을 안 해? 어디 갔었어?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삐로리는 동물어 번역기 목걸이를 차고 있으면서도 입 꾹 다물고 모르쇠로 일관했다. 난 그런 삐로리가 미워서 한껏 눈을 흘기다가 새장 쪽으로 날려 보냈다. 삐로리가 퍼드득 날며 새장의 철창을 콱 움켜쥐고 놀란 듯 날 돌아봤다. 난 그런 삐로리에게 보란 듯이 “흥.” 하고 콧방귀도 뀌었다.

“오늘이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 아침부터 진짜…….”

내가 이렇게 예민하게 구는 데엔 다 이유가 있었다.

오늘은 카르시안의 어머니, 아이샤의 묘를 이장하는 날이다. 그간 클로드는 날 친딸처럼 다정히 대해 줬다.

아무리 카르시안의 은인이라지만, 결국 카르시안을 마구간에서 구출도 시키지 못한 나를 말이다. 난 그런 클로드와 한결같이 나에게 친절한 카르시안에게 무척 고마웠다. 그래서 아이샤의 묘 이장이라는 중요한 일에 절대로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이걸 삐로리가 망쳤다.

“너 찾느라고 공작성이 발칵 뒤집혀서 묘 이장도 한 시간이나 늦어졌단 말이야.”

다행히 묘 이장은 잘 마쳤지만, 그래도 너무 미안했다.

클로드에겐 아픈 상처이자 카르시안에겐 애틋한 어머니의 일인데…….

내가 이렇게까지 말해도 삐로리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에휴, 말해 봐야 소용없는 새에게 더 투덜대서 뭐 하겠어.

“다음엔 어디 간다고 꼭 말해 줘. 하다못해 그냥 잠시 놀고 온다고라도 말해 줘. 알았어?”

내가 눈을 부라리자, 삐로리가 고개를 슬그머니 돌리며 대답했다.

“삐릭…….”

[알았어.] 하는 번역이 떴다. 그래, 이걸로 됐다. 난 삐로리를 한 번 더 흘겨보고 책상에 앉았다.

아까 아이샤의 묘를 이장하면서 떠오른 기억이 하나 있다. 그건 내가 그간 잊고 있던 원작의 내용이었다.

난 수첩을 펼치며 깃털 펜 촉에 잉크를 찍었다. 그리고는 ‘아이샤’라고 적은 이름 바로 옆에 ‘의문의 독살’이라고 적었다.

그랬다.

원작에서 클로드의 아내이자 카르시안의 어머니, 아이샤는 의문의 독살을 당한다. 하지만 이건 원작에서만 밝혀진 정보로 클로드와 카르시안은 그저 아이샤가 쇠약해서 죽은 줄 알고 있다.

“그 말은 즉, 누군가가 아이샤 님에게 꾸준히 독을 먹여 왔단 건데…….”

대체 누가 그런 못된 짓을 한 걸까? 그리고 어째서 지금껏 독살이란 게 알려지지 않은 걸까?

그 탓에 클로드와 카르시안은 저들이 그저 가난해서, 약값을 충당하지 못했기에 아이샤가 죽었다는 죄책감 속에 살고 있다.

“분명 뭔가 이유가 있을 거야.”

난 삐로리 때문에 묘 이장이 늦어진 것에 대한 사죄로 아이샤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밝혀 주자고 다짐했다. 우선 아이샤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풀려면 아이샤가 등장하는 원작을 상기할 필요가 있었다. 그것도 클로드 위주로 말이다.

원작대로라면 클로드는…… 몇 년 후 죽는다.

왜냐면 음독을 하기 때문이다.

물론 난 원작을 읽어 범인도 알고 있다. 범인은 다름 아닌 황제가 가장 총애하는 황비, 에메르나다.

사실 에메르나는 과거, 클로드를 무척이나 사랑했다. 하지만 클로드는 오로지 소꿉친구이자 약혼자였던 아이샤에게 일편단심이었다.

질투에 눈이 돌아 버린 에메르나는 자신을 사랑해 주지 않는 클로드에게 복수하고 싶어, 황제를 유혹했다. 라움디셀 백작 가문이 아이샤 가문의 빚을 갚아 준 이후로 번번이 재기에 실패한 데에는 다 에메르나의 입김이 있었다.

“이후 에메르나 황비는 현 황태자 제네스까지 낳고는 황실의 중심이 되어 승승장구했지.”

이에는 황후, ‘루니아’가 몸이 좋지 않은 탓도 있었다. 황후가 병약하니 당시 황태자였던 ‘아론’을 제대로 보호해 줄 수 없었고, 에메르나는 그 틈에 아론을 모함하여 황태자 자리에서 폐위시켰다. 하지만 루니아의 몸이 좋지 않은 이유엔 또 에메르나가 관련되어 있었다.

“왜냐면 루니아 황후에게 주기적으로 독을 먹여 쇠약해지게 만든 범인도 에메르나 황비니까.”

요컨대 에메르나가 만악의 근원이란 소리다.

그런 그녀가 지독하게 사랑했던 클로드에게 어째서 결국 독을 먹였느냐. 그건 바로 그가 에메르나 황비와 대립했기 때문이다. 클로드는 황제가 서거한 후 에메르나의 아들인 제네스가 아닌 폐태자, 아론을 복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메르나는 분노했지만 제네스의 포악한 성정에 질린 대신들이 아론을 복위시키자는 세력에 가담하자, 모든 걸 잃을까 봐 두려워했다. 그리고 어느 날 밤, 몰래 클로드를 찾아 거래를 제안했다.

“공작님이 자신과 재혼을 해 주면 제네스를 포기하고 아론의 복위를 돕겠다면서.”

사실상 제 아들을 죽이겠단 말과 다름없는데, 이를 당당하게 제안하는 모습에 클로드는 완전히 질려 버린다. 클로드는 당연히 거절하고, 에메르나는 분노에 휩싸여 그에게도 황후 루니아에게 먹였던 것과 같은 독을 먹였다.

“공작님은 이 사실을 모른 채 아론을 지지하기 위한 정치 자금을 모으기 위해 카르시안과 무역을 떠났지.”

이 무역이 바로 카르시안이 원작 여주를 만나는 무역이다. 하지만 결국 클로드는 에메르나가 먹인 독 때문에 타국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다행히 해독제라면 원작에 나와 있어.”

그러니 우선 원작을 따라가되, 클로드가 약을 먹지 않게 조심하는 건 어떨까? 설령 독을 먹게 되었다 하더라도 재빨리 치료하고, 무역 갈 때 여분의 약을 챙겨 보내면 괜찮지 않을까?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순간 내 머리에 벼락이 내리쳐진 것 같은 깨달음이 스쳤다.

잠깐만, 그러고 보니 클로드가 먹은 독과 황후가 먹은 독은 같은 거지?

이미 황후는 중독되어 있을 거다. 황후가 몸이 나으면 아론을 위해 더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 거고, 그러면 클로드가 애초에 정치 자금을 모으기 위해 무역을 가지 않아도 되지 않나? 그러고 보니 황제가 서거한 이후 클로드는 아론을 지지하며 루니아와 독대하기도 한다.

그때 클로드를 통해 선물인 척 황후의 몸을 치료할 해독제를 들려 보내는 건 어떨까?

“아, 안 돼. 그러면 카르시안이 원작 여주인 이리스를 못 만나잖아!”

이건 안 될 일이다. 이유가 어찌 됐든 카르시안은 클로드를 따라 무역에 나가야 한다. 조금 길이 보인다 싶더니 다시 꽉 막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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