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클로드의 노기 어린 음성에 삐로리는 충격을 받았다.
‘아니, 나의 이 노련한 날갯짓을 한 번에 제압하다니?!’
게다가 뭐, 염치없는 새? 삐로리는 어이가 없었다.
“삐륵, 삐르륵!”
삐로리가 항변하며 발을 마구 휘둘렀지만, 클로드에겐 닿지 않았다. 클로드가 삐로리를 버틀러에게 넘기며 말했다.
“일단 새장에 가둬 놔. 라티아가 일어나면 이르게.”
“삐륵!”
버틀러가 퍼덕거리는 삐로리를 받아들었다. 이를 본 메리는 마음이 다급해졌다. 메리와 앤은 어젯밤 수잔에게 라티아가 삐로리를 무척 아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삐로리가 다치거나 푸대접을 받으면 아가씨가 속상해할 거야.’?
그렇기에 일단 메리는 삐로리를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공작님, 잠시만요. 삐로리는 영특한 새입니다. 문을 막은 건 분명 안에 카르시안 공자님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카르시안이?”
“삐륵!”
메리의 말에 클로드가 의아하단 듯 그녀를 돌아보고, 삐로리가 바로 그거라며 맞장구를 쳤다.
“네. 어찌 된 일인지 카르시안 공자님의 손을 잡자 라티아 아가씨의 열이 내리기 시작했거든요.”
메리의 말에 클로드가 한쪽 눈썹을 휙 들어 올렸다. 메리가 정말이라며 말을 이었다.
“이후 열에 앓느라 못 주무셨던 아가씨가 푹 잠들었고, 이걸 안 삐로리가 방해꾼들이 못 들어오게 막으려고 한 것 같습니다.”
“흠…….”
“삐릭.”
클로드가 침음하자, 삐로리가 ‘이제 알았냐.’ 하고 검은 깨 같은 눈을 흘겼다.
“정말 열은 내렸고?”
“하녀장님이 확인하셨습니다. 확실히 열이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의사를 한 명만 들여보내지.”
클로드는 카르시안의 편지를 떠올렸다. 그의 아들은 라티아가 병에 걸려 죽을지도 모른다며 겁에 질려 있었다. 그 병 때문에 아픈 걸지도 모른다.?
“전체적으로 검사도 받게 해.”
“네, 알겠습니다.”
클로드가 눈짓하자, 버틀러가 삐로리를 놓아줬다.?
“뭐 해, 안 들어가고.”
클로드가 말하자 가장 앞에 있던 의사가 얼른 진료 가방을 집어 들었다. 의사는 식은땀을 한 번 닦고 메리의 안내를 받아 침실로 향했다.
“나머지 의사는 다시 돌려보내.”
“네, 알겠습니다.”
의사들의 원성이 잠시 일었지만, 클로드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라티아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본 광경은 꽤 의외였다.
“호오.”
빨갛게 달떴던 라티아의 얼굴은 다시 하얗게 열이 내려 있었고, 카르시안은 그런 라티아의 손을 꼭 잡은 채 침대에 엎드려 잠들어 있었다.
“꽤 귀여운 광경이군.”
클로드가 중얼거리자, 그의 곁에 서 있던 메리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의사가 라티아를 진찰했고, 긴장이 풀린 탓에 난 단순한 열병이라 진단을 내렸다. 전염성도 없어 카르시안도 괜찮을 거라 했다.
“단지 그뿐인가?”
“예?”
“아이에게 무슨 병이나…… 이런 건 없나?”
“병이요? 예. 아가씨는 무척 건강하십니다.”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다시 검사해 봐.”
카르시안에게 라티아가 아프단 이야기를 들은 터라, 의사의 진단을 믿을 수 없었다.
“아가씨는 정말로 건강하십니다. 그 어떤 병도 없어요.”
결국 의사는 라티아의 손에 아주 귀한 성수를 뿌려 병이 없단 걸 증명한 후에나 돌아갈 수 있었다. 이후 클로드는 카르시안을 번쩍 안아 들어 라티아의 옆에 뉘어 줬다.
“응…….”
카르시안이 옆에 누운 걸 안 걸까. 라티아가 카르시안 쪽으로 몸을 돌려 누웠다. 그것을 느낀 카르시안도 라티아 쪽으로 몸을 돌리며 손을 더욱 단단히 잡았다. 클로드는 두 아이의 어깨까지 다시 이불을 잘 덮어 주고 침실을 나섰다.
거실로 나오자 삐로리가 동물어 번역기 목걸이를 차고, 뒤늦게 온 길버트를 호되게 혼내고 있었다.
[니가 이러고도 의사냐? 어? 애가 아픈데!]
“난 사람 의사는 아니고 수의…….”
[아무튼! 의사 딱지를 달고 있으면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있어도 대처를 할 수 있게, 딱! 어? 대비를 해 놔야 할 거 아냐. 집에 애가 있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끙…….”
퍼덕퍼덕, 어찌나 난리를 피우는지 클로드가 끼어들 틈이 없었다.
“아가씨는 어떻습니까?”
의사들을 돌려보낸 버틀러가 물었고, 클로드는 손을 내저었다.
“단순한 열병이라니 한숨 푹 자면 나을 테지. 긴장이 풀려서 그런 것 같다더군.”
“그렇습니까? 다행이네요.”
“그래. 카르시안이 붙어 있는 게 나을 것 같으니, 카르시안의 공부 스케줄을 조정하는 게 좋겠지.”
“알겠습니다.”
클로드가 버틀러에게 명령하는 동안에도 삐로리는 왁왁거리며 길버트를 혼내고 있었다. 버틀러가 돌아가고, 그 모습을 보던 클로드는 길버트의 머리를 온통 까치집으로 만들고 있는 삐로리를 잡아챘다.
“삐릭?!”
“적당히 해. 기 다 죽겠네.”
[저놈은 더 혼나고 정신을 차려야 해!]
“됐고, 나랑 잠깐 이야기 좀 하지.”
[……나랑?]
“그래, 너랑.”
그 길로 클로드는 길버트를 돌려보내고 삐로리와 함께 서재로 향했다.
[근데 나는 왜?]
삐로리가 물었지만, 클로드는 대답해 주지 않았다.
서재의 자리에 앉자마자, 클로드가 말했다.
“너.”
“삐릭?”
“라티아 수호천사지.”
“……!”
삐로리의 좁쌀만 한 눈이 크게 뜨였다. 그 모습에 클로드의 입가에 ‘역시’ 하고 나른한 미소가 스쳤다. 그에 삐로리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설마, 설마 라티아도 아……나?’
아니, 그렇다면 삐로리는 지금 여기에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아직 모른단 거야. 그런데 저 남자는 어떻게 알았지?’
사실 클로드는 어젯밤, 앤에게 보고를 들었다. 수잔과 라티아는 앤과 메리를 따로 불러 삐로리가 아주 소중한 존재니 각별히 대해 줬으면 좋겠다고 단단히 일렀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라티아는 내가 후견인이 되어 주겠다 했을 때도 새를 신경 썼지.’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한들 자신의 거취를 고르는 상황에서 새를 신경 쓰는 건 특이한 경우긴 했다. 게다가 삐로리는 일반 새라고 하기엔 너무도 똑똑했다.
‘제아무리 예리엘 만물 상단의 동물어 번역기를 쓴다고 해도 사람과 이렇게까지 의사소통이 잘될 순 없어.’
수잔에게 듣자 하니, 라티아가 마법으로 잠긴 알버스의 서재에 들어갈 수 있던 이유도 삐로리 덕분이라고 했다.
‘평범한 새가 어떻게 마법으로 잠긴 문을 열 수 있었겠나.’?
클로드는 삐로리가 결코 평범하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하지만 평범한 새가 아니라면 대체 뭐지? 이대로 라티아의 곁에 둬도 괜찮은 건가?’
만약 라티아에게 해코지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그러던 중 생각난 게 바로 ‘수호천사’의 존재였다. 그의 아내인 아이샤는 카르시안을 임신 중에 태교를 한다며 제국의 전설이나 설화를 무척 많이 읽었다. 그 중엔 수호천사와 관련된 이야기도 있었다.
‘우리 아이에게도 수호천사님이 와 주시겠죠? 잘 지냈으면 좋겠어요. 친구처럼요.’
당시 아이샤는 사랑스럽게 말하며 부푼 배를 쓰다듬었다. 수호천사는 특이한 외형을 가진 동물의 모습으로 아이에게 접근한다 했다. 삐로리는 은백색 몸통에 꽁지깃만 붉어 아름다우면서도 고고한 모습이었다. 마치 천사처럼 말이다.
이런 타당한 뒷받침이 있기에 클로드는 확신을 가지고 물었으나.?
[아, 아, 아닌데?]
삐로리는 되도 않는 시치미를 뗐다. 그에 클로드가 피식 웃었다.
“그럼 그 문은 누가 막았지? 당시 거실엔 너밖에 없었는데.”
수호천사의 마법으로 문을 막았던 터라, 삐로리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클로드는 삐로리가 왜 시치미를 떼는지 알고 있었다.
“라티아에겐 비밀로 해 주지.”
[정말?]
“그래. 그러니 그 부분은 걱정하지 하지 않아도 돼. 그런데 내가 알기로 수호천사는 아이가 잘 자라면 그 능력을 가진다고 들었다. 라티아에게도 능력이 있나?”
[흠, 맞아. 라티아의 능력은 내가 본 그 어떤 아이들 중 가장 뛰어나서 뺏기기 싫을 정도거든.]
삐로리가 쫑쫑, 테이블 위를 걸어 다니며 대답했다. 클로드는 그런 삐로리에게 테이블 위에 있던 포도알 하나를 떼서 건네며 말했다.
“그래? 그렇게 탐내는 능력이 뭔지 궁금해지는데. 라티아는 정확히 무슨 능력을 갖고 있지?”
클로드의 물음에 삐로리는 그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건 마치 꿰뚫어 보는 것 같은 시선이라, 클로드는 괜히 등골이 섬찟해졌다.
‘수호천사는 일반 천사가 승급해서 신을 앞둔 천사라더니.’
그 소리가 아주 거짓은 아닌 듯, 클로드의 넓은 어깨가 다 움츠러들 지경이었다. 삐로리는 클로드가 안전한 사람인지 확인하듯 한참이나 쳐다보다, 이내 클로드가 건넨 포도알을 쪼아먹으며 말했다.
[악용하게?]
“내가 할 수는 있나?”
[아무리 똑똑해 보여도 아이는 아이니까. 어른이 마음만 먹으면 어려운 일도 아니지.]
“그런 말 하는 걸 보니 내가 악용하지 않을 거란 걸 알아본 모양이군.”
[왜 그렇게 생각해?]
“내가 악용할 인간 같았으면 애초에 악용할 수 있다는 뜻을 내포한 물음 자체를 하지 않았을 테니까.”
악용할 거냐는 물음은 할 수 있으면 할 거냐는 뜻도 됐다. 클로드의 말에 삐로리는 열심히 포도를 쪼으며 말했다.
[라티아의 능력은 특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