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라움디셀 백작의 무사 귀환. 이 사실이 사교계에 불러올 파란은 정말 엄청났다.
“하이페디움 제국은 물론이고 바다를 끼고 있는 모든 나라에서 골칫거리였던 해적들을 소탕했다니?”
“그것도 바다의 악마, 포세이돈도 포기한 인간이라는 이명이 있는 트라이던트를 이용했다지 않나!”
수군거리는 귀족들 사이로 가장 놀란 사람은 역시 아버지였다.
“어, 어, 어떻게, 살, 살아서……!”
그렇겠지, 놀라 자빠지다 못해 기절하겠지. 클로드가 살아 돌아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테니까.
하지만 아버지 못지않게 놀란 사람이 또 있었는데, 그게 나였다.
“말도 안 돼…….”
난 하도 입을 벌리고 있어서 턱이 빠질 것 같았다.
아니, 3년 뒤에나 와야 하는 남주의 아버지가 왜…… 1년도 안 돼서 귀환했지?
심지어 그가 이룬 업적은 원작에서 3년간 이루었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아니, 대체 어떻게……?”
충격에 빠져 바삐 생각하던 중, 문득 깨달았다.
아, 트라이던트 해적선은 무역을 마치고 느긋하게 돌아오는 길에 거대한 폭풍을 만났지. 그렇다는 말은…… 이번엔 서둘러 돌아왔기 때문에 폭풍을 만나지 않아, 무역을 떠난 시간이 대폭 줄어들었단 소린가? 근데 왜 그렇게까지 서두른 거지?
황제의 앞에서 몸을 돌린 클로드가 우리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정확히는 내 옆에 얼어붙어 있는 자신의 아들, 카르시안에게.
……아! 카르시안의 편지!
원작에서 카르시안은 결국 클로드에게 편지를 보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엔 어떻지?
내가 살기 위해 개입한 후, 카르시안은 클로드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게 됐다. 클로드는 자신의 아들이 학대를 당하고 있단 사실에 부리나케 돌아온 것이 분명했다!
“아, 버지…….”
“이따 보자꾸나.”
카르시안이 아주 작게 중얼거린 목소리도 들은 걸까? 클로드가 고개를 한 번 까딱거리고 다시 위풍당당하게 파티를 나갔다.
클로드의 옆에서 딱 봐도 불량하게 생긴 해적 한 명이 카르시안을 빤히 보며 지나갔다. ‘흠, 저 녀석이군.’ 그런 표정이었다.
뭐야, 왜 저렇게 봐.
난 슬쩍 카르시안의 앞으로 나서 내 뒤로 숨겼다. 그런데 이를 본 해적의 눈이 휘둥그레해지더니 이내 크하핫!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이 와중에 카르시안은 당장이라도 클로드를 따라가고 싶은 듯 움찔거렸다. 하지만 클로드가 이따가 보자고 말해서 참는 듯 보였다.
난 그런 카르시안의 손을 잡으며 슬쩍 말했다.
“엄청 빨리 돌아오셨네. 그것도 혁혁한 공을 세우시고 말이야. 잘됐다, 그렇지?”
“아, 응…….”
카르시안의 눈가가 조금 붉었다. 반가운 마음에 울컥 울음이 차오른 모양이다.
“정말…… 돌아오셨어.”
카르시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난 그런 카르시안을 달래듯 잡은 손에 힘을 줬다.
“내가 뭐랬어, 분명 돌아오실 거랬잖아.”
“……응. 네 말이 다 맞았어, 라티아.”
멍하니 클로드가 나간 문 쪽만 보던 카르시안이 나를 돌아봤다. 붉기만 했던 눈가엔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에구, 왜 울고 그런담.
“울지 마. 그래도 다행이다, 빨리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
난 카르시안에게 여상하게 말하려다가 조개처럼 입을 딱 다물었다. 3년이나 앞당겨진 클로드의 귀환에 너무 놀라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 이제야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나의 목표, 가장 궁극적인 목적! 카르시안한테 잘해 줘서, 아버지가 돌아왔을 때 ‘라티아는 조금 착했어요’ 소리 듣기!
안 돼, 망했다! 나 아직 카르시안 못 꼬셨단 말이야!
머릿속이 하얀 백지장처럼 질려 버렸다.
난 아직 카르시안을 마구간 생활로부터 구해주지도 못했고, 후작저 사람들의 괴롭힘으로부터 제대로 보호해 주지도 못했다. 이제야 겨우 집사장인 버틀러를 통해서 제대로 된 식사를 전달해 주게 된 정도다.
그런데 벌써 클로드가 돌아와 버리다니!
내 머릿속의 카르시안이 나를 등지고, 클로드에게 달려가 말했다.
‘아버지, 저 너무 힘들었어요. 후작저 사람들에게 항상 괴롭힘만 당했어요. 모두가요. 그러니까 모두에게 복수해주세요.’
‘그래, 후작저 사람들은 이빨 하나 남기지 않고 모조리 이 세상에서 지워 주마.’
상상 속에서 클로드는 감히 제 아들을 학대한 우리 후작저를 몽땅 쓸어 버렸다. 그 대단한 트라이던트 해적단을 이용해서 원작처럼, 회귀 전처럼!
‘카, 카르, 카르시안. 나는……!’
‘라티아, 너도 결국은 후작저 사람이지.’
내가 아무리 말을 붙여 봤자, 내 머릿속의 카르시안은 나에게서 냉랭히 몸을 돌릴 뿐이었다. 나를 경멸하듯 보는 붉은 눈동자가 너무도 무서웠다.
숨이 가빠 오고 온몸에 식은땀이 흠뻑 났다.
“라티아?”
이대로 가다간 다시 회귀 전 인생을 반복하게 된다. 회귀 전의 생처럼 그 더러운 감옥에 구금되었다가, 사형대로 향하게 될 것이다.
안 돼, 그런 끔찍한 미래를 다시 반복할 순 없어. 어떻게든 내가 ‘보통’ 후작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려야 해. 카르시안의 편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는 걸 드러내야 해!
“라티아.”
하지만 그럼에도 카르시안이 나의 사면을 도와주지 않는다면 어떡하지? 아냐, 기대기만 하면 안 돼. 내 살길은 내가 찾아야 해. 그리고 이럴 때 아주 좋은 건, 바로 내부 고발이지.
좀 더 신중하게 움직이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다.
“라티아, 라티아.”
아버지가 몰래 운영하고 있는 불법 격투장 사업 그리고 귀족들의 약점! 그걸 찾아야겠어. 그렇지 않으면 난…….
순간 회귀 전, 내 목에 닿았던 서늘하고 소름 끼치는 칼날의 감촉이 다시 느껴졌다. 난 황급히 내 목을 감싸 쥐었다. 다행히 내 목은 아직 몸에 붙어 있었다. 목을 더듬고 있는 손이 덜덜 떨렸다.
“라티아, 왜 그래?”
괜찮아, 라티아. 아직 너에겐 살길이 있어. 이번에는 살 수 있을 거야.
확실하게 뼈에 아로새겨진 죽음에 대한 공포가 성큼 다가와,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이번엔 괜찮을 거야, 이번엔 정말로 괜찮을 거야…….”
바닥이 어지럽게 흔들렸다. 떨리고 있는 건 내 눈동자일 테지만 속이 메스꺼웠다. 나에게 세뇌를 걸듯 중얼거렸지만 온몸이 겨울바람에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는 건 막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 때였다.
“라티아!”
“헉!”
카르시안이 내 어깨를 확 붙들었다. 깜짝 놀라 바라본 카르시안의 붉은 눈동자가 무척이나 선명했다. 죽음에 대한 공포로 가득 찬 내 영혼에 새로이 덧씌워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다. 그 덕분에 난 끔찍한 상념 속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헉…… 허억, 헉…….”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어 숨이 가쁘다 못해 아플 지경이었다. 난 내 목을 감싸 쥔 채 정신을 차리게 해준 카르시안을 멍하니 올려다봤다.
“라티아, 왜 그래?”
붉은 가넷 또는 루비 같은 눈동자가 나를 걱정스레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 담긴 건 따스한 염려뿐이었다.
‘라티아, 너도 결국은 후작저 사람이지.’
내 상상이 만들어낸 카르시안처럼 나를 경멸하지 않았다. 이게 현실이었다. 현실의 카르시안은 날 경멸하지 않는다. 순간 지독한 탈력감이 들며 나도 모르게 한숨이 탁 토해내졌다.
“라티아……?”
“아…… 아. 조, 조금. 어. 갑자기, 좀 놀라서. 해적……을 본 건 처음이니까, 무서워서.”
난 카르시안이 걱정하지 않도록 대강 둘러댔다. 카르시안은 황급히 트라이던트 해적단이 빠져나간 입장문 쪽을 확인했다가 내게 물었다.
“몸이…… 나빠진 거야?”
“어?”
“무서운 걸 보고 놀라면 심장에 안 좋다고 들었는데, 역시.”
카르시안의 섬세한 눈썹 사이에 균열이 일었다.
“내가 아버지께 말씀드려서, 네 주변엔 절대로 해적이 오지 않게 해 줄게.”
“어, 응?”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놀란 건…… 아, 그래. 아까 헨델인지 그레텔인지 모를 자식 때문에도 놀랐잖아.”
카르시안이 얼굴을 와락 구긴 채 생각했다.
‘심장병의 일종인가? 아버지가 돌아오셨으니 확인해 봐야겠어.’
아, 내가 전에 죽을 때가 됐다고 말했던 거 말인가? 그거 안 그래도 변명하려고 했는데, 마침 잘됐다.
난 입을 열려고 했지만 어쩐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
아무래도 내가 많이 놀랐나 보다.
회귀 후, 난 모든 일을 착착 진행하고 있다는 오만에 빠졌던 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갑작스레 등장한 클로드의 귀환 때문에 죽음이 성큼 다가왔다는 것을 깨닫고 이렇게 놀란 거겠지.
“라티아, 안색이 많이 안 좋아.”
카르시안이 잡고 있는 어깨를 타고, 그의 체온이 몸에 퍼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떨리고 있던 몸이 천천히 잦아드는 게 느껴졌다. 난 깊은숨을 몰아 내쉬며 목을 잡고 있던 손으로 카르시안의 손등을 덮었다.
“아냐, 이젠 괜찮아. 후우…… 고마워. 덕분에 진정이 됐어.”
“그게 정말이야?”
“응, 네가 잡아 준 덕분이야.”
내 어깨를 잡은 카르시안의 손등을 토닥거렸다. 이거 덕분이라는 듯이. 그러자 쭈뼛거리던 카르시안이 슬그머니 나를 제 품으로 끌고 갔다. 난 놀라서 몸을 뻣뻣하게 굳혔는데, 그가 말했다.
“길버트가 갖고 있는 책에서 읽었어. 몸의 병이든, 마음의 병이든 사람의 체온이 최고의 명약이라고.”
여긴 파티장이고 보는 눈도 많지만, 카르시안은 그런 건 하나도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날 진정시키고 싶어 했다. 정말 신기한 건, 카르시안이 나를 마주 안아 주자 여전히 가쁘게 뛰던 심장이 갑자기 원래의 박동을 찾았단 것이다. 마치 평온한 듯 조금 빠르게 뛰고 있는 카르시안의 심장 박동에 감응하듯이. 덕분에 깨달았다.
내 머릿속에 있는 카르시안은 이제 없다는 걸. 아버지를 본 후에도 내 건강이 걱정되어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나를 안아 주는 카르시안만이 존재한다는 걸. ‘이 카르시안’이 현실이라 생각했던 것과 별개로 이제야 안심이 됐다.
난 천천히 숨을 몰아 내쉬며 카르시안에게 몸을 기댔다. 작지만 나보다 큰 품에 안겨 있으니 머리가 차갑게 식고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난 한동안 카르시안에게 안겨 있다가 몸을 떼어 내며 말했다.
“카르시안, 나…… 돌아가는 게 좋겠어.”
할 일이 좀 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