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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죽일 남주를 길들여버렸다-48화 (48/186)

48화

‘무인도의 아이들을 먹이기 위해 노략질을 하고 있는 거라고?’

‘엉, 맞아. 나란들 다른 일을 안 찾아봤을 것 같냐? 근데 평생 보고 배운 일이 해적질이잖냐. 이제 와서 직종을 어떻게 바꿔?’

헥터의 푸념 아닌 푸념을 듣던 클로드는 마침 좋은 생각이 난 듯 운을 띄웠다.

‘사정은 알았다. 그럼 나와 함께 일하는 게 어때. 난 무역을 하러 가는데, 알다시피 이 바다엔 해적이 너무 많아.’

‘그래서?’

‘내가 무사히 무역에 성공해서 본토로 돌아가게 되면 그 순이익의 20%도 아니고 30%를 주지. 이후는 수익 비례 월급이다.’

‘월급?’

‘그래. 너희 해적단을 이용해서 무역 상단을 만들면 어떨까 싶거든.’

클로드는 가난하지만 귀족이기에 해적보다 배운 것도 많았고, 협상도 잘했으며, 잘난 외모와 뛰어난 화술 덕분에 모두의 호감을 샀다.

‘클로드와 함께한다면 이번에야말로 해적질을 그만둘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헥터는 곧장 클로드와 손을 잡았다. 기실 무인도 마을에 있는 아이들에게 약탈한 돈으로 음식을 사는 것도 마냥 개운하지만은 않았다. 이후 헥터는 클로드를 자신의 배에 편승시키고 그의 무역을 돕고 있었다.

그렇게 맺은 인연이 벌써 6개월째다.

클로드가 가벼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래. 알게 된 지 6개월이나 된 조카군.”

클로드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카르시안의 편지 봉투를 뜯었다. 그러나 편지를 읽어 내려간 클로드의 표정은 결코 밝지 않았다. 차갑게 가라앉다 못해 분노로 희게 질리기까지 했다.

이를 의아하게 여긴 헥터가 물었다.

“뭐야, 왜 그래?”

클로드는 아무 말 없이 헥터에게 다 읽은 편지지를 건넸다. 헥터도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닦고 있던 보석을 내려 두고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글자를 따라 좌우로 재빨리 움직이던 금색 눈동자가 점점 형형히 빛났다.

이윽고 그가 말했다.

“뭐야, 내가 지금 이해를 잘 못하는 건가?”

“하…….”

“이봐, 클로드. 지금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냐, 엉?”

헥터가 채근했지만 클로드는 조용히 이마만 짚을 뿐이었다. 결국 참다못한 헥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꽥 소리를 질렀다.

“지금 우리 조카, 카르시안이 학대를 당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이해한 게 맞냐고!”

클로드는 충격에 빠져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가 카르시안을 맡기고 온 가문, 글라델리스는 무척 신사적인 가문이다. 그리고 알버스와 그는 오래된 친우였다.

‘그런데 내 아들이…… 편지에 적을 정도로…….’

라티아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해서 학대에 대한 이야기는 한 줄 정도가 고작이었지만, 클로드는 카르시안의 성격을 알고 있다. 어머니를 여의고 가문이 가난하단 걸 안 후, 지나치게 의젓해져 모든 감정을 속으로 꾹꾹 눌러 담아 참던 녀석이다. 그런 녀석이 간신히 뱉은 말 한 줄에 얼마나 큰 고통이 담겨 있는지, 클로드가 모를 리가 없었다.

헥터는 곧장 선장실을 나가, 키를 잡고 있는 일등 항해사에게 외쳤다.

“야! 배 돌려!”

“예, 예?”

“무역로를 개척한 것만 해도 개국공신인지 뭔지, 그거보다 더 하다며! 그니까 배 돌려!”

헥터는 카르시안이 보낸 편지지를 꽉 움켜쥐고 으르렁거렸다.

“지금 당장, 하이페디움 제국으로 간다!”

* * *

트라이던트호는 전속력으로 달렸고, 그렇게 해서 오늘 클로드는 황성 전야 파티에 모습을 보일 수 있었다. 급히 배를 돌리느라 카르시안에게 답장도 하지 못했다. 이에는 ‘놈들을 아주 방심시키자’는 헥터의 입김이 단단히 들어갔다. 단 한 놈도 사지 멀쩡히 걸어 나오지 못하게 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클로드는 해군 편을 통해 황제에게만 해적들을 교화했고, 소탕했으며 이제 곧 돌아간다는 공문을 보냈다. 무역 상단의 직원으로 키울 트라이던트 해적단의 사면을 요청하기 위해서. 그러는 과정에서 이 정보가 오늘 마담 아리엔느의 귀에 들어갔던 것이다.

클로드는 곧장 황제의 앞으로 걸어갔고, 헥터는 그를 뒤따르며 카르시안을 학대한 놈을 찾아 눈을 빛냈다. 하지만 귀족은 다 그놈이 그놈처럼 보였고, 카르시안도 알아볼 수 없었다. 가난 때문에 클로드가 목걸이에 넣고 다니는 사진은 아주 어릴 적 사진이니까.

클로드가 긴 코트를 뒤로 젖히며 우아하게 한쪽 무릎을 꿇었다.

“클로드 라움디셀, 지고하신 폐하의 앞에 귀환했음을 보고 드립니다.”

클로드를 따라 해적들도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들이 입고 있는 가죽 옷과 차고 있는 무기들이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적막한 무도회 홀에 울렸다. 그 모습을 본 황제가 아주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어서 오시오. 아주 금의환향을 했군!”

그도 그럴 게, 클로드가 교화한 트라이던트 해적단은 하이페디움 제국 인근 해역을 꽉 주름잡고 있는 악명 높은 해적이었다. 그런데 그 해적을 이용해서 다른 해적을 소탕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골칫거리였던 해상 무역로까지 개척하다니!

“백작의 귀환이 그 무엇보다 나를 기쁘게 하는구려!”

말은 이렇게 해도, 이 무역로 개척이 가져올 막대한 부와 해역의 평화가 황제를 들뜨게 하는 게 분명했다.

황제가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보상으로 오로지 트라이던트 해적단의 사면만을 바란다고.”

“예. 이들은 분명한 해적으로 노략질을 일삼았지만, 현재는 가슴 깊이 반성하고 뉘우쳐 하이페디움의 부귀와 영화를 위하여 몸 바쳐 일하고 싶어 합니다.”

“흠. 무역로 개척엔 저들의 역할이 아주 지대했다지.”

“그렇습니다. 이들이 없었더라면 해적들을 소탕하여 해역을 정비할 수도, 이토록 빠르게 복귀할 수도 없었을 겁니다.”

“사면된 해적들은 어찌할 건가? 또 다른 곳에서 노략질을 하여 제국의 위상을 더럽힐지도 모르지 않나.”

황제의 녹색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클로드가 고개를 더욱 숙이며 말했다.

“아뢰기 송구하나, 이들의 해상 전투 및 항해 실력은 하이페디움 해군을 훨씬 웃돕니다.”

“음.”

제국의 해군이 약하단 소리를 들었음에도 황제는 별로 불쾌히 여기지 않았다. 그게 사실이니까. 아무리 졸라매고 압박해도 해적 소탕은커녕, 트라이던트 해적단 하나 잡지 못하던 게 제국의 해군이었다.

“이들의 절반은 해군에 입대 시험을 치르게 하고, 절반은 무역 상단을 꾸려 건실한 삶을 살게 하고 싶습니다.”

“무역 상단?”

“예. 전 이들과 무역 상단을 차릴 계획입니다.”

사실 황제는 이런 클로드의 뜻을 공문으로 받아 봐서 알고 있었다. 그런 그가 클로드의 입으로 이 이야기를 또다시 하게 만든 이유는 하나였다.

우연찮게 클로드가 귀환한 이 자리는 황성 경매 전야 파티다. 어지간한 거물급 귀족들은 모두 있는 자리란 거다. 황제는 여기서 곧장 클로드가 앞으로 보일 행보를 밝히고, 동시에 귀족들의 앞에서 ‘이리 하겠다’고 맹세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만약 클로드가 맹세한 것과 달리, 해적이 조금이라도 활개를 치고 다닌다면 바로 잡아들일 구실을 확보하기 위해서.

“모두들 고개를 들게.”

황제의 말에 클로드를 비롯한 트라이던트 해적단들이 고개를 들고 황제를 우러러봤다. 황제는 바다의 골칫거리가 한순간에 제 손아귀에 들어왔다는 게 기쁜지 연신 웃으며 말했다.

“내 하이페디움 제국의 첫 번째 해상 무역로를 개척한 영웅에게 그만한 포상도 주지 않아서는 체면이 서지 않겠지.”

“과찬이십니다.”

클로드가 겸손하게 말하자 황제가 근엄한 표정으로 선언했다.

“클로드 라움디셀 백작의 바람대로 내 모든 트라이던트 해적들을 사면하고, 그들을 하이페디움 제국의 국민으로 인정하여 해군 입대 시험을 치를 자격을 주겠노라.”

“하해와 같은 은혜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폐하.”

“감사합니다!”

클로드를 따라 트라이던트 해적단들이 제창했다. 그 목소리가 어찌나 우렁찬지, 파티장이 쩡쩡 울릴 정도였다.

메아리치는 목소리가 잦아들 무렵, 클로드가 물러가려 하자 황제가 그를 붙잡았다. 정확히는 황제의 옆에 있는 에메르나 황비가 말이다. 에메르나 황비는 어딘가 묘한 표정으로 클로드를 가만히 바라보다 황제에게 말했다.

“폐하, 라움디셀 백작은 첫 해상무역로를 연 영웅입니다. 그 영웅이 가져온 첫 무역품의 세금을 감면해 주는 부상을 내리시는 건 어떠십니까?”

“오, 좋지. 첫 무역품이라는 건 아주 의미가 크니, 내 첫 무역품에 한하여 세금을 전부 감면해 주겠네.”

황제가 아주 영특한 생각이라며 황비를 크게 칭찬했다.

공식 자리에서 황후가 아닌 황비를 끼고 나와, 작은 일에도 호들갑을 떠는 게 누가 봐도 미색에 홀린 황제다웠다. 하지만 클로드는 아무 말 없이 그저 감사하다며 다시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황제는 흥이 났는지, 이에 그치지 않고 말했다.

“또 한 가지.”

모든 보상을 받았다 생각했기에, 잠시 긴장을 풀었던 클로드가 조금 놀라 황제를 올려다봤다.

황제는 클로드의 시선을 받자, 매혹적인 미소를 띠고 입을 열었다.

“영웅에게 어울리는 자리를 내어 줘야겠지.”

“…….”

“내 라움디셀 백작에게 무공 훈장을 하사하겠다.”

무공 훈장!

그건 국가의 공로자를 포상하기 위한 훈장 중, 전투에 참가하여 무공을 세운 군인에게 주는 훈장이었다. 클로드는 군인이 아니었지만 수많은 해상 전투에 출전하여, 해적들을 소탕한 공로가 있었다.

“잠깐, 귀족에게 무공 훈장이란 건…….”

“세상에나……!”

이 무공 훈장은 평민이 받을 경우엔 기사 작위가 내려져, 귀족이 될 수 있다. 이미 귀족이 받을 경우엔 그 작위가 한 단계 높은 작위를 하사받는다는 뜻이다. 백작의 다음은 후작이다. 하지만 황제는 라움디셀을 후작으로 둘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그것도 특급 무공 훈장을 하사하지.”

황제가 기분 좋게 말한 선고에 파티장이 다시 술렁거렸다.

“트, 특……!”

“특급……!”

몇몇 귀족들은 놀라 턱이 빠질 지경이었다.

그 모습을 본 황제가 아주 장난스럽게 말했다.

“오늘부터 그대는 백작이 아니라 공작일세.”

백작이 공작으로 작위 상승을 한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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