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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죽일 남주를 길들여버렸다-33화 (33/186)

33화

시엘이 가져온 선물은 드레스와 장신구, 구두 같은 사치품이었다. 심지어 이제 겨우 7살인 내가 쓰기에는 부담스러운 향수까지 있었다.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선물과 시엘을 번갈아 봤다. 시엘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곧 황성 경매가 열리잖아요.”

“어머, 그러고 보니 벌써 다음 달이군요.”

수잔이 맞장구를 쳤다.

나는 시엘과 수잔이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생각했다.

황성 경매.

5년에 한 번씩 열리는 경매로, 주로 황실의 보물이나 황족들의 애장품이 나온다. 조금 특이한 점이 있다면 미리 공표된 물건을 보고 금액을 미리 적어 제출한다는 것이다.

“시엘 님도 참여하시나요?”

“아뇨, 전 구경만 할 거예요. 돈을 잃거나 정치 색을 드러낼 생각은 없거든요.”

시엘의 말마따나 금액은 모두 기부되기에 낙찰받지 못하더라도 따로 돌려받지도 못한다. 해서, 요즘엔 어른들의 정치적 장치로 변모됐다. 높은 가격으로 물건을 낙찰받고 그것을 빌미로 황족과 연줄을 트는 것이다.

오죽하면 ‘애장품 낙찰은 정치색을 드러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라는 말까지 돌까!

이렇다 보니 역으로 ‘금액을 적어 내지 않은 물건의 주인은 지지하지 않는다.’ 또는 ‘내 물건에 고작 이따위 푼돈을 제시하다니, 이 가문은 필요 없다.’ 같은 인식도 생겼다.

그렇기에 나는 셀트론에게 아버지가 낙찰받으려고 하는 물건을 알려 주었다. 아버지는 최근에 옹립된 황태자 제네스의 줄을 붙잡고 싶어 하니까.

“듣자 하니 이번 황성 경매에는 ‘제네스 황태자의 만년필’이 나온다고 했죠?”

“네, 맞아요. 처음으로 만점 받은 시험을 치를 때 썼다고 해요.”

수잔과 시엘이 대화를 나눴다.

아버지는 바로 이걸 낙찰받아 제네스, 아니. 황태자 뒤에 있는 총애받는 황비, 에메르나와 접촉하고자 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일을 돕는 척 훔쳐본 서신에 의하면 에메르나 황비도 글라델리스 후작을 무척 마음에 들어 하고 있었다. 우리 글라델리스 후작가는 굉장히 신사적이며 번듯한 가문이니까.

‘겉으로만’이라는 게 문제지만.

난 아버지의 경매 금액 제시 수표를 가로채 0을 하나 빼 버렸다. 또한 아버지의 정보지를 이용해서 제네스의 만년필을 노리는 이들이 제시할 금액의 평균값도 알아냈다.

“그루안 상단주도 그 만년필을 노리더라고요. 돈을 준비하느라 혼났던데요.”

시엘이 뭔가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날 보며 말했다. 난 그녀를 보며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 때문에 아버지는 떠오르는 샛별, 그루안 상단주에게 허망하게 동아줄을 빼앗길 것이다.

그야말로 아버지의 뒤통수를 제대로 때리는 작전이지.

생각만 해도 고소해서 자연스러운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전야 파티는 아가씨처럼 어린 영애분들께는 약혼자 감을 물색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기도 하죠!”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이런 용도도 있었지.

수잔이 맞장구를 쳤다.

“황성 경매는 보통 가주나 그 안주인 등, 내로라하는 이들이 참석하잖아요.”

“네. 하지만 요즘엔 ‘조기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자녀들을 데리고 참석하기도 해요.”

물론 이건 명목뿐이지, 그 안은 또 다른 정글이다.

부모는 ‘내 자녀가 이렇게 뛰어나다!’ 하고 기싸움하고, 자녀는 ‘내 가문이 이렇게 대단하다!’ 하고 기싸움한다. 동시에 아이를 이용해서 혼약동맹을 맺거나 사교계 진출을 꿈꾸기도 했다.

가장 극단적인 예가 바로 엘레네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내가 2살이고, 엘레네가 갓 태어났을 때 일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직 옹알이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엘레네를 데리고 황성 경매에 참석했다. 그리고 거기서 에메르나 황비의 가문인 이플란트 백작가 영식과 약혼을 맺어 왔다. 엘레네에게만 잔인한 이야기는 아니다. 이플란트 백작가 영식은 당시 두 살이었으니까.

“제가 준비한 이 오몽 살롱의 드레스와 제뉴아 장인이 만든 목걸이, 팔찌만 있으면 이번 황성 경매 전야 파티에서 최고로 아름다운 영애로 꼽힐 거예요! 영식들도 줄을 서겠죠!”

시엘이 열의를 불태웠다.

실제로 그녀가 나열한 곳들은 제국에서 알아주는 장인의 가게였다. 하지만 난 좀 회의적인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게.

“전 전야 파티엔 참석하지 않을 생각이에요.”

애초에 아버지가 날 황성 경매에 데리고 갈지조차 의문인걸.

“네에? 어째서요?”

시엘이 해괴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수잔은 알 것 같다는 표정으로 나를 애잔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시엘이 다급히 날 설득했다.

“아가씨도 아시다시피 이 전야 파티는 그냥 파티가 아니에요. ‘황성 경매’의 전야 파티에요. 각지의 권세가는 물론이고 숨은 자산가들마저 전부 참석하는 ‘진짜 사교 파티’라고요.”

“알아요. 하지만…….”

설령 갈 수 있다고 해도 나는 가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가 내 덕에 인맥이 느는 건 싫은걸.

지금 내가 황성 경매 전야 파티에 참석한다고 가정해 보자.

난 최근 아버지에게 인정받아 상단의 제2 관리자가 되었고, 수수께끼의 인물인 예리엘 만물 상단주의 제자가 되었다. 물론 아직은 내가 예리엘 만물 상단주의 제자가 되었다는 건 공표되지 않은 사실이다. 하지만 자신을 과시하기 좋아하는 아버지의 성격상, 여기저기에 은근히 자랑하고 다녔을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난 최근 아주 우수한 품질의 약초를 재배한다며 급부상한 그루안 상단주와 친하게 지내고 있다. 셀트론이 뻔질나게 후작저를 드나들며 나와 함께 했으니 이 또한 소문이 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비록 내가 주인공은 아니지만, 내 주변의 인물들이 굉장히 대단했다.

어린아이 하나쯤 구워삶는 건 일도 아닐 거라며 접근하는 이들이 분명 있을 테다. 그리고 그들이 아이인 나를 길들이기 위해서 눈을 돌리는 쪽은 아버지일 것이다.

요컨대 내가 그 파티에서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아버지의 인맥이 넓어지게 된다는 소리다.

나는 입술을 비쭉거리며 말했다.

“제 인맥이 되는 게 아니잖아요.”

이 짧은 말에, 시엘은 내가 앞서 생각한 모든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다.

“아, 음…….”

시엘도 카르시안을 괴롭힌 아버지의 배가 부른 건 싫은 모양이다.

“하지만 이 드레스…… 아가씨에게 무척 잘 어울릴 텐데요. 그리고 아가씨도 슬슬 약혼자를 알아보시는 게 좋을 거예요. 하다못해 의탁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요.”

시엘이 걱정스레 말하며 드레스의 프릴과 반질반질하게 닦인 보석을 매만지며 말했다.

무엇보다 차녀인 엘레네에게 오랜 약혼자가 있는데, 장녀인 내게 없다는 건.

“또 아가씨에게 있는 나쁜 소문, ‘하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도 안 되는 소문도 불식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될지도 몰라요.”

시엘은 내게 이런 불쾌한 소문이 있는 게 무척 싫은 모양이다.

“그건 그렇지만…….”

시엘의 말이 옳았다. 내게 이런 소문이 있어서 좋을 건 하나도 없었다.

“만약 후작이 아가씨를 데려가지 않는다면 예리엘 상단주의 제자로 참석해도 돼요.”

시엘은 내가 자신의 제자라는 걸 딱히 숨길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어, 하지만 그러면 선생님께서 그간 일구신 ‘신비주의’가 사라지는데도요?”

‘예리엘 만물 상단주는 당최 뭐 하는 사람이란 말인가?’는 일종의 진입 장벽이었다.

이 정도도 알아내지 못할 사람과는 거래하지 않는다는 오만함이기도 했고. 그런데 그걸 포기하고 만천하에 얼굴을 드러내도 되는 걸까?

“아가씨도 예상하시다시피 알 만한 사람들은 이미 우리의 관계를 다 알게 될 거예요.”

“하지만 선생님의 신분은…….”

“신분은 만들면 그만인걸요. 제게 그만한 능력 하나 없을까요? 애초에 아가씨께 보여 드리고 있는 이 모습 또한 가짜일 수도 있어요.”

시엘이 의미심장하게 후후 웃었다. 그러고 보니 원작에서도 예리엘 만물 상단주는 여자인지, 남자인지, 노인인지, 청년인지조차 확실하지 않다고 나왔다.

시엘이 다시금 손뼉을 짝 소리 나게 치면서 말했다.

“차라리 정말 제 일행으로 함께 참석하는 게 좋겠어요.”

“네?”

“그러면 후작에게 인맥이 생기지 않을 거 아니에요? 거기다 장녀가 아버지의 손이 아니고 스승의 손을 잡고 참석한 모습은 가정이 보여지는 것처럼 화목하진 않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심어 놓기도 딱 좋고요.”

흠, 나는 시엘의 말을 가만히 곱씹었다. 그녀의 말대로 이 방법이라면 아버지의 인맥이 늘지 않게 할 수 있었다.

나는 수잔을 힐끔거렸다.

나와 시엘이야, 암묵적으로 ‘타도 글라델리스 후작가’ 동맹을 맺었지만 수잔은 아니다.

혹시 수잔이 언짢아하면 어떡하지?

수잔은 글라델리스 후작가를 위해 열심히 일해 온 충실한 고용인이니까 충분히 불쾌해할 만했다.

그러나 확인한 수잔의 얼굴은.

‘아, 아가씨가 이렇게 예쁜 드레스를 입고 파티의 꽃이 될 수도 있다니……. 머리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아가씨는 수선화 향이 잘 어울리니까 공수해 와야겠어!’

하루라도 빨리 나를 치장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을 뿐이었다.

휴, 다행이다.

이렇게 해서 나는 아버지가 아닌 시엘과 함께 황성 경매에 참석하기로 했다.

“그럼 내일모레 뵈어요.”

시엘이 돌아가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똑똑, 누군가가 노크를 했다.

“제가 나가 볼게요.”

드레스와 장신구를 정리한 수잔이 얼른 문을 열었다. 난 당연히 하녀나 카르시안일 줄 알았는데, 웬걸.

“수업은 잘 마쳤느냐?”

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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