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를 죽일 남주를 길들여버렸다-32화 (32/186)

32화

나는 조금 의아해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냥 새가 아니라면……?”

“신수나 영물일 수도 있어요.”

신수나 영물이라니.

좀 허무맹랑하지 않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돌이켜 보니 여긴 로맨스 ‘판타지’ 속이다. 회귀도 하고 몬스터도 있는 마당에 신수나 영물이 내 곁에 있다고 해도 아주 이상한 이야긴 아니다.

“새가 아니고 그 외의 존재로 가정하고 찾아보니 실마리가 보였어요. 일단 가장 첫 번째가 바로 이 목격담이에요.”

시엘이 수첩에 붙여 놓은 두꺼운 단추 같은 것을 누르자 목소리가 들렸다.

[아아, 그런 모습을 가진 새라면 기억이 나요. 워낙 예뻐서요. 은백색 몸통에 붉은 꽁지깃도 특이하지만, 뭐랄까……. 사람의 말을 전부 알아듣고 사람보다 더 똑똑하게 생각하는 것 같던 눈동자가 인상 깊었거든요.]

조금 나이 든 남성의 목소리였다.

[언제 만났냐고요? 음, 그건 기억이 안 납니다. 정신을 차리니 우리는 함께였거든요. 제 유년 시절…… 아니. 성장하는 내내 함께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사라졌죠.]

남자의 목소리엔 진한 그리움이 묻어 있었다.

[마치 저를 키우는 게 사명이었다는 듯이, 제가 성인이 되자마자요.]

키우는 게 사명이었다고?

내가 생각에 잠기자, 시엘이 씩 웃으며 다음 장에 붙어 있는 단추를 눌렀다.

[아, 기억납니다. 제가 어릴 적 함께했습니다. 네. 제가 성인이 되자마자 자취를 감춰서 한동안 힘들었습니다.]

이번엔 어떤 여성의 목소리였다. 앞선 남성보다는 목소리가 젊었다.

[요즘 들어 전 그 새가 제 수호천사는 아니었나 싶어요. 그만큼 저를 많이 도와줬으니까요.]

여성의 말이 끊겼다.

나는 시엘이 전달하고 싶어 하는 바를 깨닫고 잠시 입을 벌렸다. 하지만 시엘이 말하는 게 좀 더 빨랐다.

“황성 도서관의 금서 구역에서 읽은 적이 있어요. 천사의 특징에 대해서요.”

천사의 특징.

시엘이 다음 장으로 넘겼다. 그곳엔 천사의 특징에 관해 서술되어 있었다.

“이 세상엔 신이 있으니 당연히 천사도 있죠. 이들은 일종의 전령처럼 신과 인간의 사이를 이어 주거나 인간들을 굽어살펴 주기도 해요.”

원작에서는 크게 다뤄지지 않았지만, 종교와 신전이 있기는 하다.

“그리고 그 천사들 중, 신이 될 만한 능력을 가진 뛰어난 이들이 바로 아이들의 수호천사 역할을 맡는다고 했어요.”

그러니 모든 수호천사들은 신이 되기 위해 수련하는 이들이라 봐도 된다고 했다.

“수호천사가 신이 되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가진 재능 4개를 모으면 된대요.”

“재능이요?”

“네. 수호천사들은 착한 마음을 가진 아이들의 능력을 알아보는 혜안을 가졌거든요.”

“어? 그냥 아이들도 아니고 착한 마음을 가진 아이들이요?”

“아, 네. 그 능력이 제대로 재능을 펼치기 위해서는 마음에 악함이 없어야 한다고 하네요. 천사니까 맡은 아이의 마음에 악함이 있으면 고통을 받는다고도 했어요.”

순간, 내가 나쁜 생각을 하자마자 고통에 시달렸던 삐로리가 생각났다.

설마……!

나는 휙 삐로리를 돌아봤다. 삐로리는 내가 저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줄도 모르고 해먹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

시엘이 말했다.

“천사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아이를 무사히 키워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펼치게 한다고 했어요. 이 덕분에 세상은 선하게 발전하고 수호천사들은 신이 될 기회를 얻는 거죠.”

“아하…….”

“그리고 첫 번째 목격담의 주인공은 역대 최고로 손꼽히는 파발꾼이에요. 아니, 파발 개발자라고 해야 할까요? 세이렌의 편지지를 만든 이가 바로 그니까요.”

“……!”

“그 덕분에 우리는 제국과 해상, 또 해외까지 소식을 전할 수 있는 거예요.”

하여, 그는 황제에게 ‘명예 전령사’라는 직위를 받았다고 들었다.

“두 번째 목격담의 주인공은 아가씨도 들어 보셨을 거예요. ‘성녀 헬레나’라고 불리는 성녀님이시거든요.”

성녀 헬레나!

그녀라면 알고 있었다. 원작에서도 다뤄지는 성녀인 데다가, 제국에 국한되지 않고 국외까지 널리 자비를 베푸는 이였다. 특히 여행자들에게 무료로 축복을 내려주고 있어서 ‘떠도는 자들을 긍휼하는 성녀’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카르시안의 아버지, 클로드도 공작이 된 후에는 종종 그녀에게 신세를 지곤 했다.

시엘이 말했다.

“모두 어렸을 적 비슷한 새와 함께 생활했고 성장한 후에는 세상에 크게 이바지를 하고 있죠. 그것도 선한 영향력으로요.”

명예 전령사는 현재 40대, 성녀 헬레나는 20대라고 했다.

“보통 17~18세에 성인으로 인정받으니 시기적으로도 딱딱 맞물려요.”

시엘은 이미 삐로리가 수호천사라고 확신하고 있는 듯 보였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그러면 삐로리가 제 수…….”

나는 그녀에게 삐로리가 내 수호천사인지 확인받으려고 했다. 그런데 시엘이 얼른 내 입술을 막았다.

“쉿!”

“……?”

“그걸 입 밖으로 꺼내면 안 돼요. 정확히는 아이가 천사의 존재를 알고 있다고 ‘말하면’ 안 돼요. 그럼 천사는 모든 것을 잃게 된다고 했어요.”

“아…….”

나는 시엘의 검지로 입술이 눌린 채 고개를 끄덕거렸다.

헐, 잠깐만.

생각해 보니 나는 저번에 내게 수호천사가 있다고 말했었다. 물론 그건 ‘환생 전의 나’와 ‘회귀 전의 나’를 말한 거긴 하다. 하지만 어쨌든 내가 수호천사에 대해 언급한 건 사실이다.

이건 괜찮은 건가?!

괜히 초조해져서 삐로리를 돌아보니, 여태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수잔이 말했다.

“괜찮아요, 아가씨. 그때는…… 몰랐잖아요.”

수잔은 천천히 말을 고르며 내게 눈짓했다.

‘삐로리가 아가씨의 수호천사라는 걸요.’ 그런 시선이었다.

으음, 모르고 한 소리는 괜찮은 걸까, 그런 거면 좋겠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수잔의 말이 맞을 것 같다. 만약 내가 삐로리의 정체를 알고 있어서 그가 능력을 잃었다면 아직 내 곁에 있을 리가 없다.

아버지와 베티의 불륜 사실을 알려 주며 날 도와줄 수도 없었겠지.

나중에 삐로리에게 맛있는 것을 잔뜩 챙겨 주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나는 삐로리가 탐내고 있는 능력이 무엇인지도 알았다.

독심술이구나.

원작에서나, 회귀 전에서나 내가 카르시안을 괴롭혔기 때문에 삐로리가 떠나, 독심술 능력이 사라졌던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내가 삐로리의 세 번째 능력이 되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시엘이 말했다.

“그런데 한 가지 불확실한 정보가 있어요.”

“불확실한 정보요?”

“네. 이건 아주 오래전이에요. 앞선 이들은 목격담은 20년 간격으로 굉장히 짧아요. 하지만 이 정보는……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이에요.”

“100년 전이요?”

“네. 그러니까 만약 이 정보가 사실이라면, 삐로리의 첫 번째 능력은 이 100년 전에 가진 것이 될 거예요.”

그렇다는 말은 내가 네 번째 능력이라는 말이다. 나는 흥미진진한 얼굴로 시엘을 바라봤다.

“100년 전, ‘금지된 지식을 저술한 자’라는 사람이 있어요.”

“금지된 지식이요……?”

“네. 일종의 예언서인데, 그 내용이 너무도 허무맹랑해서 모두들 헛소리나 공상 소설이라고 취급했대요.”

“공상 소설이라니…….”

“마법도 없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운송 수단이 있다, 하늘로 별을 쏘아 보냈다, 사람이 달에 다녀왔다는 둥…… 말도 안 되는 이야기뿐이었죠. 심지어 저자는 이 모든 것을 직접 ‘봤다’고 해요.”

순간 나는 전율이 돋아 얼어붙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게, 지금 시엘이 이야기한 ‘금지된 지식’이라는 건.

……현대잖아!

하늘을 날아다니는 운송 수단은 비행기, 하늘로 쏘아 보낸 별은 인공위성! 실제로 로켓을 타고 달에 다녀온 사람도 있잖아! 말도 안 돼!

경악하고 있는 내게 시엘이 후후 웃으며 말했다.

“충격적인 이야기죠? 그래서 불확실해요. 거짓말일 수도 있다는 거죠.”

실제로 ‘금지된 지식을 저술한 자’는 거짓말쟁이로 몰려 돌팔매를 맞고 죽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 ‘금지된 지식’이 사실이라는 것을. 그런 세계가 있고, 내가 바로 거기서 왔다는 것을!

그렇다는 말은 내가 삐로리의 네 번째 능력이라는 말이 된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이라…….”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첫 번째 능력을 손에 넣고 60년이나 지난 후에 두 번째 능력을 키웠다는 소리가 된다.

어쩐지 왜 이렇게 긴 간격이 생겼는지 알 것 같다. 수호천사들은 아이의 능력을 키워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퍼트리는 것이 사명이다. 그런데 첫 번째 능력자가 그 능력을 개화함으로 인해 돌팔매를 맞고 죽었다니. 굉장히 속상하고 힘들었을 터.

시엘은 아직 모르겠지만 나는 모든 퍼즐이 맞아떨어졌다. 삐로리는 수호천사가 확실하고, ‘금지된 지식’, ‘전령’, ‘떠도는 자를 긍휼하는 축복’의 능력이 있다.

고작 악역 조연에 불과한 라티아에게 엄청난 존재가 붙어 있었다니. 이런 대단한 기회를, 라티아는 카르시안을 괴롭히느라 날려 버렸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난 카르시안을 절대로 괴롭히지 않을 거고, 나쁜 생각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나는 마법에 재능이 없었다. 드루이드의 후손도 아니라 식물을 돌보는 데도 특출나지 않았다. 검술, 궁술, 창술 등의 무술에도 딱히 큰 힘이 없을 것이다. 이 왜소한 몸과 얇은 뼈대만 봐도 감이 잡힌다.

그런데 내게, 삐로리라는 엄청난 능력을 가진 수호천사가 붙어 있다니! 게다가 독심술 능력이라니!

나는 삐로리의 능력을 절대로 놓치지 않을 생각이다.

기한은 내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

그 전에 나는 내 한 몸은 물론이고, 삐로리가 무사히 신이 될 수 있도록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펼치자고 다짐했다.

시엘이 말했다.

“저희 예리엘 상단에서 준비한 정보는 마음에 드세요?”

나른하게 웃는 얼굴엔 자부심이 가득했다.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했다.

“네. 아주 좋아요. 괜히 사람들이 예리엘 상단, 예리엘 상단 하는 게 아니네요.”

“호호,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이에요.”

시엘이 빙긋 웃었다.

잠시 숨을 돌리고 있자, 수잔이 침대 옆에 뒀던 쇼핑백을 들고 오며 상냥하게 웃었다.

“그러면 이제 선물을 개봉해 볼까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