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내가…… 나쁜 생각을 했어.”
나의 말에 수잔이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나는 보충 설명을 했다.
“내가 나쁜 생각을 했더니 삐로리가 아파했어.”
지금 내가 하는 말은 순도 100%의 진실이다. 하지만 수잔의 귀에는 어떻게 들릴지 모른다.
수잔은 조금 얼떨떨한 얼굴로 보다가 내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어 줬다.
“그랬구나. 아가씨가 나쁜 생각을 하셨군요?”
“……진짜야.”
“알았어요. 그럼 앞으로 나쁜 생각은 조금도 하면 안 되겠어요. 그때마다 삐로리가 아플 테니까요.”
그녀는 내 말을 조금도 믿지 않는 눈치였지만, 나를 무척이나 귀여워하고 있었다. 어차피 수잔을 설득하거나 납득시킬 생각도 없었다. 나는 수잔의 손길을 받으며 가만히 삐로리를 쳐다봤다.
정말 내가 나쁜 생각을 해서 아픈 거라면…… 쟨 정체가 뭘까? 그러고 보니 확실히 보통의 새와 달리 비범해 보이긴 해.
은백색의 길쭉한 몸통도, 꽁지깃만 타오르는 불꽃처럼 붉은색인 것도 신비로웠다.
셀트론을 통해 예리엘 만물 상단에 의뢰해 봐야겠다. 삐로리 같은 새가 또 있는지, 있다면 대체 정체가 뭔지.
“자, 아가씨. 삐로리는 제가 보고 있을게요. 어서 식사를 하셔야죠?”
수잔이 부드럽게 채근했다. 나는 삐로리를 묘한 표정으로 보다가 아침 식사가 놓인 테이블로 향했다.
* * *
“세상에, 너무 잘 어울리네요!”
수잔이 발랄하게 손뼉을 쳤다. 그 앞에서 반나절 만에 원기를 회복한 삐로리는 으스대듯 자신을 뽐내고 있었다.
정확히는 목걸이를 한 자신을.
‘어서! 어서 나를 더 예뻐하도록 해!’
삐로리의 표정에서 그런 말이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삐로리를 떨떠름하게 보다가 순한 얼굴로 짝짝 박수를 치고 있는 셀트론을 돌아봤다.
“정말 받아도 돼요?”
지금 삐로리가 하고 있는 저 목줄은 셀트론이 선물해 준 것이었다.
조금 전, 아침 식사를 마친 나는 곧장 셀트론에게 통신을 걸었다. 삐로리와 비슷한 새가 있는지, 예리엘 만물 상단에 의뢰를 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 그런데 셀트론은 알겠다는 대답 대신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새요? 아가씨, 새를 키우세요?’
‘네? 아, 네. 전에 치료해서 방생했던 새인데, 어쩌다 보니 다시 보호하게 됐어요.’
‘세상에……!’
셀트론은 곧장 삐로리를 보러 오겠다며 통신을 끊었다. 덕분에 나는 저택 중앙의 통신실에서 허망하게 눈만 깜빡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셀트론은 새를 기르는 데 필요한 온갖 용품을 바리바리 싸 들고 나타났다.
“정말 예쁜 새네요. 제가 살면서 본 새들 중 가장 예쁜 것 같아요!”
알고 보니 셀트론은 극성 동물애호가였다. 하긴, 이상할 것도 없다. 셀트론은 드루이드 일족의 후손이다. 자연을 사랑하는 드루이드는 식물은 물론이고 동물과도 무척 친했다.
“저는 동물 중에서 새를 가장 좋아해요. 해충을 잡아먹어 주거든요.”
셀트론이 순진하게 웃으며 솔직하게 말했다.
나중에 좋은 집으로 이사 가면 후원에는 야생 새들을 위한 낙원을 만들 거란다.
“삐릭! 삐르리!”
삐로리는 셀트론이 선물한 목줄이 몹시 마음에 드는지, 날개까지 파르르 떨며 뽐냈다.
은색 리본에 반짝거리는 구슬이 달린 단순한 디자인이다. 하지만 삐로리가 워낙 화려하게 생겨서 무척 잘 어울렸다.
“그런데 저 목줄의 가운데에 있는 펜던트는 뭐예요? 그냥 구슬 같지는 않은데.”
“아, 저거요?”
셀트론은 대수롭지 않게 운을 뗐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마치 등 뒤에 깜짝 선물을 숨긴 사람처럼 히죽 웃었다.
“비밀이에요. 하지만 삐로리와 친해지면 분명, 언젠가 아가씨에게 도움이 될 거예요.”
“삐로리와 친해지면, 이라뇨?”
나는 의아한 얼굴로 셀트론을 올려다봤지만, 그는 끝내 말해 주지 않았다.
셀트론이 말했다.
“참, 삐로리와 같은 종의 새가 있는지는 꼭 의뢰해 볼게요.”
“네. 의뢰비는 제 월급에 달아 놔 주세요.”
“아가씨의 월급이라면 금방 변제하시겠어요.”
“열심히 할게요.”
나는 상단주 셀트론의 참모직으로 취직했다. 앞으로 기획조정이나 경영지원 등을 할 예정이었다.
쉽게 말해서 내가 아이디어를 낸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나는 순수익의 10%나 받기로 했다.
내가 그루안 상단의 앞날을 뚫어 준 것이나 다름없는데, 이 정도 대우는 받아야지.
하지만 이건 양날의 검이다. 내가 좋은 아이디어를 내서 많이 팔면 월급을 많이 받고, 못 팔면 쪽박 찬다는 말이기도 하니까.
나는 셀트론을 배웅할 겸, 카르시안에게 세이렌의 편지지를 전해 주기 위해서 수잔과 함께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삐릭! 삑!”
삐로리가 저도 데리고 가라고 아우성쳤지만, 아쉽게도 그럴 수는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셀트론이 하도 드나들어서 사용인들의 눈초리가 조금 매서워졌다. 어머니의 감시역인 베티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 삐로리를 들키면 ‘허락도 없이 동물을 키운다’며 나를 더욱 압박할 게 분명하다. 그럼 내가 카르시안의 환심을 사는 것도 어려워지고, 차명계좌에 돈을 모으는 것도 들킬 확률이 높아진다.
“얌전히 있어야 해. 조용히, 알았지?”
나는 삐로리가 담긴 바구니 위로 뚜껑을 어슷하게 덮으며 말했다.
‘나만 두고 가고!’
삐로리는 씩씩거리면서 그런 표정으로 항의했다. 하지만 딱히 말썽을 피울 것 같지는 않아 안심이 됐다.
“다녀와서 맛있는 거 줄게.”
나는 삐로리에게 무해하게 웃어 보이고는 수잔과 함께 방을 나왔다.
* * *
라티아가 방을 나서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끼이익…….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음, 으음…… 뭐야…….’
삐로리는 졸음으로 혼몽한 눈을 비볐다. 사람들이 나가 떠들썩했던 방이 조용해지자마자 잠이 쏟아졌다. 그도 그럴 게, 오전에 라티아가 느닷없이 나쁜 생각을 해서 한바탕 앓았다.
다행히 라티아가 나쁜 마음을 먹은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래도 역시 몸에 무리가 간 건 사실인지, 너무도 피곤했다. 하지만 지금 졸음마저도 날려 버릴 정도로 수상쩍은 인기척이 느껴졌다.
삐로리는 비스듬하게 뚜껑이 열린 바구니 속에서 빼꼼 고개를 들었다. 하녀 한 명이 중얼거리며 라티아의 방을 뒤지고 있었다.
“요즘 그루안 상단주가 자주 드나든단 말이야.”
거무튀튀한 적발은 둘째치고, 표독스러운 녹안이 무척이나 소름 끼치는 여자였다.
하녀는 익숙한 듯 라티아의 방을 샅샅이 뒤졌다. 방의 주인이 의심하지 못하도록 최대한 흐트러트리지 않는 모습은 전문적이기까지 했다.
금품을 몇 개 챙기는가 하면, 값비싸 보이는 리본도 몇 줄 훔쳤다. 그러던 중, 하녀는 뭔가 마뜩찮은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쳇, 역시 대단할 건 없네. 난 또 그루안 상단에서 뭐라도 산 줄 알았더니만…….”
하녀는 더 훔칠 게 없는지 투덜거리며 서랍을 마구잡이로 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어?”
무심코 연 서랍에서 뜻밖의 물건을 발견한 것이다. 하녀는 의아한 얼굴로 약병을 꺼내 들었다.
“이건 분명…….”
순간 그녀의 얼굴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사악한 기운이 깃들었다. 대천사인 삐로리의 꽁지깃이 파르르 떨렸다.
‘불길해, 불길해…….’
하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는 그 약병을 챙겨 라티아의 방을 나섰다.
‘뭔가,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 같아.’
삐로리는 소름이 끼쳐 뒤집어진 깃털을 정리하며 걱정했다.
그리고 조금 뒤, 삐로리의 예상대로 글라델리스 후작 저택에선 큰 소동이 일었다.
* * *
“조심히 가요.”
셀트론을 배웅하고 편지지를 전해주기 위해 카르시안이 있을 마구간 쪽으로 향하던 때였다.
“라티아!”
어디선가 앙칼진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어머니?”
그 날카로운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어머니, 레이시나였다. 어머니는 2층의 테라스 난간을 움켜쥔 채, 날 선 표정으로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어머니가 나를 부른 적이 손에 꼽는 건 둘째치고, 저렇게나 격양된 목소리라니?
어쩐지 불길했다.
어머니는 나를 한참이나 쏘아보다가 말했다.
“내 방으로 오너라!”
그리고는 휙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 테라스 창문이 쾅 닫히고, 커튼도 쳐졌다. 그와 동시에 나와 수잔은 뻣뻣하게 굳었다.
“헉.”
커튼을 치며 나를 보고 비웃는 여인은 다름 아닌 베티였으니까! 또 뭔가 술수를 부린 게 분명했다.
“……아가씨. 어, 어떻게 하시겠어요?”
수잔의 손이 가느다랗게 떨렸다. 뭔가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게 선택지가 주어진 건 아니었다.
“어쩌겠어. 어머니께서 부르시는데.”
나는 떨리는 손을 감추기 위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가야지.”
내 말에 수잔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괜찮아. 베티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확인하는 기회로 삼으면 돼.”
대체 뭘까? 그루안 상단주의 일? 카르시안과 친해진 것? 그것도 아니면…… 설마 삐로리?
나는 불안감으로 두근거리는 마음을 다잡고 어머니의 방으로 향했다.
어머니가 말했다.
“라티아, 이게 뭔지 알겠지.”
툭, 데구르르르.
무릎을 꿇고 앉은 내 앞으로 굴러온 것은 다름 아닌.
“……세, 세이렌의 편지지를 만들 때 쓰는 마법약이에요.”
셀트론이 예리엘 만물 상단을 통해 구해다 준 세이렌 마법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