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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죽일 남주를 길들여버렸다-7화 (7/186)

7화

나도 화가 나는 건 매한가지라, 빌과 론을 노려봤다. 하지만 사실은 저 빌, 론이 이런 식으로 나와 주길 바랐다.

난 보란 듯이 한숨을 폭 내쉬며 말했다.

“그래. 분명 사람들은 카르시안의 말을 믿지 않을 테지.”

카르시안이 분하다는 듯 몸을 바들바들 떨어 댔다. 난 그런 카르시안의 앞으로 나서며, 그를 내 뒤로 보내 보호하고 말했다.

“그게 다야?”

“……예?”

“화해의 물, 그게 다냐고. 그럼 그거 내가 대신 마실게. 그러면 화해 하는 거지.”

“뭐, 무, 무슨……!”

“그럼 이 일, 덮는 거지.”

내 말에 카르시안이 깜짝 놀라 숨을 집어삼키고, 빌과 론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가씨!”

뒤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수잔이 얼른 튀어나왔지만, 난 팔을 옆으로 뻗어 그녀를 말렸다.

“대답해. 이 일, 덮는 거지.”

내 말에 빌과 론이 당황해서 주춤거렸지만, 이내 피식피식 비웃으며 내게 그릇을 내밀었다.

“네. 그러죠, 뭐.”

“단, 그 물을 다 드실 수 있다면요.”

내가 이 구정물을 못 먹는데 허세를 부린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이를 어쩌지, 사형대에도 섰던 내게 이만한 구정물은 성수나 다름없는데.

난 감옥에서 더러운 벽을 타고 흐르는 빗물도 받아 먹어 봤다. 그것에 감사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며칠이나 버텼는지 모른다.

내가 론이 건넨 그릇을 쥐자 카르시안과 수잔이 비명을 질렀다.

“마시지 마!”

“아가씨, 안 돼요. 제가 사람을 불러올게요!”

하지만 난 고개만 돌려 두 사람에게 한 번 웃어주고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구정물을 몽땅 마셨다. 말이 구정물이지, 비누를 사용하지 않았는지 그냥 걸레를 담갔다가 뺀 물에 가까웠다. 오전이라 그런지 상당히 깨끗하기도 했고.

난 전부 비워진 그릇을 뒤집어 확인도 시켜 줬다. 그릇에선 물방울 대신 나뭇잎 한 장만 떨어졌다.

“됐지?”

빌과 론이 입을 떡 벌린 채 나를 보고 있었다. 카르시안과 수잔도 경악해서 아무런 말도 못 했다.

난 빌이 얼어붙은 틈을 타서, 그의 가슴팍에서 녹화되고 있는 마도구를 뺏었다.

“앗, 그건……!”

빌이 깜짝 놀라 손을 뻗었지만, 나는 휙 뒤로 물러나며 얼른 전원을 끄고 수잔에게 마도구를 던졌다. 굳어 있던 수잔이 황급히 마도구를 받아 들었다.

“너희 말마따나 고작 하인인 너희가 이렇게 비싼 마도구를 어디서 구했어?”

“그건…….”

“보나 마나 뻔하지, 아버지의 집무실이지? 거기서 훔친 거지?”

“아, 아닙, 아닙니다!”

“그래? 그럼 내가 아버지에게 이걸 직, 접, 전해 주면서 여쭤볼게. ‘혹시 최근에 녹화 마도구가 사라지진 않았나요?’ 하고.”

내 말에 빌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보자…… 와아! 녹화가 되고 있었네? 그러면 이 후작가에 위탁된 카르시안을 괴롭히고 장녀인 내게 걸레 빤 물을 먹인 일도 전부 다 기록되어 있겠네? 내가 이 마도구를 아버지께 드리며 ‘이 하인들이 하극상을 일으켰으니 다른 곳에 고용되지 않게끔 세상에 알리겠어요.’라고 하면…… 아버지는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우리 후작 가문은 대외적으로 신사적인 이미지를 아주 중요시 여기고 있다. 그런데 그 이미지를 해칠 수 있는 일을 벌이다니, 하인인 빌과 론을 가만히 둘 리가 없다.

그것을 깨달은 빌과 론은 여태 기고만장하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단박에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하,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아가씨!”

“아가씨,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뭐라 하기도 전에 알아서 바닥에 머리를 조아렸다.

난 그 모습을 내려다보다 말했다.

“사과는 나에게만 할 게 아닌 것 같은데?”

“죄, 죄송합니다! 카르시안 도련님!”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카르시안의 말이 맞지?”

“네! 제가 지나가던 카르시안 도련님의 갈퀴를 빼앗아 멋대로 다쳤습니다!”

“그리고 다시 카르시안 도련님께 갈퀴를 쥐여 주고 놓으면 부러뜨릴 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카르시안이 갈퀴를 놓지도 못했던 거구나. 갈퀴가 부러지면 마구간 일을 못 하고, 그러면 혼날 테니까.

“정말 죄송합니다, 카르시안 도련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빌, 론이 머리를 박고 싹싹 빌었다. 난 그들을 어떻게 할지 결정하지는 카르시안의 뜻에 달렸다고 했다.

카르시안은 잠시 생각하다가 내게서 그릇을 가져가 구정물을 떠왔다.

“마셔.”

“……예, 예?”

“둘이 나눠 마시는 걸로 용서해 줄게.”

“……예?!”

카르시안의 무덤덤한 말에 빌과 론이 경악했다. 물론 나도 놀랐다. 카르시안이 저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왜. 이 저택의 아가씨인 라티아도 마셨잖아. 하인인 너희는 반씩 나눠 마시는 거고.”

“하, 하지만…….”

“도, 도련님…….”

빌과 론이 울상을 짓고 찰랑거리는 구정물을 바라봤다. 그 모습에 카르시안은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싫어? 못 하겠어? 라티아, 그 마도구 말인데 지금 당장 내가 후작님께 가서 ‘저 이런 짓을 당하는 거 더 이상 못 참겠습니다’고 하면…….”

“마, 마, 마, 마시겠습니다!”

“다, 달게 마시겠습니다!”

빌은 카르시안이 미처 다 말하기도 전에 구정물이 든 그릇을 가져가 꿀꺽꿀꺽 마셔 버렸다.

“야, 야! 내 것도 남겨 줘야지!”

론이 저 혼자 문제 생길까 봐 다급히 말하며 빌의 등짝을 퍽퍽 때렸다. 두 사람은 우리가 보는 앞에 텅 빈 그릇도 보여 줬다.

그것을 확인한 카르시안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론 그러지 마. 다른 하인들에게도 말해. 날 괴롭히지 말라고.”

“예, 예! 알겠습니다!”

“꼭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빌, 론은 몇 번이고 카르시안에게 머리를 조아린 후 도망가듯 사라졌다.

난 꽁무니 빠지게 달려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는데, 그 때. 와락!

“아가씨!”

수잔이 달려와 나를 끌어안았다.

“이게 대체, 무슨, 왜……!”

수잔은 우느라 말도 제대로 못 했다. 난 속으로 아차 싶었다. 나야 회귀 전의 기억이 있으니 구정물을 마신 게 아무렇지 않지만 수잔의 입장에선 아닐 터.

“많이 놀랐어? 아니, 보고 있는데 생각보다 물이 깨끗해 보여서 괜찮을 것 같았지. 그리고 지금은 오전이니까 별로 청소한 곳도 없을 거야.”

“아무리 그래도요, 아가씨. 그런 물을……!”

바쁘게 나를 살피는 수잔의 눈가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안 되겠어요, 어서 가서 약을 먹도록 해요. 이러다가 탈이라도 나면 어떡해요, 어서요!”

“아, 앗! 잠깐만, 수잔!”

난 카르시안과 잠깐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수잔에 의해 그대로 방으로 끌려가고 말았다.

수잔의 감시(?) 하에 깨끗한 물을 다섯 잔이나 마시고, 혹여나 몸에 문제가 생길까 봐 약도 먹었다.

사람 몸은 생각보다 약하지 않다. 그 더러운 빗물을 먹고도 멀쩡할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난 별생각 없었지만, 수잔이 나를 걱정해 주는 게 좋아서 헤실헤실 웃으며 침대에만 앉아 있었다.

내가 구정물을 마신 그 그릇에서 떨어진 나뭇잎이 ‘더러운 물을 깨끗하게 정화하는 약초’라는 걸 밝히는 것도 잊은 채.

아까 새를 찾다가 내 몸에 정화 효능이 있는 나뭇잎이 붙었다. 난 우연히 그걸 봤고, 옳거니 싶어서 내가 구정물을 마시겠다고 나선 거였다. 물론 카르시안이 빌과 론에게 먹인 구정물엔 그 나뭇잎이 안 들어갔고 말이다.

그날 저녁, 난 수잔에게 부탁해서 아버지에게 마도구를 돌려드렸다.

‘수잔에게 들었는데 최근 저택 밖에서 우리 가문을 나쁘게 말하는 이들이 있다면서요. 그들이 왜 그런 말을 하고 다니는지 알 것 같아요. 한번 유도해 봤는데 바로 말하지 뭐예요.’라는 편지와 함께.

물론 이건 거짓말이지만 아버지는 철렁할 것이다. 아버지는 후작 가문의 신사적인 이미지에 광적으로 집착하고 있으니까. 아버지는 내가 카르시안을 믿는다는 말을 두고 ‘잘 유도했다’며 자수정 목걸이를 줬다.

난생처음 갖는 ‘나의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더 이상 저택에서 빌과 론을 볼 수 없었다.

* * *

며칠 뒤, 나는 오늘도 수잔과 함께 기억 속의 아기 새를 찾아 정원으로 나왔다. 아기 새가 좋아했던 모이가 담긴 통은 텅 비어 있었다.

“다른 새가 먹은 거겠지?”

“어쩌면 와서 모이만 먹고 간 걸지도 몰라요. 이 모이는 풀의 뿌리를 말려서 만든 거라서, 보통의 새는 잘 먹지 않는 거잖아요.”

내가 상심했을까 봐, 수잔이 나를 열심히 위로해 줬다.

“그럼 이제 모이만 둬야겠다. 잘살고 있나 보네.”

난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몸을 돌렸다. 그런데 이때였다.

“한 번만, 한 번만 봐 주십시오! 아니, 카탈로그라도 괜찮습니다! 정말 질이 좋은 약초들만 엄선해 왔습니다!”

“어허! 여기가 어디라고 이렇게 소란을 피워! 어서 썩 물러가지 못해?”

“쯧! 우리 후작님이 아무리 인정이 넘친다 해도 그렇지, 이런 잡상인들까지 들어오려고 하네!”

저택의 중앙 문 쪽에서 큰 소란이 일었다. 한 남자는 묘목들을 끌어안고 외치고 있었고, 기사들은 그 남자를 끌어내고 있었다.

“잡상인이 아닙니다, 저는 대대로 거래를 계속해 오던 그루안 상단의……!”

“그루안 상단이 망한 지가 언젠데, 그럼 잡상인이지!”

“후작님을, 후작님을 한 번만 뵙게 해 주십시오! 정말 긴히 드릴 말씀이 있단 말입니다!”

“어허, 안 된대도! 우리 후작님이 너 같은 잡상인을 일일이 상대할 정도로 한가해 보여?”

남자는 울먹거리며 말했지만, 기사들은 가차 없었다.

잠깐만, 그루안 상단?

순간 원작의 한 장면이 번뜩이며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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