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를 죽일 남주를 길들여버렸다-1화 (1/186)

1화

챕터 1. 나는 그 소설의 악역 엑스트라였다.

나는 사형대에 무릎을 꿇은 채 분노에 가득 찬 군중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나를 보며 야유했고 비웃기 바빴다. 사형대를 향해 던진 오물 중 계란 하나가 내 머리 쪽으로 날아왔다. 파각, 얇은 껍데기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토악질이 나올 만큼 역한 썩은 내가 났다.

“죽여라!”

“빨리 죽여라!”

화난 군중들은 한시라도 빨리 내가 처형되길 바라고 있었다. 이곳에 모인 많은 이들이 오로지 나의 죽음만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비참했다, 서글프고 두려웠다. 동시에 화도 났다.

후작가의 영애인 내가, 이제 겨우 10살인 내가 왜 이런 일을 겪는 걸까.

난 명망 높은 후작가의 장녀인데, 영애인데, 왜.

“감히 라움디셀 백작, 아니. 공자님을 학대하다니!”

“천하의 죽일 놈들!”

다시 사형대 위로 돌과 오물들이 날아오기 시작했고, 난 일말의 반항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몸을 내어 줘야 했다.

“라움디셀 공자님께 죽음으로 사죄해라!”

“죄인은 죽음으로 죄를 갚아라!”

군중들이 손을 들며 소리를 질러 댔다.

아, 그래. 라움디셀.

이 사달이 난 이유는 저들이 연호하는 라움디셀 때문이었다.

나는 가만히 이 사달의 시작을 곱씹어 봤다.

사실 공작가인 라움디셀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귀족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평민과 다를 바 없이 가난한 백작가였다. 어찌 된 일인지 그는 아무리 노력해도 좀처럼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고, 결국 백작은 제국 밖으로 눈을 돌렸다. 그런데 여기엔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었는데 당시 이 제국엔 해상 무역로가 없었단 거다.

불과 3년 전만 하더라도 바다엔 해적이 쫙 깔려 있었다. 제국의 해군조차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그 해적들을 소탕하고 교화하여 해군에 편입시킨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가난했던 라움디셀 백작이다.

그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공작이 된 것이다.

“제국 영웅의 아들을 학대한 대역죄인!”

“어떻게 친우의 아들에게 그렇게 못되게 굴 수가 있지?”

그리고 이게 바로 내가 사형대에 무릎을 꿇고 있는 이유였다.

라움디셀 백작의 슬하에는 나와 3살 차이가 나는 아들이 하나 있는데, 그는 무역을 떠나며 자신의 아들을 우리 가문에 맡겼다.

나의 아버지는 라움디셀 백작과 오랜 친우 사이인데다가, 우리 글라델리스 가문은 아주 신사적이고 존경받는 명문가이기 때문이다.

“이 위선자들!”

“겉으로만 착한 척하고, 뒤에선 불법 격투장을 운영했다지?”

“황제 폐하께서 엄금한 노예도 매매했다고 했어!”

겉으로는 말이다.

아버지는 뒤에서 온갖 더러운 일을 일삼으면서도 ‘신사적이고 존경받는 명문가’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친우의 아들, 카르시안을 맡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라움디셀 공작이 죽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고, 졸지에 군식구로 받아들인 카르시안을 눈엣가시로 여겼다.

‘이 쓸모없는 식충! 네게 들어가는 돈이 얼만지는 알아!’

그 때문에 카르시안을 하인처럼 다루거나 굶기는 둥의 괴롭힘을 서슴치 않았고, 그에는 아버지뿐만 아니라 나와 어머니, 내 동생까지 가담했다.

‘우리 아빠가 그러는데 너는 이렇게 사는 게 어울린대.’

‘우리 엄마가 그랬는데 네가 도망친다고 해도 받아 줄 곳은 아무도 없을 거래.’

그러나 쥐구멍에도 볕은 든다고 했던가. 아니면 사람 살이 한 치 앞을 모른다고 해야 맞는 것인가. 달변가였던 공작은 해적들을 회유해서 교화시키고 제국의 숙원인 해상 무역로를 개척했다.

그것도 단 3년 만에!

“우우우!”

“죽여라, 죽여라!”

사람들의 야유 소리가 나를 현실로 이끌었다.

제국 영웅의 아들을 학대하고, 황제가 엄금한 불법 격투장 운영 및 노예매매로 인하여 우리 가족은 전원 사형을 선고받아 죽음만을 기다리게 된 것이다.

그야말로 권선징악의 순간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억울했던 마음도 잠시, 이 상황을 겸허히 받아들이려고 했다.

순간 들린 어머니의 중얼거림이 아니었더라면.

“그러게, 라티아만의 짓으로 모두 뒤집어씌우자니까 왜 내 말을 안 들어서…….”

난 너무 놀라 초연하게 숙이고 있던 고개를 번쩍 들었다. 어머니가 씨근덕거리자 아버지가 낮은 목소리로 으름장을 놨다.

“제정신이야?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카르시안 놈을 괴롭힌 건 몰라도 열 살짜리가 어떻게 격투장을 운영해!”

“왜 못 해요? 실제로 장부를 정리한 것도 다 라티아잖아요. 어차피 중요한 건 장부였다고요. 카르시안도 라티아만 괴롭혔고, 우린 어차피 상단이 있으니까 후계자 양성의 일환으로 총 책임을 넘기고 있었다고 하면…….”

난 세상이 아득해지는 걸 느꼈다.

지금 내가…… 내가 듣고 있는 게 맞는 건가? 지금 아버지와 어머니가 내게 모든 죄를 떠넘기려고 하는 게 맞는 건가?

“천박한 하녀의 배에서 난 사생아를 그간 호의호식하게 해 줬으면 이정도 보은은 기쁘게 할 거 아니에요!”

어머니는 죄를 전부 인정해서 결국 가족을 사형대에 세운 아버지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말투로 말했다. 그리고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덜덜 떨고 있는 내 동생, 엘레네를 꼭 끌어안았다.

“불쌍한 엘레네, 내 하나뿐인 소중한 딸…….”

엘레네는 얼른 어머니의 품으로 파고들었고, 그 모습은 무척 애틋해 보였다. 하지만 난 복잡하고 시끄러웠던 주변이 쥐 죽은 듯이 고요해진 것 같다는 착각만 느꼈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아버지와 가문의 죄를 나 하나에게만 뒤집어씌우려고 하다니. 할 수만 있었으면 진작 그랬을 거라니.

내가, 친딸이 아니었다니.

죽음을 앞두고 알게 된 진실치고는 너무도 가혹했다. 난 멍하니 주저앉아 내 순서를 기다렸다. 그간 가족들이 나를 마치 남 대하듯이 대하고, 하인들이 비웃으며 무시해도 혼내지 않았던 이제야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난 사생아였구나. 난 저들의 진짜 가족이 아니었구나.

머리가 어떻게 될 것만 같았다.

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정신 이상자라는 누명과 엘레네의 죄를 전부 뒤집어썼는데. 그래서 고작 10살의 몸으로 세기의 악녀이자 악독한 마녀란 소리도 들었는데.

이윽고 내 목을 칠 칼날이 번뜩였을 때, 나는 죽기 전에 떠오른다던 주마등을 봤다.

아니, 그걸 과연 주마등이라고 할 수 있을까?

기억 속에서 나는 후작 영애인 라티아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나’였고, ‘나’는 내가 살던 세계와 확연히 다른 곳에서 로판 소설을 읽고 있었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어째선지 내용만큼은 선명했다. 소설 내용을 모두 떠올린 순간 나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이 깨닫고 말았다.

저건 내 전생이구나. 그리고 여긴 내가 전생에서 읽었던 소설 속이었어!

난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 앞엔 한 소년이 서 있었다.

칠흑 같은 검은 머리칼은 창백한 낯빛 때문에 더욱 검어 보였고, 나를 응시하는 붉은 눈동자는 서늘해서 보기만 해도 두려웠지만 그는 분명한 이 세계의 남자주인공, 카르시안 라움디셀이었다.

카르시안은 의미 모를 깊은 눈동자로 나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서로 시선이 마주한 짧은 순간이 내겐 무척 길게만 느껴졌다. 카르시안이 뭐라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거린 때, 사형 집행자가 칼을 다시금 높이 들었다.

내 시선은 자연스레 칼로 향했고 햇빛에 반짝이는 날을 보며 생각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사랑받기 위해 앞장서서 카르시안을 괴롭혔던 멍청이.

카르시안을 괴롭히면 돌아오는 칭찬이 진짜인 줄 알았던 한심한 악역 엑스트라.

그것이 나, 라티아 글라델리스였다!

쉭, 칼날이 매서운 소리를 내며 내리쳐졌다.

* * *

“아가씨, 아가씨!”

“으음…….”

강렬한 현기증이 일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 떴는데 앞에 유모가 있었다.

응? 유모?

나는 눈을 비비고 다시 쳐다봤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비벼도, 깜빡거려도, 나를 걱정하는 얼굴로 쳐다보는 유모는 사라지지 않았다.

“……유모!”

나는 환하게 웃으며 그녀를 불렀다.

수잔이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지?

나의 유모, 수잔은 분명 3년 전에 카르시안을 괴롭히는 데에 동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일찌감치 쫓겨났는데!

그런 수잔이 왜 이런 사형대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죽음이 두려워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

……잠깐, 눈을 비벼? 수잔을 끌어안았다고? 나는 지금 팔이 묶여 있을 텐데?

깜짝 놀라 그녀에게서 팍 떨어져 내려다봤다. 나는 더러운 죄수복이 아닌 예쁜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팔도 묶여 있지 않았다.

게다가 여긴…….

“내, 방이잖아?”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수잔은 더욱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가까이 붙어 속삭였다.

“제발 그만하세요, 아가씨.”

“어?”

“아가씨는 사실 이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시잖아요.”

핑…… 옅은 현기증과 함께 기억이 떠올랐다. 언젠가 수잔에게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게, 언제였더라?

“아가씨. 제발 그만두세요. 이런 짓을 해서 받는 사랑은 진짜 사랑이 아니에요.”

아, 그래. 맞아.

내가 카르시안을 괴롭히면 어머니가 기뻐한다는 것을 알고 더욱더 박차를 가했을 때다. 수잔은 내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나를 말렸다.

카르시안을 괴롭히지 말라고, 이런 건 내가 아니라고, 나는 그런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수잔은 그렇게 말하며 차라리 자신과 도망가자고 말했다.

그때 나는 후작의 영애가 어떻게 유모 따위와 함께 도망을 가느냐며 수잔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었지…….

과거의 일이 모두 업보가 되어 내게로 돌아왔다.

나는 수잔에게 모진 말을 했던 것이 미안해서 사과를 하려 했는데, ……잠깐.

과거의 일이 내게로 돌아와?

……돌아와?

나는 설마, 설마 싶어서 수잔에게서 고개를 돌려 정면을 확인했다.

그리고 거기엔.

“……말도 안 돼.”

카르시안이 있었다.

그것도 금의환향해서 돌아온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이 아닌.

“어떻게 이런 일이…….”

우리 후작가에서 한창 학대를 받던 때의 모습으로, 3년 전의 그 모습으로 말이다!

이럴 수가!

내가, 과거로 돌아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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