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
오필리아는 무려 황제가 직접 수배령을 지명 수배자였다. 어마어마한 현상금이 달려 있는 만큼 그녀의 인기는 대단했다.
그러나 오필리아를 쫓는 그 누구도 지금껏 그녀의 그림자조차 보지 못했다. 그녀는 도망에 일가견이 있었다.
그런 오필리아를 막다른 곳까지 몰아붙인 사람이 딱 한 명 있었으니, 맥포이 가주가 고용한 롬닥의 가노였다. 스쳐 지나간 것만 수차례. 가노는 오필리아를 몇 번이고 잡을 뻔했다.
‘저자가 어째서 단신으로 움직이지?’
오필리아는 눈을 가늘게 뜨고 가노가 지나간 흔적을 노려봤다. 그때 멀어지던 말발굽 소리가 멈추고 기다란 말 울음소리가 들렸다.
오필리아가 숨을 죽였다. 가노가 누군가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듯했다. 어느 때보다 예민해진 그는 과연 짐승보다 더 짐승 같았다.
“나와!”
다음 순간, 육식 동물의 포효와 같은 외침이 숲속을 뒤흔들었다.
엄청난 목청은 숲속의 생명체들에겐 말발굽 소리보다 더한 공포로 다가왔다. 놀란 새들이 푸드덕 소리를 내며 일제히 날아올랐다. 잭이 고삐를 틀어쥔 채 달래고 있던 말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말들은 구슬픈 울음소리를 내며 발버둥 쳤다.
잭이 나무 위의 오필리아를 향해 팔을 흔들었다. 말을 버리고 숲 안쪽으로 도망가자는 신호였다.
오필리아는 그 신호를 알아봤다. 하지만 그녀는 어쩐지 고민에 빠져 있었다.
“뭐 해, 빨리 내려와!”
초조해진 잭이 입 모양으로 외쳤다. 그는 오필리아가 또다시 돌발 행동을 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디아시로 돌아가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하다며 돌연 맥포이로 향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처럼.
불행히 잭의 예감은 이번에도 들어맞았다. 오필리아가 두꺼운 나뭇가지를 징검다리 삼아 오랜 숙적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왜 또?!’
잭이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바인스 형제의 운명은 고달팠다.
* * *
닉스는 당당하게 성문을 향해 걸어왔다.
아니, 걷는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았다. 그것은 뭔가에 멱살이라도 잡힌 듯 부자연스럽게 끌려오다시피 움직였다. 얼핏 네 발로 기어 오는, 혹은 굴러오는 모양새였다. 그 속도는 말보다 빨라 보였다.
친절하게 도개교를 내려놓았으니, 그것이 다리를 건넜다. 그러곤 곧장 성벽을 기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계단을 통하지 않고 벽을 타고 올라오는 기괴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졌다. 과연 나를 찾는 데는 귀신이 분명했다.
마침내 닉스가 성벽 위에 올라섰다. 그것이 으드득 뼈가 뒤틀리는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키더니 나를 마주 보고 섰다.
감회가 남다르긴 했다. 11년 전에도 딱 이 자리, 이 거리에서 이렇게 마주 보고 섰었지.
그때 닉스는 내 배를 뚫어 나를 한 번 죽였었다. 하지만 저것이 그날 죽인 게 어디 나뿐이었던가. 차가운 분노가 차오르는 것은 본능과 같았다.
“엉망진창이군.”
닉스를 마주하고 든 두 번째 감상이었다.
사술이 풀려 제 나이로 돌아온 그것의 낯짝은, 확실히 내가 기억하는 얼굴과 달랐다. 내 기억으로 닉스는 본래 예순이었을 텐데, 예순은 무슨. 마치 여든이 넘은 노인처럼 쭈글쭈글했다.
문제는 그 목 아래였다. 닉스의 목 아래는, 그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웬 젊은 남성의 몸뚱이였다. 어쩐지 움직이는 모양이 기이하다 했더니 누군가의 몸뚱이를 훔쳐서 여기까지 온 듯했다.
주인 다른 목과 몸은 제대로 붙지 못해 아슬아슬하게 덜렁거렸다. 예상치 못한 끔찍한 몰골에 순간 헛숨을 들이켜고 말았다.
이어 나는 더욱 충격적인 사실을 깨달았다.
걸치고 있는 의복은 몸 주인의 피에 절여지다시피 해 본래 색을 알아볼 수 없었지만, 분명 나도 입은 적이 있는 익숙한 형태였다. 특유의 치렁치렁한 모양새를 보면 확실했다.
저 옷차림은 성년식을 앞둔 자의 것이었다.
“……황태자의 몸인가.”
입 밖으로 내뱉고도 설마 싶었다. 닉스의 목 아래가 정말 빌리넌트의 몸이라면, 그는 죽었을 것이다.
소름이 끼쳤다. 오필리아가 힘을 되찾고 이 땅에서 알포를 몰아내는 커다란 틀만 지켜지면 무슨 일이 벌어져도 상관이 없는 것일까. 새삼 여신은 정말 오필리아의 이야기 외엔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내 중얼거림에 닉스가 한발 늦게 양손을 들어 올리더니 물끄러미 손바닥을 살폈다. 제 것이 아닌 몸에 아직 적응을 하지 못한 듯, 정신이 반쯤 나간 사람처럼 반응이 느릿했다.
“아……. 목소리를 듣고 나를 찾아온 게, 그 어린 것이…… 황태자였군. 그래, 그랬어……. 어쩐지, 낯이 익더라니.”
닉스의 확인 사살에 나는 어딘가 찔린 사람처럼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봉인을 푼 건 결국 황태자인 듯했다.
알포는 힘을 나누어 준다. 하지만 힘에는 대가가 따랐고, 그 대가는 보통 사람의 목숨이다. 멍청한 빌리넌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저것의 새로운 재물이 되었을 것이다. 빌리넌트를 아끼지 않았음에도 기분이 참담했다.
“로덴시……. 친애하는 칼리페시를 닮았다 했더니. 아프지 않게 목을 잘라 줄 것을 그랬구나. 하지만 그 아이가 발버둥을 쳐서 어쩔 수 없었는걸. 물에서 나가려면, 그래그래. 목숨값이 필요하니까…….”
닉스가 잠꼬대를 하는 사람처럼 중얼중얼 제 기억을 더듬었다. 본능적으로 날 찾아왔을 뿐 아직 봉인의 여파가 상당해 보였다.
잠시 대화가 전혀 통하지 않으면 어쩌나 싶어 불안감이 들었으나 이제 와 다른 방법은 없었다. 짧은 심호흡 끝에 입을 열었다.
“이봐. 날 찾아온 거 아닌가?”
내가 묻자 여태 제 손바닥을 바라보던 닉스가 시선을 들어 나를 훑어봤다.
“아―. 그래……. 힘이, 힘이 느껴졌지. 오필리아의 힘이 아주 오랜만에 느껴졌는데.”
얼마 전 사원에서 오필리아의 성력이 잠시 풀려났던 일을 말하는 듯했다.
“아이사 맥포이가 훔쳐 간……. 힘.”
혼탁한 눈동자와 시선이 부딪혔다. 기억 속 닉스는 평범한 갈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마치 앞이 안 보이는 사람처럼 희멀건 했다. 제어가 안 되는지 눈알이 간헐적으로 위아래로 흔들리는 모양새가 상당히 역겨워, 하마터면 눈을 피할 뻔했다.
하지만 어느 때보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이를 악물고 닉스의 반응을 주시할 때였다.
불시에 검은 손이 날아왔다. 본능처럼 속으로 오필리아를 부르기 무섭게 한 뼘, 목덜미까지 고작 한 뼘 남겨 두고 검은 손이 멈췄다.
“…….”
눈동자만 겨우 움직여 왼편을 바라봤다. 칼날 같은 검은 손이 당장이라도 내 목을 꿰뚫고 싶다는 듯이 요란하게 떨리고 있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보기 좋게 목이 잘렸을 것이다. 예고 없이 들어온 공격에 전신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배어 나왔다.
“아악!”
내 목이 잘리지 않자 닉스가 괴로운 듯이 다리를 구르며 비명을 질러 대기 시작했다. 그의 발목뼈가 기형적으로 꺾이기 시작했으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듯 발악을 멈추지 않았다.
‘일단 이건 맞군.’
식겁한 것도 잠시, 나는 안도했다. 가정 하나가 무사히 들어맞았다.
오필리아의 힘은 내가 살려 달라고 부를 때 반응하는 게 맞는 모양이다. 넌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무슨 심정으로 이런 조건을 넣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오필리아도 묘하게 변태 같은 구석이 있는 것 같았다.
‘자, 그럼. 글렌도 튀어나오지 않고 잘 참아 주고 있겠다.’
이제 거대한 도박을 할 차례였다. 기회는 단 한 번.
나는 가슴을 넓게 펴고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러곤 삐뚜름한 미소를 지은 채, 아직도 바닥을 구르며 분해하는 닉스를 한껏 비웃었다.
“어떤가. 맥포이를 통으로 잡아먹었는데도 겨우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기분은?”
악의 가득한 조롱에 닉스가 우뚝, 몸부림을 멈췄다. 뿌연 눈동자가 다시 나를 향했다.
“넌 오필리아의 반쪽짜리 힘조차 이기지 못하는구나.”
“너……. 아이사. 아이사구나. 이 못된 것.”
닉스가 드디어 제대로 나를 알아봤다. 쭈그러진 얼굴이 말도 못 하게 일그러졌다.
내가 저것을 처음 본 순간부터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은 것처럼, 저것 또한 나를 싫어했다. 아마도 처음 숲속에서 조우했을 때부터 서로 극히 혐오했을 것이다.
나는 더욱 악당처럼 외쳤다.
“넌 오필리아를 사랑한 게 아니야. 그 힘을 동경하고 질투해서 집착할 뿐이지.”
저것이 수상한 눈빛으로 오필리아를 본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오필리아의 이야기 속에 낱낱이 드러난 저것의 감정은 내 생각보다 더했다. 오필리아를 향한 닉스의 감정은 참 추저분했다.
닉스는 그 애의 힘을 동경한 동시에 질투한다. 여신에 가장 가까운 존재인 오필리아를 숭배하면서도 그 힘을 부러워해, 살의를 느낄 정도로 미워한다.
문제는 이중적인 감정이 오필리아를 소유하면 된다는 발상으로 튀었다는 것이다. 그는 여신에 가까운 오필리아의 선택을 받아 그 애를 소유하기만 하면, 뭘 해도 여신에게 닿을 수 없던 제 결핍을 채울 수 있으리란 망상에 사로잡혔다.
아치를 안고 오필리아와 함께 성벽에 오른 그날, 성벽 위까지 쫓아와 오필리에게 함께 떠나자며 매달렸던 것은 그런 의도였다.
이 얼마나……. 같잖은지.
“네 하찮은 망상과 지저분한 집착에, 네까짓 것 하나 때문에 그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생각하면 겉가죽을 한 꺼풀씩 벗겨도 모자라다.”
동시에 검은 손이 이번엔 반대쪽 목덜미를 노리고 날아왔다.
하지만 이번에도 오필리아는 닉스를 잘 막아 냈다. 그에 맞춰 여든은 되어 보이는 노인의 얼굴이 괴로운 듯이 일그러졌으나, 한없이 가증스러울 뿐이었다.
“아이사, 넌 항상 못된 소리만 해. 오필리아와 다르게 말이야. 넌, 넌 정말 나쁜 애야.”
네게 긴 세월 괴롭힘을 당한 것은 난데. 몹시 지친 듯한 음성은 마치 그가 내게 평생 괴롭힘을 당하기라도 한 듯 들렸다.
와중에 아직도 오필리아를 흉내 내는 것을 못 버리고 아이사, 아이사 불러 대는 것까지. 하나하나 소름이 끼쳤다.
스스로 피해자라고 여긴다면, 힘껏 괴롭혀 주지.
“오필리아 흉내 내지 마, 이 잡놈아! 그래 봤자 넌 죽어도 메헤라에게 닿을 수 없을 테니까!”
나는 기꺼이 닉스가 가장 두려워하는 사실을 콕 집어 주었다.
과연 금기어라도 들은 양 닉스의 얼굴이 기이하게 굳었다. 무섭게 몸을 떨면서 닉스가 나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오기 시작했다.
거리가 좁아 드는 것은 사양이었다. 나는 한 발 한 발 뒷걸음을 쳤다. 힐끔 뒤를 보니 막다른 곳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야 했다.
때마침 검은 손이 또다시 내 목을 노리고 날아왔다가 보기 좋게 튕겨져 나갔다.
지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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