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시모어 부인은 도련님이 납득할 수 있는 대답을 생각해 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그사이 아치는 한층 더 우울한 얼굴을 하더니 급기야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 중얼거렸다.
“생각해 보니 그것도 너무하지 않은가? 나는 맨날 혼자 먹게 내버려 뒀으면서, 고모부가 먹는다니까 먹는 거 봐. 고모는 귀찮은 조카보다 부군이라 이거지.”
가주님이 갑자기 조찬을 즐기는 것은 내성의 모든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는 일이기도 했다.
다들 가주님이 새 안주인을 퍽 아낀다며 설레 했다. 먹는 것에 영 관심 없는 주인 탓에 성취감을 못 보던 성의 주방장 역시 덕분에 신이 난 참이었다.
시모어 부인은 결국 어설프게 도련님을 달래는 것을 포기했다.
“두 분께선……. 맥포이 주인의 의무를 다하고 계시느라 최근 조찬에 참석하기 어려운 것이니, 도련님께선 그런 생각 마십시오.”
“주인의 의무?”
시모어 부인답지 않은 수수께끼 같은 설명에 아치가 알쏭달쏭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시모어 부인은 최대한 전 연령 수위에 맞추기 위해 오랜만에 진땀을 뺐다.
“두 분께선 가문의 주인이자 부부로서 의무를 행하시는 것이니, 도련님께선 너무 서운해 마십시오.”
“아침에 둘이서 해야 하는 의무가 뭐지?”
“꼭 아침에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시모어 부인은 바로 그 점이 곤란한 부분이라는 듯이 말끝을 흐렸다.
“자세한 내용은 곧 상세히 배우시게 될 것입니다. 사교계에 발을 디디실 즈음이 되겠군요.”
“너무 멀었는데?”
사교계에 나가기 시작하는 것은 보통 열다섯 살 정도였다. 이제 겨우 열두 살이 된 어린이 입장에선 곧이 아니라 너무 먼 이야기였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도련님이 불신의 의미로 미간을 찌푸리자 이번엔 해리 폴른 경이 시모어 부인을 돕기 위해 나섰다.
“금방입니다, 도련님.”
“정말?”
말수가 적은 해리는 꼭 필요한 말만 하곤 하니, 아치는 여전히 미심쩍었으나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가주 부부는 아침에 단둘이 회의 같은 걸 하나? 어쨌든, 정말 바빠서 그런 것이지 나만 빼고 노는 건 아니란 말이지?’
마음이 조금 편해진 아치가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 전전긍긍하며 그를 지켜보던 시모어 부인과 해리가 마음속으로 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특히 진땀을 뺀 시모어 부인은 빈 의자 두 개를 탐탁지 않은 눈으로 바라봤다. 그녀는 맥포이 본성 전체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가주 부부의 신혼 생활을 떠올렸다.
“서로의 득을 위해 결혼한 것이니 어쨌건 정략혼이다. 나는 적당히 의무만 다할 생각이다.”
결혼 전, 맥포이 가주는 시모어 부인에게 분명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 단호한 목소리에 결의에 찬 표정으로 말이다. 그런데―.
‘분명 그렇게 말씀하셨으면서 매일 합방에 드시는 것은 도대체…….’
가주님 부부가 일을 치르는 빈도와 시간은 의무를 넘어선 지 한참이었다.
이왕 부부 사이가 되었으니 남처럼 데면데면한 것보다야 백번 낫지만, 보수적인 시모어 부인으로선 이게 맞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잠시 떠올린 것만으로 망측하고 남사스러워 그녀는 그냥 눈을 감아 버렸다.
* * *
ㅎㅂㄹㄱ
천장이 들썩거렸다.
아니다. 흔들리는 건 천장이 아니라 내 시야고, 몸뚱인가.
곧 나는 전신을 늘어뜨렸고 마찬가지로 느슨해진 노마의 무게가 내게 온전히 실렸다. 맞닿은 가슴으로 서로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것이 느껴졌다.
“잠시만, 잠시만 비켜 봐요.”
잠시간 숨을 고른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온몸으로 날 깔아뭉갠 노마를 밀어 내려 했다. 그간의 경험에 의하면 그는 또―.
“……양심이 없군.”
역시나 노마 디아시는 뻔뻔하게도 오늘도 끝을 몰랐다. 내가 질색하며 남의 목덜미에 볼을 문대는 그를 돌아봤다.
그러자 그가 얼굴을 조금 들어 올리곤 퍽 불쌍하고 가련한 표정을 하며 날 내려다봤다. 그 얼굴은 꼭 ‘어떻게 하면 좋죠?’ 하고 묻는 듯 순진무구해 보이기도 했다.
어떻게 하긴!
저렇게 애가 탄 얼굴로 쳐다보면 이게 또 어쩔 수 없었다. 노마 디아시가 저런 얼굴을 하면, 나는 열이면 열 번 어쩔 수 없이 그의 목덜미에 팔을 걸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그를 봐주고 있었다.
나도 이런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충동적이고 불규칙적이며 문란하게 살 수 있는지…… 정말 이상해. 이상한 일이었다.
언젠가 그와 몸을 맞댄 채 ‘매일 이러는 건 비정상적인 것 같은데?’ 하고 중얼거렸던 적이 있다. 그때 노마는 ‘보통 갓 결혼한 부부들은 이러는 것이 정상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정말 모든 신혼부부가 이런다고? 거짓말 치고 있네. 그랬으면 신혼부부는 다 죽었겠군!’
“아이사.”
그때 노마가 날 부르더니 내 귓불을 아프지 않게 잘근잘근 씹었다. 집요하게 투정을 부리는 것을 보니 그새 내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하여간 대단히 귀신같은 남자였다. 그가 귓가에 대고 밭은 숨을 내쉬며 속삭였다.
“하아, 이번엔 정말 마지막입니다.”
그럼 여기서 더 하려 했다는 말인가?
나는 습관적으로 퉁명한 생각을 하면서 그의 목을 껴안은 팔에 힘을 줬다. 반쯤 눈을 뜨니 천장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고, 동이 트기 시작했는지 반투명한 커튼 사이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아, 제길. 오늘도 오전은 날렸다.’
날이 밝아 오는데 이게 무슨 짐승 같은 짓인지 모르겠다. 이렇게 날밤을 새우는 것이 몇 번째인지.
그나마 날밤만 새우면 그다지 문제는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대로 오전까지 싹 날린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몸이 적응을 한 것이지, 처음엔 다음 날 저녁에 눈을 뜬 적도 많았다. 쾌락에 빠져 하루를 통으로 날렸을 때 느낀 자괴감이란.
그럼에도 내가 왜 이러고 있냐 하면.―
‘왜긴. 좋으니까 이러고 있지.’
나는 더 이상 생각하길 포기하고 노마 디아시가 퍼부어 주는 감각에 몸을 맡겼다.
선생은 예언가라도 되는 모양이었다. 여러모로 비상한 나의 부군은 뭐든 곧잘 했고, 뭐든 빠르게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
욕구를 통제 못 하고 노마와 매일 밤부터 아침까지 이러고 있는 이유는 별거 없었다. 그와 이러는 것은 좋았고, 매우 중독적이었다.
물론 매일 이러는 것이 몸을 갉아 먹는 행위임은 분명했다. 그렇지 않아도 여러모로 비실대는 나는 성기사 출신인 노마 디아시의 절륜함을 좀처럼 따라갈 수 없었다.
분위기를 심하게 탄 날에는 내몰리는 감각에 허우적대는 끝에 기절하기 일쑤니, 지독한 약을 하는 것보다 나쁜 취미에 중독된 기분이었다.
그때 노마가 빈틈없이 날 껴안곤 갑작스럽게 상체를 일으켰다. 조금 방심하고 있던 나는 헉, 하고 다급하게 그의 어깨에 매달렸다.
서로를 꽉 끌어안은 채, 나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그의 어깨를 찾아 있는 힘껏 깨물었다.
노마 디아시가 아무리 이쪽으로 비상하다고 해도 그가 언제나 여유롭다는 말은 아니었다. 그의 등 근육이 사정없이 움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아이사, 제가 정말…….”
노마가 한 손으로 내 등허리를 휘어 감고 다른 한 손으론 내 뒤통수를 감싸며 달뜬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러나 나는 동아줄 잡는 심정으로 그의 어깨를 물고 있어 대답할 수 없었다.
“……해요.”
‘아.’
그는 오늘 밤만 해도 몇 번째 저 말을 속삭였다. 몇 번을 들어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오스스 소름이 끼치는 바람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의 어깨를 물고 있는 턱에 반사적으로 더없이 힘이 들어갔다.
이후 온몸에 힘이 빠지며 눈앞이 빠르게 흐려졌다. 경험에 의하면 나는 곧 기절할 것이다. 모든 감각이 희미해지는데 뒷머리부터 시작해 허리까지 쓰다듬는 조심스러운 손길이 느껴졌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아니나 다를까, 나는 또다시 까무룩 정신을 잃고 말았다. 참으로 쪽팔리는 일이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지금이 몇 시냐고 묻는 게 조금 두려웠다. 특히 태양이 떠오르고 있는 것을 보고 잠든 날이면 그랬다.
“걱정 마세요. 아직 정오가 안 되었습니다.”
그때 노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말을 끝으로 기다렸다는 듯이 내 얼굴엔 입맞춤이 쏟아졌다.
나는 눈 뜨자마자 쏟아지는 노마 디아시의 격렬한 인사를 어색하게 피하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왜냐하면, 저 말은 정오가 다 되었단 말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상체를 일으키기 위해 퍼덕거리자 노마가 잽싸게 손바닥으로 내 허리를 받쳐 주었다.
그러나 이제 와 간이고 쓸개고 빼 줄 것처럼 굴어 봤자 나는 그의 하체가 짐승처럼 굴던 지난밤을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숨 쉬듯 매너를 뽐내는 그를 실눈으로 째려봤다.
“안 아픕니다.”
“다행입니다.”
나의 경계 어린 시선과 퉁명한 목소리에도 노마는 혼자 뭐가 그렇게 좋은지 실실 웃으며 그렇게 대답했다.
아프지 않다는 말은 단순 허세가 아니었다. 당연한 것이 노마는 매일, 내가 기절하듯이 잠든 사이에 성력으로 내 몸을 회복시켜 놓기 때문이다.
그뿐이랴, 뽀송하게 몸을 씻기고 찝찝해진 침대를 벗어나 다른 침실에 날 옮겨 놓는 것까지가 맥포이 안주인의 아침 일과였다.
다시 한번, 그는 정말 여러모로 비상했다.
하지만 나로서는 노마의 보살핌이 이래저래 민망할 뿐이라 그에게 이런 시중을 들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산뜻한 얼굴을 한 노마에게선 그럴 순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그의 극진한 시중이 시작되었고, 매일 불타는 밤이 가능했던 비결이 여기에 있었다.
곰곰이 생각하니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가 없어 재차 그를 노려볼 때였다. 느슨하게 걸쳐진 미끈한 가운 사이로 드러난 그의 어깨가 보였다.
나는 우연히 눈에 들어온 그 어깨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노마의 어깨는 이빨 자국 여러 개가 난 데다, 멍이 오르기 시작하다 못해 피가 터져 있었다. 그 꼴을 보고 있자면 간밤에 작지만 포악한 짐승을 만난 사람 같았다.
‘저 앙큼한 인간이……. 일부러 보여 주는 거군. 날 또 놀리려고 말이야.’
발칙하게도 노마는 최근엔 날 놀리는 것을 대놓고 즐겼다. 감히!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하기 위해 기를 썼다.
그러나 저 요망한 남자는 이미 전부 눈치챈 모양이었다. 그의 눈꼬리가 만족스럽게 휘어져 있었다. 이미 저렇게까지 신난 걸 보니 안 봐도 내 얼굴은 시뻘게졌을 것이다.
처음엔, 양심 없는 노마 디아시가 말도 안 되는 것을 들이대는 바람에 매우 아팠던 것이 사실이었다. 입으로만 다정한 상반신에 배신감이 들어 그의 어깨를 사정없이 물어뜯어 버렸다.
노마가 먼저 아프면 물라고 하기도 했었다. 나만 아플 수는 없지, 너도 당해 보라는 심보로 사양하지 않고 마음껏 그의 어깨를 물어뜯었다.
그러나 그게 버릇이 될 줄은 몰랐다.
아물 시간 없이 물어뜯기다 보니 노마의 어깨는 초야 이후로 멀쩡한 날이 없었다.
물론 노마는 성력이 있으니 자가 치료를 하면 됐다. 그러나 그는 나 보란 듯이 상처를 그대로 놔두었고, 그 어깨와 마주할 때마다 매번 기겁을 하는 내 반응을 즐겼다.
‘망할―.’
나는 결국 오늘도 민망함을 이기지 못하고 팽 고개를 돌려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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