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와아아아! 나는 다시 한번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입술, 볼, 턱 끝, 눈꺼풀, 이마, 눈꼬리 할 것 없이 온 얼굴에 퍼부어지는 그의 입맞춤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위에서 덮쳐 오는 그는 새삼 거대했다. 나보다 배는 큰 날짐승이 몸 위에 올라탄 기분이었다. 도망치는 건 불가능했다. 급소를 눌린 먹이처럼 온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내리 입맞춤을 퍼붓던 노마가 드디어 폭격을 멈췄다. 정신이 쏙 빠진 나는 그제야 숨을 몰아쉬며 그를 바라봤다. 내내 나를 향하고 있던 눈동자와 마주쳤다.
한순간이라도 입술이 내 살갗에 닿지 않으면 큰일 나는 사람처럼, 노마가 다시 한번 입술을 내렸다.
“아.”
미처 호흡을 가다듬을 새도 없었다. 이번엔 입술 사이를 가르며 그의 혀가 입 안을 헤치고 들어왔다. 숨이 부족해 헐떡이자, 노마는 뻣뻣하게 힘이 들어간 내 팔을 잡아 제 목에 두르게 했다.
마침내 긴 입맞춤이 끝났을 때 노마의 상반신과 맞닿은 내 가슴은 가쁘게 오르락내리락거렸다. 마찬가지로 펄떡이는 내 목덜미에 그가 코를 박았다.
“걱정 마세요. 아직은, 아닙니다.”
목덜미에 대고 속삭이자 전신에 오소소 소름이 끼쳤다. 내가 흠칫 몸을 떨자 그도 몸을 움찔댔다. 틈 없이 맞닿은 탓에 그의 근육이 꿈틀거리는 것이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런 것 하나하나에 반응하기엔 내 쪽이 여유가 없었다.
노마는 이제 기가 막히게 입맞춤을 잘하는 것 같았다. 처음 입술이 닿기 무섭게 떼 내던 그는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로, 굉장히 능숙했다.
비록 내게 마땅한 비교 대상이 존재하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와 입을 맞췄을 때 가슴이 말도 안 되게 뛰는 것을 보면, 노마는 입맞춤에 소질이 있는 게 분명했다.
호흡이 조금씩 안정되자 머리가 돌아갔다. 나는 그제야 조금 길게 입을 맞췄을 뿐인데 그새 전신이 땀으로 젖어 든 것을 깨달았다.
그때 노마가 느리게 팔을 움직여 구불대는 내 머리칼을 손빗으로 부드럽게 한 번 쓸고는, 날렵한 동작으로 상체를 일으켰다. 나는 어쩐지 나른해서 눈동자만 굴려 그의 움직임을 지켜봤다.
월광을 등에 진 반나신의 남자는 아름다웠다. 나와 마찬가지로 그의 하얀 몸 역시 땀에 젖은 듯 아까보다 물기가 어렸다.
매끈한 피부 위로 울긋불긋한 힘줄이 올라 있었고, 아까보다 분명히 가빠진 호흡, 한껏 달아오른 얼굴이 차례대로 눈에 들어왔다. 그는 분명 미소를 띠고 있었으나, 나를 내려다보는 금안은 평소와 다르게 어딘가 흉흉했다.
명백한 흥분이었다.
‘와, 나 어쩌지.’
기어코 그걸 문장으로 완성해 내자 심장이 무섭도록 뛰기 시작했다. 보기만 해도 고해 성사가 튀어나오는 성스러운 미모의 남자의 열 오른 얼굴이란 지독히 관능적이며, 야했다.
흥분한 노마 디아시는 굉장했다. 이래저래 평범한 날 두고 어떻게 저런 얼굴을 할 수 있는지. 나는 그런 남자를 바라보며 규칙적으로 숨을 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살면서 무수한 신성 모독을 저지르며 살아온 나지만, 오늘이 내 인생 최고의 신성 모독이 될 듯했다.
“이제 제가 당신을 만질 겁니다.”
느릿하게 시선을 아래로 내린 노마가 친절하게 다음 동작을 예고했다. 이론만큼은 빠삭한 나는 목적어가 빠진 문장을 단번에 이해했다.
나는 달아오르다 못해 뜨겁게 느껴지는 눈가를 손등으로 가렸다. 어느새 내 다리 사이에 자리 잡은 노마가 제 어깨에 내 한쪽 다리를 걸쳤다. 그러곤 종아리부터 허벅지에 틈틈이 입을 맞추며 내려오기 시작했다.
시트를 쥔 손에 더없이 힘이 들어갔다. 속으로 ‘미쳤나 봐’를 100번 정도 되뇌었다.
그 뒤론 몇 번 발을 뒤챌 뻔했다. 하지만 부드럽게 발목을 쥔 그의 손은 단단하게 나를 붙잡고 있었다. 어쩐지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음처럼 벗어날 수 없었다.
내가 깨지기 쉬운 유리라도 되는 양 전전긍긍할 땐 언제고. 내가 발버둥 칠수록 노마는 더 집요하게 들러붙었다.
눈앞이 몇 번 하얗게 점멸하길 반복하고 나서야 그는 나를 놓아 줬다. 나는 질주를 마친 사람처럼 늘어졌다.
어느새 완벽하게 나신이 된 노마가 민첩하게 내 몸을 타고 올랐다. 끈적한 맨가슴이 맞닿았으나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것을 보면 나 역시 돌아 버린 것이 확실했다.
오늘은 이쯤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노마는 날 가만두지 않았다. 그는 지독하게 착실했고, 여기서 멈출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듯했다. 그가 연신 내 머리칼을 빗고 옆구리를 쓸며 속삭였다.
“통증은 어쩔 수 없겠지만 당신께서 아프지 않게 최선을 다할 테니.”
그렇게 아픈가? 아까부터 팔꿈치 같은 것이 허벅지를 찌르는 듯해 무심코 아래를 보려고 했다.
그러나 마치 아래를 못 보게 하려는 것처럼, 노마가 갑작스럽게 입을 맞춰 오는 바람에 시선이 흐트러졌다.
“참기 힘드시면 제 어깨를 깨물어 주세요.”
노마가 내 손을 하나씩 찾아 깍지를 끼며 말을 이었다. 이윽고 시선이 얽혀들었다.
눈만 마주쳐도 얼굴을 붉히던 숙맥은 어디 갔는지.
나는 그에게 뭐든 너무나 쉽게 허락하는 것만 같다. 그걸 잘 알면서, 아까부터 도저히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또다시 그를 허락했다. 그것을 신호로 그가 느릿하게 몸을 움직였다.
‘제길. 팔꿈치 같던 것이 설마.’
“노, 노마.”
이런 여우 같은 놈. 위험을 감지한 나는 다급하게 그를 불렀고, 다음 순간 폐부에 숨이 찼으며, 고개가 뒤로 넘어갔다. 지독하게 야시시하게 생겨 먹은 남자가 내 머리 위에서 탄성을 터뜨렸다.
“아이사.”
숨이 넘어가기 직전인 와중에 그가 뻔뻔하게도 내 이름을 불러 댔다. 물론 그도 대답을 원하고 부른 것은 아닐 테지만, 대답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영원히 당신 곁에 있을 겁니다.”
노마가 고개를 숙여 다시 한번 낮에 했던 맹세를 내 귀에 속삭였다.
아―. 또 저 바보 같은 소리.
두근두근. 심장이 속도를 높여 가슴이 아팠다. 손깍지를 풀어낸 그가 자신의 어깨에 내 팔을 두르며 말했다.
“그러니 저를, 꽉 안아 주세요.”
나는 전신을 떨며 그를 안은 팔에 힘을 줬다. 그것을 신호로 노마가 내 입술을 찾아왔다. 약하게 턱을 깨물다 윗입술을 깨물던 그는 남은 숨결까지 모조리 빼앗을 것처럼 입을 맞춰 왔다.
놀랍게도 잡아먹는 행위에 가까운 입맞춤은 여러모로 충격적인 감각을 견디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도 그걸 노린 모양인지 얼마 가지 않아 은근슬쩍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입으론 온갖 달콤하고 자상한 척을 했지만, 아래로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이게 은근히 배신감이 들기도 해서 나는 제멋대로 그의 어깨를 물어뜯어 버렸다.
선생의 말은 틀린 것 하나가 없었다. 백날 이론을 공부해 보았자 실전 한 번만큼 못하며, 내 부군은 여러모로 비상했다.
밤은 길었고, 그 밤에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맥포이의 새로운 안주인은 자상한 상반신과 무자비한 하반신을 가진 반인반수란 것이었다.
* * *
ㅎㅂㄹㄱ.공금
“반품해 주시오. 완전 사기 아니오. 순한 강아지인 줄 알고 들였더니 순 짐승 새끼였소! 사자 새끼였다고!”
내가 억울한 목소리로 외쳤다.
“입으로만 다정하지 하반신이 완전히 금수보다 못한 상놈이었소! 어쩐지 아래를 못 보게 하더라니, 그 끔찍한 것을 어떻게 사람한테 들이댈 수 있지? 내 몸 꼴을 보라지. 안 아픈 곳이 없다고!”
대단한 사기를 당한 사람처럼, 나는 조목조목 논리정연하게 반품 사유를 나열했다. 사유를 좀 더 세부적으로 열거하자면 끝이 없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말은 심히 무책임했다.
“입, 맞췄잖소.”
“아악! 그놈의 입맞춤! 입맞춤이 뭐라고!”
“이미 입 맞췄으니 반품은 아니 될 말이오.”
얼굴 없는 근엄한 목소리가 다시 한번 단호하게 반품 불가를 선언했다.
“무엇보다 이제는 성을 쌓았으니.”
근엄한 목소리를 한 사람의 얼굴이 점점 또렷해지더니, 어느새 밀란 디아시의 엄숙한 얼굴로 바뀌었다.
밀란이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이제는 아버님인가. 아버님이 나를 향해 재차 입을 열었다.
“평생 소장이 원칙이오.”
“헉!”
말도 안 되는 개꿈 끝에 나는 번쩍 눈을 떴다. 동시에 온몸이 비명을 질러 억, 하고 헛숨을 삼켰다.
하반신 아래의 무감각과 온몸을 두드려 맞은 듯한 통증의 조합은 생전 처음 겪는 것이었다. 생경한 감각에 어젯밤, 아니, 몇 시간 전 일이 생생히 머릿속에 펼쳐졌다.
나는 눈동자만 떼굴떼굴 굴려 내 몸을 이렇게 만든 원흉을 찾았다. 실은 찾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눈 뜨고 바로 보이는 것은 살색으로, 노마 디아시의 가슴팍이었기 때문이다.
눈동자를 올려 봤자 계속 살색의 향연으로, 한 남자가 남의 정수리에 턱을 괴고 곤히 잠자고 있었다. 이쪽은 곧 죽을 것 같은데 누구는 잔잔한 숨소리를 내며 잠이나 처자고 있다는 사실에 대번에 화딱지가 났다.
아니, 그보다 잠 못 든다며?
“이, 이 새끼가.”
간밤에 그에게 시달릴 대로 시달린 나는 사기당한 기분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비명에 가까운 신음을 질러 댄 탓에 갈라진 목소리가 나왔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건 비단 통증 때문만이 아니었다. 노마는 마치 내가 인형이라도 되는 듯이 꽉 감싸 안고 있었는데, 힘이 어찌나 센지 도무지 그의 팔에서 빠져나갈 수 없었다.
노마의 품에서 벗어나 보려고 열심히 낑낑대던 나는 일순 모든 동작을 멈췄다. 믿을 수 없게도 아랫배 부근에 뭔가가 닿았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아침이고 신체 건강한 남성에게 이러한 현상이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동틀 때까지 잠 못 들고 저것에 시달린 것을 생각하면 치가 떨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는 넌 한순간도 즐기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실은 중간쯤엔 분위기를 거하게 타긴 했다.
조금 적응한 뒤엔 티베이 저택에서 그랬던 것처럼 노마를 쓰러뜨리고 그 위에―.
떠올리는 것마다 남사스러운 기억밖에 없어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그래도 그렇지. 사람이라면 무릇 적당히를 알아야지.’
민망함도 잠시, 나는 어느새 남의 정수리에 쪽쪽 입맞춤을 퍼부으며 기상을 알리는 짐승 새끼의 가슴을 노려보며 생각했다. 이제 보니 내가 제 품에서 벗어나려고 끙끙댈 때 진작 깨어 있었던 모양이다. 그때 시야가 단숨에 뒤집혔다.
“아―.”
알싸한 통증에 눈을 질끈 감았다 뜨니, 이 짐승이 또 사람 위에 올라타 있었다.
“잘 주무셨습니까.”
잘 주무셨겠냐? 나는 지을 수 있는 가장 험악한 얼굴을 하고 뻔뻔하기 짝이 없는 노마 디아시를 올려다봤다. 와중에 놀랍게도 그는 조금도 붓지 않는지 평소처럼 고왔다.
눈이 마주치자 그의 얼굴이 활활 불타올랐다. 그는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더니, 그 덩치로 안기듯이 내 목덜미에 벌건 볼을 포갰다.
퍽 깜찍스러운 행동이었으나,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욕망의 화신처럼 굴던 남자가 이러니 기가 찰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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