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데드 엔딩 후에-40화 (40/139)

40.

노마의 말대로 앙투아네트의 귀여움이란 꽤나 치명적이었다.

‘진짜 귀엽긴 하네.’

또한 노마의 말대로 카탐에서 봤을 때 그대로였다.

‘정말 돌연변이인가?’

가까이서 보니 고양이보다 팔다리가 더 통통하고 주먹이 동그랗기는 했으나, 언뜻 보면 정말 검은 새끼 고양이였다.

“와!”

최근 애어른처럼 굴며 온갖 염세적인 말을 늘어놓던 아치는 깜찍한 생김새의 새끼 맹수의 등장에 영락없이 어린애처럼 굴었다.

나는 아치가 바인스 경이라는 기사의 품에 안긴 앙투아네트를 향해 손부터 뻗으려는 것을 잽싸게 막았다. 아치가 내게 눈을 부라렸고 나는 쓰읍, 소리를 냈다.

노마 앞이라 그런지 아치는 칫, 하며 비교적 얌전히 제자리에 앉았다.

새끼라도 맹수는 맹수. 심지어 앙투아네트는 귀엽긴 한데 척 봐도 사나워 보였다. 바인스 경의 가슴을 날카로운 손톱으로 박박 긁어 대는 모습으로 보아 보통 성깔이 아니었다.

아기 표범은 낯선 곳이 두려운 모양이었다. 짧은 시간에 바인스 경의 가슴팍을 모조리 헤집은 앙투아네트는 노마를 발견하자마자 미련 없이 그를 떠나 노마의 허벅지에 사뿐히 올라갔다.

“저요! 저요! 저도 안아 보고 싶어요!”

아치는 새침하게 구는 앙투아네트를 애타게 바라보다 한 팔을 번쩍 들고 아우성쳤다.

“어허.”

나는 아까보다 조금 더 엄한 목소리로 아치를 나무랐다.

“가주님, 걱정 마세요. 앙투아네트는 똑똑해서 아무나 물지 않습니다.”

노마가 앙투아네트의 엉덩이를 토닥이며 말했다. 그러면서 노마는 앗취, 하고 기침을 한 번 했고 동시에 앙투아네트는 아르르, 거렸다.

……그건 당신 생각이고 앙투아네트는 안 그런 것 같은데.

나는 슉슉, 사람을 경계하느라 바쁜 앙투아네트의 뒤통수를 보며 생각했다.

‘뭐 특별히 위험해 보이진 않고. 노마는 잘 따르는 것 같군.’

어쩔 수 없이 디아시 기사들끼리 잘 돌보라고 말하려던 때였다.

열심히 주변을 경계하던 앙투아네트가 이쪽을 보더니 나를 빤히 응시하기 시작했다. 번뜩이는 아기 맹수의 시선에 나는 부끄럽게도 순간 졸아들고 말았다.

“앙투아네트. 가주님.”

그때 노마가 고개를 낮춰 앙투아네트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이고는 눈짓으로 나를 가리켰다.

‘뭐, 뭔데?’

앙투아네트가 노마를 힐끔 보고 다시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나를 보더니, 곧 테이블 위로 폴짝 뛰어올랐다.

당황해서 눈 한 번 깜빡이니 어느새 앙투아네트가 내 앞에 서 있었다. 표범답게 재빠른 움직임이었다.

“……뭐 하는.”

조그마해도 맹수라는 생각에 나는 말끝을 흐렸고 도그만 경은 검에 손을 대려 했다.

그러나 내 앞에 선 앙투아네트는 얌전했다. 내 눈을 빤히 들여다보는 것이 내가 진짜 ‘가주님’인지 확인이라도 하는 듯했다.

“맞다. 앙투아네트. 맥포이 가주님이다.”

뿌듯한 표정을 한 노마가 박수를 쳤다.

‘진짜 뭔데?’

여전히 나를 쳐다보는 앙투아네트가 통통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몹시 유혹적이라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손을 조금 뻗었다.

그러자 앙투아네트가 뻗어진 손에 냅다 머리를 비볐다.

“……!”

바인스 경의 가슴을 후벼 파던 애는 어디 갔는지 퍽 애교스러운 행동이었다. 고롱고롱 기분 좋은 숨소리를 내며 눈을 감는 게 아주 깜찍했다.

“와……. 앙투아네트는 고모가 좋나 봐.”

잠시 넋을 놓고 있는 사이 옆에서 아치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부러움이 가득한 중얼거림이었다.

……그런가? 내가 좋나? 어쩐지 조금 우쭐한 마음이 들었다. 어린 시절 동물을 좋아했던 기억은 있는데, 연이 없던지라 앙투아네트가 보이는 뜻밖의 호감 표시에 쉽게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고모는 좋겠다. 앙투아네트는 저 기사님은 싫어하더니 고모는 좋나 봐.”

어린이의 솔직한 말은 가끔 잔인할 때가 있었다. 그나마 앙투아네트가 폰에게는 하악질을 덜해 그동안 먹이 담당은 그가 맡았었다.

‘지금껏 먹이를 준 건 난데. 다 부질없다.’

아치의 투명한 평가에 폰은 마음을 다쳤다.

‘잘한다. 우리 아가.’

폰이 상처를 받고 있을 때 노마는 안도했다.

“앙투아네트는 가주님이 좋은가 봅니다.”

“그런 겁니까?”

나는 서툰 손길로 앙투아네트를 쓰다듬으며 되물었다.

“네. 저 말고 다른 사람에게 쓰다듬기를 허락한 건 처음 봅니다.”

“호오…….”

그렇단 말이지.

나는 답례처럼 앙투아네트의 이마를 슬슬 매만져 주었다. 한동안 흐뭇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던 노마가 다시 입을 열었다.

“가주께서 예뻐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가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그 목소리는 마치 고백하는 사람의 것처럼 은밀했다. 그러나 응접실에 있는 모든 사람이 아기 표범에게 정신이 팔려 사위가 고요했던 탓에, 그 목소리는 아주 잘 들렸다.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화자를 돌아봤다. 화자의 뺨은 심지어 발그레했다.

“네. 예쁩니다.”

마찬가지로 앙투아네트에게 정신이 팔린 나는 여상히 대답했다.

그러자 노마가 시간 차로 풉, 웃음을 터뜨렸다. 원래 아기가 있는 공간은 화기애애하기 마련이다. 나는 노마의 웃음을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주변 인물들이 석상처럼 굳고 말았다는 사실은 까맣게 모르고 말이다.

‘엄마야.’

폰은 특히 충격에 빠졌다.

‘말투가……. 저게 지금 앙투아네트를 예뻐해 달라는 거야, 자기를 예뻐해 달라는 거야?’

폰은 부디 제 귀가 먹은 것이길 바라며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

불행히도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모두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100개씩 달려 있었다.

‘나만 그렇게 들린 게 아닌가 봐. 디아시 경은 진짜 무슨 생각으로 저러시는 거야. 디아시 공은 아시나?’

모두가 지진이 난 듯 동공을 떨며 팽팽 눈치를 끌어 올리고 있을 때. 티 테이블에 둘러앉은 세 사람과 맹수 한 마리만 평화로웠다.

‘이렇게 말해도 의심조차 안 하시니 정말 귀엽지 않은가.’

두근두근―.

노마의 기분은 오늘 또다시 최고였다. 나는 당신 손끝만 봐도 즐거운데. 당신이 눈만 깜빡여도 웃음이 나는데.

‘당신도 나와 있는 게 즐거우면 좋겠다.’

아까 아치의 말에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졌을 때 노마의 마음은 절벽으로 떨어졌다. 노마는 그런 느낌을 다신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그녀는 앙투아네트를 보고 표정이 풀렸고, 심지어 귀여워해 주었다. 그는 그제야 긴장을 풀 수 있었다.

‘일단 앙투아네트 쪽은 됐다.’

노마는 맥포이에 오기 전, 앙투아네트에게 열심히 무언갈 가르쳤다.

“아가. 잘 보렴.”

그는 아이사의 눈동자와 비슷한 보라색 구슬은 물론, 온갖 보라색 물건을 다 들고 와 펼쳤다.

“내가 좋아하는 분이란다. 그분 말 잘 들어야 해. 말 잘 듣는 이를 예뻐하신다 들었다. 어여쁘게 보여야 나중에 우리 둘 다 거두어 주시지.”

짧은 회상을 마친 노마는 산뜻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나만 아이사 님 마음에 들면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때마침 앙투아네트는 아치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보라색 눈을 가진 아치까지 잘 따르는 걸 보니 앙투아네트는 정말 똑똑한 모양이었다. 노마는 기대 이상의 성과에 감격했다.

익숙한 보라색이 많이 보이자 앙투아네트 역시 점점 신이 나는지, 급기야 여기저기를 폴짝폴짝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앙투아네트에게 빠진 아치가 그 뒤를 쫓아 응접실을 펄쩍펄쩍 뛰어다녔다.

점잖은 해리 폴른 경이 ‘도련님, 조심하십시오’ 하고 어정쩡하게 쫓아다니는 꼴은 꽤 웃겼다. 그러나 누가 봐도 사고 치기 딱 좋아 보였기 때문에 아치와 앙투아네트는 곧 응접실에서 쫓겨났다.

아치를 따라 폴른 경과 시모어 부인이 줄줄이 먼저 응접실을 빠져나갔다.

‘좀 아쉽긴 하지만, 이제야 좀 조용하군.’

나는 남은 차를 쭉 들이켜며 생각했다.

‘자, 그럼…….’

나는 슬슬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으로 맞은편에 곱게 앉은 노마를 보았다.

“가주님.”

이만 일어나겠다고 말하려고 하는데 노마가 조금 더 빨랐다. 가주님, 하고 부른 그가 불시에 내 쪽으로 상체를 숙였다.

그가 귓속말을 하는 것처럼 가까이 다가왔다.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이사 님.”

이번엔 다른 사람에겐 들리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은 목소리였다. 귓바퀴에 입술이 닿을 듯, 가까워진 탓에 본능적으로 흠칫했다.

“제게 묻고 싶은 게 있다면 물으셔도 됩니다.”

“…….”

“저는 당신 편이 되려고 왔으니까요.”

나는 잠시, 내 얼굴이 비칠 정도로 가까이 다가온 그의 금안을 멍하니 바라봤다.

‘오필리아를, 말하는 거군.’

노마는 아마도 내가 모르는 스물다섯의 오필리아를 만났을 것이다.

‘내가 묻고 싶을 거라고 생각했나. 그래,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라면 당신을 떠봤을지도 모르지.’

나는 곧 비틀린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없습니다.”

그리고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오필리아와 밤>을 안다.

“나는, 맥포이 가주는 모르는 게 없거든.”

그렇게 뱉은 직후 입꼬리가 조금 무너진 기분이 들었다.

내 대답에 그가 멍하니 나를 바라봤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내 경우 그의 따스한 금안을 피할 생각을 못 한 것에 가까웠다.

서로 눈을 피하지 않고 잠시간 그러고 있을 때였다.

노마가 홀린 듯이 손을 뻗었다. 어쩐지 나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이 슬퍼 보여서 나는 눈을 피할 생각도, 몸을 물릴 생각도 못 했다.

그의 손이 내 뺨을 향해 다가왔다. 여전히 길쭉하고 예쁜 손이었다. 단정한 손가락, 동그란 손톱. 손끝이 분홍빛을 띠는 것까지 어쩜 하나같이 노마 디아시 같았다.

“당신이 슬픈 게 싫습니다.”

노마가 또다시 나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순간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건 당신이면서, 슬프다니. 내가 슬퍼 보이나?

그럴 리가. 나는 내가 가장 미워하는 애를 생각하고 있는데.

“…….”

강렬한 순간이었으나, 주변엔 사람이 있었다.

‘엄마야.’

갑작스러운 노마 디아시의 행동과 그걸 또 받아 주는 가주님. 그리고 이 모든 걸 지켜보던 사용인들은 두 번째로 뒤집어졌다.

모두 당황해서 말릴 생각도 못 했다. 아니, 말릴 새도 없었다. 아까는 설마 했지만 이젠 모두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노마 디아시는 장르를 개척하고 있었다.

‘노마 디아시가 작정하고 우리 가주님을 꼬시고 있다.’

에리카가 드물게 허, 하고 입을 벌렸다.

그리고 결국 발끈한 사람이 있었으니, 충심이 지나친 도그만 경이었다. 다행이라면 검은 뽑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노마는 디아시의 장자이기 때문에 만일 검을 뽑았으면 전쟁이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글렌이 말까지 더듬으며 벌건 얼굴로 소리쳤다.

“……무슨, 무슨! 디아시 경은 물러서시오! 감히 누구에게 손을!”

분노 섞인 글렌의 고함에 나는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제야 우리가 지나치게 가까웠다는 것을 깨닫고 몸을 물렸다. 뒤늦게 가슴이 미친 듯이 뛰고 있음을 느꼈다.

‘이런 미친, 완전히 상황이 역전이군. 카탐에서 시도 때도 없이 불안해하던 노마 디아시가 이젠 나를 달래 주다니.’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세차게 뛰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니, 그런데 왜 굳이 귓속말로 하고 난리야.’

괜히 욱하는 마음에 노마를 째려봤는데 그는 어느새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집요하게 나를 볼 땐 언제고, 노마는 뜬금없이 문 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누구지.”

노마가 작게 중얼거렸다. 노마의 중얼거림이 끝나기 무섭게 멀리서부터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익숙한 패턴에 내 미간이 와작 구겨졌다. 곧 쿵쿵대는 발소리와 ‘안 됩니다! 멈추십, 끅! 힉!’ 하는 소리가 가까워졌다.

그리고 마침내.

쾅―.

‘아, 데자뷔…….’

“디아시가 여기서 뭐 하는 짓거리지?”

그러는 넌 네 집도 아닌데 왜 왔니.

나는 이마를 싸맸다. 간만에 보는 가노였다.

멋대로 가주가 있는 방문을 열어젖힌 걸로 모자라 무장 해제도 하지 않은 그의 모습을 보고, 나는 진지하게 기강을 다시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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