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갑자기 왜 이야기가 그렇게 된단 말인가? 나는 몹시 당황한 나머지 다급하게 외쳤다.
“날 죽여 봤자라고! 오필리아의 남은 성력은 나한테 있어! 그것까지 사라지길 바라는 거야? 내가 죽으면 오필리아의 성력도 사라져!”
물론 거짓말이다. 내가 죽으면 오필리아의 성력은 멀쩡히 살아 있는 원래 주인에게 아주 잘 돌아갈 것이다.
“아니. 네가 죽으면, 아이사. 네가 죽으면 오필리아가 돌아올 거야. 나는 알 수 있어. ‘나의 신’이 그렇게 말하고 있어.”
그러나 이번엔 거짓말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닉스가 허공을 가리키며 말했다. 점점 올라가는 입꼬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닉스가 부리는 삿된 힘에 그런 능력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당장 날 죽이기로 결정한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안 돼.’
닉스를 마주하고 맥이 풀렸는지 아까부터 도통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끈 떨어진 인형처럼 팔다리를 움직일 수 없었다.
오필리아의 성력을 사용하고 싶어도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초조함에 쫓기자 성력은 흐름을 찾기 무섭게 흩어졌다. 마치 물에 젖은 성냥에 불을 붙이는 느낌이었다.
‘안 돼. 안 돼. 안 돼.’
“아이사, 죽어. 네가 죽으면 내 오필리아가 돌아올 거야. 나는 알 수 있단다. 너도 오필리아 좋아하잖아.”
닉스가 히죽히죽 웃으며 몸을 완전히 일으켰다.
“꺼져! 이 징그러운 새끼가!”
나는 비명처럼 욕지기를 질렀다. 와중에 오필리아의 성력을 사용하기 위해 애를 썼지만 성력은 배 속에서 맥없이 흩어지길 반복했다.
“소용없어. 역시 넌 가짜야. 넌 오필리아의 힘을 반도 못 담고 있어. 그 아까운 걸 줄줄이 흘리고 있어. 심지어 네 목숨을 유지하느라 그것조차 제대로 못 쓰고 있다고.”
잔뜩 확장된 닉스의 동공이 나를 낱낱이 꿰뚫었다. 역시 나는 오필리아의 성력을 반도 못 쓰고 있던 모양이다.
“네 것이 아니라 마음껏 다루지도 못하지. 이 도둑년!”
닉스가 약에 취한 사람처럼 비틀대며 한 걸음씩 다가오기 시작했다.
“오필리아의 성력은, 그녀의 힘은! 그렇게 쓰는 게 아니야.”
“나는……, 나는…… 죽기 싫어.”
“너 따위가 가지고 있을 게 아니야.”
“……내가 왜 죽어야 돼? 너나 뒈져 버려! 너 새끼 때문에 이렇게 된 걸, 왜 나한테 지랄이야! 싫어! 난 살 거야!”
나는 마지막 발악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댔다. 순식간에 얼굴에 피가 몰렸다.
“아아악! 오지 마, 꺼져! 나는 죽기 싫다고! 내가 왜 죽어야 해!”
내가 졸도할 것처럼 소리를 지르든 말든 닉스는 아랑곳 않고 손을 들어 올렸다. 그 뒤로 수십 개의 검은 손들이 일제히 솟아났다.
‘싫어.’
그날과 같았다.
‘죽기 싫어.’
“죽어, 아이사.”
“나는 죽기 싫다고!”
나를 향해 뻗어지는 검은 손들을 더 이상 볼 수가 없어서 고개를 돌려 버렸다.
도대체 왜 나한텐 이런 일만 일어나지? 이딴 건 다 꿈이었으면 했다. 이제 그만 깨고 싶었다. 누가 나를 좀 깨워 주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눈을 질끈 감았는데, 커다란 무언가가 내 얼굴 한쪽을 부드럽게 감쌌다.
따듯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눈을 떴다. 곧장 샛노란 눈동자와 마주쳤다. 아니, 샛노랗기보단 번쩍이는 금 같았다.
나는 순간 그 눈동자에 사로잡혔다. 금괴도 저것보다 더 황금 같지 않을 것 같았다.
머지않아 나는 홀린 듯이 입을 열었다.
“……노마.”
투둑―.
동시에 맑은 물방울들이 노마의 얼굴 위로 떨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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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 노마. 죽어 줘. 제발 죽어 주라.”
이고가 절박한 목소리로 제발 죽어 달라고 청했다.
이고는 온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그러면서 제 가슴에 겨우 차는 소년을 억세게 붙들고 있었다.
‘니콜라스.’
이고에게 붙들린 니콜라스가 보였다. 그 흰 목에 칼날이 들어가 있었다.
창백하게 질린 니콜라스의 목에선 이미 피가 줄줄 배어났다. 어린 니콜라스는 공포에 질려 있었다.
노마에게 이고가 형제와 같은 존재인 것과 같이, 니콜라스에게도 이고는 형과 같았다. 그런 사람이 갑작스럽게 제 목에 칼을 들이대고, 저를 인질 삼아 친형제를 죽이려 드니 혼란스러울 것이다.
‘내가 모자란 탓에 니콜라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겠구나.’
이고는 노마에게 거대한 술식 가운데에 서라고 종용했다. 음습한 기운을 뿜는 술식은 처음 보는 형태였지만 금지된 이교도의 언어로 쓰여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성기사인 노마는 그게 대신전 깊숙한 곳에 봉인된 저주들 중 하나라는 걸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기꺼이 그 가운데로 이동하면서 노마는 니콜라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사술이 빼곡히 적힌 원 한가운데에서 노마는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이 광경이 도무지 믿기지가 않아서였다. 눈을 깜빡인다고 이 모든 상황이 꿈이 되진 않았다.
이고와 자신은 형제와 다름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피를 나누진 않았지만 그는 제게 가족이었다.
그 특별함은 나만의 것이었나? 이제 와 노마는 알 수 없었다.
이고 주변으로 저주의 자취가 짙게 퍼져 있었다. 누군가 그 안의 증오를 부추겨 만든 결과가 이것이었다.
“너의 존재가 나를 언제나 비참하게 해. 나는 단 한 번도 너를 친우로, 가족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노마, 나는 매일 네가 죽는 상상을 해 왔어.”
노마는 이고가 제게 저런 뿌리 깊은 살의를 품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창피한 일이었으며 무심한 일이었다. 이고의 분노, 그의 배신이 모두 제 불찰이라는 생각에 죄책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화가 나기도 슬프기도 했다. 동시에 음습하고 끈적한 살의와 마주하자, 부끄럽게도 노마는 큰 충격을 받았다.
노마의 인생엔 굴곡이란 것이 없었다. 날 때부터 모든 걸 쥐고 태어난 남자, 그것이 노마 디아시였다.
그는 혈통부터 남달랐다. 그는 디아시 가문의 장남으로 태어나 가문을 이을 후계자였다. 디아시는 개국 공신을 대표하는 가문으로 대귀족의 역사 자체였다.
이제는 황가조차 잊은 아주 오래된 제국 예법을 지키고 있는 것도 디아시였다. 제아무리 황가라도 디아시 가문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디아시는 신전과 가장 밀접한 가문으로 대대로 그 직계는 강한 성력을 타고났다. 가장 밀접하다 함은 디아시의 초대 가주 덕분이었다.
디아시 초대 가주는 이 땅의 신의 연인이었다는 전설을 가졌다. 이를 증명하려는 듯이 디아시 직계는 언제나 강한 성력을 타고났다.
여기에 신의 연인이었다는 디아시의 초대 가주는 대륙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전해졌다. 그의 자손답게 디아시의 직계는 하나같이 개안할 아름다움을 가지고 태어났다.
또한 제국의 500년 역사 동안 디아시 영지민들은 단 한 번도 굶주린 적이 없었다. 디아시는 대륙 최대 규모의 소금 광산을 가졌으며 사치품의 생산지이기 때문이다. 그 부로 인해 그들은 독립적인 힘을 유지할 수 있었다.
타고난 성력과 외모, 그리고 완벽한 혈통의 가문.
모든 축복이 태어나면서 주어졌다고 할 수 있었다.
여기에 온화한 인품까지 받쳐 주니, 노마 디아시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제게 호감을 표하는 사람밖에 만나 보지 못했다.
뒤에선 질투하는 말을 하더라도 노마 앞에서 감히 함부로 입을 놀리거나 실수를 하는 천치는 이 제국에 없었다. 그래서 부끄럽게도 노마는 자신을 향한 누군가의 노골적인 살의에 면역이 없었다.
완벽한 인간이라고 불리는 노마 디아시는 오히려 그 때문에 평범한 인간관계를 경험하기 어려웠다. 그런 그에게 이고는 자신을 평범하게 대해 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여겼던 이고의 배신은 노마에게 충격이고 뼈아픈 슬픔이었다.
“노마 디아시. 나는 널 처음 본 순간부터 증오했다.”
노마는 자신이 타인을 곧이곧대로 믿는, 그런 순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형제와 같은 친구의 배신에 단숨에 세상 물정 모르는 천치가 된 기분이었다.
“디아시의 노마, 조에는 영혼까지 잘게 조각나 죽을 것이다.”
이고가 노마를 저주했다.
제국민이라면 고아할 것 없이 ‘마지막 이름’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 이름이란, 신이 내린 이름으로 부모와 가까운 혈연관계에게만 허락되는 것이었다. 노마의 마지막 이름은 ‘조에’였다.
저주는 대상자의 완전한 이름을 통해 시전되었다. 오래된 저주를 부리기 위해선 신에게 받은 그 ‘마지막 이름’을 알아야 했다.
노마는 이고에게 이미 오래전에 마지막 이름을 허락했다. 그를 진심으로 가족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죽어, 노마.”
그게 이고의 마지막 말이었다.
일순 검은 안개에 갇힌 것처럼 모든 것이 검게 흐려지기 시작했다. 뿌리 깊은 증오 앞에서 노마는 천천히 눈꺼풀을 내렸다.
“노마!”
완전히 눈을 감기 전, 노마는 니콜라스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다시 눈을 뜨려 했다. 동시에 검은 안개를 뚫고 시리도록 하얀 섬광이 번쩍였다.
이번엔 시야가 하얗게 흐려지기 시작했다. 곧 어마어마한 성력이 노마에게 쏟아졌다. 노마는 그 성력으로 니콜라스가 각성했음을 알 수 있었다.
노마의 영혼이 잘게 부서져 흩어지기 직전에 니콜라스의 성력이 제 형의 영혼을 붙잡았다. 그러나 노마의 영혼이 저주로 인해 부서지기 시작한 것이 먼저였다.
노마는 그렇게 오랜 잠에 빠졌다. 그의 육체는 전리품으로써 닉스에게 도난당했다.
가루가 된 노마의 영혼은 그 이후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붙기 시작했다. 잘게 쪼개져 흩어졌던 영혼이 마침내 다시 하나로 이어졌을 때, 노마는 드문드문 어떤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온통 새카만 공간에서 부유하는 감각을 느꼈다. 제 몸의 무게나 그 외의 것들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다만 들렸다.
“죽어, 노마.”
“제발 죽어 줘. 너만 없으면!”
이고의 저주가 반복됐다.
노마의 영혼은 이고가 저주를 걸었던 순간에 갇혔다. 니콜라스의 의도는 아니었지만 노마에겐 죽음과 다름없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어쩌면 영혼이 가루였을 때가 더 나았을지도 몰랐다.
죽어 줘, 죽어 줘, 죽어 줘.
죽어, 죽어, 죽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이고의 저주 소리만이 끊임없이 되풀이되었다. 그것은 세뇌와 같아서, 노마는 자신이 죽어야만 하는 존재라는 확신에 이르렀다. 그것은 노마를 더 깊은 수렁으로, 더 깊은 잠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또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노마는, 아주 오랜만에 자신의 무게를 느꼈다.
‘아.’
노마는 작게 감탄했다.
“……봐요, 디아시 경. 디아시 경?”
신경질적인 말투.
누군가 아주 멀리서 자신을 부르는 것 같았다.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당신은, 누구지?’
노마는 저를 부르는 사람이 누구인지 보고 싶었다. 그러나 좀처럼 눈을 뜰 수 없었다.
“죽어, 노마.”
깨어나지 말고 계속 잠이나 자라는 듯이 이고의 저주가 따라붙었다. 노마는 빠르게 깨어날 의지를 잃었다. 다시 깊은 잠에 빠지려는 때였다.
“죽어―.”
“나는 죽기 싫다고!”
귀에 대고 소리치는 것처럼 커다란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눈이 번쩍 뜨이는 기분이었다.
‘이 목소리를 언제 들어 봤더라.’
노마는 꿈결처럼 흩어지는 기억들을 헤맸다.
‘아, 아까 나를 부르던 목소리가 아닌가.’
죽기 싫다고?
죽지 않는 것이, 그게 가능한가?
죽지 않아도 되는가?
……나는 죽기 싫은가?
노마는 알 수 없었다. 그게 못내 괴로웠다. 자신은 이미 모든 걸 망쳐 버린 적이 있는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그러니 저 목소리의 주인에게 묻고 싶었다.
마침내 노마는,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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