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9화 (138/199)

139화

인간형 몬스터인가 하며 눈을 씻고 다시 살폈지만, 암만 봐도 사람이다. 이환은 잠시 스스로의 인지능력을 의심했다.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아닌 사람이 튀어나올 줄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에스퍼 길드 창성의 대표이자, 한국이 보유한 세 명의 S급 에스퍼 중 하나인 그의 인지능력은 지극히 정상이었다.

다만 너무도 뜻밖의 상황이라. 이환은 멍청히 중얼거려야 했다.

“……이게 대체?”

황망해 하는 이환의 시야 안으로 목 놓아 울음을 터뜨리는 지안의 모습이 들어왔다. 요상한 복장을 하고 있지만, 자신의 기억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저건 분명 협회의 계륵, 반푼이 가이드 여지안이 분명했다.

여지안이 처음 가이드로 각성했을 당시부터 서로 안면이 있는 만큼 제가 얼굴을 착각했을 리 없다. 하지만…….

‘뉴스에선 분명 게이트에 휘말려 죽었다고 했는데?’

이환은 눈살을 찌푸리며 몇 달 전 보았던 기사를 떠올렸다. 매칭률이 맞는 가이드를 찾지 못해 한참 가이드들의 동향에 민감했던 때라, 비교적 선명히 기사의 내용이 기억났다.

돌발성 게이트가 불시에 발생해 가이드 하나가 희생되었다는 짤막한 기사. 그리고 그 기사 아래에 첨부되어 있던 가이드의 얼굴. 자신이 잘못 기억하고 있을 리 없었다.

그렇다면 이건, 운 좋게 게이트에서 빠져나오는 통로를 찾아낸 건가? 설마 그럴 리가….

‘에스퍼도 살아남기 힘든 게이트에서 힘없는 가이드가 여태 생존했다고?’

보고도 믿기 힘들었다. 그야 게이트 안에선 워낙 기상천외한 일이 자주 생기니. 정말 천운이 따라서 살아나온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극악의 확률이었다.

뉴스를 본 시점에서부터 지금까지 거의 몇 달이란 시간이 지났다. 게이트에 빨려 들어간 게 에스퍼라면 모를까, 일반인이나 다름없는 가이드가 여태껏 생존할 수 있는 기간은 절대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허공에서 일렁이던 게이트가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이환은 궁금증을 뒤로 한 채 게이트 대응팀에 연락했다.

“석전동 게이트. 처리 완료.”

간략히 상황을 전달한 이환은 게이트 부서 담당자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지안에게 다가갔다.

“여지안. 맞나?”

거의 100% 확신한 물음이었으나 정작 여지안은 대꾸는커녕 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오열하는 꼴을 보아하니 불러봤자 소용없을 게 분명했다. 게다가 조막만 한 가이드의 옆에 꼭 붙어서 경계의 눈빛을 보내오는 놈들까지…… 가관이 따로 없었다.

분명 기사에선 가이드의 죽음만 알렸지, 함께 게이트에 휘말린 에스퍼가 있다곤 안 했는데? 이환은 의문을 뒤로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가장 중요한 게이트도 없어졌겠다, 슬슬 상황을 정리하고 싶었다.

“이봐. 귀 따갑게 그만 울고, 어떻게 게이트에서 나왔는지 설명해.”

부러 신경을 끌기 위해 냉기를 뿜어내자, 이에 대항하듯 화르륵 불꽃이 타올랐다. 매개체 없이 바닥에서부터 솟구쳐 오른 화염의 벽에 이환은 날카로운 눈으로 이를 실행한 자를 포착했다.

여지안과 함께 게이트에서 나온 걸 보아 함께 휩쓸린 에스퍼리라 짐작은 했지만…… 자신의 냉기를 일거에 없애 버릴 정도의 실력자라니?

기실 이환은 지안의 옆에 붙어 선 에스퍼들이 별 볼 일 없는 놈들일 거라 반쯤 확신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S급 에스퍼인 자신이 모르는 얼굴이라면 높은 확률로 등급 낮은 잔챙이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에게 대항해온 에스퍼는 중국의 화염 에스퍼인 관홍 못지않은 이능력자였다.

“무슨 짓이냐.”

위협적인 목소리에 이환은 대답 대신 까무러치도록 우는 지안을 흘긋 바라보며 작게 욕설을 내뱉었다.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그렇지, 바로 옆에서 에스퍼들 사이에 시비가 붙고 있는데 그게 보이지도 않나? 혀를 찬 그는 두 손을 들어 보이며 성가신 얼굴로 말했다.

“에스퍼 길드 창성의 대표. 이환이다. 싸울 생각은 없으니 능력 좀 갈무리하지. 주거 밀집 구역에서 난동 피울 게 아니라면 말이야.”

말이 끝나기 무섭게, 때맞춰 협회의 직원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이환은 그제야 다소 밝아진 표정으로 달려온 협회 출장 요원을 반겼다.

“여깁니다.”

“이환 씨! 게이트 처리 완료라고만 말하면 어떡해요! 상황 보고도 해 주셔야죠!”

“특이사항 있으면 진작 말했습니다. 게이트 사라졌고, 보시다시피 상황 보고할 것 없습니다. 보도블록 하나 파괴된 거 없이 멀쩡한 거 안 보입니까?”

“어? 어어? 정말로 아무것도……. 그런데 저 사람들은 뭡니까? 일반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각성자라고 보기에도 좀…… 이상한데?”

정확히 이환이 바란 질문이었다.

“게이트에 휩쓸렸다가 빠져나온 생존자입니다. 그중에 가운데는, 왜 일전에 협회의 S급 가이드가 게이트에 휩쓸려 사망했다고 뉴스 떴던 거 기억하십니까?”

“네? 설마….”

“가이드 여지안 맞습니다. 의심스러우면 가서 지문 확인해 보세요. 게이트에서 천운으로 살아나온 모양인데, 협회 구급차도 좀 호출하시고, 가이드 연구소장한테 연락 넣는 게 좋겠습니다. 아, 그리고 옆의 사람들은 함께 휩쓸린 에스퍼인 것 같은데……. 금발 머리 이능은 화염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모르겠고요. 혹시 모르니 미등록 에스퍼인지 확인하십시오.”

“네? 아니…….”

“여기서 제가 뭘 더 할 건 없는 것 같군요. 뒷정리 부탁드립니다.”

귀찮은 상황을 협회 직원에게 죄다 떠넘겨 버린 이환은 그 길로 곧장 뒤돌아섰다. 예상보다 빨리 상황이 종료되었으니 잠깐 짬이 난 김에 채경을 만나러 갈 생각이었다. 놀랄 얼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절로 기분이 좋아져, 그는 걸음을 서둘렀다.

* * *

지안은 멍한 얼굴로 눈을 떴다. 가장 먼저 보인 건 익숙한 천장이었고, 다음으로 보인 건 팔에 꽂힌 링거였다.

‘내가… 정신을 잃었나?’

탈진이라도 한 것처럼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한데……. 아. 그래. 황녀 전하가 나를 게이트 안으로 떠밀었지. 그래서 마지막 순간에 각인을 하려 했는데, 성공을 확신하기도 전에 게이트에 빨려들어 가고 말았다.

생각하니 다시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눈물샘이 말랐는지 더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수분을 다 써 버린 눈가가 버석했다. 애꿎은 눈두덩이만 파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지안은 느릿하게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살폈다. 소독약 냄새와 익숙한 인테리어를 보니 아무래도 각성자 협회 부속 병원에 딸린 병실인 모양이었다. 공작님과 삼황자 전하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반쯤 혼이 달아난 것 같은 얼굴로 멍하니 병실의 이쪽저쪽을 살핀 지안은 다음 순간 몸을 더듬으며 차림새를 점검했다. 다행히 옆구리에 황녀 전하가 준 전대가 그대로 매여 있었다. 환자복으로 갈아입혀지지 않았다.

안도감이 들며 점차 점차 정신이 명료해졌다. 지안은 하얀 천장으로 다시 시선을 돌리며 활짝 웃음 짓던 이비엔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제야 그토록 서글프게 울리던 파장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알겠다.

무엇도 내색하지 않은 채 홀로 슬픔을 층층이 쌓아 올리며 지어 보였을 미소를 떠올리자 주룩― 눈물이 흘렀다. 게이트 안으로 자신을 떠밀어 넣던 황녀 전하의 얼굴이, 고통에 헐떡이면서도 끝내 웃던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가지 않았다.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잖아.’

전하의 말대로 돌아왔다. 나의 고향으로. 지구로.

그런데, 전하가 없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지안은 이비엔의 부재를 아프게 상기하며 한참을 울었다. 그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일어나, 링거대를 잡고 비틀비틀 병실 밖으로 나섰다.

* * *

악시온과 일리아스는 지안의 바로 옆 방에서 신원 확인에 응하고 있었다. 하지만 신원이 파악될 리도, 제대로 대화가 이어질 리도 없었다. 분명 말이 통하는데도, 서로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의료진까지 동원하며 설득에 설득을 거쳐 지안에게서 두 사람을 떼어 낸 연구소장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이들의 정체를 유추하기 바빴다.

생김새를 봐선 영국인이나 러시아인 같은데, 여권도 없고 하다못해 국제 운전면허증도 없다. 난감해하며 국적을 물으니 영 엉뚱한 대답이 튀어나온다. 그가 알기로 테리온이란 나라는 세상천지 어디에도 없었다.

‘자꾸 엉뚱한 소리만 하는데…… 역시 미등록 빌런인가?’

하지만 각성자 등록을 하지 않은 채 음지에서 활동하는 에스퍼가 제 발로 협회에 올 리 없다. 에스퍼 데이터베이스에 지문등록이 안 된 걸로 봐선 분명 미등록 에스퍼가 맞긴 맞는데….

머리를 벅벅 긁으며 난감해하던 도중, 때맞춰 노크 소리가 울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건 병원 내 간호사였다.

“여기, 부탁하신 측정기입니다.”

“아. 감사합니다.”

용건을 마친 간호사가 사라지자, 연구소장은 웃는 얼굴을 지워내며 깊은 한숨과 함께 뒤돌아섰다. 그래. 우선은 등급이나 먼저 확인하자.

“자꾸 협조를 안 해 주시니… 후우. 신원은 됐고, 검사부터 합시다. 여기, 손잡이 부분 보이시죠? 양 주먹으로 5분간 쥐고 있으면 됩니다. 일어나실 필요 없고, 잡고만 있으세요. 잡고만.”

그 지시에 일리아스는 못마땅한 티를 감추며 등급 측정에 응했다. 감정을 드러내지만 않았을 뿐, 악시온 역시 비슷한 언짢음을 느꼈다.

대화가 자꾸 겉돈다는 건 그들도 알고 있었다. 의도적으로 최소한의 정보만 밝힌 채 신분을 감췄기 때문이었다. 지안이 미리 언질해 둔 것도 있거니와, 차원을 건너왔단 말을 함부로 할 순 없었다.

게다가 미지의 세계가 주는 위화감에 더해 지안의 세계에 대해 몹시 무지하단 사실이 그들을 섣불리 움직일 수 없게 했다.

지안의 세계는 막연히 상상했던 모습과 완전히 달랐다. 하늘을 향해 솟은 수십의 건물과 소름 끼칠 만큼 말끔히 정비된 도로. 말로만 전해 들었던, 말 없이 달리는 마차들이 뿜어내는 빛줄기. 고향을 언급하던 지안의 말을 몇 차례 들었음에도 이해할 수 없는 것들투성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기계는 성실하게 제 할 일을 했다.

삑― 소리와 함께 작은 디스플레이 화면에 결과가 측정되자 연구소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기계를 초기화시켰다.

“아니… 왜 S급이 뜨지? 고장 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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