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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11/199)

11화

성안의 모든 사람들에게 공작이 어디 있느냐 묻고 다녔지만, 억지와 고집을 부려 공작의 개인 집무실과 침실까지 방문했지만 악시온은 어디에도 없었다. 기사며 시종들의 말을 들어보면 분명 성안에 있는 건 확실한데 나타나질 않는다.

자신을 피해 다니는 게 분명했다. 멈췄다 재빠르게 이동하길 반복하는 악시온의 파장이 이를 증명했다. 대화를 피하려는 의도가 뻔하다 못해 노골적이었다. 역시 어젯밤에 억지로라도 대답을 들었어야 했는데! 분통이 터지다 못해 이가 갈렸다.

파장이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길 대체 몇 번이나 반복했는가! 대화를 하려고 하는 것뿐인데 왜 술래잡기를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공작을 찾아 성안을 뒤집느라 발도 아프고, 체력도 이미 바닥이었다.

할 수 없지. 내키지 않지만 이렇게 되면 남은 수단은 가이딩뿐이다.

매칭률이 나오는 에스퍼를 못 찾아서 그렇지, 지안은 무려 S급 가이드였다. 가이딩 차단, 방사 가이딩 등등 다른 가이드들은 시도하지 못하는 고급 가이딩 기술이 지안에겐 숨 쉬듯 쉬웠다.

공작의 위치는 알고 있었다. 파장의 진원지가 바로 그가 있는 장소다. 계속 도망친다면 공기 중에 기운을 뿌리는 방사 가이딩으로 붙잡아놓고 찾아가면 그만이다. 아니면 낚아오든지.

곧바로 기운을 마구 풀어낸 지안은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악시온의 파장이 가이딩으로 우뚝 굳어버린 것을 확인하고서 기운을 바로 차단했다. 어젯밤 목격한 바에 따르면 공작에겐 분명 가이딩이 필요했다. 불시에 가이딩을 받다가 갑자기 멈춰버리면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제 발로 찾아올 것이다.

과연 지안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몇 번 방사 가이딩을 반복하고 멈추자 멀찍이 떨어져 있던 공작의 파장이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간식으로 개를 유인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란 것만 제외하면 몹시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어느새 그의 파장은 바로 앞, 모퉁이가 꺾어진 복도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유인이 끝났으니 더는 가이딩 차단과 개방을 반복할 이유가 없다. 저 모퉁이만 돌면 그가 있을 테니까. 지안은 방사 가이딩을 유지하며 걸음을 옮겼다.

복도의 모퉁이를 돌아서니 망설이는 얼굴로 주저하는 공작이 보였다. 분명 인기척이 났을 텐데, 가이딩에 푹 빠져서 자신이 모습을 드러낸 것조차 모르는 기색이었다. 지안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악시온의 손목을 잡았다.

“헉!”

그가 놀라 손을 뿌리치려 하자 지안은 기습적으로 가이딩 강도를 높였다. 악시온이 이대로 도망쳐 버리면 같은 방법으로 그를 유인하는 게 더 이상 통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압박하듯 기운을 불어넣자. 공작이 쿵 소리를 내며 주저앉았다.

지안은 빙긋 웃으며 악시온을 노려보았다. 본의 아니게 공작을 주저앉혀 버리긴 했지만, 포획 성공이다.

“자. 우리 이제 대화를 좀 해 볼까요?”

북부의 공작을 한 손으로 가지고 노는 지안의 모습에 헤롤드는 잠시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내내 지안의 호위로 붙어 다녔기 때문에 공작님이 지안을 피해서 도망치고 있다는 건 그도 알고 있었다. 이유가 뭔지는 모르지만, 공작께서 그러기로 마음먹었다면 지안에게 붙잡을 방법이 없다는 것도 알았다.

분명 그럴 텐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멀쩡히 서 있다가 다리에 힘 풀린 사람마냥 비틀비틀 주저앉다니……. 설마 일부러 잡혀 주신 건가? 아니, 왜? 헤롤드는 영문을 모르는 얼굴로 지안과 악시온을 번갈아 보았다.

* * *

지안은 눈앞의 공작을 노려보느라 집사가 직접 차를 내왔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악시온 역시 지안과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추궁의 시간이 결국 도래한 것이다.

잔뜩 주눅 든 악시온의 모습에 지안은 말없이 찻물을 삼켰다. 막상 공작을 찾아서 대면하고 있긴 한데, 서두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게이트를 통한 차원 이동이라니……. 솔직히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게이트 사태 이후 다차원 연구가 활발해졌다는 것 정도는 뉴스를 통해 알았지만, 그건 연구원들이나 관심 가질 이야기였다. 가이드인 지안은 게이트와 차원 간의 상관관계에 대해 아무 관심도 없고 아는 것도 없었다.

북부 공작성의 생활상을 직접 겪어보지 못했다면 이곳이 다른 세상이란 것도 절대 믿지 않았을 것이다. 눈앞에 에스퍼가 버젓이 존재하는데 가이드가 없단 것도 그렇다. 지안의 상식으론 이해가 되지 않는 일투성이였다.

그러나 이미 일은 벌어진 뒤다. 눈앞의 에스퍼를 탓해봤자 아무 소용 없다는 건 지안도 알았다. 뭣보다 그는 북부의 공작이 아닌가. 괜히 자극해서 좋을 것 없었다. 무엇보다 자신은 그를 구슬려야 하는 입장이었다.

여태 괜찮은 대접을 받긴 했지만, 만일 자신이 가이드가 아니었다면? 그냥 일반인이었대도 이런 대접을 받을 수 있었을까? 생각할수록 회의적이었다. 지안은 악시온을 자극하지 않으려 애쓰며 말문을 열었다.

“어젯밤의 대화, 마저 이어서 하죠. 우선, 가이드가 없다는 말이 뭔지부터 알고 싶어요.”

“……말 그대로다.”

“말 그대로라니……. 그런 애매모호한 말 말고 정확한 사실을 말해요. 일단, 일전에 몬스터를 단칼에 썰어버리는 걸 보니 당신은 능력이 육체강화 계통인 것 같던데. 맞나요?”

“그렇다. 주 무기는 검이고……. 보통 사람들보다 근력이 더 강한 건 사실이다.”

“육체강화계가 맞군. 다른 특성을 지닌 에스퍼들도 있나요?”

“이능력자를 말하는 거라면, 마법사들이 있다.”

“마법사?”

“불이나 얼음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자들이다. 보통은 마법 술식을 이용해 마법을 사용하지만…… 능력자들은 마법 술식의 도움 없이도 마법과 비슷한 술수를 쓸 수 있다.”

그 말은, 속성계통 각성자다 이건가? 여기까진 지안도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당신 외에도 에스퍼가 존재하긴 한다는 거군요. 그런데 왜 가이드는 없죠? 에스퍼가 있다면 가이드도 있는 게 상식인데.”

“이곳에도 가이드가 있었다면, 진작 그 존재가 알려졌겠지. 이곳엔 당신과 같은 가이드가 없다. 애초에 당신이 일컫는 ‘에스퍼’ 또한…… 소수에 불과하다. 내가 알기로 당신은 이곳 위스로데 대륙의 유일한 가이드다.”

유일한 가이드라니. 정말 끔찍한 소리다. 지안은 가볍게 진저리치며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말아요. 가이드가 대륙 어딘가에 있는데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잖아요. 내가 가이드인 걸 알아차렸고, 가이딩이 뭔지 아는 걸 보면 분명 여기에도 가이드가 나온 적 있는 거예요. 그렇죠?”

“나도 그랬으면 좋겠군. 하지만 그간 대륙에 모습을 드러낸 가이드는 모두 차원을 넘어 나타났다.”

“저와 같은 가이드가 있었다고요? 어디 있죠? 어디서 만날 수 있나요?”

“모두 죽었다.”

“……뭐라고요?”

“처음으로 가이드가 등장한 건 지금으로부터 수백 년 전의 일이다. 당신과 같은 검은 머리에 검은 눈을 지닌 여자였고, 북부의 얼음산 정상에 홀연히 나타났다고 한다.”

“그 사람은 어떻게 됐죠? 본래 살던 곳으로 돌아갔나요?”

다급히 묻는 지안을 외면하며 악시온이 답했다.

“모른다.”

그 말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러나 그의 파장은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거짓말 말아요!”

버럭 외치는 지안의 모습에 악시온은 당황했다. 거짓말인 걸 어떻게 알았지? 잡아떼야 하나?

그래. 잡아떼야 한다! 북부에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가이드가 본래 세상으로 되돌아갔다는 걸 알면, 그녀도 자신이 살던 곳으로 돌아가려 할 것이다. 그리고 영영 나타나지 않겠지.

다른 대안이 없을까 열심히 고민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진실을 은폐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지안이 사라질 거란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거짓말에 재능이 없단 걸 스스로도 알고 있고, 거짓말을 한들 바로 들통나 버리겠지만, 이 수밖에 없다.

“내가 아는 건 이것뿐이다. 그녀는 북부에서 살다가 죽었다.”

끝까지 오리발을 내미는 악시온의 모습에 지안은 온 힘을 다해 울분을 내리눌렀다. 뻔뻔스럽게 구는 태도에 머리 뚜껑이 열려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섣불리 화낼 순 없다. 그랬다가 대화가 중단되면 손해를 보는 건 자신이었다.

“……내게 진실을 알려줄 생각이 전혀 없군요. 그렇죠? 좋아요. 진실을 말하기 싫다면 굳이 말하길 강요하진 않겠어요.”

부러 나긋하게 말하자 잔뜩 굳어 있던 공작의 안색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더는 캐묻지 않을 거라 여기고 안심한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이쪽 나름대로 사실을 알아낼 방법이 있다. 그의 파장을 읽어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대답하지 않아도 좋으니 그냥 내가 하는 질문을 들어만 줘요. 그럴 순 있죠?”

“……듣겠다.”

공작의 대답에 지안은 빙긋 웃었다. 딱 그녀가 원한 대답 그대로였다.

“처음 북부에 나타났다는 가이드는, 정말 북부에서 죽었나요?”

지안은 부러 질문을 던진 뒤 찻물을 삼켰다. 파장을 읽어낼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

파장의 흔들림으로 감지한 바에 따르면, 북부에 나타난 가이드가 북부에서 죽었다는 건 거짓말이 확실했다. 지안은 다음 질문을 던졌다.

“나는 이야기가 잘못 전달된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그 가이드는 북부에서 죽은 게 아니라, 본래 자신이 살던 곳으로 돌아간 것일 수도 있잖아요. 그렇죠?”

공작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듣겠다는 행위에만 충실하겠다는 듯, 시선은 바닥을 향해 살짝 내리깐 채다.

하지만 시선을 피한들 무슨 소용인가. 거울에 사물이 비치듯 공작의 파장이 선명히 읽혔다. 최초로 북부에 나타났다는 가이드는 지구로 되돌아가는 방법을 알아낸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 남자도 최초의 가이드가 본래 세상으로 돌아갔다는 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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