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1/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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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방금 지나간 사람, 맹탕 가이드 여지안 맞지? 이번에 러시아에서 온 에스퍼와 매칭 검사했다던데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 당연히 매칭률 0% 찍었지 뭐.”

“진짜? 어째 S급 가이드로 각성했는데도 매칭률이 뜨는 사람이 하나도 없냐?”

“그래서 맹탕 가이드잖아. S급이면 뭐해? 매칭률이 죄다 영인데.”

들으란 듯 하는 말에 지안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센터에서 나오는 짧은 시간 동안 저것과 비슷한 말을 수차례는 더 들었다.

이래서 각성자 센터에 오기 싫었는데……. 하지만 센터의 부름에 불응할 순 없다. 어쨌든 자신은 가이드였고, 각성자 협회 소속이었다. 게다가 모처럼 매칭률을 확인해보려 하는 에스퍼가 나타났다. 곧바로 달려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늘 그랬듯 처참했다.

러시아에서 온 각성자 게오르 갈라예프와의 매칭률은 0%였다. S급 가이드면 뭘 하나. 매칭률이 나오는 에스퍼가 하나도 없는데.

맹탕 가이드라고 대놓고 놀림받아도 할 말이 없다. 전부 다 사실이니까.

열다섯, 가이드로 각성한 순간부터 스물을 넘긴 지금까지 수많은 각성자를 만나왔다. 하지만 지안에게 맞는 에스퍼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럼에도 각성자 센터는 지안의 에스퍼를 찾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지안이 국내 유일의 S급 가이드였기 때문이다.

이윽고 국내에 지안과 매칭률이 맞는 각성자를 찾을 수 없자 센터는 미국은 물론이고 영국과 러시아.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에스퍼들을 불러와 매칭률 검사를 했다.

그 결과는 모조리 0%.

심지어 몇몇 에스퍼들은 지안이 가이드라는 사실조차 눈치채질 못했다. 지안과 접촉한 후에도 정말 가이드가 맞냐고 재차 확인할 정도였다.

가이드의 손만 잡아도 숨이 넘어가는 게 에스퍼다. 어떻게든 가이드의 손을 놓고 싶지 않아서 온갖 잔머리를 굴리는 것이 에스퍼라고 하는 족속이란 말이다.

그러나 지안과 손을 잡은 에스퍼들은 오히려 이렇게 되물었다.

“정말 S급 가이드 맞나요?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데?”

러시아에서 방문한 A급 에스퍼 게오르 갈라예프의 말도 이와 비슷했다.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군. 당신, 정말 가이드 맞습니까?”

“가이드 맞아요. 내 목에 걸린 협회 소속 가이드 명찰, 안 보입니까?”

지안이 받아치자 갈라예프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가이드가 아닌 것 같은데?”

이어진 말은 지안이 아닌 연구소장에게 하는 말이었다. 연구소장이 말했다.

“한국 각성자 센터가 러시아에서 온 손님을 상대로 장난을 칠 리 없잖습니까.”

“그렇겠지.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렇게나 아무것도 안 느껴질 수가 있습니까?”

“그건…… 여지안 가이드가 가진 특수성 때문입니다. 아쉽게도 두 분의 매칭률은…….”

“제로군요. 그렇죠?”

확인 사살하는 지안의 말에 러시아의 에스퍼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하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택한 한국행이었는데…… 젠장! 특수성은 무슨! 당장 다른 가이드 데려와요!”

불쾌한 걸 잡은 것 마냥 러시아의 각성자가 지안의 손을 뿌리쳤다.

그 무례한 태도에 뭐라 한마디 할까 고민하던 지안은 그냥 말없이 검사실에서 빠져나갔다. 판정이 났을 때 재깍 그의 손을 놓지 않은 것이 후회스러울 뿐, 불만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그에게 별다른 감정은 없었다.

가이드를 찾아 한국까지 찾아왔다는 건 폭주 위험이 높은 에스퍼란 건데, 그렇다면 성격이 저렇게 더러운 것도 이해가 간다. 가이드 없는 에스퍼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고, 그들의 성격은 대개 파탄 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이딩을 받지 못한 만큼 예민해지는 게 에스퍼란 족속 아닌가.

별수 없다. 마음이 넓은 내가 이해해 줄 수밖에.

지안은 혀를 차며 검사실에서 벗어났다. 연구소장은 그런 지안을 붙잡지 않았다. 벌써 수십 번도 더 이와 비슷한 일이 반복됐기 때문이었다.

지안은 제제 없이 센터에서 빠져나갔다. 그런 자신을 보며 몇몇 가이드들이 수군거리긴 했지만, 러시아 출신 에스퍼의 안하무인격 태도에 비하면 썩 괜찮은 편이다.

게다가 씹을 거리가 되고 동정의 대상이 되면 뭐 어떤가. 내게 아무 피해도 없는데.

센터 소속 가이드에게 주어지는 월급 덕분에 여태껏 돈 많은 백수로 살아왔다. 공무원 철밥통이 남부럽지 않다. 놀림 좀 받는 게 그 대가라면 얼마든지 놀려도 상관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게 돈 많은 백수 아닌가.

하지만 지난 몇 년간 매칭률이 0%가 아닌 에스퍼를 만나지 못한 건 지안에게도 조금 근심 어린 일이었다. 기껏 S급 가이드로 각성했는데 제대로 된 가이딩 한 번 못하고 있지 않은가.

아직까진 S급 가이드란 이유로 두둑한 월급을 받아 챙기고 있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몇 년을 넘게 이러고 있으니 아무래도 눈치가 보였다.

아닌 척 외면해서 그렇지, 센터의 골칫거리가 된 걸 나라고 왜 모르겠는가.

지안은 한숨을 삼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마음이 몹시 번잡했다. 1초라도 빨리 센터에서 멀어지고 싶었다. 오랜만에 각성자 센터에서 자신을 부르기에 이번엔 뭐라도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었지만…… 역시나 헛된 기대였다.

꾸준히 갱신되는 신기록에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에스퍼와 매칭 검사를 하는 족족 0%라니! 세상에 이렇게 쓸모없는 가이드가 있을까! 놀림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 S급 가이드면 뭘 하나? F급 가이드보다 못한데!

“하아, 처참하네…….”

저도 모르게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사실, 지난 몇 년간 수백 번을 반복해 온 매칭 검사 결과는 처참하다는 말로도 모자란 감이 있다. 누구와 매칭률 검사를 하든 죄다 0%를 기록했으니 말이다. 심지어 가이드가 맞는지 재확인하는 검사도 수십 번을 받았다.

검사 결과에 따르면 자신이 S급 가이드인 건 확실했다. 하지만 세상에 이런 S급 가이드가 어디 있단 말인가? 매칭되는 에스퍼가 하나도 없는 가이드라니.

C급 가이드의 평균 매칭률이 30%다. 그보다 윗 등급은 평균 매칭률이 월등히 더 높다. 그러니 S급 가이드라면 이론적으로 에스퍼가 누구든 매칭률이 적어도 50%는 넘어야 했다. 그리고 가이드 효율은 80%를 웃돌아야 정상이다.

하지만 지안은 예외였다. 각성자가 누구든, 어떤 사람이든, 성별 무관하게 매칭 검사 결과는 늘 0%였다. 가이드 효율은 따질 처지조차 못 된다.

이쯤 되니 내가 정말 가이드가 맞긴 한 걸까 하는 의구심이 생길 정도다. 검사 결과지 역시 믿을 수가 없다.

이런 매칭률 검사를 지난 십 년간 수백 번도 더 했다. 하지만 결과는 늘 같았다.

센터의 부름에 응해 매칭 검사를 반복해야 하는 것도, 매번 뻔한 결과를 받아보는 것도, 그때마다 실망과 함께 주변의 놀림을 받는 것도 전부 지긋지긋했다. 다달이 나오는 가이드 월급이 아니었다면 이런 수모를 참아내는 일은 절대 없었을 것이다.

“에이, 됐어. 하다하다 일을 하고 싶다니…… 내가 배가 불렀지.”

익숙한 실망감을 추스르며 지안은 생각했다. 집에 가서 아이스크림이나 퍼먹고 늘어지게 낮잠이나 자야겠다고. 어차피 예상한 결과 아니던가. 서러워해 봤자 자신만 손해였다.

바로 그 순간, 지안의 몸이 쭉 앞으로 당겨졌다. 아니, 빨려 들어갔다.

“어엇……?”

누군가 그런 지안을 보고 소리쳤다.

“게이트야! 누가 신고 좀 해!”

“다들 대피해!”

“저기 사람이 휘말렸어!”

멀리서부터 들리는 고함에 지안은 눈을 부릅떴다. 뭐라도 붙잡으려고 팔을 휘저었지만, 게이트의 압력에 몸이 붕 떠버린 뒤다.

예고 없이 발현되는 게이트는 종종 이상 현상을 일으키곤 했다.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사람이 게이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지안을 끌어당기는 게이트는 후자였다.

그리고 게이트 안에 빨려 들어간 사람들의 생존률은 10% 이하다.

“안 돼! 누가, 나…… 나 좀!”

도와줄 사람을 찾으며 외쳤지만, 대응할 새도 없이 지안은 게이트 입구까지 끌려와 있었다. 허공에 열린 푸른색의 게이트를, 지안은 공포에 사로잡힌 얼굴로 바라봤다.

그게 지안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게이트를 통과하는 순간, 전신을 강타한 충격을 받고 정신을 잃어버린 것이다.

* * *

“으…… 으윽…….”

머리가 띵하고 허리가 욱신거렸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지안은 조심스레 고개를 쳐들었다. 지구의 것과는 확연히 다른 공기와 분위기가 피부에 진득하게 달라붙어 왔다.

지안은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자신처럼 게이트 생성 압력에 휘말린 사람들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뭐야…… 나 혼자 휘말린 거야?”

재수도 없지. 지안은 투덜대다 말고 벌떡 일어났다. 이곳이 정말 게이트 안이라면 곧 몬스터들이 나타날 것이다. 공략대가 게이트에 투입되기 전에 몬스터가 나타나면 자신은 절대 생존할 수 없다.

다행히 주변은 스산할지언정 고요했다. 몬스터는커녕 생명체 비슷한 것도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는 게이트 안이었다. 언제 무슨 괴물이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장소다. 지안은 침착해지려 노력하며 주변 환경을 살폈다. 지형지물을 보건대 동굴 비슷한 곳인 듯했다.

어쩐지 입김이 나온다 했더니 주변이 몹시 추웠다. 잠시 기절한 사이 체온이 급강하한 듯 입술도 덜덜 떨렸다. 귀와 코는 물론이고 손발이 떨어져 나갈 듯 아팠다. 그야말로 폭력적인 추위였다. 롱패딩이 아니었다면 기절한 채 깨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게이트에 휘말려 정신이 없었다곤 하지만, 어떻게 이런 날씨를 단번에 인식 못 한 걸까 싶을 정도로 살을 에는 바람이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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