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82화
다영의 되물음에 나는 내가 무슨 말실수라도 한 건가 싶었다. 덕분에 술기운이 달아났다.
옆에 서 있던 태용이 한 손으로 제 얼굴을 감쌌다.
“강우신 가이드 괜찮을까요.”
그 암담한 목소리에 소희가 그의 옆구리를 툭 쳤다.
“에스퍼는 양 헌터 쪽이야. 오히려 양 헌터 몸 상태를 걱정해야지.”
그녀는 다 들리게 속닥거린 뒤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병원 가 보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니 어떻게……. 그게 참아져요?”
“네?”
의미를 알 수 없는 말들에 내가 멍청한 얼굴로 되묻기만 하자 잠자코 있던 다영이 두 사람의 입을 막았다.
“두 사람 다 더 자세히 물어보는 건 실례예요.”
“읍읍…….”
다영이 턱짓하자 소희는 계속 웅얼거리는 태용의 팔을 질질 끌고 도로 고깃집 안으로 들어갔다.
다영은 나를 한 번 보고는 민망함에 뒷머리를 긁적였다.
“저도 먼저 들어갈게요.”
그렇게 말하고 자리를 피하려는 다영을 잡은 건 나였다.
“다영 헌터.”
“네?”
“제가 무슨 말실수한 건가요?”
내가 정말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자 다영은 곤란한 표정으로 잠시 고민하다 작게 답했다.
“생각보다 훨씬 건전한 교재라서 다들 그런 겁니다. 아무래도 가이딩 관계에 있다 보면 스킨십이 깊어지니까.”
“……깊어진다고요?”
“네. 일반 가이딩을 받다가도 잠자리 정도는…….”
“네?”
“네?”
나와 다영은 서로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 돼서 서로를 한참 바라봤다.
고깃집 안쪽에서 강우신에게 술을 먹이는 조이현의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도대체 언제 그런 깊은 사이가 됐냐며 묻는 목소리가 모두 꿈결같이 아득하게 들렸다.
* * *
상처 깊이에 따라 혹은 체질에 따라 진한 스킨십을 동반한 가이딩을 한다.
어디까지나 의료 행위의 연장선으로 말이다.
성시현의 몸으로 있을 때만 해도 내 몸에 맞는 가이드를 찾아 주겠다는 명목하에 가이딩실 안으로 여러 사내를 넣어 줬으나 대부분 가벼운 터치를 나누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불쾌하니까.
강우신이 아닌 가이드의 가이딩은 늘 알 수 없는 거북함을 동반했고 그건 스킨십이 진해질수록 배가 됐다.
그렇기에 구태여 몸을 섞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내 경우였다. 평균적으로 다른 에스퍼들은 가이드들과 조금 더 가벼운 관계를 지향한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다. 아무리 그래도 세 사람의 반응을 보니 도리어 당혹스러웠다.
요즘 애들과 비교하면 자신이 너무 보수적이었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생각 끝에 자연히 강우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와 포옹할 때 손에 느껴지던 단단한 몸의 감각이 되새겨졌다.
골격이 큰 그와 나는 덩치 차이가 제법 났다. 그 때문에 그의 커다란 손은 항시 날 잡아먹을 듯 휘감았다.
평소와 달리 몰아붙이듯 키스하던 옥상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그런 키스만으로도 정신이 번번이 아득해지는데 그 이상의 관계라니.
감히 상상도 못 했다. 순진하게 말이다.
“잠자리라.”
턱을 괴고 그렇게 혼잣말하는데 불쑥 등 뒤에서 우신이 물었다.
“잠자리요?”
그 물음에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강, 강우신 가이드.”
“저 왔습니다.”
우신은 무슨 문제라도 있냐는 얼굴로 웃어 보였다.
회식 후 그의 몸 상태를 면밀하게 검사하기 위해 가이딩 센터 내 연구실을 찾아온 참이었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 그를 기다리며 잠시 넋 놓고 있었는데 그만 속마음이 입 밖으로 새어 나온 모양이었다.
우신은 무해한 눈을 반짝이며 날 바라봤다. 제 질문에 대한 답을 필요로 하는 시선이 내 가슴을 쿡쿡 찔렀다.
덕분에 나는 변명하듯 말을 늘어놓았다.
“아니 그러니까 제가 말한 잠자리는 그……. 곧 가을이 되면 잠자리를 볼 수 있겠다 싶어서.”
형편없는 변명을 뱉어 냈다. 망했다, 라는 세 글자가 머릿속을 잠식해 오는데 제 아래턱을 매만지던 우신이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 돼서는 답했다.
“잠자리 좋아해요?”
어쩐지 미묘하게 들리는 말에 나는 조금 붉어진 뺨을 숨기려 시선을 피하며 답했다.
“뭐, 싫어하진 않죠. 가을이 왔다는 기분도 들고…….”
“흐음, 그렇구나. 잠자리를 좋아했구나.”
왜인지 기분 좋아 보이는 그가 가벼운 콧노래를 불렀다. 나는 그 상황을 모면하듯 말을 돌렸다.
“왔으면 이만 들어가죠. 몇 층이라고 했죠?”
뒤이어 그를 질질 끌고 연구실 쪽으로 향했다.
* * *
“여기서 기다리고 계시면 연구원님께서 직접 오셔서 설명해 주실 겁니다.”
직원은 우리를 방 안으로 안내한 후 그렇게 말하고 자리를 떠났다.
“검사 결과가 생각보다 빨리 나오네요.”
피를 뽑고 온 우신은 소매를 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선배가 깨어나기 전부터 몇 차례 검사를 받았었으니까요.”
“그런데 선배란 소리는 계속할 건가. 지금 모습으론 후배긴 한데.”
내가 어깨를 으쓱이며 묻자, 그가 씩 웃었다.
“왜요? 후배라 불렸을 때가 더 좋았어요?”
“그렇다기보다는 사람들 앞에서 실수할 수도 있고…….”
“그럼 선배도 내 호칭 바꿔 줘요.”
“호칭?”
“강우신 가이드는 너무 딱딱하잖아요. 우리 사이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던 우신이 소파에 몸을 기대더니 옆에 앉은 내 쪽을 모로 보며 미소 지었다.
가깝게 다가온 얼굴에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되물었다.
“뭐라고 듣고 싶은데.”
“음.”
우신은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 기다렸다는 듯 시선을 맞춰 오며 답했다.
“오빠?”
“…….”
“왜요. 나 그 소리 들을 자격 있는 것 같은데.”
우신의 입매가 호선을 그렸다. 얼굴을 제법 무기로 쓸 줄 아는 태도였다. 그게 퍽 마음을 간지럽게 만들었다.
“그래도 그건.”
“왜요. 따라 해 봐요. 그럼 나도 선배 소리 안 할 테니까.”
“……강우신.”
내가 작게 그의 이름을 부르자 우신이 내 귓가에 소곤거리듯 답했다.
“오빠.”
입술이 모였다 떨어질 때마다 귓가로 입김이 닿아 몸이 간질거려지는 기분이었다.
똑똑-
타이밍 좋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자세를 똑바로 잡고는 문을 바로 보고 앉았다.
우신은 아쉬운 기색이 가득한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센터 출신 연구자가 들어올 것이란 예상과 달리 곧이어 문을 열고 들어온 건 뜻밖의 얼굴이었다.
나는 단번에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한영원 씨?”
문을 열고 들어온 건 흰색 가운을 입은 한영원이었다. 그 모습이 퍽 동굴 때를 떠올리게 했다.
반사적으로 에너지를 곤두세우는데 우신이 내 손을 잡으며 입을 열었다.
“요즘 바빠 보이더니 오늘은 직접 방문해 줬네요.”
우신이 먼저 당혹스러운 기색 없이 운을 뗐다. 영원도 당황한 기색 없이 답했다.
“바빠도 와야죠. 양하나 헌터가 왔다는데……. 아니 성시현 헌터라 불러야 할까요?”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가 잠시 주저하자 나는 우신을 힐끗 보곤 단호하게 답했다.
“양하나로 불러 주세요.”
그녀의 몸으로 살기로 결정한 이상 난 하나의 이름을 쥐고 살기로 했다.
성시현은 하나의 염원과 함께 작별했으니 말이다.
내 뜻을 알아차린 듯 영원도 고개를 끄덕이곤 마주 앉았다.
퇴원하기 전 한지원의 입을 통해 영원이 연구진으로 들어와 재능을 펼치고 있다고는 들었는데 직접 보니 감상이 남달랐다.
동굴에서 봤을 때와는 딴판인 생기 있는 눈동자. 자칫했으면 다른 사람인 줄 알았을 것이다.
신기한 마음에 너무 빤히 쳐다보았는지 영원이 싱긋 웃었다.
“저도 몇 번 병문안 갔었는데.”
“알고 있어요. 편지 두고 간 거 봤거든요.”
퇴원 후 우신에게 커다란 상자 하나를 받았다. 그 안에는 동료 헌터들부터 내게 도움을 받았다던 일반인들에게서 받은 편지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각각의 편지에는 고맙다는 말들이 정성스럽게 쓰여 있었다.
그중 영원의 편지는 딱 한 통이었는데, 그 안에 이런 말이 쓰여 있었다.
[연구실에서 긴 외로움을 함께 견뎌 준 건 아이러니하게도 시현 씨의 몸이었어요. 눈부시게 아름다운 힘이 사그라드는 모습이 제겐 삶의 촛불이 되어 줬습니다. 고마워요.]
그 내용을 되새기는 사이, 한영원이 눈빛을 바꾸며 질문을 이었다.
“그럼 하나 씨, 오늘 강우신 가이드의 에스퍼 신분으로 온 게 맞겠죠?”
“맞습니다.”
“잘 오셨어요. 그동안 치료를 멈춰 뒀던 걸 진행할 수 있겠네요.”
“치료를 멈춰요?”
“강우신 가이드에게 아직 이야기 못 들었을까요?”
영원의 물음에 우신에게로 시선을 돌리자, 우신이 태연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사고 이후 6개월 동안 검사는 받았다면서 왜 치료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나 했더니, 치료를 멈춘 상태였다고?
내 표정이 서늘하게 굳자 영원이 말을 이었다.
“사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의학적인 소견은 부족합니다. 다만 몇 가지 실험을 해 보니 적합도가 높고 강한 에너지와 접촉하면 느리게나마 말라 있던 에너지가 채워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적합도 높은 강한 에너지요? 그 에너지라면 설마.”
“네, 에스퍼의 에너지를 말하는 겁니다.”
접촉을 통해 가이드의 에너지를 채운다, 라. 꼭 가이드가 에스퍼의 불안정한 에너지를 안정시키는 것과 비슷해 보였다. 그 예상이 맞는 듯 영원이 말을 보탰다.
“접촉이라지만 실상 가이딩의 개념과 같다 보면 됩니다.”
“지금 에스퍼인 저한테 강우신 가이드를 가이딩하라는 말입니까?”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가이딩의 연장선으로 생각해서 스킨십을 나누면 치료 효과를 볼 수 있을 듯합니다.”
“그럼.”
“그러니까 데이트라도 해 보는 게 어떨까, 하는 게 지금 제가 드릴 수 있는 처방입니다.”
말을 매듭지은 영원은 우신 쪽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우신 역시 꼭 이 상황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처럼 눈을 빛내며 나를 쳐다봤다.
어쩐지 두 사람의 죽이 척척 잘 맞는 걸 보니 꼭 함정에라도 빠진 것 같았다.
* * *
연구실을 다녀온 주말, 나는 그 데이트라는 걸 하기 위해 영화관 앞에 서 있었다.
에스퍼가 가이드에게 가이딩이라니 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인가를 고민하던 지난 밤과는 달리 막상 데이트 당일이 되자, 새로운 물음이 차올랐다.
‘데이트에는 무슨 옷을 입고 나가야 하는 걸까.’
그렇게 동틀 녘부터 고민한 끝에 고른 건 평소와 다름없는 청바지에 하얀 반소매 차림이었다.
그나마 눌러쓰려던 캡 모자를 벗고 머리를 풀고 나왔다. 그렇게 영화관까지 오는 걸음걸음이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가는 내내 고민하다 보니, 도대체 이 나이 먹을 때까지 데이트 한 번 하지 않은 스스로가 대단하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나는 영화관 매표소 앞에서 팔짱을 낀 채 불안한 듯 다리를 떨었다.
얼마간 가만히 서 있자, 나를 알아보는 사람도 생겨났다.
역시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모자를 사 올까, 생각하는데 에스컬레이터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그곳으로 시선을 돌리니 쭉 뻗은 다리로 보폭 넓게 걸어오는 남자가 보였다.
거침없는 걸음의 주인은 강우신이었다. 나는 그의 모습에 저절로 입을 다물었다.
내 고민이 무색하게 우신 역시 평범한 흰 티에 청재킷을 입고 있었다.
어디 하나 특별할 것 없는 단정한 모습일 뿐인데도 지나치게 근사해 보였다. 한참 시선을 뺏길 정도로 말이다.
어느새 우신이 코앞으로 왔다.
“저도 일찍 나온 건데, 벌써 와 있었네요?”
“별로 안 기다렸어요.”
민망한 마음에 괜히 말을 돌렸다.
“영화관이 큰데 내가 어디 있을 줄 알고. 단번에 찾았네요.”
“그런가요? 예뻐서 그런지 멀리서도 한눈에 보이더라고요.”
도무지 나를 향한 말이라고 생각하지 못해 멍하니 있자 우신이 자연스럽게 내 손을 잡았다.
“아침까지도 오늘 데이트가 있다는 사실이 안 믿겼는데, 데이트한다는 사실보다 더 거짓말처럼 예뻐요, 후배님.”
부끄러운 줄 모르고 뱉는 말이나 작정한 듯 웃는 낯이나 아주 날 꼬시려고 작정한 사람 같았다.
그 와중에 가장 우스운 건 다 알면서도 넘어가 주고 싶은 내 마음이었다.
“영화는 내가 살게요.”
나는 못 이기는 척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곤 함께 영화관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