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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81)화 (181/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81화

* * *

이 팀장은 시계를 풀다 만 채 굳어서는 내 쪽을 빤히 쳐다봤다.

놀랄 줄은 알았지만, 완전히 얼어 버린 얼굴을 보니 민망해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뺨을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말없이 와서 많이 놀랐습니까?”

그렇게 묻기 무섭게 이 팀장이 내 쪽으로 걸어왔다.

듣자 하니 내가 벌여 놓은 일의 대부분을 그가 수습하고 있었고, 때문에 제법 고생하는 듯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이 팀장의 비장한 걸음에 저절로 몸이 굳었다.

한 소리 하겠구나, 하는데 그가 나를 끌어안았다. 나는 눈이 서서히 커져서는 그를 불렀다.

“이 팀장님?”

“고생했습니다.”

“……제가 조금 많이 늦었죠?”

“깨어났으면 그걸로 된 겁니다.”

어젯밤 이곤과 한지원도 깨어난 나를 두고 오랫동안 축하해 줬다. 그 따뜻한 환영으로도 충분했는데 이 팀장마저 이렇게 솔직하게 반겨 줄 줄 몰랐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썩 나쁘지 않았다.

저절로 미소가 지어져 그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여 주려는데 우신이 이 팀장의 어깨를 잡아 나와 떨어트려 놨다.

“환영의 마음은 말로도 충분할 것 같은데요.”

이 팀장은 그제야 강우신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낸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깨어난 건가요?”

“어제요. 일이 바빠 보이길래 제가 직접 왔습니다.”

“몸은…….”

“아주 멀쩡해요. 새로 태어난 사람처럼.”

내가 보란 듯 어깨를 으쓱이자 이 팀장은 여전하다는 미소를 지었다.

“그럼 퇴원과 동시에 날 찾아온 건 상황을 전달받고 싶어서겠네요.”

나는 정곡이 찔린 채 우신을 한 번 쳐다보곤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곧이어 이 팀장에게 전달받은 건 내가 잠든 이후 협회가 센터를 장악하기까지의 상황과 그 이후의 일들이었다. 우려한 대로 게이트 클리어율이 떨어져 있었다.

“센터 소속 에스퍼들은요.”

“이전처럼 일하고 있긴 하지만 최소 게이트 투입 횟수 같은 규정은 없앴습니다. 그래서…….”

“클리어율이 떨어졌고요.”

“그렇죠.”

이 팀장이 곤란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한쪽에 펴져 있는 지도를 바라보며 답했다.

“협회에 가입된 길드의 수와 분포도가 어떻게 됩니까.”

“규모 상관없이 62곳으로 수도권 32%, 나머지 지역구는 비슷합니다.”

“생각보다 고르게 펴져 있네요?”

이야기를 듣던 강우신이 의외라는 목소리를 내자, 내가 답했다.

“센터가 수도권을 주 활동 무대로 삼고 있어서겠지.”

정답이라는 듯 이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역마다 센터의 자치 기구가 있는 건 알고 있죠? 규모는 매우 작을 테지만.”

“알고 있습니다.”

“협회 소속 길드원들은 모두 그 자치 기구에 등록시키고 지난 센터처럼 최소 투입 횟수를 만드세요.”

“……괜찮겠습니까?”

그 규정으로 인해 가장 많이 착취당한 존재가 나란 걸 아는 이 팀장은 강력하게 그 제도를 없애고자 했다.

하지만 아직 에스퍼의 숫자도, 산업도 협소한 우리나라에서 자발성을 요구하는 건 섣불렀다.

“단 등급과 능력에 따라 무리하지 않은 선에서의 횟수를 책정하시고 그 이후부터는 보상을 주세요.”

“보상이요?”

“네. 각자 원하는 게 분명히 있을 겁니다. 급여일 수도 휴식일 수도 더 질 높은 훈련일 수도 있죠.”

내가 봐 온 이들은 그랬다. 센터라는 한 공간에 묶여 다 똑같은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지만, 개인마다 일하는 이유는 천차만별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모두 일괄적인 보상을 주는 건 매력적이지 못했다.

물론 센터가 당근 대신 채찍을 든 이유 또한 납득 가능하다.

“시간이 오래 걸릴 겁니다.”

수많은 에스퍼와 가이드의 실력과 요구 조건을 모두 알아보고 조율하려면 그만큼 많은 인력과 돈이 필요하다.

“요구 조건은 단순화시켜 카테고리를 만드세요. 세분화하다 보면 복잡해질 거예요. 대신 보상은 화끈하게 해 주세요. 일할 맛 나도록. 당장 큰 틀은 이렇게 잡고 더 자세한 건 협회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해 보세요. 길이 보일 겁니다.”

서류 확인을 전부 마치고 나서 도로 이 팀장에게 건네자 그가 어쩐지 조금 기특한 얼굴이 돼서는 답했다.

“그럼요. 다른 누구도 아닌 양 헌터의 뜻이니 더 힘이 실릴 겁니다.”

이 팀장은 골치 아픈 문제가 조금 해결될 것 같다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모습을 빤히 보고 있던 강우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일도 끝났으니 일어나죠.”

그 말과 함께 내 손을 잡는 모습을 지켜보던 이 팀장이 빠르게 뒷말을 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압니까? 양 헌터 깨어난 거.”

“이곤과 한지원 헌터만요. 하지만 아마 지금쯤…….”

“그럼 다 같이 퇴원 축하 파티나 하죠.”

“오늘 말입니까?”

“한 사람씩 찾아가 인사하는 것보다 그게 편하지 않겠어요?”

그의 말에 나는 힐끗 우신을 쳐다봤다.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보니 못마땅한 듯했지만, 이내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가 작게 입을 열었다.

“선배만 괜찮다면야…….”

싫은 기색이 얼굴에 만연한데도 아닌 척 구는 게 제법 귀여워 픽 웃음이 샜다.

“그럼 그럴까요. 간단한 저녁 정도라면.”

* * *

간단한 저녁 식사일 줄 알았는데 나는 눈앞의 광경에 입을 꾹 다물었다.

“양하나 헌터의 퇴원을 축하하며!”

“축하하며!”

조이현의 건배사와 함께 모두 잔을 들어 올렸다. 벌써 건배사만 스무 번 넘게 이어진 것 같았다.

나는 울렁거리는 속을 달래며 잔을 기울이는 척 앞에 내려 두었다. 발 빠른 이 팀장은 오델리아 멤버를 불러모았고, 한지원 역시 질세라 김다영 헌터를 비롯해 반소희, 임태용, 주영우 헌터들을 모조리 끌고 왔다.

순식간에 불어난 인원에 고깃집은 이미 강한 알코올의 냄새로 점령당했다.

슬쩍 일어날까, 의자를 빼는데 뒤에서 박희민이 날 끌어안았다.

“양 헌터! 내가 무진장 걱정했습니다! 알고 있어요?”

술에 취한 그는 얼굴이 새빨갛게 익어서는 소리쳤다. 눈이 살짝 맛이 간 게 술을 된통 마신 모양이었다.

“박희민 가이드, 잠시 이거 놓고.”

내가 그의 팔을 풀려 하자 그는 보란 듯 더 힘을 주었다.

“싫어요, 어디 가려고!”

일부러 이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앙탈을 부리는 모습에 인내심이 떨어지려는 찰나 강우신이 그의 뒷덜미를 잡았다.

“양 헌터한테 손대지 마세요.”

차분한 목소리로 이르는 그는 박희민과는 다르게 얼굴이 창백할 정도로 멀쩡했다.

겉모습만 보면 취하지 않은 것 같지만, 내 눈에는 보였다. 묘하게 벌게진 그의 목덜미가.

불안해진 내가 두 사람을 떨어트려 놓으려는데 박희민이 소리쳤다.

“왜에요, 손댈 수도 있지. 양 헌터가 무슨 자기 껀가!”

그러면서 혀를 쭉 내밀자 우신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잘 알고 있네요, 제 껍니다.”

한 치의 고민 없는 대답에 어깨를 움찔했지만, 다행히 사방으로 취한 사람 천지여서 그의 작은 대답을 귀담아듣는 이는 없었다.

박희민 역시 못 들은 척 내게 다시 달려들려 했다.

“양하나 헌터가 그렇게 가만히 있으니까, 저 인간이 저러는 겁니다. 한마디 하세요. 나도 여러 가이드 맛보고 싶…….”

그 순간 강우신이 박희민의 가슴팍을 강하게 밀치곤 나를 꽉 끌어안았다.

“나 양하나랑 사귑니다. 그러니까 내 껍니다.”

“…….”

창백한 두 뺨과는 달리 강우신의 몸은 터질 듯 뜨거웠다.

어쩐지 불안하더라니. 취한 모양이었다. 커다란 그의 목소리에 고깃집은 순식간에 조용해지고 나는 민망함에 고개를 숙였다.

“괜찮아요?”

술 깰 겸 고깃집 밖으로 나와 바람을 쐬고 있자 김다영이 따라 나와 물었다. 나는 그의 등 뒤의 술집을 힐끗 건너봤다.

“안에는요?”

“난리가 났죠. 언제부터 사귀냐, 누가 먼저 고백했냐. 이럴 때 보면 다들 아직 애 같아요.”

나는 이대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 내 옆에 가만히 서 있는 다영을 보곤 물었다.

“다영 헌터는 안 궁금해합니까?”

민망함에 그렇게 묻자 다영이 픽 웃었다.

“양 헌터 입에서 그 말이 먼저 나올 줄 몰랐는데.”

“그냥 옆에 가만히 계셔서.”

“사실 새삼스럽다는 느낌이라서요. 두 분 굉장히 오래전부터 서로에게 마음 있었잖아요.”

“……그렇게 보였나요?”

“강우신 가이드는 양 헌터 앞에서만 표정이 달라졌으니 말 안 해도 다들 알 테고, 양 헌터도…….”

다영은 말을 끌다 다시 나를 바라보곤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강우신 가이드 앞에서 가장 많이 웃더라고요.”

남들 눈에 훤히 다 보였는데, 결국 스스로의 감정을 본인이 가장 늦게 인지한 꼴이었다.

강우신은 그런 나를 보고도 용케도 군말 없이 곁에 머물러 줬구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뒤편에서 반소희와 임태용이 따라 나왔다.

“오랜만에 봤는데 이야기도 많이 못 나누고 미안해요.”

그들에게 인사하자 반소희는 퇴원을 축하하는 자리에 불러 준 것만으로 고맙다며 말을 나눴다.

오랜만에 네 사람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나면서 마지막 하나의 말이 떠올랐다.

‘언니에게는 남은 사람들이 있잖아요.’

내 곁을 채워 주는 수많은 인연들. 확실히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걸까 싶을 정도로 마음이 벅찼다.

그때 나를 빤히 쳐다보던 태용과 눈이 딱 마주쳤다. 뭔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코가 붉은 그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도대체 각인은 언제 하신 거예요. 전담 가이드가 됐다는 말도 못 믿었는데 벌써 그런 사이가 되셨을 줄은.”

그의 주접에 옆에 서 있던 소희가 그의 발을 밟았다.

“그런 말은 실례야. 술 깨고 후회할 말은 마.”

그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태용 씨도 옛날에 본인 이야기 선뜻 해 줬으니까. 저도 괜찮습니다.”

내 허락이 떨어지자 태용뿐만 아니라 소희와 다영 역시 궁금했는지 내 대답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민망해져서 서둘러 대답했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는데, 기대한 대답이 아닐 것 같아 미안하네요. 각인 안 했어요, 우리.”

“네?”

“정말요?”

내 대답에 하나같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됐다.

“벌써 하셨을 줄 알았는데.”

그 작은 혼잣말에 나는 민망해져서 볼을 긁었다.

멀쩡해 보여도 모두 술을 마신 모양이긴 한가 보다, 이렇게 솔직한 걸 보면. 물론 나 역시 그렇고.

나는 술을 핑계로 기꺼이 다음 말을 이었다.

“하하, 아직은 키스한 게 전부라.”

강우신이 나와의 관계를 고백했듯 나 역시 술의 기운을 빌려, 그와의 관계를 입에 한 번 올리며 가볍게 넘길 생각이었다.

그런데 반응이 예상 밖이었다. 세 사람이 눈을 크게 뜬 채로 멍하니 나를 쳐다보았다.

그들의 반응에 나 역시 굳는데, 다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키스가 전부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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