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79화
강우신이 앞장서서 걷자 이곤과 한지원이 말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그는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중에도 병문안을 빼먹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전처럼 울지도 않았다.
성시현과 관련된 일이라면 그 완벽한 가면을 번번이 깨뜨리던 그가 감정을 드러내더니 어느 순간부턴 갑자기 혼이 빠진 사람처럼 표정을 지웠다.
그의 가이딩으로 끊어져 가던 하나의 숨은 붙었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게 누구의 영혼인지는 깨어나기 전까지 알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이제 와 마음이 변한 걸까.
이곤은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창에 비친 강우신의 옆모습을 바라봤다.
에스퍼는 가이드 없이 살 수 없지만, 가이드는 아니다.
“…….”
그의 무표정한 낯 아래에 어떤 감정이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차례로 내렸다. 지원은 딱딱한 분위기에 고개를 저었다.
“초상집 가는 분위기 만큼은 제발 내지 말아 줄래요? 안 그래도 여기 올 때만 숨통이 트이는데.”
지원은 우신을 앞질러 병실 앞으로 뛰어갔다.
“두 사람 다 표정 보세요. 그게 문병 온 사람의 표정인지. 게이트 들어갈 때도 그것보다는 덜 비장하겠네.”
지원은 그렇게 툴툴거리며 병실 문을 열었다.
“제가 양하나 헌터였다면 두 사람 얼굴 보고 바로 쫓아냈을 겁니다.”
“죽상이라면 별로죠.”
“봐 봐요. 별로라고 하잖…….”
지원은 당차게 말하다 말고 병실 내부로 고개를 돌렸다. 시선의 끝에 놓인 창문 앞에는 병원 침대에 죽은 듯 누워 있어야 할 양하나가 서 있었다.
그녀는 창문을 마저 열며 살짝 미소 지었다.
“가만히 누워 있으려고 했는데, 날이 좋아 보여서요.”
“양, 양, 양하나 헌터가.”
지원이 입술을 발발 떠는 그때 이곤이 지원을 밀치고 병실을 들여다봤다.
보고도 믿지 못할 사실에 감탄하기도 잠시 이곤의 표정이 가라앉았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알 수 있었다. 지금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영혼이 누구의 것인지.
그 사실을 깨달은 이곤은 입에 걸려 있던 말을 삼켰다.
깨어난 게 누구건 다시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제겐 앞으로도 기회가 많았다.
지금 이 순간은 자신보다 더 애타게 기다린 남자의 것이어야 했다.
“아니 왜 밀치고 그럽니까! 저도 반가워 죽겠구만. 양 헌터!”
지원이 팔짝 뛰며 양하나에게로 뛰어가려는 그때 이곤이 그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이거 뭐 하는 짓이에요! 놔 봐요. 나 지금 양 헌터 반가워서 안아 주고 싶으니까.”
“눈치를 쌈 싸 먹어도 정도가 있지.”
이곤은 그 말과 함께 지원을 질질 끌어당겼다.
그러면서 병실을 들여다보지도 못한 채 가만히 서 있는 강우신을 지나치며 읊조렸다.
“네 눈으로 확인해.”
이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그건 그가 두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었다.
* * *
다시 눈을 떴을 땐 병실이었다.
마지막 기억은 방아쇠를 당긴 것. 그로부터 아주 찰나의 시간이 지났다 생각했는데 창밖의 풍경을 보니 녹음이 잔뜩 져 있었다.
적어도 겨울로부터 한참 시간이 흐른 뒤라는 소리였다.
“또 몇 년씩 지나 있는 건 아니겠지.”
불안함에 자리에서 일어나 티브이를 켰다. 때마침 방영되는 프로그램에서는 새 센터의 출범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그 덕분에 6개월가량의 시간이 지난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시끄러운 일은 잠시 꺼 두고 창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창문을 열자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가만히 방 안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느끼다가 작게 읊조렸다.
“……말도 안 되게 가볍네.”
아무리 단련을 하고 에너지를 운용해도 미묘하게 어긋나 있다고 느껴졌던 몸에서 이질감이 사라졌다.
꼭 태어났을 때부터 내 몸인 것만 같았다. 끝에 하나가 말했던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감히 자신이 이런 걸 받아도 되는 걸까. 생각이 깊어지는데 멀리서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익숙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자연히 고개를 돌렸다. 점점이 가까워지는 발걸음 가운데 곧고 차분한 발걸음 소리에 가슴이 뛰었다.
가만히 심호흡하는데 문이 벌컥 열리며 지원이 말을 했다.
“제가 양하나 헌터였다면 두 사람 얼굴 보고 바로 쫓아냈을 겁니다.”
그의 말에 복도 너머의 강우신과 이곤의 표정이 절로 그려졌다. 동시에 말이 뱉어졌다.
“죽상이라면 별로죠.”
그러자 지원은 꼭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제자리에서 벌떡 뛰더니 소란을 피웠다.
여전한 그의 모습에 자연히 표정이 풀어지는데 이곤이 나를 확인하자마자 지원을 끌고 사라졌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멈춰 있던 걸음 소리가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서서히 가까워지는 발걸음은 이내 병실 안에 들어와 멈췄다.
나는 그의 이름을 불렀다.
“강우신.”
우신은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 내 쪽으로 걸어왔다. 부쩍 가깝게 선 우신은 내 상태를 살피듯 눈을 위아래로 굴렸다.
“몸은요.”
“좋아. 꼭 새로 태어난 것처럼.”
“다행이네요.”
우신은 그 말과 함께 내가 연 창을 도로 닫았다.
“아직 찬 바람은 안 돼요. 감기 들 수도 있으니.”
“과보호는 여전하네.”
“…….”
내 말에도 그는 꼭 건조된 사람처럼 딱딱하게 굴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예쁜 얼굴도, 나를 바라보는 시선도 전부 똑같아.”
“계속 기다렸으니까요.”
“그런데 왜 안 안아 줘요?”
웃으라고 한 농담인데 우신의 미간이 미세하게 찌푸려졌다. 그 모습에 되레 동요한 건 나였다.
“……이 몸 안에 돌아온 게 양하나라고 생각하는 거야?”
“선배인 거 알아요.”
칼 같은 대답에 그럼 왜? 라는 질문만 떠올랐다.
“어떻게? 여전히 내 모습이 아닌데.”
섭섭함에 심통이 나 그의 대답에 꼬리를 잡고 늘어졌다.
“에너지까지도 흉내 내는 세상에, 누군가 날 연기하는 걸지도…….”
우신은 찡그리고 있던 미간을 가만히 눌렀다. 피로해 보이는 행동에 뱉으려던 말을 삼켰다.
오랜만에 만나 괜히 감정 싸움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유 모를 서운함이 밀려들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 감정은 꼭 그거 같았다. 마음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연인의…….
그때 우신이 제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을 치우며 말했다.
“말했잖아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지 저는 선배를 알아볼 수 있다고.”
그는 나를 지그시 바라봤다. 눈으로 그림을 그리듯 집요한 시선이었다.
“곧은 자세, 낮은 어조, 웃을 때면 올라가는 눈꼬리.”
“그 정도야…….”
“마지막으로 상대가 말할 때면 시선을 맞추는 것까지. 그 열정적인 시선에 눈이 멀어 여기까지 왔는데 제가 모를까요. 선배를.”
그제야 우신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양하나가 아닌 다른 사람의 모습을 하고 왔어도 알아챘을 겁니다.”
잔잔한 표정과는 사뭇 다른 솔직한 고백이었다. 나는 민망함에 옷자락을 매만졌다.
“그럼 반갑지 않은 거야?”
“네?”
“아까부터 표정이 굳어 있잖아. 우리 오랜만에 보는 건데.”
내 말에 우신은 예상치 못한 말을 들은 사람처럼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이내 제 얼굴을 매만졌다.
“미안해요. 요즘 원체 표정을 숨기고 다녀서 습관처럼.”
그리 말하면서도 여전히 딱딱한 얼굴이었지만, 말을 할수록 귀가 붉게 달아올랐다.
그 모습에 자연히 손이 갔다.
“귀는 왜 그래.”
“그게……, 선배가 그런 걸 신경 쓸 줄 몰랐어요. 선배도 저를 신경 쓴다는 사실에 조금 신이 나서.”
우신은 손을 치우고 그린 듯 부드럽게 웃었다. 붉게 물든 귓바퀴만큼이나 수줍은 미소였다.
“어떻게 반갑지 않겠어요. 얼마나 기다렸는데.”
나이를 먹어도 우신은 내 앞에 설 때마다 소년 시절처럼 순수하게 웃었다.
그가 온전히 나만의 것이란 사실이 견딜 수 없이 행복했다.
“다시 눈을 뜨길 잘했어.”
작게 읊조리자 우신이 되물었다.
“네?”
나는 고개를 작게 저었다.
“아니야. 그냥 나도 보고 싶었다고.”
그 말과 함께 목석같이 서 있는 우신을 끌어안는데, 삽시간에 얼굴 위의 미소가 사라졌다.
“너…….”
“…….”
전과 무언가 달랐다. 나와 눈을 마주한 우신은 각오한 순간인 듯 입을 굳게 닫았다.
나는 믿을 수 없어 다시금 그의 몸을 더듬었다.
강우신의 몸 안이 비어 있었다. 힘찬 에너지로 꽉 채워져 있어야 할 그의 몸 안이 말이다.
너무 놀란 나머지 쉽사리 뒷말을 잇지 못하자 우신이 살며시 미소 지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떠나가려는 혼을 잡으려다 보니 이렇게 됐어요. 이게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였어요.”
나는 그제야 눈을 뜨기 전, 양하나를 따라 문을 나서려는 순간 나를 끌어당기던 싱그러운 바람을 떠올렸다.
그 익숙하고 온화하던 바람. 그건 우신의 에너지였다.
“너, 내가 쓰러진 후에 그 몸에 가이딩을 한 거야?”
내 물음에 우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선이었어요.”
성시현의 육체가 부서지며 내 영혼 또한 양하나의 몸 밖으로 빠져나가려 했을 것이다. 그 텅 비어 가는 몸을 강우신은 오로지 제 에너지로만 채운 것이다.
나는 그 순간을 떠올리며 강우신을 끌어안았다.
“네가 무슨 짓을 한 줄 알아? 너 그거 자살행위야. 죽을 수 있다고.”
“알아요.”
“너 그러다 잘못됐으면.”
“선배만 그대로라면 전…….”
“미친 소리 하지 마, 너한테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내가……!”
버럭 소리치던 나는 우신의 시선을 마주하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이기적이게도 그 말을 입에 올리고 나서야 깨달았다. 지금 내가 하는 소리는 지금껏 내 곁을 지켜 온 우신의 마음이기도 했다.
내 마지막 선택 앞에서 우신 역시 내게 가졌을 절박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