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76화
강한 힘에는 그만한 책임이 따른다.
센터에 입사해 이 나라의 시민으로 일하겠다 다짐한 순간 우린 사명감을 부여받는다.
하지만 사람을 갈아서 돌아가는 이런 곳에서 살아남으려 발버둥 치다 보면 사명감 따위 기억 저편에 파묻혀 희미해지기 쉬웠다.
내가 봐 온 이들이 모두 그러했다.
“…….”
나는 총을 치우고 수갑을 꺼내 민지민의 양팔에 채웠다.
드러난 그의 얼굴 위로 어울리지 않은 물기가 어려 있었다. 내 행동에 놀란 듯 그가 날 쳐다봤다.
웃음기라곤 없는 진짜 민지민의 얼굴이었다.
“이게 뭐 하는 거예요.”
“쉽게 죽으려고?”
“그러려고 온 거 아니에요? 나랑 끝을 보려고.”
“자의식 강한 건 여전하네.”
수갑을 강하게 조이자 그가 미간을 좁혔다. 뼈가 성한 곳이 없는 모양이었다.
“이런 끔찍한 짓을 벌였으면 그만한 벌을 받아야 해. 네게 따라붙을 수많은 질타와 처벌. 온전히 받아. 쉽게 죽으려 말고.”
“안 어울리는 말 집어치우고 죽여요. 그냥.”
이건 그를 위한 게 아니었다. 나를 위한 일이었다.
모든 걸 피해 죽음으로 달아나려 했던 과거의 내 모습이 그의 위로 겹쳐 보이는 건 단순한 연민일까.
“그리고 남은 한 발은 따로 쓸 곳이 있거든.”
그 말과 함께 나는 총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눈앞이 돌았다. 피를 쏟은 상태에서 힘을 과하게 사용한 이유 때문인 듯했다.
나는 우신의 온기가 남은 목걸이를 매만졌다. 내 몸의 열기를 식혀 주는 듯한 시원한 기분에 나도 모르게 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그 순간 우지끈하고 보석이 갈라졌다. 동시에 손바닥에 작은 상처가 났다.
뭐 하나 내 마음처럼 쉽게 따라 주는 게 없었다.
나는 아쉬운 얼굴로 부서진 보석을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이제 보니 내 크림색 정장이 찢기고 피에 물들어 엉망이 돼 있었다.
평소 입는 작업복이 아니라는 걸 새카맣게 잊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될 걸 알면서도 불편한 차림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성시현의 몸이 있는 캡슐을 바라보곤 그쪽으로 향했다. 내 걸음을 지켜보던 지민이 당황해서는 입을 열었다.
“잠깐. 왜 거기로 가는 거예요.”
불안이 실린 목소리는 이미 물음에 대한 대답을 짐작하는 것 같았다.
나는 힘으로 그의 행동을 저지시켰다. 몸이 얼어붙은 지민은 당혹감을 숨기지 못하고 자꾸만 날 불렀다.
“선배!”
나는 그 부름을 무시하곤 바깥 일은 모르겠다는 듯 온순히 잠든 성시현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맡에 들고 온 총을 잠시 내려 두곤 입을 열었다.
“양하나.”
내 부름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녀가 눈을 떴다.
뇌사 판정 후 호흡기 하나 없이 누워 있던 성시현의 몸은 오롯이 에너지로 제 몸을 코딩해 죽지 않고 있었다.
그건 흡사 밀랍 인형과 다르지 않았다. 그랬던 몸이 눈을 떴다.
민지민은 그 광경을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단 한 번,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적 있었지만, 단순한 환청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고 넘겼을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당황한 민지민과 달리 나는 성시현의 몸을 향해 옅게 웃어 보였다.
“이제야 만나는구나. 양하나.”
“……알고 있었어요? 내 정신이 여기 있다는 걸.”
“어떻게 모르겠어. 내 몸이기도 한데.”
내 대답에 성시현의 몸을 한 양하나가 희미하게 웃었다. 앞면 근육을 오랫동안 쓰지 않아 입꼬리가 올라가는 게 어색했다.
“역시 성시현 헌터는 모르는 게 없구나. 정신을 온전히 붙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에너지 소모가 커서.”
그녀는 힘에 부치는지 한 차례 쉬고 말을 이었다.
“이렇게 눈을 뜨고 말하는 데까지도 오래 걸렸어요.”
“그래. 잘했어. 너도 그 안에서 오랫동안 힘들었겠어.”
그 말과 함께 그녀의 머리를 조심히 쓸었다. 빛을 잃은 연노란 머리칼이 힘없이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갔다.
나는 푸석한 머리칼을 만지며 말을 이었다.
“너를 다시 한번 만나 보고 싶었는데 그게 지금이라 아쉬워.”
“다시 이야길 나눌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요.”
“미안.”
내 말에 그녀의 눈이 조금 커졌다.
“그건 내가 하려던 말인데.”
“하나야. 아마 우린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할 거야.”
내 몸을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이제 돌이킬 수 없었다. 나는 서초 게이트에 몸을 두고 왔을 때, 이미 죽은 것과 다름없었다.
그걸 지금까지 끌고 온 탓에 이런 생기면 안 되는 일들이 생긴 거였다.
그러니 난 여기서 이 몸을 없앨 작정이었다.
탈환이라고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1%도 안 되는 확률로 몸이 살아 있을 때의 이야기였다.
그녀의 생각 역시 내 생각과 같은지 눈을 깊게 감았다가 떴다.
“알고 있어요.”
“양하나 네 몸은 남게 될 거야. 다만 이 몸에 누구의 영혼이 남게 될지는.”
“미지수겠네요.”
“그래.”
어렵게 만나자마자 이런 딜레마에 빠지게 해서 미안했다.
나는 그녀의 머리맡에 둔 총으로 손으로 뻗다가 행동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이곤.”
“…….”
“근처까지 와 있어. 안 만나 봐도 괜찮겠니.”
먼저 그렇게 묻고도 의뭉스러움에 혀를 씹었다. 어울리지 않게 왜 이런 질문을 했을까.
동시에 두고 온 강우신이 생각나 문 쪽을 돌아봤다.
그때 양하나가 답했다.
“난 괜찮아요.”
“…….”
“언니는 괜찮아요?”
몸이 바뀐 탓일까 서로의 생각이 훤하게 읽히는 모양이었다.
나는 희미하게 웃었다.
“안 괜찮아. 그러니까 서두를게. 내가 그 남자 얼굴 보면 마음이 약해져서.”
내 대답에 그녀는 고개를 미약하게 끄덕이곤 준비가 됐다는 듯 눈을 감았다.
나는 마지막 총알이 담긴 권총을 성시현의 가슴 중앙을 향하도록 잡았다.
이미 유리처럼 약해진 몸이다. 에너지를 조금만 실은 총알을 날리기만 해도 완전한 끝이었다.
두 사람 중 하나는 아니 어쩌면 우리 둘 모두 진짜 죽음을 맞이하게 될 터였다.
그럼에도 주저 없이 방아쇠 위로 손을 올렸다.
등 뒤에서 민지민이 자꾸만 무어라 소리치는 목소리가 귓전에서 번졌다.
그 소리를 뒤로한 채 손가락에 힘을 주려는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민지민의 목소리를 갈랐다.
“성시현!”
나를 부르는 우신의 목소리였다.
방아쇠에서 손을 떼려는 순간 눈을 감고 있던 그녀가 다시 눈을 뜨곤 나를 붙잡았다.
이내 내 손등을 부드럽게 감싸더니 내가 당기지 못한 방아쇠를 마저 당겼다.
탄은 정확히 성시현의 가슴을 관통했고 그와 동시에 내 눈앞이 새카맣게 물들었다.
아무것도 없던 서초 게이트에서의 죽음과는 달랐다. 나를 받아 드는 누군가의 거친 힘과 온기.
그리고 나를 애타게 부르는 목소리까지, 온 세상이 강우신으로 채워진 끝이었다.
* * *
양하나가 먼저 떠난 직후 두 사람은 순식간에 방 안을 가득 채운 에스퍼들을 쓰러트렸다.
호흡 한 번 제대로 맞춰 보지 않았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완벽한 합이었다.
이곤은 그럴 수 있는 이유가 단연 강우신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소름 끼칠 정도로 완벽한 어시였다. 제 뒤를 지키고 선 채 사각을 노리는 에스퍼를 처리하고 힘이 달린다는 느낌이 들면 빠르게 채워 줬다.
마치 그의 손에 놀아나는 마리오네트라도 된 기분이었다.
이곤은 손에 묻은 피를 닦아 내며 강우신을 쳐다봤다.
“도대체 얼마나 훈련을 해야 그런 실력이 나오는 거지.”
그의 물음에 강우신은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 답했다.
“훈련에 끝이 어디 있어.”
꽉 막힌 대답에 이곤은 괜히 물어봤다고 후회하며 혀를 찼다.
“재수 없긴.”
“다만 방법이라면 따로 있긴 하지.”
“훈련의 방법?”
“그래, 시현 선배의 훈련, 모의 대련, 게이트 클리어 솔로 플레이 영상…….”
우신은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 가며 시현의 활동을 읊었다.
“그게 뭐.”
“그 모든 상황에 내가 있다면 어떤 포지션을 맡을지 생각하고 연습했어.”
“뭐? 농담이지?”
성시현의 움직임을 흉내 내려는 에스퍼들이 종종 그녀의 유명 솔로 플레이 영상을 카피하는 훈련을 한다는 말은 들어 봤다.
하지만 끽해야 삼일을 못 갔다. 이유야 단순했다. 본다고 따라 할 수 있는 몸짓이 아니기 때문이다.
에스퍼조차 분석이 힘든데 그걸 가이드가 했다고? 그것도 그녀의 모든 자료 영상을? 자그마치 12년분의 영상이었다.
농담하지 말라고 하려는데, 그러기엔 강우신의 눈빛이 너무나도 진지했다.
무엇보다 조금 전 전투에서 자신의 움직임을 모조리 파악하고 어시하는 강우신의 실력이 그 말의 증거였다.
놀라워하며 인상을 찡그리자 우신이 어깨를 으쓱였다.
“정점에 선 사람 옆에 서기로 마음먹었으니까.”
“그게 마음먹는다고 돼? 그러다 그 사람의 가이드가 못 되면 어떻게 하려고.”
그 말에 우신이 단호하게 답했다.
“선배의 가이드가 아니라면 내가 이 일을 할 이유가 없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지독하리만큼 맹목적이었다.
저 정도면 영혼에 성시현이 각인이 된 채로 태어난 게 아닐까 싶었다.
이곤이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네 선배 안 따라가?”
“안 그래도 더 이상 지체할 시간 없어. 서둘러야…….”
말을 끝맺기도 전에 두 사람의 몸이 기울 정도로 공간이 흔들렸다. 벽면의 금이 더 깊어지며 천장이 서서히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