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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75)화 (175/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75화

붉게 물든 양복과는 어울리지 않는 금발 머리와 예쁘게 들어간 보조개까지.

민지민은 꼭 나쁜 짓을 하고 난 다음이면 저렇게 천진하게 웃었다.

지금도 반갑다는 듯 웃는 얼굴과 달리, 방아쇠에 손가락이 놓여 있었다.

언제든 당길 수 있게 말이다.

나는 손을 휙 저어 그가 겨눈 총을 쳐냈다.

“네 손으로 다 죽여 놓고 태평한 소리 하는 건 여전하네.”

“저중 보고 싶은 얼굴이라도 있었어요? 그럼 좀 남겨 놓을 걸 그랬나?”

지민은 아쉽게 됐다는 듯 헤실헤실 웃었다. 나는 무표정으로 그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내가 누군지 이제 확신하는 모양이네.”

내 물음에 눈매를 휘며 웃던 지민이 웃음기를 지우며 답했다.

“네, 그래서 말했잖아요. 기다렸다고. 대단히 오래.”

민지민은 원체 가볍기로는 제일가는 놈이었다. 그건 그가 내 후배로 있을 때가 정점이었다.

그는 보란 듯 사고를 친 다음 책임자인 나를 불러냈다.

그리고 나서 지금처럼 이런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진짜 엉망으로 만들고 싶은 건 나라는 듯이 말이야.”

그때의 민지민을 회상하며 읊조리자 그는 내 말이 흡족한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머리로만 선배라고 알고 있었지, 막상 이렇게 마주 서서 이야기를 나누니까…… 뭐랄까 자꾸만 웃음이 나네요.”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입가를 가리는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내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선배는 아마 모를 거예요.”

나는 불쾌감에 한쪽 눈을 찡그렸다.

“나 역시 후회하고 기다려 왔어.”

“정말요?”

“그래, 네가 사이코 같은 짓거리를 할 때 진작에 다잡았어야 했어. 선배 된 도리로 말이야.”

지민은 흘러내린 앞머리를 뒤로 넘겼다.

“후회할 것까지야.”

여유가 넘치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런 태도가 마음속 불쾌감을 덜어 줬다.

“여전하네. 6년 전에 머물러 있는 문제아씨.”

“…….”

“내 몸을 실제로 보니까 알겠더라. 얼마나 에너지를 뽑아냈는지. 신인류라도 만들고 싶었나?”

“글쎄, 연구 의의 같은 건 내 관심사 밖이라서.”

“…….”

“말했잖아요. 내 관심은 오직 선배, 너 하나라고.”

“미친놈.”

“걱정 마요. 이 쓰레기들은 선배를 내 손으로 죽인 후에 전부 정리해 줄 테니까.”

민지민이 총구를 다시 들어 보이자 나는 대답 없이 손가락을 까닥였다.

그 행동이 신호탄이 된 듯 지민이 총을 쥔 손을 휘둘렀다. 그 손목을 잡아채려 했으나, 그가 내 정강이를 걷어차는 탓에 무릎을 굽히게 됐다.

곧장 반대쪽 발이 나를 짓누르려는 듯 뻗어 왔지만, 몸을 굴려 피했다.

“후배 애정을 피해서 쓰겠어요?”

지민은 그 말과 함께 들고 있던 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에너지가 실린 탄알은 유도탄처럼 내 움직임을 쫓았다.

나는 필사적으로 달려 캡슐 옆에 있는 탁자를 엎어서 막았다. 하지만 총알이 나무를 뚫고 나와 내 허벅지에 닿았다.

방어했는데도 총알이 스친 부위가 불에 덴 듯 뜨거웠다. 곧장 등 뒤에서 지민의 여유로운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뭐 해요. 어서 힘을 꺼내지 않고.”

지금껏 난 그의 공격에도 힘을 꺼내지 않고 있었다.

지민은 내가 아직 여유를 부린다 여기는지 서둘러 공격을 연계하지 않았다.

나는 탁자의 뚫린 구멍으로 그의 모습을 살폈다. 그는 처음 공격한 그 자리 그대로 서 있었다.

그 위치를 확인하곤 등허리에 있는 칼집에서 단도를 꺼내 쥐었다.

“내가 이 순간만을 얼마나 기다려 왔는데. 그 힘으로 내 목이라도 졸라 줘요.”

지민은 위협하듯 허공으로 탄을 두어 방 쏘아 올렸다.

“기세는 말뿐이었나 봐. 이렇게 뒤꽁무니 빠지게 피하는 꼴이라니.”

싸구려 도발에도 내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지민은 흥이 식었다는 듯 입매를 찌푸렸다.

“부끄러움이라도 타는 겁니까?”

그 말과 함께 지민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속이 울렁거렸다. 그의 특기 중 하나인 허상이었다.

나는 곧장 주변을 둘러봤다. 공간 자체를 비틀었는지 순식간에 내가 선 곳이 낭떠러지가 되었다.

속지 않으려 눈을 부릅뜨며 정신을 집중하자 주변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나는 불길함을 느끼고 단도를 강하게 쥐었다. 그가 그 이상의 수를 쓰기 전에 단도에 힘을 실어 던질 생각이었다.

가까스로 탁상 너머의 민지민을 돌아보며 단검을 쥔 손을 올리려는데, 그대로 몸이 굳었다.

민지민이 서 있어야 할 자리에 피투성이의 강우신이 서 있었다.

“……!”

그가 제 모습을 달리 보이게끔 허상 능력을 사용한 것이었다.

머리로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데 눈에 보이는 형상에 몸이 동요했다.

흔들리는 찰나를 놓치지 않고 강우신의 모습을 한 지민이 활짝 웃어 보였다.

“여전한 건 선배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네.”

탕탕-

민지민이 쏜 탄이 그대로 단도를 든 내 팔뚝을 관통했다. 나는 그대로 탁자 아래로 쓰러졌다.

민지민은 서부의 총잡이를 흉내 내듯 총구 밖으로 나오는 연기를 후, 하고 불었다.

“설마 끝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이제 슬슬 본 게임 시작하게 억지 부리지 말고 능력 꺼내요.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

민지민이 서서히 내가 쓰러진 탁자 쪽으로 걸어왔다. 그의 들뜬 마음을 대변하듯 노란 홍채가 빛났다.

탁자 앞에 선 지민은 주저 없이 탁자를 걷어찼다.

그사이 나는 캡슐 뒤로 자리를 옮긴 상태였다.

“선……!”

민지민이 날 부르려는 순간 나는 감각에만 의지한 채 몸을 틀어 지민의 손에 들린 총을 걷어찼다. 뒤이어 그의 몸통 위로 올라탔다.

뒤로 넘어진 지민이 나를 어떻게든 밀어내려 했지만 이미 목젖에 닿을 듯 깊게 들어온 칼날 탓에 다른 곳에 힘을 분산하지 못했다.

덕분에 허상이 깨지면서 민지민이 제 모습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제야 눈을 뜨고 지민을 내려다봤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건 여전하구나.”

“더 한 수는 많아요, 그러니까 사람 그만 화나게 하고 이만…….”

민지민이 나를 밀쳐 내려는 순간, 내가 먼저 손바닥을 그의 이마에 갖다 붙였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놀란 지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손바닥으로 힘을 모았다.

“나랑 겨루고 싶다고?”

지민에게 총상 입은 곳에서부터 팔뚝을 따라 흐르던 피가 그의 얼굴 위로 뚝뚝 떨어졌다.

“이게 뭐 하는…….”

“그러기엔 한참 이르지.”

나는 말과 동시에 손바닥에 응집한 힘을 발산했다. 그건 공격하는 것과 달랐다.

오래전 홍 반장에게 했던 것처럼 접촉을 이용한 정신 감응이었다.

그대로 민지민의 에너지를 삽시간에 빨아들였다. 지금껏 감응한 에너지들과 차원이 달랐다.

처음 성시현의 에너지에 감응했던 것과 유사했다.

무겁고 강한 힘이 내 몸속을 거칠게 휘젓는 것만 같았다.

그 고통에 저절로 코피가 흘렀다. 민지민 역시 고통을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렸다.

끝내 그가 나를 강하게 밀쳐 냈고 나는 그대로 나뒹굴었다.

민지민은 몸을 뒤집곤 숨을 거칠게 토해 냈다.

“나한테 무슨 짓을……!”

쏟아지는 기침에 쉽사리 말을 잇지 못하던 지민은 눈이 충혈된 채로 나를 돌아봤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가 그대로 동상이 된 듯 얼었다. 그의 에너지를 받아, 나 역시 그가 가장 마주하기 껄끄러운 이의 얼굴로 변했기 때문이다.

바로 민지민 저 자신이었다.

“시발, 그만둬.”

지민의 얼굴이 모질게 구겨졌다. 나는 대답 없이 일어나 그에게 달려들었다.

이내 그와 격하게 부딪혔다. 단검도 권총도 놓친 지 오래였다. 그저 두 주먹에 힘을 실어 무차별적으로 구타했다.

민지민이 빠르게 자세를 고쳐 잡고 공격을 막아 보았지만, 기본기를 겨루는 공격이 반복되자 먼저 자세가 흐트러지는 건 그였다.

나는 끝내 지민의 다리를 걸고 넘어트렸다.

그리고 곧장 그 얼굴 위로 주먹을 날렸다. 지민은 가차 없이 날아오는 내 주먹을 두 팔로 겨우 막았다.

이내 시뻘겋게 양팔이 부어올랐다. 나는 그제야 주먹질을 멈추고 지민을 내려다봤다.

“민지민.”

내 부름에 지민이 가만히 날 올려다봤다.

“날 이기고 싶다고?”

“…….”

“힘을 꺼내 보라고?”

나는 처음부터 민지민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를 처음 만난 6년부터 노골적이었으니까.

그래서 작전을 시행하기 전부터 민지민과 주먹을 맞댈 이 순간을 생각했다.

그때가 오면 그가 그토록 바라는 성시현의 힘이 아닌 그 자신의 힘으로 무릎 꿇게 해 주겠다고.

나는 코피를 닦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보기엔 넌 네 힘조차도 백 퍼센트 운용 못 하고 있어. 그런데도 타고난 능력 하나만 믿고 오만했구나.”

나는 민지민의 얼굴을 벗고 도로 내 모습으로 돌아왔다. 민지민의 금발과는 달리 빛 아래서 투명하게 빛나는 황금빛 머리칼.

지민은 그 모습에 눈이 멀기라도 한 듯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네가 정말 강해지고 싶었던 거라면 나한테 집착하는 게 아니라.”

“…….”

“너 스스로의 실력에 집착했어야지.”

나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총을 잡았다. 탄을 확인하니 딱 한 발 남아 있었다.

그 일련의 행동을 하는 동안 지민은 누운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그의 머리에 장전한 총의 슬라이드를 당기곤 들이밀었다.

“할 말은.”

그러자 지민은 붉게 피멍 든 두 팔로 제 눈가를 가리더니 희미하게 웃었다. 아까와는 다른 텅 빈 웃음이었다.

“눈 부셔요. 선배.”

“…….”

“그래서 아무것도 안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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