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73화
콰앙-
한 번 더 폭발음이 일며 센터 주변의 구조물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게이트 오픈 직후 상황이라기엔 돌아가는 꼴이 영 심상치 않은데.”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에 이곤이 낮게 속삭였다. 그의 말에 동감하듯 불안이 감돌았다.
“이거 게이트 클리어 전까지 아무것도 못 하게 된 거 아니야?”
“작전 중 브레이크라도 일어나면 큰일이긴 하죠.”
조이현과 김형도가 걱정이 담긴 목소리로 말을 나누었다. 어느새 각자의 머릿속에서 작전에 대한 생각이 불투명해지고 있었다.
보다 못한 이 팀장이 상황을 반전시키려 입을 여는데, 내가 그의 말을 가로챘다.
“기회예요.”
이 팀장이 놀란 눈으로 날 바라봤다. 나는 강경하게 밀어붙이듯 팀원들을 돌아보며 답했다.
“게이트 규모는 모르겠지만 상황을 봐선 아마 얼마간 센터 안은 패닉 상태일 겁니다.”
“그건 달리 말해 센터 내부가 한산하단 소리겠네요.”
강우신이 내 말에 힘을 실듯 그렇게 말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이 도운 거죠.”
이제 와 하늘이 돕는다니 우스운 소리였지만 이보다 더 적절한 말도 없었다.
자칫 모든 작전이 미뤄질 수도 있는 위기였다.
센터 내에 게이트가 생겼다는 건 국가적 재난이었다. 이럴 때 센터를 무너트리자는 말이 각자의 양심을 두드릴지 몰라도…….
“잊지 마세요. 우린 지금 자원봉사를 위해 모인 게 아닙니다. 이 작전을 성공시키려면 뭐든 기회로 만들어야만 해요.”
내 말에 잠시 당황했던 이들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나는 창 너머를 한 번 흘기곤 크림색 정장 재킷을 입었다.
“그럼 애도를 표하러 가 보죠.”
* * *
-다시 한번 알립니다. S급 게이트 출현. 실제 상황입니다. 전 직원은 체육관으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센터 중앙 건물 로비를 울리는 안내 방송에 사람들은 서둘러 건물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때 정문으로 당당히 걸어오는 사람이 보였다. 소명이었다.
그녀는 긴장한 기색을 지우듯 정장 재킷을 정리하며 로비 중앙으로 걸음을 옮겼다.
데스크에서 짐을 챙기던 관계자와 눈이 마주친 건 그때였다.
“소 대리님?”
관계자는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소명 쪽으로 다가왔다.
“도대체 지금까지 어디 있다가 이제야 오십니까, 호출도 안 받고 하루 동안 잠적이셔서 상부에서 난리가 났어요.”
“일이 있어서. 그런데 무슨 난리지?”
“방송 못 보셨어요? 지금 여기 상공에 게이트 출현했답니다. 이러고 있으실 때가 아니에요. 빨리 집공팀 지휘권을……!”
관계자가 그 말과 함께 무전기를 건넸다. 그걸 받기 위해서는 그가 서 있는 데스크 가까이 가야 했다.
소명은 잠시 관계자를 바라보다 선 자리에서 답했다.
“집공팀이라면 벌써 당도한 거 같은데.”
소명의 말에 데스크 아래 몸을 숨기고 있던 에스퍼들이 움찔 어깨를 떨었다.
관계자 역시 웃음기가 사라졌다.
“눈치 빠른 건 여전하시네요.”
“눈치 하나로 여기서 몇 년을 버텼는데.”
“소 대리님이 돌아오면 잘 모시라고 하셔서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데스크 아래 숨어 있던 에스퍼들이 튀어나왔다.
소명도 곧장 방어 태세를 취했다. 한번에 몰아치는 에스퍼들의 공격에 당황한 것도 잠시 곧장 회색 후드 티를 입은 사내가 합세했다.
소명이 때를 봐 신호를 주면 나오기로 한 한지원이었다.
원래는 그를 잡았다는 말로 시간을 벌 생각이었으나 이 또한 상관없었다.
지원의 후드가 벗겨지며 얼굴이 드러나자 에스퍼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지원 에스퍼?”
놀란 이들이 주춤한 틈을 타 지원은 거리낌 없이 공격했다.
작은 폭파에 센터 로비는 순식간에 난장판이 됐다.
모두의 시선이 그곳에 쏠린 사이 양하나와 강우신은 이곤의 안내를 받아 신속하게 지하로 향했다.
* * *
센터 내부로 들어갈수록 길이 실타래처럼 꼬여 있었다.
센터를 집처럼 삼고 살았다지만, 실상 나는 게이트를 전전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내가 벌어다 준 돈으로 건물을 올리는 줄로만 알았지, 땅 아래서 무슨 짓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곤이 앞장서 도착한 곳은 비상계단이었다. 나는 그의 거침 없는 걸음을 뒤따르며 입을 열었다.
“익숙해 보이네.”
“민지민 따라 입구까진 두어 번 와 봤으니까.”
이곤은 층계를 한참 내려가다 나온 문 앞에 섰다. 낡은 철문을 열자 평범한 창고가 나왔다.
먼지가 가득했다. 조명을 찾으려 벽을 더듬거리는데 스위치가 없었다.
의뭉스럽다는 듯 이곤에게로 시선을 돌리자 그는 능숙한 움직임으로 쌓인 상자 뒤에서 스위치를 찾았다.
그리고 그것을 누르자 벽면이 갈라지며 빛이 새어 나왔다.
숨겨진 입구였다.
나는 기가 찬 나머지 작게 실소했다.
“참 꼼꼼히도 숨겨 놨네.”
그렇게 내부로 들어가는데 벽면에 붙어 너머를 살피는 이곤의 표정이 어두웠다.
“왜 무슨 일이야.”
내 물음에 이곤이 시선을 나와 내 뒤에 선 우신에게로 돌렸다.
“지나치게 조용해.”
“뭐?”
“지키고 서 있어야 할 사람이 없어.”
그의 말에 고개를 빼꼼 내밀어 보니 정말로 조용했다.
그곳엔 허름한 창고와는 대비되는 최첨단 문이 설비돼 있었는데, 문의 설비와는 다르게 앞을 지키고 선 이가 한 명도 없었다.
나를 따라 나온 우신이 한마디 덧붙였다.
“정말이군. 보안이 철저하다 알고 있었는데.”
“……일단 가 보자고.”
나는 품에서 카드 키를 꺼내 인식기에 댔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곤을 쳐다보자 그 역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이었다.
“왜 이러지? 분명 민지민이 이렇게 방에 들어갔는데.”
허둥지둥하는 그의 모습에 우신의 낯이 어두워졌다.
“설마 함정을 팠다거나, 어쭙잖은 짓을 한 건 아니겠지?”
날 선 목소리에 이곤의 표정도 급속도로 구겨졌다.
“내게 믿음이 없는 건 이해하겠지만 공과 사는 구분해야지. 지금이 말씨름할 땐가?”
의심의 그림자가 서로에게 드리워질 때, 나는 인식기를 빤히 쳐다보다 주먹에 힘을 실어 문을 후려쳤다.
쾅-
그 모습에 두 사람은 입을 다물고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놀란 시선에 나는 태연하게 답했다.
“답답한 건 못 참아서.”
키를 찾은 건 어디까지나 차선이었다. 만약 소명이 키를 찾아오지 못했다 해도 예정대로 작전은 실행할 생각이었다.
이렇게 힘으로 밀고 들어가는 방법으로라도 말이다.
그렇게 주먹에 힘을 실어 문을 두어 번 더 후려치자 두꺼운 철문이 내 주먹 모양대로 휘어지며 열렸다.
이내 열린 틈새로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가 흘러나왔다.
발로 문을 밀치고 들어가 안을 살펴보니, 사방에 붉은 전등이 점멸하며 비상사태를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고 있었다.
바닥에는 경비원이 쓰러진 채였다.
“모두 어디 갔나 했더니.”
이곤이 말한 문을 지켜야 할 놈들이 하나같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맥을 짚었다. 기절한 상태였다.
“아주 깔끔한 솜씨인데요.”
내 뒤를 따른 우신이 그렇게 말했다.
“내부 분열이라도 일어난 걸까?”
“누구와 누가.”
두 사람의 대화에 나는 반사적으로 한 이름을 뱉어 냈다.
“민지민.”
“…….”
이런 긴급 상황에 제 편을 이 모양으로 만들고 분열을 자처할 놈은 내가 아는 한 그놈밖에 없었다.
두 사람 다 그 사실에 공감하는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이 안에서부터는 정보가 하나도 없으니 빠르게 탐색하자, 메인 실험장을 찾아, 아마 그곳에 ‘몸’이 있을 거야.”
그렇게 앞장서서 속도를 올렸다.
안쪽에 이어지는 복도는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 생각보다 내부가 더 넓은 듯했다.
그래서 잠긴 방문들을 사정없이 부수고 들어가 안을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셋이서 지하 내부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와중, 복도 끝에서 몇몇 사람들을 마주쳤다.
언제부터 거기 서 있었는지 그들은 이곳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이봐.”
이곤이 그들에게 다가서려 하자 내가 그의 손목을 잡았다.
“잘 봐.”
내 말에 이곤도 행동을 멈추고 그들을 살폈다. 어깨는 처지고 이곳을 노려보는 노란 눈엔 초점이 없었다.
동굴에서 본 에스텔 후유증으로 자의를 잃은 에스퍼과 동일했다.
몸이 성치 않은 걸 보아 하니, 경비원들과 마찬가지로 정신을 잃고 있었다가, 내 에너지에 반응해 일어난 모양이었다.
나는 잠시 내 양옆을 꿰차고 있는 강우신과 이곤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저것들 나한테 반응해. 그러니까 내가 유인할게. 그 틈에 실험실 찾아.”
“혼자서 저 수를 다 상대하는 건 무리예요.”
“이 좁은 복도에서 다 같이 엉키는 게 더 짐이야.”
냉정하지만 사실이었다. 밖엔 게이트가 있고 안은 온통 적투성이였다.
가능한 일을 배분해 빠르게 작전을 맞춰야 했다.
내 단호한 의지에 우신은 작게 혀를 차곤 실험실을 찾아오겠단 말과 함께 이곤의 손목을 끌고 반대 복도로 달렸다.
티격태격하며 달려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보란 듯 더 강하게 에너지를 발산했다.
그 힘에 반응하듯 에스퍼들의 눈빛이 형형해졌다.
“쿠어억.”
이내 그들이 짐승 같은 소리를 내며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두 사람이 사라진 복도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그리고 내게 달려드는 에스퍼를 후려치며 최대한 속도를 냈다.
웬만한 통증에 무감해진 상태일 테니, 이들을 멈추게 하려면 죽이는 수밖에 없을 터였다.
그 대신 나는 최대한 구불거리는 길목을 이용해 그들에게 혼란을 줬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방 안으로 몸을 숨겼다. 숨은 동시에 수도꼭지를 꽉 잠그듯 몸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숨겼다.
내 기척이 뚝 잘리자 에스퍼들은 복도를 헤맸다.
나는 그들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숨을 참았다가 인기척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숨을 내쉬었다.
그제야 들어선 방 안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어두운 방 안으로 거대한 원통의 실루엣이 엿보였다. 나는 시계의 조명을 이용해 내부를 비추어 보았다. 그리고 그대로 몸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방 안엔 동굴에서 보았던 것과 같이 커다란 캡슐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