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71화
소명은 부탁받은 두 가지를 내밀었다.
하나는 센터 지하로 통하는 카드 키였고 나머지 하나는 지난 6년간 집공팀 헌터들의 성장 그래프였다.
집공팀에 처음 들어갔을 때부터 의아했다. 달에 한 번씩 능력을 기록하고 등급까지 매기는 시스템은 이제 막 성장해 가는 아카데미생들에게나 적용할 법한 것이었다.
그런데 6년간 모아 놓은 그래프를 보자 단번에 그 이면이 보였다.
“이건 뭐, 집공팀을 앞세워 거대한 실험을 하고 있던 거였네.”
그래프를 보던 윤가경이 혀를 찼다. 나 역시 동감하는 바였다.
유제이를 비롯해 급성장한 이들은 하나같이 특정 시점을 기준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그들에겐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는데.
“하나, 성장 가능성 5% 미만일 것.”
나는 약을 먹은 것으로 예상하는 자들을 골라내 표시하며 나직하게 읊조렸다.
“둘, 민지민의 라인일 것.”
“마지막, 힘에 대한 강한 욕망이 있을 것. 맞죠?”
내 뒤에 서 있던 우신이 마지막 말을 이었다. 집공팀에서 누구보다 그들을 가까이 두고 본 우신이었기에 그 안에 일어난 힘의 싸움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김형도가 손뼉을 쳤다.
“아니 어떻게 꺼림칙한 사람들을 고민도 없이 순식간에 골라내요.”
“이미 자료가 있으니까요.”
“자료요?”
그들은 모두 에스텔을 먹은 에스퍼와 그래프 양상이 같았다. 그것들만 대조해 봐도 확연하게 눈에 띄었다.
나는 양하나의 그래프를 쥐었다. 집공팀에 들어온 지 오래되지 않아 자료의 양이 적었지만, 확실히 묘하게 그들과 그래프의 양상이 비슷했다.
‘나도 어떻게 보면 그 힘을 끌어다 쓰는 거니 비슷한 걸지도.’
사실 정신 감응으로 힘을 끌어다 쓴다는 것도 옛말이 됐다.
동굴에서 에스텔 농축액을 맞은 이후 더 이상 능력이 동나지 않았다.
덕분에 기초 체력도 덩달아 올라가 깨어난 이후론 상태가 최상이었다.
나는 그래프 표를 내려 두며 말을 이었다.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어요.”
내 말에 소명을 비롯한 사람들의 시선이 모였다.
“뭐죠?”
“동굴에서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 유제이와 맞부딪혔는데 그때 그가 한 말이 조금 마음에 걸려서요.”
당시 유제이의 모습을 더듬었다. 싸우다가 힘이 밀리자 그는 가지고 있던 에스텔을 먹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경고가 무색하게 좋기만 하네.”
그의 말을 그대로 재연해 주자 윤가경의 미간이 좁아 들었다.
“그건 꼭 그전까지 에스텔을 안 먹어 본 사람 같은 말인데요.”
“그래서요. 조금 더 고민해 볼 필요가 있어요. 에스텔을 복용한 이들은 대부분 부작용이 왔어요. 그런데 유제이는…….”
“그래, 눈으로 보기엔 제법 멀쩡해 보이지.”
그때 소파에 앉아 팔짱을 끼고 이야길 듣던 소명의 눈이 커졌다.
그녀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시선을 옮기자 이제 막 합류한 듯 방으로 들어오는 김형도와 이곤이 보였다.
소명은 곧장 입을 열었다.
“쟤가 왜 여기에.”
그녀의 반응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주요 인원 탈주로 상부가 비상이라면서요.”
“비상이죠. 양 헌터나 강우신 가이드에 한지원 헌터까지.”
“네 사람이란 건.”
“유제이 헌터도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이곤이 사라진 건 몰랐다는 말인가요.”
이곤 역시 그녀가 책임지는 집공팀의 멤버이다. 그런데 책임자가 몰랐다는 건.
내가 눈을 가늘게 뜨자 소명은 뜨끔한 듯 시선을 피했다.
“뭐죠.”
다시금 되묻는 말에 별수 없다는 듯 답했다.
“집공팀 멤버 중에서도 민지민 헌터의 라인에 있는 이들은 제 통제권 밖이에요.”
“그런데 유제이만 실종이란 소린.”
“민지민 헌터가 직접 그의 실종만 신고했어요. 그 직후 곧장 상부로 불려 가 이제껏 소식이 없고요.”
“소식이 없다라.”
소명은 속일 생각은 없었다는 듯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의 울타리 안에 있는 헌터들 죄다 응답 없습니다.”
그녀의 말을 끝으로 나는 이곤을 쳐다봤다. 뭔가 아는 게 있냐는 눈빛을 보내자 이곤은 고개를 작게 저었다.
이후 이야기는 다시 센터 잠입에 대한 것으로 돌아왔다.
공통된 목표는 센터에 뿌리 박힌 지난 연구의 축을 박살 내고 성시현의 신체를 탈환하는 것.
그렇게 정리하고 나니 모두 제 역할을 찾은 듯 표정이 단단해졌다.
* * *
나는 건물 옥상으로 향했다. 이 팀장이 급히 사들인 폐건물이었기에 어느 것 하나 멀쩡한 게 없었다.
옥상 문을 열자 새카만 하늘과 환한 건물들의 불빛이 보였다.
경주 사옥에서 보던 풍경과는 달랐다. 오히려 내겐 이쪽이 더 익숙했다.
특히 작은 건물들 너머로 우뚝 선 타워가 보였다. 센터의 중앙 건물이었다.
내가 일하던 때, 해를 거듭할수록 건물의 층수가 올라가던 게 떠올랐다.
밤인데도 불빛이 꺼지지 않은 그곳을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선배. 괜찮아요?”
나는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돌아보며 답했다.
“선배라고 부르기로 한 모양이네요.”
내 뒤를 조용히 따라온 건 강우신이었다. 지금만이 아니었다. 경주 사옥을 벗어난 순간부터 우신은 한 번도 내가 시야 밖에 나가도록 둔 적이 없었다.
무엇이 그렇게도 걱정되는지 그의 시선이 뜨거워 모른 척하기도 어려웠다.
내 말에 우신은 난간에 기댄 내 옆으로 걸어오며 답했다.
“글쎄요, 아직 완전히 정한 건 아니에요. 선배가 뭐든 괜찮다고 했으니 마음 내키는 대로 부르려는데, 별로예요?”
나는 픽 웃으며 그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마음대로 해.”
“……그래요?”
“응?”
우신이 내 손목을 잡았다.
“어디까지 마음대로 해도 되는데요?”
불쑥 묻는 말에 나는 당황한 얼굴로 눈을 끔뻑였다. 그러자 순간 우신은 가이딩하듯 힘을 흘려 넣었다.
불쑥 예민한 곳까지 들어오는 힘에 놀라 그를 올려다보자 우신이 짓궂게 웃었다.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하길래.”
웃고 있지만, 단단히 심통이 난 모양이었다. 그는 내 손등과 손바닥에 여러 번 입을 맞추었다.
짧게 닿고 떨어지길 반복하는 입술의 촉감이 간지러우면서도 자극적이었다. 그 때문인지 행동을 멈추고 날 빤히 쳐다보는 우신의 까만 눈동자가 묘하게 날 애타게 만들었다.
나는 조금 붉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뭐 때문에 그러는데.”
“……뭐가 말이에요?”
“모르는 척 말고, 뭐가 마음에 안 든 거냐고. 네 말대로 모두와 의견 나누고 있잖아.”
“…….”
“예전처럼 혼자 하지 않을 테니.”
그의 조바심을 달래듯 말하자 우신이 나직하게 답했다.
“착해요.”
“뭐?”
“남이랑 합 맞추는 선배 착하다고요. 그런데 내가 아직 선배 말처럼 앤가 봐요. 샘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네요.”
그가 상상치도 못한 이유를 대며 에너지를 밀어 넣었다.
에스텔을 맞은 직후 에너지가 남아돌아 가이딩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불시에 들이닥친 가이딩에 몸이 달아올랐다.
우신은 내 속내를 다 들여다본 듯 입을 열었다.
“선배는 가이딩을 받지 않고 참는데 도가 텄으니까요. 절대 먼저 해 달라고 하는 법이 없죠.”
혼잣말하듯 속삭인 우신이 이내 나를 끌어안았다.
“잠…… 잠깐만.”
그를 밀어 내려 손에 힘을 가했으나 남은 이성마저 녹이는 가이딩에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꼴사납게 다리에 힘이 풀릴 것만 같았다. 바로 그때 우신의 팔이 내 허리를 휘감았다. 단단하게 허리를 잡고 귓가에 숨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선 그가 고개를 기댔다.
“정말 센터로 갈 거예요?”
왜 이렇게 어리광을 피우나 했더니.
나는 화끈거리는 얼굴로 그를 올려다봤다.
“당연하지.”
“……내가 위험하다고 말려도?”
“…….”
“내가 이렇게 애원해도 가겠죠. 그게 선배니까.”
“그건……!”
내가 무어라 반박하려 하자 우신이 입술을 삼키듯 다가왔다. 뜨거운 숨이 밀려 들어왔다.
우신은 내 뒤통수를 강하게 감싸고는 큰 키로 누르듯 키스했다. 거친 행위에 입가로 침이 번졌다.
숨 쉴 틈조차 주지 않는 격렬한 행위 속에서 강우신은 나와 달리 여유를 부리듯 가이딩을 멈추지 않았다.
이내 사탕 녹인 물에 잠긴 듯한 기분이 되었다.
그의 팔뚝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동시에 그의 앞섶을 가리고 있던 단추 몇 개가 뜯기듯 터졌다.
바닥에 단추가 떨어지는지도 모르고 어느새 난 애원하듯 그를 더 강하게 잡아당기고 있었다.
뒤이어 우신의 입술이 터지며 피 맛이 감돌았다.
겨우 입을 뗐을 땐 우신의 입가로 붉은 피가 번져 있었다. 몽롱한 눈빛에 더해진 그 모습이 제법 자극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입가를 훔치며 한 손으로 그의 얼굴을 훑었다.
“뭐 하자는 거야.”
“내가 막아도, 애원해도 간다면서요. 만발의 준비를 해 둬야죠.”
“……화났어?”
“……조금요.”
밤하늘 같은 우신의 까만 눈이 진지한 빛을 띠고 날 쳐다봤다.
그 시선마저도 지금은 손이 짜릿할 만큼의 자극으로 느껴졌다.
“그래도 조심해. 내가 말했잖아. 에스퍼 앞에서 그런 도발은 위험하다고.”
“그건 다른 에스퍼에 한한 이야기겠죠. 제가 선배 앞에서 왜 그래야 하죠.”
“……뭐?”
“선배 때문이라면 언제든 위험해져도 괜찮아요.”
우신이 한 걸음 다가온 만큼 뒤로 물러났다.
“그래서 어때요, 제 행동이 선배한테 도발이 됐나요?”
그걸 말이라고. 단순히 자극이라 표현하기 민망할 정도로 정신이 아득해진 상태였다.
나는 눈을 피하며 답했다.
“어떻게 아니겠어.”
내 답에 우신이 픽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제법 냉소적인 웃음소리 뒤로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말이 이어졌다.
“그럼 다행이네요. 꼴리라고 그런 거 맞으니까.”
번뜩 그를 올려다보자 우신이 얄궂게 미소 지었다.
“이제야 눈 마주치네. 선배는 돌려 말하면 못 알아듣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제 마음 안 숨길 거예요. 사랑하면 당연히 닿고 싶고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은 거 아니겠어요?”
“너…….”
겨우겨우 마음을 누르고 있는데 그가 날 자극하듯 조금씩 에너지를 흘려보냈다. 그 도발에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우신은 날 가만히 바라보다 낮게 입을 열었다.
“선배 눈에 별이 떴어요.”
“…….”
“그 예쁜 눈으로 지금처럼 나만 봐요. 내 사랑, 나의 선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