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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69)화 (169/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69화

“……이게 무슨.”

주사를 찔러 넣던 최강혁의 얼굴 위로 그림자가 졌다. 주삿바늘이 민지민의 살을 뚫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모습에 민지민은 해맑게 웃어 보였다.

“이미 난 완벽해서 그런 모조품의 도움 따위 필요 없어.”

이내 지민의 시선이 새하얀 캡슐로 이동했다.

“저런 껍데기도 말이야.”

그와 함께 순식간에 저를 억압하고 있던 구속복을 산산이 조각냈다. 상의가 찢어지며 상체가 드러났다.

새하얀 피부 위로 선명한 상처들. 그 모습에 넋을 잃은 최강혁이 겨우 정신을 차리고 민지민 주변을 둘러봤으나, 그땐 이미 경비원 다섯이 모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비명도 없는 찰나의 순간이었다. 최강혁은 자연히 제 다음을 예상했다.

어쩌면 처음 이 일을 맡게 됐을 때부터 예견된 일일지도 몰랐다.

‘내가 괴물 새끼를 키웠군.’

그 생각과 함께 그는 눈을 감았다.

민지민은 제가 찢어 발긴 상의 천 조각으로 피 묻은 손을 닦았다.

붉게 물든 천을 바닥에 떨구고는 흰 캡슐 가까이 걸음을 옮겼다. 최강혁이 입을 놀릴 때부터 지민의 시선은 이곳에 꽂혀 있었다.

능숙한 움직임으로 버튼을 누르자 캡슐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며 안에 곤히 누워 있는 사람의 형상이 드러났다.

지민은 씨익 웃으며 상대의 이름을 불렀다.

“성시현…….”

관을 닮은 캡슐 안에 누워 있는 건 성시현이었다. 6년 전 모습 그대로 박제된 듯 그녀의 시간은 멈춰 있었다.

눈을 감고 있는 평온한 얼굴 탓일까 꼭 깊은 잠에 든 사람 같았다.

하지만 그 모든 게 착각이라는 걸 누구보다 그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지민은 피가 건조하게 마른 손으로 시현의 얼굴께를 쓸었다.

뺨을 훑은 손이 목덜미를 따라 내려오더니 멱 부분에 멈췄다. 품이 넓은 옷 안에 살짝 손가락을 넣어 들추자 그 안으로 바짝 마른 쇄골이 보였다.

그사이 에너지를 있는 대로 빼앗긴 신체는 이미 한계점에 다다랐다.

이 정도를 버틴 게 용할 정도였다.

지민은 도로 옷을 단정히 놓아주곤 힘없이 떨어져 있는 그녀의 손을 잡아 들었다.

“넌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 그 안에 갇혀 있는데 정작 그렇게 되어야 했던 사람은 다시 내 앞에 나타났네.”

민지민은 최강혁의 예상보다 더 뛰어난 두뇌력으로 에스텔을 상용화 단계까지 끌어냈다.

다만 실험실에서 관리 감독을 받으며 각성한 에스퍼와 달리 에스텔로 각성을 시도한 에스퍼는 번번이 돌연사해 버렸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게 양하나였다.

에스텔을 위해 공부하다 알게 된 정신 감응을 사용하는 모습에 번뜩 그녀의 힘이 진짜라면 성시현의 에너지를 온전히 받아 낼 그릇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간의 행보와는 다른 움직임을 보였다.

이빨을 숨긴 채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만 받던 그동안과는 달리 양하나에게 접근하고 일을 만들었다.

“양하나의 이천 게이트 합류라니. 도대체 무슨 생각인 겁니까.”

“최강혁 감시관도 그 애한테 관심 있던 거 아닙니까.”

“그것과는 다르죠. 어떤 힘을 숨기고 있을지 모르는…….”

“그러니까요. 더 크기 전에 제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 안으로 끌어들여야 하죠. 고양이 새낀지 범 새낀지 확인하려면.”

“…….”

뻣뻣한 최강혁의 입을 막기 위해 대충 그럴듯한 말을 뱉을 때까지만 해도 사실 그렇다 할 확증은 없었다.

그의 우려처럼 그때까진 분명 호기심에 가까웠으니까.

그런데 이천 게이트로 떠나기 직전 알게 되었다. 자신을 포함한 강우신이 본능처럼 양하나의 주변으로 모여든 진짜 이유를 말이다.

지민은 늦은 저녁 한영원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연구실에 들렀다.

평소엔 감옥 같은 철창 안에서 꿈쩍도 하지 않더니 무슨 일인지 영원은 성시현의 캡슐 가까이에 기대 잠들어 있었다.

열린 캡슐을 닫으려는데 시현의 손가락이 움찔거렸다.

일순 숨을 참은 지민이 그녀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성시현?”

그렇게 그녀를 부르는 순간 거짓말처럼 시현이 눈을 떴다.

이미 뇌사 판정을 받은 그녀였다. 있을 수 없는 일에 지민은 사고가 정지해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뒤이어 그녀의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전혀 상상하지 못한 종류의 것이었다.

“곤아……. 미안해.”

혼잣말 같은 웅얼거림이었지만 지민의 귀에는 선명하게 들렸다.

그는 도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눈물 고인 얼굴로 잠든 시현의 모습을 한참 내려다봤다.

그때 지민은 깨달았다. 양하나가 말도 안 되는 성장세를 보인 이유도, 제가 그녀에게 끌린 이유도 말이다.

지민은 잡고 있는 시현의 손등 위로 가볍게 입술을 맞추고 도로 그녀의 가슴께에 가지런히 놓았다.

“잘 자, 양하나.”

이렇게 우발적으로 일을 만들 생각은 없었지만, 그날 동굴에서 성시현의 얼굴을 한 그녀를 보고 있자니 더 이상 가짜를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됐다.

지민은 캡슐을 도로 닫고 유유히 바닥에 널브러진 사람들의 시체 위에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듯 문 쪽을 바라보고 섰다.

시현이 누워 있는 캡슐을 열었을 때부터 시끄럽게 울려 대는 경보기가 꺼질 생각을 안 했다.

* * *

대각선 횡단보도 앞에 선 소명은 초조한 듯 다리를 거세게 떨고 있었다.

선글라스를 쓰고 있지만, 그 안으로 숨긴 불안한 낯빛이 전부 가려지지 않았다.

신호등이 초록 불로 바뀌고 사람들이 빠르게 건너감에도 소명은 좀처럼 선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도대체 언제 온다는 거야.”

그렇게 읊조리던 소명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내가 미쳤지.”

불시에 몸을 뒤로 확 돌리는데 그 순간 커다란 카니발 한 대가 거칠게 코너링하더니 딱 소명의 앞에 멈춰 섰다.

짙게 선팅된 탓에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음에도 소명은 그 안에 탄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혀를 차는 순간 보조석의 창문이 살짝 내려갔다.

눈매만 보일 정도로 내려간 창 안으로 시건방진 눈을 한 여자가 입을 열었다.

“코드.”

애들 장난 같은 말투에 소명은 잠시 주저하다 답했다.

“……원숭이 다리털.”

유치한 말을 입에 올린 순간 뒤의 문이 열리며 익숙한 두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그림자처럼 새카만 옷으로 중무장한 강우신과 한지원이었다.

지원은 신기한 광경을 목격한 듯 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진짜 오실 줄 몰랐어요.”

그 말과 함께 손을 건넸지만, 소명은 그를 넘긴 채 손잡이를 잡고 차에 올라탔다.

그녀를 태운 차는 순식간에 출발했다.

소명은 어두운 내부에 들어서서 선글라스를 휙 벗어 던지곤 버럭 입을 열었다.

“아주 미쳐 돌아가네. 도대체 무슨 짓들을 벌이고 다니는 겁니까?”

평소 그녀답지 않게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제가 당신들을 보고도 없이 만나러 온 사실이 알려졌다간 중징계를 면치 못할 겁니다. 알고 있어요?”

분풀이하듯 소명이 강우신을 쳐다봤다. 우신의 입매가 호선을 그렸다.

“외부에서 보기엔 조용해 보이더니 내부가 생각보다 소란한가 보네요.”

“모르는 척하긴. 거기야 항상 그렇다는 걸 가장 잘 알 사람이 도대체 무슨 짓거리들을 하는지 상부가 완전 뒤집혔어요.”

강원도 산사태 피해로 센터 집공팀이 파견됐다. 그 책임자인 소명 역시 그곳에 갔다.

그녀가 동굴 쪽에 긴급 도착했을 땐, 사람인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비쩍 마른 에스퍼들이 여럿 실려 나왔다.

그리고 그들 사이엔 정신을 잃은 최강혁과 그를 둘러업고 나온 민지민이 있었다.

게이트들을 막기에도 역부족한데 중요 인력이 도대체 이런 곳에서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따져 묻고 싶었지만, 그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었다.

소명은 오랜 현장의 감으로 곧 폭풍이 불어닥칠 것을 예감했다. 그날을 회고하며 소명이 혀를 찼다.

“주요 인력 네 사람이 이탈한 것도 알 사람은 전부 알고 있어요. 다만 아직 상부에서 무슨 일인지 입을 닫고 있고.”

소명은 그간의 일만 떠올리면 골이 아프다며 관자놀이를 눌렀다.

에스텔인지 뭔지 그런 거야 소명의 관심 밖의 일이었다. 저는 오롯이 게이트 클리어와 게이트 브레이크 건의 대응에만 신경 쓰니까.

그게 센터의 존재 의의라 여겼다.

그런데 지난 밤 실종된 강우신에게 걸려 온 전화는 그런 생각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자신이 상부 보고도 없이 이곳에 앉아 있는 게 그걸 증명했다.

초조하게 앉아 있는 소명을 보고 우신이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물건은요.”

그 말에 소명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녀는 입술을 짓이기다가 되레 물었다.

“내 질문이 먼저입니다.”

“…….”

“‘선배’가 살아 있다니. 그 말에 책임질 수 있습니까?”

그랬다. 강우신이 전화로 한 말은 그게 전부였다. 제가 원하는 물건을 가지고 와 달라, 선배가 살아 있으니까.

그게 거짓이기라도 하면 죽일 거란 눈을 하자 우신이 낮게 웃었다.

“경계심 짙은 눈빛에 비해 짚이는 곳이 있긴 했나 봐요. 원래라면 들은 체도 하지 않았을 사람이.”

“……그냥 막연하게 선배라면 사실 죽지 않고 살아 있을 수도 있다 생각했으니까. 무엇보다 다른 놈이 지껄였다면 당연히 무시했을 말이지만, 그걸 말한 게 강우신 네 놈이기도 하고.”

그녀의 답이 정답이라도 된다는 듯 우신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답이에요.”

차가 빠르게 달리며 창밖으로 풍경이 흩어졌다. 그 너머로 보이는 건물들이 눈에 익었다.

일부러 센터에서 최대한 먼 곳으로 접전지를 고른 거였는데, 이 풍경은…….

“지금 어디로 가는 겁니까. 설마 센터로 가는 건 아니겠죠?”

불안함에 휩싸인 목소리에 지원이 답했다.

“그건 아니에요. 단지 그…… 근처랄까?”

“뭐?”

“그게 등잔 밑이 어둡다고.”

지원도 난감한 얼굴로 우신을 쳐다봤다. 우신은 개의치 않은 듯 어깨를 으쓱이곤 답했다.

“걱정 마요. 지금은 도착해서 벌어질 상황만 생각해요. 먼저 도착해 있을 테니까요. 그 반가운 얼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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