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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66)화 (166/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66화

센터의 주요 인력 세 명이 잠적했다. 내가 도주했을 때처럼 대대적으로 수배령이 떨어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강원도 계량산 일대에서 산사태가 일어나며 주변 도로가 통제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보고된 사상자는 없으며 원인 규명을 위해 센터 소속 에스퍼가 파견돼…….

나는 티브이를 껐다. 주요 방송국에서 모두 알맹이 없는 내용만 보도했다.

마치 내가 서초 게이트에서 돌아오지 못했을 때처럼 말이다.

“우리에 대한 속보가 벼락처럼 떨어질 줄 알았더니 무서울 정도로 고요하네.”

그 말과 함께 리모컨을 내려 두자 옆에 앉아 있던 강우신이 답했다.

“마치 폭풍 전야처럼 말이죠.”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영원의 상태를 살피러 이 팀장이 방을 뜨고 일순 상황은 정리됐다.

이곤을 포함한 사람들이 떠난 빈방에서 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다 이내 티브이를 껐다. 머리만 더 복잡해졌지만 덕분에 결론이 섰다.

“상대가 어떤 이유에서건 재정비하는 이때 우리도 다음 행동을 빨리 준비해야 해요.”

계속해서 옆자리를 지키고 있던 우신이 내 말을 긍정하려던 그때 방문이 열렸다.

“동감합니다.”

“이 팀장님.”

이 팀장과 그의 뒤로 그림자같이 윤가경이 들어왔다.

두 사람은 약속한 듯 빈자리를 꿰찼다.

“한영원 씨 상태는요.”

이 팀장을 향해 그렇게 묻자 그는 조금 피로한 낯을 문지르며 답했다.

“괜찮아요. 트라우마로 인해 깨어나길 스스로 거부하고 있는 게 문제일 뿐 다른 곳엔 문제없습니다.”

“……다행인 거 맞죠.”

“일단은요.”

분위기가 가라앉자 윤가경이 탁상을 두 번 두드리곤 나를 쳐다봤다.

“자자, 그 전에 정리하고 갈 말이 있잖아요. 아까 끊긴 이야기 먼저 이어 가죠. 이곤 헌터가 말한 그 ‘방법’이라는 건 모르는 거지?”

성질 급한 윤가경은 곧장 자신이 가장 궁금하게 여긴 질문을 물어 왔다.

이곤이 말한 ‘원래대로 돌아갈 방법’에 관해서 말이다. 나는 지난 상황을 회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윤가경은 큰 기대 없었다는 듯 혀를 찼다.

“제자리걸음이네.”

똑같은 생각이었다. 정보들이 한곳으로 모여들지 못하고 조각처럼 뿔뿔이 흩어진 채 나를 곳곳으로 잡아당기는 듯했다.

민지민의 주사기가 내리꽂혔던 목덜미가 섬뜩해지는 기분에 그곳을 가만히 매만지는데 불쑥 이 팀장이 물었다.

“그래서 양 헌터 마음은 어떤데요?”

“……제 마음이요?”

“그래요. 정말 그의 말처럼 원래의 몸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요.”

당연한 고민인데 이상하게 속 시원하게 나오는 답이 없었다.

처음에는 분명 비슷한 목표 의식이 있었던 거 같은데 어쩐지 지금은 전부 옅게 흐려져 ‘돌아가야’ 한다는 감각이 없었다.

그렇게 내 마음이 변한 중심에 강우신이 있음을 알았다.

강우신만 있으면 아무래도 좋다는 낯간지러운 말을 삼키며 깊게 숨을 내쉬는데 불쑥 이질감이 들어 이 팀장을 쳐다봤다.

“그런데 질문 순서가 틀린 거 아닙니까?”

“뭐가 말이죠?”

“안 물어봅니까? ……어떻게 된 일인지.”

강우신은 그렇다 치고 이 팀장과 윤가경의 태도가 너무 심드렁했다.

‘다른 몸’이라든지, ‘원래의 몸’으로 돌아간다든지 같은 말을 너무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두 사람의 태도에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이 팀장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할 뿐이에요. 이 바닥에 오래 있다 보면 별의별 일을 다 마주하니까.”

딱 그다운 말이었다. 말을 마친 이 팀장은 나를 일순 위아래로 훑으며 옅은 비소를 흘렸다.

“애초에 그런 모습으로 숨길 생각이 있긴 했는지 궁금하군요. 물론 그 점 역시 내가 아는 사람답기도 하고.”

나는 그제야 머리칼을 멋쩍게 쓸어 넘겼다. 강한 힘에 동화된 듯 어느새 조금 길이도 자라 있었다.

이 팀장은 강우신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것보다 이쪽이야말로 이 사실을 미리 알고 있던 것 같은데, 알고도 여태껏 얌전히 있었다는 게 신기할 뿐이네.”

윤가경은 질세라 말을 이었다.

“동감. 죽었다고 생각한 은인이 살아 있는 경험을 해 본 사람의 관점에서 이렇게 얌전할 수 있나 놀랍네.”

강우신은 그제야 걱정을 한시름 던 얼굴이 돼서는 나를 쳐다봤다.

나름 이 사실을 말하기까지 고민이 깊었는데 머리 굴린 시간이 허탈하게 느껴질 만큼 주변 사람들은 일말의 동요도 없었다.

강우신은 계속해서 입 안에 고여 있던 물음을 던졌다.

“그래서 길드장님의 물음에 대한 대답은요? 말해 주지 않을래요?”

“솔직히.”

“…….”

“잘 모르겠어요. 돌아가고 싶은 건지 어쩌고 싶은 건지.”

나는 확답 없는 마음에 옅은 미안함이 감도는 얼굴로 말했다.

“단지 지금은 이 모든 게 사실인지 그걸 먼저 확인하고 싶어요. 아니, 그게 먼저라고 생각해요.”

내 대답에 이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죠.”

대화가 도로 원점으로 돌아가려는 그때 우신이 말을 가로챘다.

“그 사건 이후 제가 서초 게이트에 도로 관심을 가지기까지 텀이 있었습니다.”

일전에도 했던 말이었다. 하지만 그 뒤로 이어지는 말은 지난번 듣지 못한 것이었다.

“돌이켜 보니 그즈음 민지민에게서 이상한 말을 들었습니다.”

“이상한 말?”

우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당시엔 그와의 관계가 지독하리만큼 좋지 못해 헛소리라고 생각해 새카맣게 잊고 있었는데……. 거짓말처럼 이런 상황에 부닥치니 생각나네요.”

참지 못하고 가경이 재촉했다.

“무슨 말을 했길래.”

“선배의 죽음 앞에 삶의 의욕이 꺾인 저를 찾아와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우신은 그날의 민지민을 회고하듯 한 번 눈을 감았다가 뜨더니 그의 말씨를 흉내 내 답했다.

“나는 원하는 걸 반드시 이룰 거야. 그게 죽은 사람을 되살려 내는 일이라 할지라도.”

섬뜩할 만큼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그게 서초 게이트 사건 이후 몇 년 뒤지?”

“2년이 채 안 됐을 때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 당시에는 정신 나간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제 옆에 선배가 있게 되니 조금 다르게 느껴져서요.”

그 말끝에 일순 나와 윤가경이 서로 눈을 한 번 마주치곤 입을 꾹 다물었다.

약속한 듯 침묵이 내려앉았다. 눈치 빠른 이 팀장이 그런 우리를 한 번씩 쳐다보고 물었다.

“걸리는 게 있는 모양이군요.”

내가 고개를 한 번 끄덕이자 윤가경이 숨을 내쉬곤 답했다.

“처음 양하나가 에스텔을 가지고 회사에 찾아왔던 날 기억나죠? 그때 사실 우리 둘 사이에 나온 가설이 하나 있어요.”

윤가경은 잠시 주저하다 별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정말 에스텔이 영원의 소행이고 그녀가 뽑아낸 원천 에너지가 성시현의 것이려면 그 모든 과정의 대전제가 필요해요. 지금 대화로 모두 추측한 바로 그것.”

바로 옆자리에 앉은 우신이 제 허벅다리 얹은 손을 꽉 쥐는 게 보였다.

“영원이는 살아 있는 사람의 에너지만 뽑을 수 있거든.”

윤가경의 확답 끝에 나는 조심스럽게 우신의 손등 위로 내 손끝을 가만히 가져다 댔다.

우신은 그제야 저도 모르게 주먹을 쥐고 있었단 걸 눈치챈 듯 손에서 힘을 풀고 날 바라봤다. 난 눈을 천천히 끔뻑이곤 선언하듯 대화를 종결했다.

“그러니까 즉, 성시현의 몸은 살아 있다는 거야.”

* * *

강우신은 툇마루에 앉아 조용히 정원을 바라봤다.

아주 빠르고 소란하게 지나가는 일들과는 무관하다는 듯 평온한 풍경을 보고 있자니 묘하게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

서서히 구름에 달이 가려지는 그때 마루를 밟으며 누군가 서서히 다가왔다. 내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바로 옆자리에 앉는 움직임은 흘러가는 구름만큼이나 고요했다.

우신은 제 옆에 앉아 저를 흉내 내듯 하늘을 올려다보는 하나를 바라봤다.

바람을 타고 은은하게 풍겨 오는 알코올의 향도 취기에 붉어진 두 뺨도 평소의 그녀와는 퍽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평소와 다른 무방비한 얼굴이 더욱더 사랑스러워 보였다.

우신은 얕은 미소를 머금으며 물었다.

“벌써 나와도 돼요? 다들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이던데.”

짧은 회의가 끝나고 이 팀장이 먼저 파티를 제안했다.

겉으로는 큰일을 앞두고 든든하게 배를 채우자는 것이었지만, 실상은 시현이 살아 있음을 축하하기 위한 파티였다.

이 팀장 역시 그녀의 오래된 파트너 중 하나였으니까. 우신은 생각이 많아져 잠시 취기를 날릴 겸 자리를 비웠는데, 하나가 그의 뒤를 따라 나온 거였다.

하나는 옅게 달아오른 두 뺨을 가볍게 누르며 답했다.

“괜찮아요.”

“그런 말 말고…….”

“괜찮대도.”

우신은 우뚝 행동을 멈췄다.

하나가 반사적으로 제게 편하게 하대를 했기 때문이다. 하나는 자각이 없는 듯 눈을 한두 번 끔벅이며 말을 이었다.

“정말 멀쩡해. 그냥 한 가지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된 게 있는데.”

확실히 술에 취한 모양이었다. 아무렇게나 생각 나는 말부터 하는 것 보니 말이다.

우신은 처음 보는 하나의 모습을 눈에 담기 위해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했다.

“이 몸은 어떻게 된 게 알코올 분해도 떨어지나 봐. 원래 이 정도 마신 거론 멀쩡…….”

그녀는 이 정도로는 아무렇지 않다는 말을 몸소 증명하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일순 균형을 잃고 우신 쪽으로 몸이 기울었다.

우신은 자연히 하나의 어깨를 가볍게 그러쥐었다.

“멀쩡하다고요?”

지그시 눈을 맞춰 오며 묻는 말에 하나는 시선을 피하며 자그마하게 답했다.

“분명 그랬는데……. 이상하네.”

우신은 그런 하나의 모습에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오랜만에 시현과 이 팀장의 신분으로 재회하는 자리였다.

분명 기쁜 날인데, 어쩐지 제 하나뿐인 선배의 존재가 만천하에 드러났다는 사실에 자꾸만 가라앉는 기분을 주체하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최대한 분위기를 망치지 않으려고 나온 거였다.

그런데 그녀는 꼭 자신이 이런 곤란하고 유치한 마음이 들 때마다 손쉽게 우신을 그림자 밖으로 끌어냈다. 그것도 그녀만의 방식대로.

정말이지 언제나 생각을 뛰어넘는 여자였다.

우신은 빙그레 웃으며 하나의 뺨을 어루만졌다.

“자꾸 그렇게 사랑스럽게 굴면 곤란한데 어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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