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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60)화 (160/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60화

우신은 민지민이 하나를 마약반에 끌어들였단 사실을 안 순간부터 그가 본격적으로 움직이려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한지원을 이용했다. 아무리 자신이 날고 기어도 에스퍼를 상대하는 데는 한계가 있고 그렇기에 강한 에스퍼가 필요했다.

지원은 훌륭한 헌터로 성장해 있었고, 덕분에 마약팀의 뒤를 밟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모든 게 순조롭다고 생각한 끝에 지원은 오랜 시간 갇혀 있던 것처럼 보이는 제 여동생을 마주하게 됐다.

그 모습에 우신은 어떠한 죄책감을 느꼈다.

그녀의 여동생을 찾을 수 있을 거라며 그를 작전에 합류시킨 거지만, 이런 모습으로 두 사람이 재회하기를 바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죄책감이 이렇게 돌아오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우신은 민지민이 하나의 목덜미에 약물을 주사하는 걸 목격한 순간, 시간이 멈추는 경험을 했다.

잠시 하나의 동공이 확장되더니 이내 전신의 힘이 풀린 듯 쓰러졌다. 민지민은 그녀를 곧바로 안아 들었다.

우신은 그대로 숨을 멈췄다. 그때 그의 뒤에 서 있던 가경이 그를 불렀다.

“……강우신 가이드?”

윤가경은 가이드가 이렇게도 강렬하고 사납게 에너지를 내뿜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뒤통수뿐인데도 그가 지금 얼마나 절망적인 얼굴을 하고 있을지 보였다.

그래서였다. 아무런 미동도 대답도 없는 그를 본 윤가경은 차 문을 열며 소리쳤다.

“조이현, 강우신 가이드 잡아!”

윤가경의 말에 조이현은 차 밖으로 뛰어내렸다. 그러곤 민지민에게 곧장 달려들려는 우신의 팔목을 잡았다.

우신은 저를 저지하는 조이현을 향해 반사적으로 공격했다.

그의 에너지의 길에 상처를 내자 조이현의 입 밖으로 저절로 고통의 신음이 흘러났다. 윤가경이 서둘러 강우신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정신 차려!”

고개가 돌아간 우신이 붉어진 뺨을 한 채 가경을 내려다봤다.

우신의 눈을 똑바로 마주친 가경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진정해야 한다는 사실은 이미 우신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아까부터 강하게 뿜어져 나오는 하나의 에너지 탓에 계속해서 서초 게이트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무엇을 주사했기에 눈을 감고 쓰러진 이에게서 이런 강한 인력이 발생하는 걸까.

그 혼란을 떨쳐 내기 위해 우신이 입술을 피가 날 정도로 짓씹었다.

그때 최강혁이 민지민을 향해 소리쳤다.

“민지민 헌터! 미쳤습니까, 이게 지금 무슨 짓이에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최강혁은 총상을 입은 다리를 절며 일어났다.

그간 감정의 동요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사람이었는데,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흥분한 기색이 그대로 드러났다.

반면 민지민은 섬뜩할 만큼 고요했다.

“이게 무슨 짓이냐고 물었습니다. 일을 다 망쳐 버릴 셈입니까?”

지민은 건조한 눈으로 최강혁을 바라봤다.

“그럼 언제까지 뒤치다꺼리만 하고 있으려고.”

벽을 치듯 냉소적인 어조에 최강혁은 혀를 찼다.

“고지가 코앞인데……. 일을 다 망치다니. 왜 도박장을 인수하면서까지 이 개짓거리를 했다고 생각한 겁니까.”

최강혁은 답답하다는 듯 가슴께를 내리쳤다.

“그사이를 못 참고……!”

신경질을 내던 최강혁은 다리의 통증에 다시 주저앉았다. 가만히 듣고 있던 민지민은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이곤을 돌아봤다.

“그거랑 얘까지 챙겨서 따라 나와.”

지민이 한영원과 최강혁을 번갈아 쳐다보며 그에게 명했다. 지민의 말에도 이곤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러자 지민은 품 안의 양하나를 내려다봤다.

“껍데기라도 얻으려면 주저할 틈이 없지 않을까.”

이곤은 그제야 눈을 내리깔고 바닥에 엎어져 있는 영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을 보던 강우신이 읊조리듯 말했다.

“막아야 합니다. 이대로 데려가게 뒀다가는…….”

우신은 뒷말을 잇지 않았지만, 가경은 알 수 있었다. 그녀 역시 오랜 시간 영원을 찾아 헤맸다.

침착한 척 우신을 말리고 있지만, 그 못지않게 손가락이 떨릴 만큼 화가 난 참이었다.

그 두 사람의 투기 어린 눈빛에 조이현은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떠날 채비를 하는 민지민과 이곤을 바라봤다.

“솔직히 저런 괴물 같은 놈들을 이길 수 있다 자신할 순 없다만 뭐든 해 봐야 아는 거 아니겠어.”

조이현은 입꼬리를 억지로 올려 웃었다. 하지만 손에 땀이 찬 상태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개인 무기라도 제대로 챙겨 올 걸 그랬단 생각을 하는데, 그에게 붙들려 있던 우신이 입을 열었다.

“잠깐만요.”

그의 말에 윤가경이 행동을 멈추고 우신을 바라봤다.

우신의 새까만 눈동자 안으로 환한 빛이 반사됐다. 그녀는 곧장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긴 양하나를 안아 든 민지민이 있었다. 그의 품 안에 들린 양하나에게서 정체 모를 강력한 에너지가 흘러나왔다.

몸이 저릿해질 정도로 강력한 에너지는 가경으로서도 생전 처음 느껴 보는 압박이었다.

그에 감탄하고 있을 새도 없이 양하나의 검은 머리칼이 서서히 밝아지더니 이내 금빛으로 물들었다.

민지민 역시 제 품 안에서 변이하는 양하나를 내려다보며 서서히 입꼬리를 올렸다.

“이렇게 빨리…… 이렇게 확실한 변화가 올 줄이야.”

그 말과 함께 하나의 상처들이 순식간에 회복됐다.

이내 깨끗한 피부 아래 감긴 두 눈이 떠올랐다. 영롱하게 빛나는 금안에 민지민이 비추어 보였다.

그 눈동자와 마주한 지민은 이제야 최강혁의 말마따나 자신답지도 않은 개짓거리를 한 이유를 떠올렸다.

저절로 지어지는 미소를 감추지 못하고 있을 때 하나가 단번에 지민을 어깨를 짚고 공중에 몸을 띄웠다.

그리곤 그를 단번에 반대편으로 날렸다. 그 일련의 동작이 붓으로 그린 듯 부드러웠다.

덕분에 우신을 포함한 세 사람은 선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못했다.

가볍게 바닥으로 착지하는 하나의 머리칼이 황금으로 물들어 물결처럼 흔들렸다.

윤가경 역시 성시현 헌터에 대해 알고 있었다.

연구실 폭발이 있던 게이트 브레이크에 파견된 게 그녀가 리더로 있는 팀이기도 했거니와 연구실에 모인 연구원들이 실험의 의의를 다지며 항시 이야기하던 에스퍼가 그녀였기 때문이다.

항상 성시현의 연대기의 첫 장을 장식하는 말.

‘강한 계기가 강한 에스퍼를 만든다.’

연구는 그 말을 바탕으로 청소년기의 미각성자들에게 강한 트라우마를 안겨다 주었다.

그로 인해 연구실은 두 분파로 나뉘었다. 성시현을 동경하거나, 아니면 증오하거나. 윤가경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전해 듣는 것으로만 봐선, 그녀가 살아 있는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완벽했기 때문이었다.

분명 그랬었다.

그러나 떠오르는 태양 빛을 받아 황금으로 물드는 바다의 물결을 닮았다던 그 머리칼을 직접 대면하자, 비로소 알 것 같았다.

강우신을 포함한 수많은 이들이 그녀가 죽고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녀를 잊지 못하는 이유를.

민지민은 벽에 틀어박힌 몸을 간신히 일으켜 세웠다. 뇌가 울리는 탓에 다리가 비틀거렸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을 때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완벽한 기술을 꽂아 내다니 헛웃음이 났다.

지민은 모래바람을 날리며 걸어 나왔다. 하나는 여전히 제자리에 서 있었다.

다만 그녀의 시선은 더 이상 제게 향해 있지 않았다. 하나의 시선이 향한 곳은…….

“……강우신.”

지민은 못마땅한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읊조렸다.

반면 우신은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하나의 시선에 갇힌 사람처럼 눈 한 번 깜빡이지 못했다.

우신이 다 찢어져 피가 번진 입술을 달싹이려는 그 순간, 하나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지원을 집어 들었다.

가경은 본능적으로 다음 차례를 파악하고 차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조이현에게 소리쳤다.

“트럭 문 열어!”

넋 놓고 있던 조이현이 트럭 문을 열었다.

하나는 그대로 영원을 안아 든 채로 굳어 있는 이곤의 목덜미를 끌고 몸을 움직였다.

지민이 모래를 털어 내고 날아오르려는 순간 틈을 주지 않으려는 듯 근처에 있는 캡슐을 발로 걷어찼다. 차례로 세워져 있던 2M 높이의 캡슐이 탄알처럼 빠르게 지민에게로 날아가 충돌했다.

캡슐에 연결된 두꺼운 호스가 뽑히며 양수처럼 희멀건 액체가 흘러났다. 도박장에서 끌고 온 에스퍼들을 그 안에 가둬 실험할 셈이었던 것 같다.

하나는 불쾌감에 표정을 찡그리더니 나란히 선 캡슐을 몇 개 더 차곤 이곤과 지원, 하나를 차례대로 트럭 안에 싣고는 우신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나가 걷어찬 캡슐 몇 개가 동굴 벽에 강하게 부딪히며 균열을 만들었다. 그 탓에 천장에서부터 바위가 하나둘 떨어졌다.

더 이상 이곳에서 싸우는 건 위험했다.

우신은 하나가 뻗은 손을 잡고 차에 올라탔다. 그가 타는 것까지 확인한 가경이 차의 액셀을 힘껏 밟았다.

형체를 잃어 가는 동굴 속 민지민의 일행을 남겨 둔 채 차체는 빠르게 동굴을 빠져나갔다.

가경은 숲으로 들어서 백미러를 통해 누구도 따라오지 않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등 뒤의 창을 통해 트럭 위에 올라탄 이들을 확인했다.

“모두 무사한 거 맞지?”

눈으로 확인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은 말인데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불안을 느낀 가경이 몸을 완전히 돌려 창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가 눈앞의 광경을 확인하고 입을 벌렸다.

직전까지 초인적인 능력을 보이던 양하나가 우신의 허벅지를 베고 죽은 듯이 쓰러져 있었다.

몸 전신이 빛에 휘감긴 채.

가경은 불길함을 느끼고는 곧장 속도를 올려 오델리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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