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59화
“이게 무슨 짓입니까.”
내 물음에 민지민은 입술을 내밀며 투정 부리듯 답했다.
“도와준 사람한테 너무 매정한 얼굴인 거 아닙니까?”
무전을 보낸 게 언젠데. 지금까지 응답 없던 사람치고 지나치게 뻔뻔한 태도였다.
민지민의 뒤로 실루엣이 겹치더니 이곤이 걸어 들어왔다. 어딘가 경직된 그에게 시선이 닿는데 함께 온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미간을 좁히며 낮게 웅얼거렸다.
“최강혁 감시관.”
민지민과 이곤뿐만 아니라 최강혁 감시관도 함께였다.
지금껏 현장에서 마주친 적이 없었기에 그의 등장에 신경이 배로 날카로워졌다.
그런 의구심과는 별개로 세 사람은 우신의 총에 맞아 바닥을 기고 있는 에스퍼들을 진압하기 시작했다.
머리를 돌려 기절시키고, 수갑을 채우는 등 능숙한 움직임이었다.
그 때문에 상황은 빠르게 정리되는 것처럼 보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주시죠.”
민지민이 강우신과 한지원을 턱짓하며 물었다. 우려했던 상황에 나는 마른 입술을 축이고는 입을 열었다.
“제가 불렀습니다.”
“사전에 지원팀으로 요청한 건 오델리아 길드의 조이현, 윤가경 에스퍼뿐이지 않았나요?”
민지민은 방긋 웃어 보였다. 어쩐지 이 상황도 내 대답도 모두 예견한 듯 여유로웠다.
“일전에 미리 알리지 못한 건 죄송합니다만, 아직 제가 민지민 헌터를 온전히 믿지 못하겠어서요.”
민지민은 예상 밖의 솔직한 대답에 눈이 커졌다.
우신과 지원에게 이런 상황이 오면 내게 맡겨 달라고 했던 건 생각이 있어서였다.
마약 사범으로 몰려 쫓길 때부터 마약반에 소속이 되기까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절차를 밟은 게 없었다.
민지민과 서로의 제안 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할 뿐.
그러니 내가 이번 작전에서 그를 오롯이 믿지 못해 개인팀을 꾸렸다는 말은 어느 정도 합당했다.
“이에 대한 문제는 센터로 돌아가 제기해 주시죠. 마땅히 감내할 테니까.”
단호한 태도에 민지민은 상관없다는 얼굴로 답했다.
“그러죠.”
대답 끝에 여유롭게 주변을 둘러보던 민지민의 시선이 한곳에 닿았다.
한지원의 등 뒤에서 몸을 수그리고 있는 한영원이었다. 지원도 그의 시선을 느끼고는 그녀를 숨기듯 어깨를 펴고 섰다.
본능적으로 민지민을 경계하고 있었다.
“잠깐만……!”
서둘러 정신을 돌려 보려 했지만, 민지민은 순식간에 두 사람 곁으로 다가섰다. 지원의 어깨를 잡아 치운 그가 그 뒤에 숨은 영원을 빤히 쳐다봤다.
“찾은 겁니까? 관계자를.”
민지민의 금안이 섬뜩하게 빛났다. 한지원이 힘에 못 이겨 옆으로 밀려났다.
“잠시만요. 관계자이기 전에.”
민지민을 붙잡으려 손을 뻗는데 닿기 전에 이곤에 의해 저지됐다. 언제 여기까지 왔는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 저지가 늦어지자 한지원이 가장 먼저 동요했다. 겨우 흥분을 가라앉혔는데 민지민이 영원에게 손을 대는 순간 다시 흥분한 것이다.
“그 손 놓으시죠. 제 동생입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직전까지 발작하듯 소리치던 영원은 민지민의 손길이 닿자, 온몸의 기력이 빨려 나간 사람처럼 온순해졌다.
민지민은 그런 영원의 머리 위로 제 코트를 덮으며 흥미롭다는 표정을 하고선 지원을 쳐다봤다.
“지금 신마약 에스텔 사건의 주범으로 보이는 이와 관계있음을 인정하는 겁니까?”
겨우 우신과 지원을 내 뒤로 숨겼는데 도로 덜미가 잡혀 버렸다.
나는 어떻게든 지원을 말리기 위해 이곤의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아무리 밀쳐도 이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에 머리끝까지 화가 나 주먹을 쥐어 보이는데 우신이 먼저 이곤의 팔을 강하게 잡아챘다.
“내가 말했죠. 양 헌터 몸에 손대지 말라고.”
“내가 왜 그쪽 말을 들어야 하지?”
강우신과 이곤의 신경전과는 별개로 최강혁은 한쪽에 쓰러져 있는 유제이의 상태를 확인하러 갔고, 민지민은 계속해서 지원을 압박하고 있었다.
아주 상황이 엉망진창이었다.
나는 이곤의 팔을 강하게 뿌리치고 두 사람의 가슴께를 밀어 서로 멀어지게 했다.
“정신 차리고 상황 수습해요. 둘 다.”
내 말에 민지민은 푸하하,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곤 이곤에게 제 앞에 있는 지원을 턱짓했다.
“양 헌터가 이죽대긴 해도 이런 점에서 나랑 마음이 맞네요. 모두 정신들 차리자고요. 마약 사범이 가족이라며 두둔하는 게 제정신은 아니잖습니까?”
“…….”
“아무래도 한지원 헌터의 상태가 좋지 않은 거 같으니 이곤 헌터가 따로 데려와요. 저는 여기 있는 관계자들 먼저 긴급 이송할 테니.”
민지민은 그럴듯한 말을 하며 최강혁을 불렀다.
더 이상 내게 한영원을 잡을 명분이 없었다.
어느덧 한지원은 정신을 잃은 채였다.
곧바로 영원을 인계하려는 듯 최강혁이 가깝게 다가왔다.
항상 실내만 활보하던 사람답게 운동성 떨어지는 차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였을까, 그의 신발 쪽으로 저절로 시선이 닿았다.
독특한 뱀 가죽의 구두에.
그리고 거짓말처럼 한영원이 반복하듯 되뇐 말이 떠올랐다.
‘살려 주세요, 잘못했어요.’
그녀는 본인이 연구진 복장을 한 주제에 꼭 실험체라도 되는 양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
계속해서 공든 탑을 쌓듯 올라가던 기시감이 이내 최강혁의 구둣발에 묻은 소량의 피 앞에서 와르르 무너졌다.
최강혁은 영원을 끌고 문 쪽으로 향했고, 민지민도 그들을 뒤따르려 했다.
나는 근처에 서 있던 우신의 손에서 총을 뺏어 들어 민지민을 향해 조준했다.
주변에 있던 이곤과 우신이 몸을 굳혔다. 민지민 역시 경직된 채 움직임을 멈췄다.
“양 헌터……. 미친 겁니까?”
“전혀요.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머리가 잘 돌아가고 있어요.”
“그럼 이게 뭘 뜻하는지 알고 있겠네요.”
“물론이죠. 그러니 이러는 겁니다.”
나는 권총의 슬라이드를 당기며 방아쇠 위로 손가락을 올렸다.
“민지민 헌터, 유제이가 에스텔 복용자라는 거 알고 있었습니까?”
민지민의 시선이 이제 막 정신을 되찾은 유제이에게로 향했다. 유제이는 급히 그의 눈을 피했다.
“……본인이 그러던가요?”
“네.”
“유제이 헌터의 말뿐이라면 허세일지도 모르…….”
나는 다른 한 손으로 지원이 그의 입 안에서 빼낸 에스텔을 들어 보였다. 민지민의 표정이 단단하게 굳었다.
“그렇다 한들 이런 하극상이 용납되지는 않을 텐데요.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라고.”
“처음 이상하다고 느낀 건 유제이 헌터와의 대인전에서였습니다. 단순히 기묘한 에너지라 생각했는데, 길드전에서 에스텔 복용자들을 만난 직후 생각이 변했습니다. 유제이 헌터와 그들이 동류였다고.”
“그러니까 그게 왜……!”
민지민이 참지 못하고 소리치는 그 순간 나는 총구의 방향을 틀어 영원을 끌고 가던 최강혁의 허벅지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으아악!”
허벅지를 관통당한 최강혁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숨소리마저 삼킨 침묵 속 민지민은 눈에 핏발을 세운 채 소리쳤다.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속일 생각이었다면 적어도 신발은 갈아 신고 왔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도박장에서 주민호를 구타하던 관리자의 신발을 봤습니다. 뱀 가죽 정장 구두를요.”
최강혁은 급히 발목을 돌려 신발을 숨겨 보았지만, 이미 늦었다. 민지민의 얼굴 위로 특유의 수세에 몰린 사람의 표정이 떠올랐다.
“전부 물증 없는 양 헌터의 추측뿐인 말입니다.”
“맞아요. 다 제 추측뿐입니다. 하나 같이 뒤 구린 정황들만 가득할 뿐 당장 당신 목을 죌 이유는 되지 못하죠.”
“잘 알고 있네요.”
민지민의 이마 위로 핏줄이 꿈틀거렸다.
“그래서 이러는 겁니다. 증거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건 그만두려고요.”
“그게 무슨.”
“한영원을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그녀가 모든 상황을 증언한다면 그보다 정확한 증거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민지민의 입매가 뻣뻣하게 굳더니 눈빛이 변했다. 웃음기는 모두 지운 채 그가 나직하게 읊조렸다.
“이 짓거리도 더 못해 먹겠군.”
작게 웅얼거리더니 민지민의 금안이 환해졌다.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최강혁이었다. 고통도 잊은 듯 그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민지민 헌터!”
애타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민지민은 손가락을 튕겼고, 거짓말처럼 유제이의 손목의 구속구가 부서졌다.
유제이는 기다렸다는 듯 강우신에게로 달려들었다. 나도 곧장 몸의 방향을 틀어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때 입구에서부터 큰 엔진 소리가 들렸다.
이내 강한 빛을 내뿜으며 거대한 것이 날아들었다.
빠앙-
동굴 안으로 밀고 들어온 트럭은 그대로 유제이를 쳤다.
차에 치인 유제이는 벽면으로 날아가 처박혔고, 차체가 높은 트럭은 유연하게 드리프트를 끌더니 우신과 내 앞에 주차했다.
트럭에 적힌 목장 우유라는 글자가 가장 먼저 보였다.
멍하니 눈을 끔뻑이고 있자 조수석의 차창이 내려가며 조이현이 고개를 내밀었다.
“안 늦었지?”
멀미라도 했는지 어두운 안색을 한 그의 물음에 나는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최고의 등장이었어요.”
그 말과 함께 민지민을 돌아봤다. 우리 인원이 충당된 거에 비해 민지민의 일행은 전멸에 가까웠다.
하나 남은 이곤은 아까부터 싸울 의지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수적 열세 따위 개의치 않은 듯 민지민의 얼굴 위엔 그림자 하나 지지 않았다.
그가 곧장 달려들듯 드센 에너지를 뿜어냈다. 그에 전투 태세를 갖추었지만 이어진 그의 행동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민지민의 긴 팔이 바닥에 코트를 덮고 앉아 있는 한영원을 휘감았다.
이내 그가 어깨에 멘 권총 홀스터로 손을 뻗었다. 그녀를 인질 삼으려는 듯했다.
나는 곧장 그에게로 팔을 뻗었다.
“그만둬, 민지민!”
하지만 예상과 달리 홀스터에서 나온 건 권총 같은 게 아니었다.
금색 액체가 넘실거리는 주사기였다. 민지민은 순식간에 영원을 바닥으로 밀쳐 내고 뻗은 내 팔목을 잡아 끌어안았다.
몸이 그에게로 끌려간다고 인지하기 무섭게 지민이 내 목덜미에 주사기를 꽂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