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56화
유제이가 뻗은 주먹 위로 붉은 에너지가 휘감겼다. 옆 통수를 스치기만 했음에도 불타듯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대인전에서 봤을 때도 굉장한 위력이었는데 그새 공격의 위력이 더 강해졌다.
감히 얕잡아 볼 수 없는 성장세였다.
그리고 만약, 그게 조금 전 유제이가 스치듯 뱉어 낸 이유 때문이라면 그의 상태 역시 위험했다.
길드전에서 맞붙었던 한정우를 떠올렸다.
내 앞에서 끔찍한 최후를 맞이한 그의 모습이 뇌리에 특히나 강하게 새겨져 있었다.
나는 혀를 차고는 유제이의 주먹을 흘려 내는 식으로 피했다.
위력은 비할 수 없이 강력해졌지만, 정확성은 오히려 떨어졌다.
‘꼭 남의 힘을 빌린 것처럼 말이야.’
처음 이 몸에 들어온 나 역시 익숙하지 않은 힘에 내 뜻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래서 그 당혹감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유제이는 제힘을 감당 못 하고 내가 피하는 족족 애먼 바닥에 주먹을 내리꽂았다.
그는 헉헉거리며 나를 돌아봤다.
“건방지게 혓바닥 놀릴 때는 언제고 ……쥐새끼처럼 내빼기만 할거지?”
힘을 사용한 지 얼마나 됐다고 호흡이 거칠었다. 그 탓에 혀가 꼬여 말하는 것조차 버거워 보였다.
그의 붉은 눈동자 안에서 노란 이채가 돌았다.
불길한 기운이 발끝에서부터 자라났다.
“너 아까 싸구려라고 한 거 에스텔을 지칭한 거지?”
“뭐가.”
“넌 다르다며, 뭐가 다른데.”
내 물음에도 유제이는 제 주먹을 이리저리 살피며 묻은 흙을 털어 낼 뿐 대답할 생각 따위 없어 보였다.
다시금 재촉하려는데, 그가 혼잣말하듯 말을 이었다.
“이제 와 안다 한들 뭘 어쩌려고.”
“…….”
“어차피 여기서 네 발로 못 걸어 나갈 텐데.”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은 유제이는 가죽 바지 주머니 안으로 손을 넣더니 아무렇게나 접혀 있는 종이를 꺼냈다.
뒤이어 꾸깃꾸깃한 종이를 펴더니 그 안의 것을 대번에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일련의 행동에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유제이는 내 반응에 픽 터지는 웃음을 삼키며 털어 넣은 것을 씹어 삼켰다.
그러자 그의 몸 주변으로 희미한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설마 너 지금 입 안에 넣은 게…….”
“궁금하면 직접 입 벌려 확인해 보든가.”
그 말과 동시에 유제이의 눈동자는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노랗게 질려 갔다.
그의 양손으로 에너지가 덕지덕지 들러붙었다. 곧이어 그것은 거대한 글러브 형체를 만들더니 이내 주먹 마디가 날카롭게 형태를 변이했다.
눈 깜짝하는 순간 유제이의 주먹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고개를 뒤로 확 젖히자 남은 주먹이 빈 옆구리를 찔러 왔다.
나는 탄성을 뱉어 내며 그대로 힘에 밀려 옆으로 굴러떨어졌다.
벽에 부딪히는 순간에 에너지를 둘러 충격을 완화했지만, 미처 옆구리를 막지 못한 탓에 숨이 턱 막혀 왔다.
옆구리를 부여잡은 채 자리에 주저앉은 내 모습에 유제이가 선 자리에서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날 내려다봤다.
“뭐야, 경고가 무색하게 존나 좋기만 하네. 하여튼 하나같이 겁만 많아서들.”
무엇으로 보나 방금 그가 입에 털어 넣은 건 분명 에스텔이었다.
대인전에서 그에게 느꼈던 기시감이 에스텔을 복용한 마약사범들이 내뿜는 에너지와 비슷하다고는 생각했는데 설마 진짜일 줄이야.
나는 마른기침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해. 그거 누구한테 얻었는지.”
“말했잖아. 궁금하면 직접 확인하라고.”
유제이의 동공이 확장돼 있었다. 삼킨 것이 몸 안에서 완전히 돌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유제이는 경고와 동시에 몸을 앞으로 기울이더니 내 쪽으로 쏟아지듯 날아왔다. 허리를 튼 다음 오른 주먹을 뒤로 쭉 빼 들어 위협적으로 휘둘렀다.
나는 몸을 비틀어 공격 범위 밖으로 빠져나오며 단번에 유제이의 등 뒤로 돌아섰다.
그를 공격할 수 있는 포지션이 되자 곧장 유제이의 목덜미를 잡고 그대로 힘을 발산했다.
황금빛의 에너지가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와 그를 바닥으로 짓눌렀다.
“으악!”
땅에 얼굴을 묻은 유제이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질렀다.
곧장 그의 등 위로 올라타 힘으로 그를 마구잡이로 눌렀다. 유제이는 에너지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버둥거리지도 못했다.
“시발, 이거 놔!”
소리칠 때마다 유제이의 주변으로 그의 몸이 미처 다 담아내지 못한 노란 에너지가 강하게 피어올랐다.
언젠가 들은 1군의 에스퍼의 말이 어째서인지 이 타이밍에 떠올랐다.
‘집공팀은 돌연변이 소굴이라며. 모조 에너지였나? 너도 그 약발로 들어갔냐?’
그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모조 에너지 그게 에스텔을 부르는 은어라면, 그렇다면 이미 마약이 센터 중심부까지 들어와 있다는 소리였다.
나는 그 생각 끝에 작게 중얼거렸다.
“……그것도 아니면 애초부터 센터가 그 시작점이었든가.”
그 순간 바닥에 얼굴을 붙이고 있던 유제이의 입 안에서 무언가 씹히는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를 또다시 씹어 삼킨 그가 이내 주변에 아무렇게나 흘러나던 에너지를 몸 안으로 흡수하더니 나를 강하게 밀쳐 냈다.
나는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났다.
“너 그걸 한 번에 먹은 게 아니라 입에 머금고 있었니?”
황당함이 묻어나는 물음에 유제이는 한쪽 눈동자의 핏줄이 터진 모습으로 혓바닥을 내밀었다.
그의 혓바닥 위로 노란 액체가 담긴 알약, 에스텔이 한 알 더 있었다.
“미친놈.”
아무렇지 않은 척하더니 한 번에 삼키는 건 겁이라도 난 모양이었다.
유제이는 그걸 다시 머금고는 비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있잖아. 옛날부터 생각한 건데.”
유제이는 말끝에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고는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뭐라고 설명하긴 어렵지만, 네가 힘을 쓰면 속이 울렁여. 토할 것같이 말이야.”
동시에 그의 코에서 피가 흘렀다. 그는 인중을 타고 흐르는 피 따위 개의치 않은 듯 소매로 훔쳐 낼 뿐이었다.
“……너 그러다 죽어.”
“대답이 틀렸어. 양하나 넌 내가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지 알지?”
“말했잖아. 에스텔 때문이라고.”
“아니.”
유제이는 아무렇게나 흘러내린 붉은 머리칼을 하나로 묶었다. 그러고는 단정해진 눈으로 날 건너보며 입을 열었다.
“널 죽이면 나아질 것 같아.”
대인전에서도 길드전에서도 생판 남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에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마치 나를 끌어당기는 듯한 그 에너지를 마주하고 있으면, 더 깊이 들어가 정체를 확인하고 싶어지면서도 주저하게 됐다.
“…….”
그리고 마침내 유제이와 주먹을 맞대는 이 순간, 외면하던 사실을 인정했다. 사실 나는 처음부터 그 에너지의 정체를 알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본래 유제이의 색을 잡아먹은 노란빛은 내 에너지의 빛깔과 너무나도 유사했다.
생각을 더 잇기도 전, 이성을 상실한 듯 달려드는 유제이 탓에 나는 결국 동굴 안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유제이의 에너지가 속수무책으로 증폭하고 있었다. 좁은 동굴에서 맞부딪혔다가는 공간이 무너져 내릴지도 몰랐다.
그 생각으로 앞만 보고 내달리는데 유제이도 속도를 올려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끝내 다다른 동굴의 끝은 불투명한 커튼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그 방향으로 몸을 내던지려는 순간, 유제이가 내 발목을 낚아챘다.
“힘 빠지게 하지 말고…….”
나는 유제이의 복부를 그대로 걷어차 커튼 안으로 날렸다.
잠깐 손이 닿은 것뿐인데 발목이 욱신거렸다. 나는 그대로 가림막 커튼을 젖히며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이제 막 각성한 놈이랑 다를 게 없네.”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드는데, 한 발자국 들어선 자리에서 그대로 멈춰 섰다.
입구 쪽에 엎어져 있던 유제이가 나를 올려다보며 인상을 구겼다.
“그렇다고 사람을 집어 던져?”
신경질적으로 입을 열던 그는 이내 내 시선이 자신이 아닌 등 뒤의 깊은 곳을 향한 걸 깨닫고 고개를 돌렸다.
가림막 커튼 뒤쪽은 이 안이 동굴이라는 사실을 잊게 할 정도로 넓었다.
체육관같이 넓은 공간 안에는 검은 비닐하우스와 용도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캡슐들이 즐비해 있었다.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가 흐르는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건 단연 중앙에 위치한 트럭이었다.
그건 우리가 도박장에서부터 쫓아오던 것이었다.
그걸 인지하기 무섭게 트럭의 문이 열리며 시커먼 내부로부터 누군가 서서히 걸어 나왔다.
그림자 밖으로 몸을 드러낸 이는 다름 아닌 투기장에서 보았던 에스퍼였다.
그는 피골이 상접한 얼굴로 힘없이 나와 트럭 아래로 쓰러졌다.
“이봐요. 움직이지 말고……!”
좁은 철창 안에 오래 갇혀 있었던 터라 근육이 굳어 있을 터였다. 그러나 말을 채 잇기도 전에 그 뒤로 움직이는 그림자들이 더 보였다.
그들 모두 투기장 에스퍼였고 족히 스무 명은 돼 보였다. 그 인원이 모두 트럭 아래로 뛰어내리더니 이쪽을 보고 섰다.
철창 안에 갇혀 있을 때는 한없이 유약해 보이던 이들의 눈동자 위로 오싹한 빛이 맴돌았다.
문득 처음 그 방을 방문했을 때가 생각났다. 내가 힘을 사용한 순간 저 비슷한 눈을 했었다.
좀비를 연상케 하는 에스퍼들이 느린 걸음으로 서서히 다가왔다.
유제이는 그 광경을 보고도 잠깐 잊고 있던 걸 떠올린 사람처럼 혀를 찰 뿐 크게 놀라지 않았다.
“너 다 알고 있었구나.”
내 말에 유제이는 자꾸만 흐르는 코피를 소매로 훔치며 답했다.
“말했잖아. 여기서 못 걸어 나갈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