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55화
산길을 따라 오를수록 의구심만 깊어져 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거 맞아?”
윤가경이 브레이크를 밟으며 물었다. 어느덧 비포장도로로 접어들며 차체가 낮은 스포츠카가 오르기엔 쉽지 않은 길이 이어졌다.
그녀가 뛰어난 운전 실력을 갖추고 있어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이미 올라오는 길에 사고가 났을 것이다.
“이런 길로 그 큰 트럭이 지나갔다는 게 상식적으로 가능한가.”
“글쎄. 불가능할 거 같은데.”
“그럼 우리가 길을 잘못 들었다는 거야?”
“글쎄, 길은 여기밖에 없었는데.”
조이현과 윤가경은 멍한 얼굴로 알맹이 없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나는 길가를 빤히 쳐다보다 차 문을 열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곧장 나를 향했다.
“뭐야, 어디 가.”
윤가경이 물었다. 나는 우리가 지나온 길을 살폈다. 지금껏 우거져 있던 산길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풀이 죽어 있었다.
누군가 여러 번 밟은 것처럼 말이다.
나는 주저 없이 걸음을 옮겨 수풀 속으로 들어갔다. 예상대로 땅에 무언가 끈 자국이 보였다.
“누가 여기로 지나간 거 같아.”
내 말에 조이현과 윤가경이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녀의 턱짓에 조이현이 귀찮다는 얼굴로 차에서 내렸다.
그는 내가 가리킨 것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러네. 그런데 여러 사람이 철창을 옮긴 자국으로는 보이지 않는데.”
조이현의 말처럼 이건 도무지 우리가 쫓는 남자들의 흔적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조이현은 우리가 가려던 길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나는 차라리 일단 끝까지 가 보는 쪽이 좋을 것 같아.”
가경 역시 조이현과 같은 의견인지 운전석에 앉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말이 더 타당성 있었고 다수결로 따르는 게 맞았다.
그런데 어쩐지 찜찜한 기분이 가시지 않았다.
묘하게 수풀 쪽으로 몸이 당겨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쩐지 이 기분이 낯설지 않았다.
내가 고민 가득한 얼굴로 가만히 있자, 가경은 잠시 아랫입술을 매만지다 조이현을 불렀다.
“조이현, 타.”
그의 부름에 조이현은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니까, 라며 올라탔다. 나도 그제야 차로 걸음을 옮기려는데 가경이 정면을 보며 기어를 움직였다.
“둘로 찢어지자고, 어디가 정답인지 모르니 두 방향 모두 확인하고 확실한 증거 찾는 쪽에서 연락 주기로.”
“그래도 괜찮겠어?”
“안 될 건 뭐 있어. 너나 조심해. 우리는 둘이고 너는 하나니까. 발견하면 즉시 연락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이윽고 가경은 힘껏 액셀을 밟았다.
조이현의 비명과 함께 울퉁불퉁한 산길 속으로 스포츠카가 빠르게 사라졌다.
두 사람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나는 다시 수풀 쪽으로 몸을 돌렸다.
여러 번 밟혀 풀이 죽어 있는 쪽으로 따라가면 됐기에 걸음에 주저함이 없었다.
걸으면 걸을수록 정체 모를 기시감이 발끝을 타고 스멀스멀 올라왔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불길함이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수풀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가다 보니, 어느 순간 앞이 트였다.
불쑥 수풀 밖으로 몸을 빼자마자 동굴이 나타났다.
생뚱맞은 동굴의 등장에 의아심이 짙어지는 그때 뒤에서 커다란 엔진 음이 들렸다.
수풀을 헤치고 나온 오토바이가 머리 위로 날아들었다.
오토바이는 공중에서 차체를 바로잡더니 바닥에 미끄러지듯 착지했다. 흙바닥에 스크래치가 나는 동시에 오토바이와 마주 보게 되었다.
얼마간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을 때, 오토바이의 주인이 먹색 헬멧을 벗었다.
아래로 흘러내리는 붉은 머리칼에 저절로 눈살을 찌푸렸다. 내 표정을 마주한 유제이가 혀를 찼다.
“사람 얼굴 보자마자 그게 무슨 표정이야.”
“분명 현장 뒷수습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유제이는 헬멧을 오토바이 손잡이에 대충 걸고는 내려서 옷을 툭툭 털었다.
“에이, 옷 다 상했네.”
나는 그가 온 방향을 돌아봤다.
“혼자 온 겁니까? 길 따라 안 가고 왜 여기로 왔어요.”
“수상한 기척 따라 왔다. 왜? 너도 그래서 이쪽으로 온 거 아니야?”
“…….”
유제이는 말을 마치자마자 동굴 쪽으로 눈을 돌렸다.
확실히 상당히 수상해 보이는 입구였다. 우리가 쫓던 트럭은 보이지 않았지만, 동굴 앞에 발자국이 여러 개 찍혀 있었다.
동굴 안쪽으로 이어지는 발자국들이 마치 내게 안으로 들어오라 손짓하는 것 같았다.
‘수상하고 위험한 냄새를 폴폴 풍기면서 말이지.’
들어갈지 말지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을 때 유제이가 가죽 장갑을 벗어 바지 주머니에 넣더니 먼저 걸음을 떼었다.
“이봐, 지원군 기다렸다가……!”
“네네, 그러시든가. 그사이에 내가 다 홀라당 먹고 있을 테니까.”
지원은 뒤도 안 돌아보고 손을 흔들며 동굴로 들어갔다.
원래부터 제멋대로인 건 알았는데 민지민이 없으니 말 들어 먹을 생각을 안 했다. 미간을 꾹 누르는데 때마침 이어셋을 통해 가경의 목소리가 들렸다.
-양 헌터? 여기 산길 타고 쭉 달리니까 공장이 나오긴 했는데 거긴 어때.
-거기에 트럭 있습니까?
-그게 말이야. 주차장에 트럭 같은 게 많긴 한데 번호판이 죄다 떼어 있네.
가경의 목소리에서 곤란함이 배어 있었다.
-여기도 동굴을 발견했는데, 트럭은 없습니다.
-그래? 공장이랑 동굴이라…….
가경의 고민이 길어질 때쯤 나는 별수 없이 동굴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을 맺었다.
-동굴 쪽은 제가 먼저 확인하고 있을게요. 유제이 있으니 너무 걱정하진 말고요.
-뭐? 유제이 헌터가 거기 있다고? 잠깐…….
가경이 무어라 더 말을 이으려는 듯했지만 서둘러 유제이를 따라 동굴 안에 들어서자 음질이 나빠지더니 이내 툭 잘렸다.
유제이는 자신의 뒤를 따라온 내 발소리를 듣고는 멈춰 섰다.
“뭐야. 안 들어올 것처럼 굴더니.”
장난기 가득한 표정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고 칠까 봐 들어온 거니, 내 뒤로 붙어.”
그 말과 함께 손전등을 켜려는데 벽면에 달려 있던 촛대에 불이 들어왔다.
‘수상하기 짝이 없네.’
그중에서도 가장 수상한 건 이 공간이 자아내는 느낌이었다. 산길을 올랐을 때부터 든 기시감이 보다 짙어졌다.
기시감이 서서히 정체를 드러내려 고개를 드는 듯했다.
사실 나는 계량산에 들어설 때부터 서초 게이트를 떠올리고 있었다.
서초 게이트 속에서 꼭 살아 있는 목구멍처럼 울렁이던 동굴 속의 섬뜩하고 불결한 기운이 선명하게 되새겨졌다.
가볍게 혀를 차는데, 뒤따라오던 유제이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뒤를 따르라니. 재각성하더니 건방져졌네. 내가 너보다 선배고 오빤데.”
내가 그의 보잘것없는 말에 답하지 않자, 그는 보란 듯 발소리를 크게 냈다.
동굴은 안으로 갈수록 천장이 높아지는 구조였다. 덕분에 유제이의 요란한 발걸음 소리가 사방에서 울렸다. 나는 나직하게 일갈했다.
“발소리 죽여.”
“내가 네 말을 들을 것 같아?”
그는 청개구리같이 혓바닥을 내밀며 돌부리를 걷어차며 나아갔다. 그리고 경쟁하듯 나를 앞지르며 큰 소리로 떠들었다.
“내가 우연히 듣게 된 건데 말이야. 네 부모라며? 에스텔인지 뭔지 이 약 처음 기획한 게.”
우연은 개뿔. 민지민에게 들었을 게 뻔했다.
유제이는 뒤를 힐끗 쳐다보며 말을 맺었다.
“어쩐지 누가 이딴 생각을 한 건가 했는데, 너 같은 C급의 문제 많은 에스퍼를 자식으로 둔 부모가 할 법한 발상이라 납득이 딱 되더라고.”
그의 시답지 않은 도발에 나는 한쪽 귀를 후비적거렸다. 유제이는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침묵은 긍정의 의미라던데. 그럼 이것도 긍정해 보지.”
“…….”
“네 재각성도 에스텔 복용이지? 한지원이 갑자기 강해진 것도.”
유제이는 이제 완전히 걸음을 멈추고 나를 마주 보고 섰다.
“그게 아니면 말이 안 된단 말이지. 그런 새끼가 갑자기 에너지를 폭발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너도 그 새끼도 모두 뒤 구린 수를 쓴 거야. 내 말이 맞지?”
원체 주변 사나운 놈이라 도박장에선 그냥 내버려 뒀는데 이렇게 마주 보고 서니 확실해졌다.
유제이는 지금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다. 초조함에 사로잡혀 말이 빨라지고 눈동자도 가만히 두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이런 비슷한 증상을 근래 본 적이 있었다.
“네가 하는 말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내 말에 유제이가 실소를 지어 보였다. 나는 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네 말대로라면 오히려 뒤 구린 건 너 아닌가? 성장 예상 그래프가 바닥을 찍던 놈이 폭발적으로 성장했잖아. 그러고도 불안해하는 꼴이라니.”
내 말에 유제이의 얼굴이 서서히 창백해졌다. 나는 방점을 찍듯 말을 마무리했다.
“하나만큼은 확실히 알겠어. 네가 열등감덩어리라는 거.”
유제이의 이마 위로 핏줄이 솟아올랐다. 먼저 도발한 주제에 너무 쉽게 걸려들었다.
“널 처음 봤을 때 죽였어야 했는데.”
“면전에 대고 욕하는 건 작전 끝나고 해 줄래. 정신 분산되니까.”
그렇게 말하며 가만히 선 그를 스쳐 지나가는데 유제이가 속삭이듯 입을 열었다.
“누가 그딴 싸구려 먹은 줄 알아? 난 달라. 다르다고.”
조금 전과는 아주 상반된 날것의 목소리였다. 그에 놀란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를 돌아봤다.
“너 지금 뭐라고.”
예상치 못한 고백에 내가 동요한 낯빛을 하자 유제이는 만족스러운 듯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어쩐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고.”
“…….”
“왜 에스텔을 탐냈는지.”
“뭐?”
“안 그래? 적정선에서만 먹으면 큰 부작용도 없으니. 어쩌면…….”
“책임질 수 있는 말만 해. 유제이.”
내 일갈에 유제이는 입을 다물더니 매섭게 나를 노려봤다. 무거운 정적 속 그의 한쪽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이렇게 마주 보고 있으니까 그 생각 나네.”
“…….”
“그때 우리 대인전 경기, 그거 심판이 끼어들어 어이없게 승부가 났었지? 그런데 여긴 방해자도 없고.”
계속되던 불안이 닻을 내린 듯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제대로 결판 지을 수 있겠네?”
눈을 깜빡이는 순간 유제이가 내게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