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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53)화 (153/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53화

* * *

‘정신이 하나도 없네.’

나는 포커장에 앉아 패를 대충 펼쳐 들었다.

눈으로는 판을 보았지만, 신경은 온통 귀에 꽂힌 이어셋에 가 있었다. 마침 이어셋 너머에서 불법투기장에 나가 있는 조이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 세 번째 경기도 끝나는데요?

비딱한 조이현의 말에 나는 다리를 달달 떨었다.

-아니, 이거 언제 움직입니까? 한주먹 거리도 안 되는 에스퍼 둘이 서로 죽자고 패기만 하고 약 같은 거는 보이지도 않는데.

“…….”

그렇게 ‘약’ 같은 특정 용어는 육성으로 언급하지 말라고 했건만, 기어코 내뱉는 모습에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내가 민지민에게 팀원으로 제안한 건 오델리아 길드의 조이현과 윤가경이었다.

최강혁 감시관은 외부 인력이 이 일에 끼어드는 건 결사반대라며 딱 잘라 거절했지만, 민지민은 두 사람 모두 뛰어난 헌터이고 길드전에서 신세 졌다며 받아들였다.

어처구니없는 말이었지만, 뜻대로 되면 뭐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우리 셋이 팀으로 작전 수행이 가능할지 걱정이 많았다.

‘하나같이 자기주장이 강하니까.’

그래서 간단한 규칙과 사인, 루틴만 만들어 작전에 임했는데 조이현은 보다시피 몸이 간질거려 죽으려고 했다.

“풀 하우스.”

“미친 거 아니야? 삼 연속 풀 하우스라니 말이 돼?”

“네 허접스러운 실력을 탓하는 게 어때?”

나는 소란스러운 인근 테이블로 고개를 돌렸다.

조이현과 다르게 윤가경은 도박판에 완벽하게 적응한 모양이었다. 금팔찌와 목걸이를 두르고 다리를 꼬고 앉은 그녀는 회사에서와 달리 신수가 훤했다.

패를 만져야 피가 돈다는 도박꾼들의 농이 떠올랐다.

‘진짜 도박에 눈을 뜬 거야 뭐야.’

전혀 다른 두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띵한데 듣기 싫은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재미있는 분들을 데려왔네요.

민지민이었다. 웃음기가 다분한 그의 목소리에 열이 확 뻗쳤다.

깐죽거리는 말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패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숙여서는 작게 입을 열었다.

“그쪽이야말로 그런 수가 있었으면 진작 알려 주지 그랬어요.”

도박장의 손님으로 위장한 우리 세 사람과는 달리 민지민과 그가 데리고 온 일행은 도박장 직원으로 위장해 있었다.

이곳에 들어오다 양복 차림으로 입구를 지키는 이곤을 봤을 때는 너무 놀라 소리 지를 뻔했다.

민지민이 데리고 온 사람은 유제이와 이곤 그리고 집공팀 소속의 주민호였다.

주민호라는 이름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집공팀에서 그런 이름을 본 적 없는 것 같아서였는데, 다영에게 들으니 1군에 다영과 함께 있다 두 달 전 민지민 추천으로 소속을 옮긴 사람이라고 했다.

왜 소속을 옮겼는지 의구심이 더해질 때, 다영이 한마디 덧붙였다.

‘공간 이동 능력자였어요.’

그제야 왜 그를 이번 작전에 포함시킨 건지 알 수 있었다.

내 말에 민지민이 웃음기 머금은 목소리로 말했다.

-개인적으로 움직인다고 하길래, 묘수가 있나 했죠.

“…….”

‘개자식.’

각자 나뉘어 움직이지만 일을 성공시키기 위해 한 채널의 무전을 쓰며 상황을 공유했다.

민지민은 CCTV실에 이곤은 입구에 조이현과 유제이, 주민호가 불법 투기장에 마지막으로 나와 윤가경이 1층 포커장에 자리를 잡았다.

작전은 간단했다.

상황이 만들어지면 유제이와 조이현이 빠르게 주민호를 ‘그 방’으로 들여보낸다.

그럼 주민호가 철창째 사람들을 임시 지정해 둔 장소로 이동시킨다.

간단한 듯했지만 변수가 많았다.

예를 들면 이런 거.

-도통 움직일 생각을 안 하는데.

경비가 전보다 강화된 것이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지난 침입 사건 이후 철창을 옮길까 걱정되어 서둘렀는데 경비만 더한 듯했다.

물론 이 역시 골치 아픈 문제이긴 했다. 붉은 철문 앞을 지키는 경비원이 도무지 움직일 생각을 안 했다.

특별 지시를 받았다며 다가온 유제이의 교체 신호도 깡그리 거절했다.

그 때문에 자꾸만 작전 실행 시간이 미루어지고 있는데, 민지민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사고를 쳐 줘야겠는데.

“…….”

어쩐지 일이 이렇게 될 거 같았다. 망부석 같은 경비원을 움직일 방법은 투기장 내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것밖에 없었다.

-나밖에 없다는 거죠.

조이현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읊조렸다.

유제이와 주민호는 직원으로 변장한 상태였기에 소란을 피웠다가는 소란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었다.

나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부탁할게요. 무리하진 말고.”

-의뢰비에 첨부할 거야. 참고로 나 비싸다.

조이현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리쳤다.

-그게 주먹이냐! 내가 새끼손가락으로만 싸워도 벌써 경기 끝났겠다! 에스퍼 망신은 다 시키네!

혀를 찰 때는 언제고 목소리가 찢어져라 소리를 질렀다.

이어셋을 통해 들리는 말들이 가관이었다. 곧장 주변이 부산스러워지는 듯했다. 얼마나 난장을 피우고 있을지 보지 않아도 훤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제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비원도 말리려고 합세하느라 앞이 비었습니다.

나는 포커 카트를 두고 자리에서 일어난 다음, 서둘러 층계로 몸을 옮겼다. 조이현은 미끼 역할을 하고 있으니 안으로 들어갈 수 없고, 그렇다고 민지민네 사람만 내부로 들어가게 할 수도 없었다.

“윤가경 헌터 1층을 부탁합니다. 저는 아래로 합류합니다.”

그 말과 함께 겉옷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구겨 넣은 캡 모자를 꺼내 눌러쓰고는 아래층으로 향했다.

예상대로 소란 때문에 경기는 중단되고 사람들이 한쪽으로 몰려 있었다.

조이현의 무지막지한 공세에 경비원들 모두가 들러붙어 그를 막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그를 힐끔 보고는 숨겨진 방 쪽으로 향했다.

복도로 들어서니 끝에 유제이와 주민호가 보였다. 서둘러 두 사람을 따라갔다. 유제이는 내가 도착할 타이밍에 맞춰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며칠 전에 왔을 때와 내부 상황은 똑같았다. 벽을 짚고 조명을 켜자 어둠 속에 누런 전구가 빛을 발했다.

그 아래로 드러난 처참한 광경에 유제이는 코를 막았다.

“듣던 거보다 훨씬 심한데.”

“…….”

나 역시 지난번에는 보지 못한 게 보였다.

철창은 정제석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 안에 몸을 구기고 있는 에스퍼들의 피부는 하나같이 곪은 채였다.

하루 이틀 방치된 게 아닌 듯했다. 내가 가만히 그 모습을 관찰하고 있자 유제이가 주민호를 툭 쳤다.

“뭐 해. 빨리 시작 안 하고.”

그제야 주민호가 어깨를 움찔 떨더니 바닥에 선을 긋기 시작했다.

하얀 유성 매직으로 바닥에 줄을 긋는 그를 빤히 쳐다봤다. 한 번씩 안경을 올리는 그의 모습이 어딘가 불안해 보였다.

손끝이 지나치게 떠는 탓에 선이 계속 삐뚤빼뚤해졌다.

그사이 바깥에서 누군가의 구둣발 소리가 가까워졌다.

타이밍 좋게 민지민이 입을 열었다.

-조이현 헌터 위로 끌려 나가고 경비원들 복도로 들어갑니다.

당황한 나와 유제이는 서로 빠르게 시선을 교환하곤 몸을 숨겼다.

유제이는 빈 상자 안으로 몸을 욱여넣었고 나는 먼지 가득한 검은 암막 커튼 뒤로 몸을 숨기려 했다. 그러나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 주민호가 바닥에서 여전히 선을 긋는 게 보였다.

무전이 안 들리는 건지 여전히 느려 터진 속도였다.

이내 발걸음이 문 앞에서 멈추며 손잡이가 돌아갔다. 나는 순식간에 주민호를 낚아채 조명을 끄고 커튼 뒤로 몸을 숨겼다.

뒤늦게 움직인 탓에 커튼 깊숙이 숨지는 못했다. 경비원들이 커튼 쪽을 유심히 본다면 튀어나온 주민호의 발끝이 보일 터였다.

나는 최대한 주민호의 입을 한 손으로 막고 움직임을 멈췄다. 방으로 들어온 경비원이 한두 명이 아닌 듯했다.

그러나 그들은 방을 둘러보기는커녕 갑자기 철창을 들어 끌 것에 싣고는 그 위에 검은 천을 씌워 밖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빨리빨리 움직여.”

경비원들 사이에서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은 채 명령하는 이는 지난번 나와 눈이 마주쳤던, 경기 도중 약을 던졌던 관리자였다.

그의 말에 경비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서둘렀다.

“시간 없어, 트럭으로 옮겨.”

나는 퍼석하게 말라 가는 입술을 물었다.

‘하필 이 타이밍에.’

긴장감에 등을 벽에 딱 붙인 채 고정하고 서 있는데 그때 철창 안 에스퍼가 저항하듯 웅성거렸다.

“이런 쓰레기 같은 게.”

철창을 옮기던 덩치가 창살 사이로 다리를 집어넣어 에스퍼를 걷어찼다. 그때 그의 재킷 주머니에서 무언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것은 데구루루 굴러 나와 주민호가 서 있는 구석에서 멈췄다.

자연히 시선이 그곳에 닿았다. 어둠 속에서도 명확히 보이는 금빛 액체는 에스텔이었다.

혹여라도 남자가 물건을 주우려 이곳에 올까 긴장이 됐다. 그 걱정처럼 관리자의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이내 관리자의 것으로 보이는 뱀 가죽의 구둣발이 보였다.

저절로 몸에 힘이 들어갔다. 그 순간 주민호의 입가를 막고 있는 내 손바닥 위로 뜨거운 입김이 쏟아졌다.

소름 끼치는 감각에 당황해서는 주민호를 쳐다봤다. 안경 너머의 그의 눈동자가 옅은 노란빛을 내고 있었다.

그의 불안한 시선 끝에는 에스텔이 있었다.

“미친.”

내 나직한 탄식과 함께 주민호는 나를 뿌리치고 커튼 밖으로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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