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51화
나는 똥 밟은 기분으로 도로 도서관 로비 쪽으로 걸어왔다.
로비로 오는 통로에는 센터 설립에 도움을 준 사람들의 초상과 이름이 나열돼 있었다.
그들은 주로 설립 초기를 함께한 높은 등급의 에스퍼들이었다.
낯익은 얼굴들 사이 알몬드 도고의 초상이 떡하니 보였다. 의도치 않게 그가 만들어 놓은 컬렉션은 모두 있는 그대로 센터의 유산이 됐다.
그 사실을 증명하듯 도고의 초상 아래로 그의 컬렉션 번호와 이름들이 음각돼 있었다.
개중에는 우신과 함께 방문했던 그늘도 보였다.
우신과의 추억을 회상하며 눈을 아래로 쭉 내리는데 어색하게 빈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날카로운 것으로 파 버린 듯 이름 대신 칼집만 남아 있었다.
‘박제된 게이트에 문제라도 생긴 걸까.’
한번 박제된 게이트는 알몬드 도고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유지된다 들었다. 하지만 항상 어디든 예외는 있는 법이다.
때마침 우신이 돌아왔다.
“심심했죠?”
나는 개의치 않은 얼굴로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구경거리가 워낙 많아서.”
우신은 내가 바라보던 곳을 한 번 훑어보더니 주머니에서 카드 키를 꺼냈다.
“그럼 이제 가 볼까요?”
룸 키처럼 보이는 걸 도서관에서 쓸 데가 있나, 호기심을 안은 채 우신의 뒤를 쫓아 엘리베이터를 탔다.
이내 도착한 곳은 도서관 건물의 가장 꼭대기 층이었다. 문이 열리자 눈앞으로 흡사 가이딩 센터처럼 일렬로 선 문이 보였다.
불투명한 문들에는 각각 잠금장치가 달려 있었는데, 우신이 든 카드 키의 쓰임새인 듯했다.
우신은 곧장 걸어가더니 안쪽에 있는 문에 카드를 대고 눌렀다.
문이 열리자마자 안으로 들어선 나는 놀라 걸음을 우뚝 멈췄다.
방은 긴 소파와 탁자만으로 꽉 차는 크기였다. 다만 한 면이 모두 통창으로 되어 있어, 건물 밖 산책로와 센터 본관 건물이 거대한 풍경화처럼 보였다.
“설마 도서관에서 이런 전경을 보게 될 줄은 몰랐네요.”
내 감탄에 우신이 곧장 소파 쪽으로 날 이끌었다. 통창을 향해 놓인 소파에 나란히 앉자 풍경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탁 트였죠. 보이는 건물이 센터라 좀 그렇긴 하지만.”
우신이 끝에 멋쩍은 웃음을 내보였다.
그의 말처럼 누가 자기 일하는 건물을 마주 보고 싶어 하겠냐만, 자본을 퍼부은 덕분인지 꽤 볼만한 광경이었다.
거의 평생을 이곳에서 지내며 본 풍경임에도 색달랐다.
바깥 풍경에 정신이 팔려 나도 모르게 맹한 얼굴로 창밖으로 바라보고 있자 그가 물었다.
“그렇게 좋아요?”
“그게 조금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새삼 아름다운 곳이네요.”
“저녁에 보는 야경은 또 다릅니다.”
그의 말처럼 그건 또 다른 맛이 있을 것 같았다.
“그러게요, 정말 근사할 것 같아요.”
웃음기를 머금은 얼굴로 그를 돌아보는데, 언제부터 내 쪽을 보고 있었는지 곧은 시선과 눈이 딱 마주쳤다.
“네. 정말 아름다울 거예요.”
나란히 앉아 있던 탓에 고개를 돌리자 의도치 않게 몸이 살짝 기울었다.
그제야 아까부터 손가락 끝에 닿던 것이 그의 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풍경에 정신을 빼앗겨 신경 쓰지 못하던 것들이 하나둘씩 생경한 감각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제야 낯설 것 없는 풍경이 색다르게 느껴진 이유를 알아차렸다.
곁에 있는 사람의 의미가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생각에 잠긴 동안에도, 내가 눈을 피하지 않고 그를 빤히 쳐다보자, 되레 우신이 민망해했다. 그가 슬쩍 내 손을 그러쥐며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주제를 돌렸다.
“요즘 바빠 보이던데 괜찮습니까?”
특수 마약팀 업무에 관해 묻는 모양이었다.
“요즘 계속 언론이건 티브이건 다 그 이야기더군요.”
“신 마약이요?”
“네.”
손끝을 타고 넘어온 우신의 에너지가 빠르게 체내의 무너져 있던 길을 복구해 나갔다.
이상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의 가이딩을 받으면 모두 오만이었단 걸 알게 된다.
동시에 얼굴이 살짝 달아오르며 양 볼이 뜨겁게 느껴졌다.
“이름이 아마 에스텔이었죠.”
나는 우신을 힐끔 올려다봤다.
“네, 맞아요.”
내 대답에 우신은 얼마간 그 이름을 곱씹듯이 입술을 달싹이다 희미하게 웃었다.
“마약에 붙이기에는 지나치게 예쁜 이름이네요.”
그것이 약의 풀 네임인지 그들 사이의 은어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민지민이 추측건대 복용하자마자 힘이 강하게 타오른다는 의미에서 붙은 것 같다 했다.
하지만 중독자의 최후를 본 내 생각은 달랐다.
오히려 별이 지는 마지막 모습처럼 피를 토하며 죽는 모습이 그 이름과 꼭 맞아떨어졌다.
에스텔을 생각하니 속이 답답해지는 탓에 아무 말 없이 우신을 바라봤다.
우신은 내 손마디를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무슨 일이냐는 눈으로 시선을 마주쳤다.
‘한영원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해요.’
동시에 윤가경과의 마지막 대화가 기억 속에서 계속 살아났다.
그 잔상을 지우듯 나는 슬그머니 우신의 손을 쥐었다. 그러자 우신이 나직하게 말했다.
“항상 말하지만 당신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건 뭐든 도울게요. 그게 뭐든 최선을 다해서.”
그의 말에 어떤 생각을 하기도 전에 불쑥 입이 열렸다.
“말이라도 고마워요. 하지만…….”
“또 괜찮다고 하려고요.”
어쩌면 나보다도 날 잘 알고 있는 우신이 그렇게 답하며 빙그레 웃었다.
남의 입으로 듣고 나니 그게 얼마나 터무니없는 대답인지 알 것 같았다.
나는 또렷해진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강우신 가이드, 이제 당신 차례예요. 말해 줄래요? 서초 게이트에서 나온 후의 이야기.”
우신의 눈빛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날을 회상하는 듯했다. 그날 일에 관련된 이들 중 아직까지 현장에 남아 있는 건 그가 유일했다.
“나도 찾아봤는데, 그 사건과 연관된 사람은 모두 죽거나 실종되거나.”
“멀리 떠났죠.”
“알고 있었네요.”
“그럼요. 제가 빼냈으니까.”
우신은 마치 내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차분히 답했다.
“유감스럽게도 제가 기억하는 건 모든 일이 정리되고 사흘이 지나서부터예요.”
“……아무래도 충격이 컸을 테니까요.”
탈출시키려는 목적이었다 해도 있는 힘껏 그를 밀었다. 내가 그의 가슴께를 바라보며 말하자 우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충격이 커 눈을 뜨고 조사를 받을 때까지도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그러다 재각성을 하게 됐죠. 다시 그날의 일에 대해 되짚어 보려 했을 땐, 모든 정보가 이상하리만큼 훼손되고 일급비밀로 처리돼 있었죠.”
처음 서초 게이트에 조사했을 때 내 상황이 딱 그랬다.
언론에 알려진 건 내 죽음 이후 생길 위기들에 대한 것일 뿐, 아무도 사건의 인과관계에는 집중하지 않았다.
“그러다 그 일에 관련된 사람들이 하나둘씩 징계를 먹고 위험 지역으로 파견을 가서 사고를 당하는 일이 벌어진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럼 빼냈다는 말은 남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였겠네요.”
우신이 씁쓸한 얼굴로 주억거렸다.
“당시 제힘으로는 고작 몇몇 정도밖에 빼돌리지 못했지만요.”
나는 손톱을 매만지다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미안해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우신의 한쪽 눈썹이 눈에 띄게 찡그려졌다.
“내가 그렇게 무책임하게 떠나면 분명 텅 빈 구멍을 메우기 위해 누군가는 책임지게 될 걸 알았어요. 물론 그게 당신일 줄은 몰랐지만. 전부 떠맡기고 떠나서 미…….”
“한 번 더 사과하면 정말 화낼 거예요.”
지금껏 눈물지었으면 지었지 미간에 힘을 주면서까지 노려본 적 없던 그가 단호하게 말했다.
“잘못한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왜 선배가 사과해요. 다신 그러지 마요. 진짜 그동안 버텨 온 게 허무해질 정도로 화나니까. 알겠어요?”
“어……? 어. 알겠어요.”
내 대답에 금세 만족한 듯 그가 표정을 정돈했다.
“제가 빼낸 사람들은 서초 게이트와 깊이 관련된 자들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피신시키는 게 가능했던 거였겠지만요. 그래도 그들에게 몰랐던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몰랐던 사실?”
“네. 서초 게이트는 제가 빠져나온 후로도 얼마간 더 닫히지 않았다고 해요.”
입 밖으로 욕설이 튀어 나갈 뻔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사상자를 더 내면서까지 그 일을 묻으려 하나 했더니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답이었다.
분명 정신이 끊어지기 전까지 문이 닫힌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사고사로 위장한 죽음들이 이어진 데다, 그분 또한 전해 들은 거라 자료도 증빙할 것도 없지만…….”
“남겨 둘 리가 없지. 내막을 알고 있을 법한 사람들은 모조리 죽였으니.”
어쩌면 우신 역시 재각성하지 않았더라면 모든 죄를 다 뒤집어쓰고 남모르게 살해당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누군가 센터의 배후에서 작정하고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다.
그리고 어쩐지 나는 그 일이 지금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과 무관한 것 같지 않았다.
저절로 주먹에 힘이 들어가며 손바닥에 상처가 날 듯 패었다.
우신이 곧장 내 주먹을 감싸 쥐지 않았다면 피를 봤을 것이다.
“난 괜찮아요.”
우신은 내 죄책감을 읽은 듯 말했다. 나는 주먹을 쥐는 대신 우신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윤가경과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무엇으로도 보상받지 못할 지난 6년을 떠올리자 참았던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우신은 7년 전 연구실에서의 일부터 한영원이 살아서 에스텔을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이어지는 동안 큰 표정의 변화 없이 묵묵히 들어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