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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50)화 (150/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50화

나는 한 손에 지퍼 백을 쥔 채 걸음을 서둘렀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내부에 앉아 있던 이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단 한 사람만 빼고.

민지민은 한쪽 벽면 가득 떠 있는 강원도 도박장의 전경 사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 안에는 민지민과 최강혁을 비롯한 감시관 서너 명과 이곤까지 제법 머릿수가 많았다.

보아하니 사건 보고 중이던 모양이었다.

최강혁은 내 등장이 마뜩잖은 듯 표정을 마구 구겼다.

반면 민지민은 평화로운 얼굴을 한 채 날 보지도 않고 말했다.

“들어왔으면 그만 아무 데나 앉죠.”

그 말에 따라 내가 착석한 후에야 사건 보고가 이어졌다.

“이 규격으로 추정하기론 대략 열댓 명의 에스퍼들이 갇혀 있을 겁니다.”

이곤이 작성해 낸 보고서를 바탕으로 도박장 내부를 모델링해 지하 투기장을 대강 재현해 냈다.

그 도면을 통해 데리고 있는 ‘선수’의 규모를 측정 가능했다.

도면을 보던 이곤이 팔짱을 풀며 입을 열었다.

“지하에 갇혀 있는 에스퍼를 제외하고도 고층의 숙박 시설을 이용하는 자들도 있을 겁니다.”

나와 함께 쫓았던 그 선수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

그는 에스텔을 장기 복용한 자는 아닌 거 같았다. 경기가 끝나고 방으로 돌아온 사이 이미 체내에는 그 기묘한 에너지가 사라졌다.

나는 다시 어질러진 방 안에서 반쯤 풀린 눈을 하고 있던 남자를 떠올렸다. 테이블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던 마약도 말이다.

나는 찝찝한 마음에 입을 열었다.

“대부분 약에 취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들어와 한마디도 않던 내가 입을 열자,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내 발언에 최강혁은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

“그 도박장이 원래 약쟁이들 소굴이라는 말 못 들었습니까? 당연히 약에 취해 있었겠죠.”

“약을 한 것만으로도 처벌받아 마땅하지만, 에스텔 복용이 자의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내 대답에 이번에는 민지민이 흥미로운 얼굴을 해 보였다.

“그게 무슨 뜻이죠. 양 헌터.”

“에스텔을 복용할 시, 단시간 내에 강한 에너지가 주입되는 건 사실이지만 유지력이 극단적으로 짧습니다.”

그건 전에 민지민이 밝힌 것이었기에 이곳에 앉아 있는 자들이라면 암묵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굳이 반복하며 강조한 이유가 있었다.

“그럼 힘을 쓰려면 약을 계속해서 복용해야 한다는 건데, 그럼 알잖아요. 어떻게 되는지.”

나는 에스텔이 담긴 지퍼 백을 테이블 위에 던지듯이 올려놨다.

“어쩌면 복용자들도 부작용을 몰랐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알았다고 해도 약에 취해 사리 분별할 수 없는 상태였을 수도 있어요.”

최강혁은 지퍼 백에 담긴 약을 확인하고 왜 진작 제출 안 했냐며 서 있는 관계자에게 약을 건넸다.

“목숨보다 힘을 얻는 게 중요할 리는 없잖아요.”

“…….”

정작 민지민은 에스텔의 실물 따위 안중에도 없는지 나를 빤히 바라봤다.

“글쎄요. 저는 양 헌터와 의견이 다른데요.”

잠시 뒷말을 고르던 그가 한쪽 입꼬리를 당겨 능글맞게 웃었다.

“양 헌터는 어땠습니까?”

“…….”

“양 헌터 역시 낭떠러지와 천상을 한 번씩 경험해 본 사람이 아닙니까? 과거와 재각성해 완연한 힘을 갖게 된 지금을 비교하면 어떻죠?”

“글쎄요. 크게 다를 것 없다고 생각합니다. 변한 게 있으면 나와 관계없는 사람들의 태도 정도?”

보란 듯 민지민을 꼬집지만, 그는 관심 없다는 듯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이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단 한 번이라도 그 강력한 에너지를 맛보면, 그 힘을 얻기 위해 죽음이라도 불사할 거라고.”

민지민의 금안이 사냥을 앞둔 포식자의 것처럼 번들거렸다. 그 섬뜩한 안광에 거대한 욕망이 묻어나는 듯했다.

“이분법적으로 힘과 죽음을 나란히 두면 양 헌터 말처럼 죽음의 공포가 더 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잘 생각해 보세요. 죽음은 형체가 없지만, 힘은 당장의 알약 하나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겁니다.”

민지민은 책상 위에 다 마신 물통과 새 물통을 나란히 두며 설명을 이어 가다 이내 새 물통을 확 낚아챘다.

“그럼 저는 단언컨대 강한 힘을 택할 거라고 봅니다.”

“…….”

“강한 힘은 어두운 밤하늘에 뜬 별처럼 시선을 끌어당기거든요.”

욕망에 젖은 두 눈이 어쩐지 내게 불쾌하게 감기는 듯했다.

찝찝한 기분에 입을 닫아 버리자 최강혁은 내가 민지민의 말에 동조했다고 여긴 듯 콧방귀를 꼈다.

한편 사건 보고를 하던 관계자는 우리의 대치 상태를 보다 헛기침하곤 천천히 말을 이었다.

“도면을 토대로 지하의 ‘선수’를 탈환하고 에스텔 수입원을 확인할 것입니다. 그에 따라 첫 투입은 이틀 뒤로 첫 조는…….”

관계자의 말에 나는 급히 입을 열었다.

“잠시만요.”

“또 뭐죠.”

내가 계속 관계자의 말을 끊고 끼어들자 최강혁이 귀찮은 얼굴로 물었다.

“조 편성 말입니다. 이번에도 저와 민지민 헌터의 조는 다르게 움직이는 건가요.”

“아니요, 이번에는 한 조로…….”

최강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민지민이 손을 가볍게 들어 그의 말을 잘랐다. 그러고는 내게 재질문했다.

“만약 다른 조로 움직인다면 따로 계획이라도 있나요.”

그의 말에 나는 어제저녁 들은 윤가경의 마지막 말을 되새겼다.

‘부탁?’

부탁이란 말을 듣고 놀라 묻는 내게 가경은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다.

‘날 다음 작전에 넣어 줘.’

결의에 차 있던 얼굴을 떠올린 나는 비슷한 표정을 흉내 내며 민지민의 물음에 응했다.

“작전에는 순순히 응할 테니 내 팀원은 저번처럼 내가 선발할 수 있게 해 줘요.”

* * *

강우신은 걸음을 서두르면서도 한 번씩 유리창에 비치는 제 모습을 점검했다.

급히 오느라 제복 차림 그대로였다. 집에 들러 옷을 갈아입고 올 시간은 됐지만, 서둘러 보고 싶은 마음에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막상 약속 장소인 센터에 가까워지자 너무 딱딱해 보이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걱정을 뒤로한 채 곧장 센터 중앙 로비로 들어서는데 어째서인지 안이 소란스러웠다.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사람들 시선이 한곳에 몰려 있었다. 그 끝에 누가 있을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바로 양하나였다.

아직 약속 시각까지 몇 분 남아 있었는데, 진작 와서 기다리고 있던 모양이었다.

원래 같았으면 남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숨어 있을 것 같은데, 무슨 골똘한 생각에 빠졌는지 노골적인 시선들에도 벽에 등을 기댄 채 꿈쩍하지 않았다.

그녀는 통이 넓은 검은 밴딩 바지에 기장이 짧은 회색 후드 집업을 입고 있었다.

가이딩을 앞두고 편한 차림을 하고 온 거 같은데 그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귀여웠다.

얼마간 더 가만히 지켜보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저도 모르게 빙그레 웃는 그때 불청객 같은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야, 저 사람 양하나 아니야? 요즘 티브이만 켜면 나오더니.”

“그러네. 근데 화면발이 안 받네. 실물이 훨씬 내 스타일인데.”

“…….”

그녀의 모습이 사랑스러운 건 아무래도 자신만의 생각이 아닌 모양이었다. 우신의 얼굴에 걸려 있던 미소가 빠르게 사라졌다.

그는 곧장 걸음을 서둘러 하나가 서 있는 곳까지 갔다. 제가 가까이 다가오고 나서야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아, 왔어요.”

“오래 기다렸어요? 일찍 온다고 온 건데.”

하나는 우신의 제복 차림새를 보곤 어딘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전혀요. 그것보다 바쁘면 다음에 봐도 괜찮은데.”

“무슨 소리예요. 전담 가이드 두고 왜 참아요. 언제든지 불러내라는 내 말 또 잊었죠.”

“아직 결과 안 나오지 않았나요?”

‘전담’이란 단어에 힘을 주어 말하는 우신에게 하나가 그렇게 물었다.

우신은 조금 붉어진 뺨을 긁으며 작게 답했다.

“서류가 뭐가 중요해요. 서로가 같은 마음이기만 하면 되는데.”

“……보면 강우신 가이드는 부끄러운 척하면서 할 말은 꼭 다 하네요.”

“그래서 싫어요?”

“싫다고 그럼 안 그러게요?”

하나가 주변을 신경 쓰고 작게 묻자, 우신이 큰 입매를 활짝 당겨 웃으며 답했다.

“아뇨. 더 자주 하려고요. 그럼 익숙해지지 않을까요.”

하나는 민망한 듯 후드의 모자를 뒤집어쓰고는 우신의 옷소매를 당겼다.

“이제 그만하고 자리 옮겨요.”

곧장 그녀는 우신을 데리고 가이딩실이 있는 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나의 손에 이끌려 가는 감각이 나쁘지 않다 생각하던 우신은 급히 다리에 힘을 줘 멈춰 섰다.

“잠깐만요.”

하나가 무슨 일이냐며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우신을 올려다봤다.

“가이딩 센터 아래를 보수 공사한다고 하더라고요.”

“아, 정말요? 그럼 가이딩은 어떻게 하죠.”

하나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우신이 고개를 저어 보였다.

“가이딩실 이용은 여전히 가능해요. 하지만 공사 소리로 무척 시끄러울 겁니다. 정신도 하나 없고…….”

우신이 말을 다 잇지 않고 빤히 하나를 바라만 봤다. 그 열렬한 시선에 그녀는 눈알을 데구루루 굴리다 되물었다.

“그래서요?”

우신은 곤란한 척 제 아랫입술을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오늘은 다른 곳에서 가이딩하는 게 어때요? 기분 전환도 할 겸.”

* * *

기분 전환할 장소라 해 봤자, 단순히 내 숙소 아니면 그의 집을 생각했다.

그곳 말고는 가이딩하기에 적합한 곳이 없으니까.

‘그런데 이런 탁 트인 곳이 취향인 줄은 몰랐네.’

우신이 나를 데려온 곳은 센터 중앙 건물에서 조금 떨어진 도서관이었다.

건물을 빠져나와 일직선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도서관이 나왔다. 센터 중앙 건물을 마주 본 형태의 쌍둥이 건물이었다.

어디선가 듣기론 처음 설립됐을 때부터 함께 세워진 모양이었다. 역사도 깊고 전경도 뛰어나다지만, 내가 혼자 도서관에 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도서관에 도착하자마자 나만 로비에 세워 둔 채 우신이 잠시 자리를 비웠다.

‘오는 길 내내 싱글벙글하더니.’

나는 도서관 로비를 천천히 걸었다. 도서실의 반대편으로 걷다 보니 어느덧 기념관 앞에 다다랐다.

기념관 초입에는 팻말이 달려 있었다.

[별의 탄생]

그제야 관심도 없던 도서관의 존재가 익숙했던 이유가 떠올랐다. 이곳은 센터의 홍보를 위해 세워진 내 기록관이었다.

어린 시절, 각성했던 날을 끊임없이 되풀이해 주는 기록물이 담긴 곳. 덕분에 그날의 일을 잊으려야 잊을 수 없게 됐다.

안에서 해설과 함께 옅은 빛이 새어 나왔지만 들어가는 건 그만뒀다.

고개를 내리자 ‘별의 탄생’이란 제목 아래 생몰 연도가 적혀 있었다. 내 사망 연도는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이었다.

내 죽음마저 자기들 멋대로 기록해 놓다니. 어떤 과정을 거쳤을지 눈 감고도 훤히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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