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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48)화 (148/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48화

“저녁이요?”

바로 되묻자 기다렸다는 듯 김형도가 답했다.

“이 앞에 한식집이 생겼거든요. 엄청 맛있어 보이던데.”

김형도의 권유에 잠시 고민에 잠겼는데 옆에서 팔짱을 끼고 있던 조이현이 입을 열었다.

“윤가경 헌터한테 일 맡겼다면서. 그럼 뭐 시켜 먹든가.”

조이현의 무신경한 말에 김형도는 그를 빤히 쳐다보다 픽 웃었다.

“안 갈 거처럼 말하더니.”

김형도가 장난스럽게 대꾸하자 얼굴이 달아오른 조이현이 소리쳤다.

“안 간다고 한 적은 없거든!”

별것도 아닌 거로 말싸움하는 건 여전했다. 이런 모습을 보는 것도 제법 오랜만이었다.

여기까지 오며 고민이 많았는데, 역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란한 틈에 잡생각을 날려 주는 게 이 팀의 장점 아닌 장점이니까.’

* * *

조이현의 권유대로 닭갈비 정식을 시켜 응접실에 모여 앉아 먹기로 했다.

“한 달도 안 된 거 같은데 오랜만에 이렇게 마주 앉아 식사하니 좋네요.”

식사가 시작되자마자 김형도가 가장 먼저 운을 뗐다.

나를 향한 김형도의 부드러운 시선이 짐짓 부담스러워질 때쯤 옆에 앉은 조이현이 빈정거렸다.

“요즘 티브이만 켜면 나오는데 무슨. 그래서 오랜만에 보는 거 같지도 않네.”

“제가 나오는 걸 전부 챙겨 보는지 몰랐네요.”

내 말에 조이현이 얼빠진 얼굴로 답했다.

“그렇게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인지 나도 미처 몰랐네.”

그의 반응에 하나같이 웃었다. 조이현이 민망한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네 이름이 딸려 나오는 말들이 워낙 자극적이니 그냥 지나치기도 힘들지.”

조이현은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 가며 말을 이었다.

“신마약, 조사반 출두…….”

조이현이 눈치 없이 내가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을 하나씩 콕콕 짚어 나갔다. 뒤이어 김형도가 제 손가락 하나를 접으며 말을 맺었다.

“S급 재각성자까지요.”

그 말에 시선이 쏠리자 김형도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누가 뭐라 하든 저는 축하할 일이라고 생각해서요.”

뜬금없는 김형도의 축하에 분위기는 도로 밝아졌다. 내가 고맙다고 말한 뒤 식사가 재개됐다.

“재각성하면 아무래도 대우가 달라집니까?”

김형도가 궁금하다는 듯이 묻자, 음식으로 양 볼을 가득 채운 조이현이 그의 어깨를 툭 치며 대답했다.

“당연히 그러겠지. S급이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형도는 역시 그렇겠죠, 라고 읊조리다 내 눈치를 보며 말을 이었다.

“그럼 가이드도 확실히 정해졌겠네요. 강우신 가이드로 확정된 건가요?”

형도의 호기심 어린 눈빛에 나는 식사를 멈추고 물을 마신 뒤 컵을 내려 두며 입을 열었다.

“마침 그제 전담 가이드 재검토 관련해 서류를 올렸습니다.”

물론 내가 올린 건 아니었다. 재각성한 뒤로 산더미처럼 쌓이는 일에 내가 신경 쓰지 못하자, 강우신이 즉각적으로 재검토를 요청했다.

내 긍정에 김형도가 역시나, 하는 눈을 했다. 그 모습에 조이현이 그를 게슴츠레 쳐다봤다.

“꿈 깨시지, 임자 허들이 한참 높으니까.”

이내 김형도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무슨……! 그게 아니라 저는 단지 양 헌터도 다양한 사람을 만나 보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

말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속내가 더 훤히 보였다. 그 덕분에 조이현은 미끼를 문 먹잇감을 발견한 듯 신이 나서 그에게 삿대질했다.

“내가 이 새끼 진즉에 알아봤어. 이천 게이트서부터 눈빛이 음흉하더라니.”

“음흉은 누가요! 가이드라면 누구나 양 헌터처럼 강한 에스퍼한테 자연히 끌리는 법이라고요.”

“그럼 내 앞에 가이드가 줄 섰게?”

“농담이죠?”

김형도가 설마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는 의문스런 표정으로 조이현을 쳐다봤다.

구겨진 미간이 그의 진심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 얼굴에 모두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소리 내어 웃고 있는데 정면의 문이 열리며 기다린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식사 끝나면 나 좀 보지.”

“……벌써 다 끝난 겁니까?”

이 팀장 역시 등 뒤의 윤가경을 확인하고는 그렇게 물었다. 그녀는 대답 없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덕분에 웃음기가 지워지며 빠르게 식사를 마쳤다.

세 사람이 식탁을 치우곤 빠르게 자리를 비켜 줬다.

아직 음식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방에 윤가경과 마주 앉았다. 윤가경은 평소처럼 노트 한 권을 들고 있을 뿐 별다른 건 가지고 오지 않았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적막을 깨고 먼저 입을 열었다.

“길드전 때 잘 받았어. 이거.”

그리고 웃옷에 숨겨진 목걸이를 빼 보였다. 마지막에 힘을 과하게 쓴 탓에 금이 나긴 했지만, 아직도 그 형태가 고왔다.

윤가경은 목걸이를 확인하곤 심드렁하니 답했다.

“나는 돈 받고 의뢰를 수행한 것뿐이야. 그러니 나한테…….”

“아무 의뢰나 받지 않는다고 들었어. 그게 고맙다는 거고.”

내 확고한 태도에 윤가경은 아무런 대답 없이 호주머니에서 내가 이 팀장에게 건넸던 캡슐 약을 꺼내 도로 돌려주었다.

에스텔에 관해 조사했다기엔 채 두 시간도 지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떼었다.

“의뢰를 거절하는 거야?”

“그 반대야.”

반대라니, 그게 무슨 뜻인지 단번에 알아듣지 못해 미간을 좁혔다.

“무슨 뜻이야.”

“의뢰를 받아 볼 필요도 없다는 뜻이야. 지난번 이곳에서 나누었던 이야기 기억해?”

“……물론.”

그걸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당시 그 이야기에 열이 올라 끝내는 쓰러지고 말았다. 그럴 만했다. 상당히 충격적인 말이었으니까.

가경은 심이 들어간 펜으로 탁상을 몇 번 툭툭 치더니 말을 이었다.

“그 이야기에는 뒷이야기가 많아.”

나는 이 팀장을 통해 에스텔을 건네며 연구실에 관한 부연 설명은 덧붙이지 않았다. 민지민이 내게 건넨 조사 내용 역시 아직 언론에 흘러나지 않았다.

그러니 신마약과 과거 연구의 연관성을 의심하는 건 내부의 일이라는 소리다.

그런데 눈앞의 가경이 에스텔과 7년 전 연구실을 순식간에 연결 지었다.

“……지금 그 이야기를 다시 하는 건 이 약이 그때의 일과 연관돼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그래. 너도 알고 나한테 가지고 온 거 아니야? 약의 조사는 물론 과거 연구실에 관한 이야기까지 더 듣고 싶어서.”

윤가경은 완벽하게 나를 꿰뚫어 보고 있었다. 헐벗겨져 있는 것만큼 속내가 다 들여다보이는 듯했다.

나는 뒷머리를 긁적이다 고개를 끄덕여 순순히 수긍했다.

“맞아. 처음에는 긴가민가했지만 원치 않게도 계속 모든 게 나를 7년 전으로 끌어들이고 있어.”

내 빠른 인정에 윤가경은 고개를 한 번 주억이고는 노트를 펼쳤다. 그러고는 습관처럼 그림을 그리며 말을 이었다.

“급한 거 같으니 바로 본론부터 말할게. 신마약에 특정 에너지가 깃든 것 같다고 추측했다며.”

“응.”

“감이 좋네. 맞아.”

예상했으나 직접 인정받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에너지를 섭취가 가능한 액상형으로 만들어 내다니.

“이건 아주 강력한 에너지 농축액이야.”

듣고도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하자, 그녀가 어깨를 으쓱였다.

“나 같은 능력을 가진 헌터도 있는데, 농축액으로 뽑아내는 헌터가 없을 거라고 어떻게 단정해.”

윤가경은 그 말과 함께 곧장 무언가를 그려 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 그림의 형태에 집중했다. 점점 윤곽이 잡히더니 사람의 실루엣이 되었다. 손을 계속 놀리며 윤가경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런 말도 안 되는 능력을 사용하는 에스퍼를 난 딱 한 명 알고 있어.”

그녀의 말에 놀라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되물었다.

“그 능력자를 알고 있다고?”

화색이 도는 물음에 가경이 나를 빤히 쳐다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양하나 너 역시 그 에스퍼를 알고 있고.”

놀라움에 커졌던 눈이 도로 가늘어졌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윤가경의 손끝에서 그려지고 있는 사람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상대를 예감한 내 표정을 보고는 윤가경이 스케치를 끝낸 펜을 치우며 입을 열었다.

“그래, 402번. 한영원이야.”

그 시절의 이야기만 나오면 몸이 듣기를 거부하듯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그때 길드전 참가 신청을 앞두고 네가 그랬지…….”

나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짓누르며 윤가경을 바라봤다.

“한영원이 죽지 않고 센터에 있다면 어떨 거 같냐고.”

내가 그 말을 하길 기다린 듯 윤가경이 빙그레 웃었다.

“기억하네.”

“이후 모른 척하더니 그냥 한 말이 아닌가 봐?”

“어떨 것 같아. 너도 기억을 해내려고 노력을 해 봐. 그것도 아니면 좋은 머리로 추측을 하든.”

“…….”

말없이 정적이 흐르자 가경은 그림을 그려 나가던 손을 멈추곤 나를 쳐다봤다.

“힌트 필요해? 게이트 브레이크 현장에서 아이들만이 부상 없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해.”

“글쎄, 그런 비슷한 경우를 봤어 가지고.”

이천 게이트에서의 일을 상기하며 답했다. 스무고개처럼 답을 유예하는 윤가경의 행동에 비딱하게 답한 것이었는데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때 애들을 지켜 줬다던 그 아이 분명 각성자라고 했지?”

“……그래.”

“비슷하다고 하면 대답이 될까?”

난 그제야 지금 윤가경이 농담 따먹기를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당시의 기사들을 떠올렸다.

돌이켜보면 같은 건물에 있던 이들은 연구진들을 비롯해 대부분이 사망했다.

이곤과 윤가경이 머문 방만 제외하고 말이다.

문을 열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그 어린아이들이 어떻게 사고에 휩쓸리지 않았을까.

우습게도 그 순간 그에 대한 대답으로 하나의 가설이 떠올랐다.

“네가 그랬지. 내게 배신감을 가장 크게 느낄 사람이 바로 이곤이라고.”

“그랬지.”

“이곤이 문을 박살 냈구나. 그때쯤이면 이미 에스퍼로 완전히 각성한 상태였을 테니까.”

아마 예측건대 그 당시 이곤은 완성형 각성 실험체였을 것이다.

언젠가 이곤에게 그런 소문이 따라붙는다고 들었었다.

‘연구실의 유일한 성공작.’

이곤은 그때 이미 과거 연구실의 보안 시스템을 부수고도 남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을 거다.

그런 그가 연구실에서 도망치지 않고 순순히 남아 있던 이유가 무엇일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양하나가 연구실에 아직 남아 있으니까.

‘너를 가장 믿어서 배신감이 클 사람이 바로 이곤인데.’

윤가경은 그런 속사정을 알고 있기에 내게 그런 말을 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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