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47화
그들의 눈동자가 하나같이 어둠 속에서 짐승처럼 샛노랗게 번뜩였다.
그 수많은 시선에 압도된 듯 몸이 굳었다.
그러한 내 모습에 박희민이 긴박한 음성으로 나를 불렀다.
“양 헌터!”
서둘러야 한다는 걸 분명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몸이 말을 안 들었다.
이내 우려한 대로 등 뒤의 문이 먼저 열렸다.
나를 쫓던 경비원들이 결국 이곳까지 당도한 걸까, 그리 여겼는데 불쑥 커다란 실루엣이 들이닥쳐 나와 박희민을 단번에 밖으로 끌어냈다.
단단한 힘에 끌려 나가자마자 발아래로 쓰러진 경비원 두어 명이 밟혔다.
그들 모두 정신을 잃은 듯 앓는 소리 하나 없었다.
“지금 빠져나가야 해.”
이곤이 숨을 가쁘게 내쉬며 나갈 곳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나는 그와 닫힌 문을 번갈아 쳐다보다 나지막하게 입을 뗐다.
“이곤, 이 안에…….”
“그래, 알겠으니까. 지금은 일단 나가자고.”
이곤은 내 말을 툭 잘라 버리고는 입구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손목을 잡은 손을 풀지 않은 채.
덕분에 멍한 정신을 하고도 빠르게 그곳으로부터 멀어져 갔다.
건물 출입구에서 경비원을 몇 명 더 만나긴 했으나 이곤이 손쉽게 그들을 상대해 주어 내가 나설 일은 없었다.
우리는 빠르게 도박장과 멀어져 산속으로 들어섰다. 작은 산책로를 따라 뛰니 이내 봉고차가 있었다. 두 사람이 타고 온 차인 모양이었다.
이곤은 주변이 안전한 걸 확인하고 나서야 붙들고 있던 내 손목을 놓아줬다.
거친 손아귀 힘에 희멀건 손목 위로 붉게 손자국이 남았다.
희민은 봉고차에 도착하자마자 참던 숨을 몰아쉬었다.
“정말 죽는 줄 알았네.”
게이트 외의 경험이 적은 희민은 내내 긴장 상태였는지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확실한 체계가 갖추어져 가이드의 역할만 수행하면 되는 게이트 투입과 달리 이런 사찰 업무는 가이딩 외의 일까지 수행해야 했다.
그 때문에 시급이 센 걸 테지만, 목숨이 담보라는 걸 이제야 몸소 체감한 모양이었다.
내가 말없이 서 있자, 이곤이 항공 점퍼를 대충 벗어 뒷자리에 던지더니 무심하게 말했다.
“타.”
“괜찮아.”
칼 같은 거절에 이곤이 운전석으로 향하던 걸음을 멈추고 비딱한 눈으로 나를 돌아봤다.
“센터 가는 거 아니야? 방향도 같은데 따로 갈 게 뭐 있어.”
내 말이 치기 어린 투정 같았는지, 이곤 역시 반항기 어린 눈을 하고 있었다. 나는 목 뒤를 쓸며 말을 이었다.
“그런 거 아니야. 언론에 노출된 마약반은 나 한 명이고 두 사람은 민지민 대리인으로 왔다며, 구태여 셋이 들어가 눈에 띄어 좋을 것도 없고 아직 차가 끊긴 것도 아니고.”
내가 이런저런 이유를 늘어놓자 이곤이 굳은 얼굴로 되물었다.
“설마 다시 안에 들어갈 생각은 아닌 거지?”
“뭐?”
“아까 그것들 뭐야. 하나같이 눈이 샛노랗던데.”
“……봤어?”
이곤은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곤의 말처럼 다시 그 안에 들어갈 생각은 아니었다. 약을 수집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확실히 구린내가 난다는 건 확인했으니까.
그저 지금 이곤과 동행하는 것을 피하고 싶었다.
나는 마른 입술을 한 번 씹어 물었다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너, 정말 알고 있는 게 없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에스텔로 추정되는 약을 먹은 에스퍼가 뿜어내는 에너지에서 계속 기시감을 느껴 왔다.
그게 불안감을 증폭시켰는데, 그 철창이 있는 방을 빠져나오기 직전, 내 에너지에 반응하듯 노란 눈을 빛내던 모습들이라니.
내 에너지에 반응한 게 맞을까. 착각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불안에 방점을 찍는 순간이었다.
“불안해.”
이곤은 내 입에서 나온 예상치 못한 말에 미간을 좁혔다.
“뭐?”
“이번 일이 7년 전 그 사건의 연장선이라면…… 정말 그렇다면 내가 아는 이야기와는 어딘가 아귀가 맞지 않아.”
“…….”
“곤아, 너 나한테 말하지 않은 게 있니?”
내 말에 이곤의 눈빛이 묘하게 흔들렸다. 그가 이내 눈을 피하고는 낮게 답했다.
“내가 대답할 의무는 없어.”
“…….”
“너도 내 대답에 아무것도 답해 주지 않았잖아? 그런데 내가 왜 그래야 해.”
“두 사람 또 왜 그래요, 잘 도망 나와서. 하늘에 감사한 이 타이밍에.”
가만히 있던 희민이 어떻게든 분위기를 풀어 보려 했지만 나와 이곤은 서로 눈 하나 깜짝 안 했다. 이곤은 휙 돌아 운전석에 올랐다.
“알아서 해, 걸어오든 뛰어오든.”
곧장 이곤이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 모습에 희민이 서둘러 뒷문을 닫고 조수석에 타려 했다. 그러다 나를 힐끔 돌아봤다.
멀뚱히 선 내가 눈만 끔뻑이고 있자, 잠시 뒷머리를 긁적이던 희민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아까는 무슨 히어로 같은 등장이었어요, 끝은 좀 넋 놓긴 했지만.”
그렇게 속살거린 그는 내 점퍼 주머니에 잠시 손을 대곤 조수석에 다시 올라탔다.
희민이 올라타기 무섭게 봉고차가 무서운 속도로 산을 빠져나갔다.
나는 멀어져 가는 봉고차를 보며 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윽고 흘러내린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주머니 안으로 손끝에 새끼손톱만 한 둥그런 조약돌 같은 게 잡혔다. 조금 전 희민이 내 주머니에 손을 댔던 게 떠올랐다.
‘왜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나 했더니, 뭘 넣은 거야.’
손에 잡힌 그것을 꺼냈다가, 내용물을 확인하고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주머니에 있던 건 캡슐로 된 약이었다. 캡슐 안에 노란색 액체가 담긴 형태의 약, 에스텔이었다.
그 방 안에서 가만히만 있던 게 아닌 모양이었다.
용케도 이걸 확보해 뒀다가 내게 넘기다니.
왜 센터로 가져가지 않았는지 그의 의중을 정확히 파악하긴 어려웠지만 나는 다른 주머니에서 작은 지퍼 백을 꺼내 에스텔을 안에 넣었다.
내 손에 들어온 이상 빠르게 진실에 닿을 작정이었다. 이곤을 통하지 않고도 과거를 알아낼 방법은 있으니 말이다.
* * *
강남에 위치한 사무실, 나는 로비에 앉아 안내 데스크를 마주 보고 있었다.
안내 데스크 위에 놓인 길드를 상징하는 로고 조형물이 번지르르했다. 최근에 교체한 듯 먼지 한 톨 없었다.
그때 사무실 안쪽에서 익숙한 인영이 나타났다. 나를 발견한 상대가 온화하게 웃어 보였다.
“그렇게 당차게 말하고 끊은 거에 비해 너무 빨리 찾아온 거 아닙니까?”
이 팀장이 눈을 휘며 여우처럼 웃었다. 나는 민망해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됐네요.”
“따라오시죠.”
오델리아 팀과 함께한 2달 남짓의 시간은 모두 전주 사옥에서 보냈다. 그렇다 보니 강남 본사 방문은 처음이었다.
얼마 전 크기를 확장했다더니 인테리어까지 다시 한 모양이었다. 우드와 화이트 톤, 식물들이 잘 어우러져 있었다.
“돈 좀 버셨나 봐요.”
내 심드렁한 어투에 이 팀장이 픽 웃었다.
“누구 덕분에요.”
그 말이 듣고 싶어 한 말이었기에 나는 만족스러워하며 입매를 조금 올려 웃었다.
곧 응접실에 다다른 이 팀장이 나를 의자로 안내하고는 차를 내왔다.
“급한 일인 것 같은데, 안부 인사는 치워 두고 이야기부터 할까요.”
내 상황을 꿰뚫어 본 듯 이 팀장이 본론을 꺼냈다. 덕분에 나는 주저 없이 확보한 에스텔을 탁상 위로 꺼냈다.
이 팀장은 눈앞에 놓인 캡슐 약을 보더니 일순 인상을 쓰고는 나직하게 되물었다.
“이게 바로 그것이군요. 신종 마약.”
“맞아요.”
언론에서 워낙에 떠들기도 했지만, 이번 길드전에 참가한 에스퍼들에겐 더욱더 귀에 익은 주제였다.
적으로 맞부딪히긴 했으나 사지 멀쩡하던 에스퍼가 피를 토하며 즉사했으니 같은 에스퍼로서 충격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팀장은 지퍼 백에 든 채로 캡슐 약을 들고는 흔들었다. 내부의 액체가 흔드는 방향대로 엎치락뒤치락했다.
“이게…….”
“그 안에 든 액체가 제가 찾던 것 같아요.”
이 팀장이 얼마간 더 에스텔을 가만히 보다 내게로 쓱 시선을 옮겼다.
“신종 마약을 여기로 가지고 온 이유가 있나요.”
“아직 근거는 없지만, 교감 신경을 각성시키는 원료가 지금까지 보지 못한 종류의 것 같아서요.”
“추측되는 거라도 있습니까?”
이 팀장은 숨기는 것 없이 이야기하라는 단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잠시 주저하다 말을 이었다.
“어쩌면 에너지가 들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내 말에 이 팀장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그의 반응을 확인한 내가 몇 마디 더 보탰다.
“그 약을 한 헌터들에게서 하나같이 같은 파장의 에너지를 느꼈습니다.”
뒤이어 내 에너지에 반응했던 헌터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에너지를 정제석에 넣을 수 있는 윤가경 헌터라면 더 자세히 알아봐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찾아왔습니다.”
이 팀장은 내 의도를 바로 이해했는지, 기다려 달라는 말과 함께 약을 들고 걸음을 옮겼다.
잠시 뒤 가경에게 에스텔을 전달했으나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다며 괜찮냐고 물었고 나는 별수 없이 알겠다고 답했다.
당장 손에 쥐고 있다 해서 알아낼 수 있는 건 없었다.
용건을 마친 나는 시계를 확인했다. 아직 복귀까지 시간이 남았다. 여기서 조금 더 기다려 볼까 생각하는 그때 노크와 함께 낯익은 얼굴들이 응접실 안으로 들어왔다.
“두 분이 여긴 어쩐 일입니까.”
내 물음에 조이현이 어이없다는 얼굴을 했다.
“그건 내가 할 말이지, 누가 보면 네가 오델리아 길드원인 줄 알겠어.”
그의 말에 나는 너스레를 떨듯 어깨를 으쓱였다.
“명예 길드원 같은 거라도 시켜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렇고 말고요, 오랜만에 뵙는데 표정이 밝아 보여서 다행입니다.”
조이현과 달리 김형도가 밝게 웃어 보였다.
“양 헌터 오는 걸 기가 막히게 엿듣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두 사람이.”
이 팀장의 부연 설명에 조이현이 잠깐 시간이 남아서, 라며 볼을 긁적였다.
“요즘 얼굴 보기도 힘든 유명 인사던데 온 김에 저녁이라도 먹고 가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