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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46)화 (146/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46화

나는 이곤과 함께 곧장 로비로 내려왔다. 어쩐지 로비가 아까보다 더 소란스러웠다.

그 사실에 의아함을 느낀 찰나 로비 데스크에 서서 이곳을 빤히 응시하는 사람이 보였다.

명품을 두른 사람의 낯이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 때쯤 상대가 우리를 보더니 대뜸 손가락질하면서 소리쳤다.

“쟤들이에요!”

“미친.”

이곤이 훔친 카드 키의 주인이 우리를 고발한 모양이었다.

경비원들이 곧장 호루라기를 불며 이쪽으로 뛰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이마를 쓸어 올렸다.

“야, 그 정도는 식은 죽 먹기라며.”

“들키지 않는다고는 안 했어. 내가 진짜 도둑도 아닌데 어떻게 덜미까지 안 잡히겠어.”

도리어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알아서 박희민 가이드 회수한 사람이 무전 치자, 무전 받은 사람은 알아서 빠져나가고.”

“무전은.”

“문자로 아무 숫자나 보내.”

“확인.”

그 말과 동시에 우리는 좌우로 흩어졌다.

표적이 다른 방향으로 찢어지자 경비원들이 우왕좌왕했다. 그 모습에 관리자가 소리쳤다.

“뭣들 해! 두 팀으로 나눠서 잡지 않고!”

그제야 그들은 우리 뒤를 쫓았다.

이곤은 2층 라운지를 향했고 나는 지하 주차장 쪽으로 몸을 돌렸다.

* * *

‘직원 외 출입 금지’ 방으로 들어온 희민은 제 입을 한 손으로 틀어막았다.

방 안이 온통 새까맸다. 문이 닫히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된 탓에 당황한 희민은 벽면을 짚다 조명을 켰다.

조명은 방 안을 전부 비추기에는 터무니없이 약했지만, 내부에 무엇이 있는지 인식하기엔 충분했다.

어스름한 빛 아래의 방은 생각보다 몹시 넓고 서늘했으며 동물의 우리 같은 철창들이 즐비했다.

그 안에는 짐승이 아닌, 사람이 몸을 종이처럼 구긴 채 있었다.

당황한 희민이 뒷걸음질 치다가 그만 바닥에 널려 있던 유리 조각을 밟고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제 비명 소리에 놀라 급하게 입을 틀어막다 이어셋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충격 때문인지 이어셋이 먹통이 되었다.

“퍽 하면 망가져, 퍽 하면.”

그렇게 불만을 담아 웅얼거리는데 철창 안에 있던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충혈된 동공이 희민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놀라 몸을 부르르 떨자, 무기력한 시선이 곧장 힘없이 도로 거둬졌다.

그러고 보니 사람들의 상태가 하나같이 이상했다. 도무지 살아 있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창백한 피부와 그 위로 푸르게 선 핏줄까지.

희민은 소름 끼치는 광경에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야겠다 마음먹었다.

이 공간을 눈으로 확인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어셋도 고장 난 이상 혼자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문을 열려는데, 문손잡이가 헛돌 뿐 열리지 않았다.

“잠깐 이게 뭐야. 왜 이래?”

계속해서 손잡이를 잡아당기던 희민의 안색이 퍼렇게 질렸다. 이제 보니 안쪽에서는 열리지 않는 듯했다.

어쩐지 이런 공간에 자물쇠 하나 달려 있지 않다 했더니, 함정이 따로 없었다.

급하게 휴대폰을 꺼내 봤지만, 신호조차 잘 터지지 않았다. 희민은 절망에 찬 얼굴로 무릎을 꿇었다,

하필이면 아무런 언질도 주지 않고 온 탓에 같은 건물에 있을 두 사람은 자신이 여기 있을 거라고는 아마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희민은 손에 들린 이어셋을 꽉 쥐고는 제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

괜한 오기를 부렸다는 생각에 기분이 팍 가라앉는데, 조금 전 밟은 깨진 유리 조각 사이로 무언가 반짝이는 게 보였다.

유리 조각이 조명 불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건가 싶었지만, 조금 달랐다.

희민은 조심스럽게 그쪽으로 손을 뻗었다. 바로 유리 조각을 흐트러트리는데, 손가락 끝이 살짝 베이며 피가 났다.

희민은 개의치 않고 반짝이는 유리 조각만 한 크기의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코앞까지 들고 와 보니 표면이 매끄러웠다. 마침내 빛 아래로 드러난 그것은.

“……에스텔.”

그 외형에 대해서 시각 자료를 본 적은 없었다.

단지 노란 액체가 원액이며 그것을 주사할 수도 혹은 말려 고체화시킬 수도 있다고 들었다.

지금 희민이 집어 든 건 그 원액이 든 캡슐 약이었다.

캡슐 겉면이 투명해서 안에 든 액체가 더 짙게 보였다.

안에 든 액체는 분명 노란색, 조명 아래에 있어서인지 황금색에 가까운 것이었다.

에스텔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눈으로 한참 살펴보고 있으니 이곳에 오기 전 이곤과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왜 지원한 겁니까.’

박희민의 지원 서류를 대충 훑어보던 이곤이 건조한 눈으로 그렇게 물었었다.

당시 박희민은 조금 곤란한 얼굴이 돼서는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좋은 일 하는 데 이유가…….’

‘제게 거짓말은 가장 큰 탈락 사유입니다.’

‘높은 급여가 가장 큰 이유긴 하지만……. 사실 위에서 직통으로 떨어진 일을 거절하기에는 요즘 제 위치가 간당간당해서요.’

이곤이 가늘게 뜬 눈으로 박희민을 위아래로 훑었다. 그 시선을 받던 희민은 열받은 얼굴을 최대한 숨기며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

‘어린놈이 더럽게 꼼꼼하네.’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 이곤이 서류를 내려놓더니 말을 이었다.

‘고작 그 이유로는 버텨 낼 수 없을 만큼, 상당히 위험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

희민은 그의 말이 조금 우습다고 생각했었다.

결코 그의 말을 무시해서가 아닌, 너무 당연한 소리라서였다. 센터의 가이드가 되기로 택한 순간부터, 어쩌면 각성한 그때부터 혜택을 누리는 동시에 위험이 따라붙었다.

희민의 얼굴 위의 웃음기가 사라졌다.

‘마약반이라는 말은 들었습니다.’

‘…….’

‘이번에 양하나 헌터가 마약 혐의에서 풀려났다고 들었습니다. 할 일도 많은 센터에 따로 특수 마약반이 만들어진다는 것 자체가 의아합니다. 애먼 사람 사지에 몰아넣기나 하고.’

‘…….’

‘그러니 어떤 사명감으로 만들어진 반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생사람이나 안 잡으면 다행이지.’

희민의 냉소적인 반응에 이곤은 흐트러져 있던 서류를 한데 모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정말 다시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거 같네요.’

희민에겐 그 말이 탈락이란 의미로 들렸다. 하지만 이어지는 이곤의 말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박희민 가이드 말처럼 여기에 사명감 같은 거 없습니다. 그러니 크게 다치더라도 보상은 기대할 수 없어요. 당장의 급여만 두고 일하긴 수지에 안 맞을 겁니다.’

위험성을 강조하는 이곤의 두 눈이 고요하게 번뜩였다.

그제야 희민은 이곤이 단순히 텃세를 부리는 게 아님을 알았다.

인력이 부족한 마당에 진실을 밝히며 경고하다니.

어울리지 않게 그 말에 꽂혀 고집부리듯 현장까지 왔다.

철창에 갇힌 채 약에 취한 에스퍼들과 빛의 조각 같은 에스텔을 눈앞에 두고서야 이곤이 암담한 얼굴로 말하던 위험성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거 같아졌다.

희민은 낮게 숨을 고르곤 약 하나를 제 주머니 속에 넣었다.

일단 이거라도 챙겨 나가야 이곳에 숨겨진 추악한 진실을 조금이나마 밝힐 수 있게 될 터였다.

그런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때였다. 등 뒤의 문이 밀리며 창고 안으로 빛이 들어왔다.

희민은 경비원이 돌아왔다는 생각에 사색이 되어 서둘러 신발 안창에 붙이고 들어온 작은 날붙이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그보다 상대가 희민의 입을 막는 게 더 빨랐다.

문이 닫히며 도로 완연한 어둠이 들이닥쳤다. 숨을 멈춘 희민은 상대의 얼굴을 확인했다.

어둠 속에서 예리한 눈을 번뜩이는 이는 양하나였다.

양하나는 희민의 입술에 한쪽 손가락을 대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 * *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선 나는 경비원들을 한 명씩 따돌리기 시작했다.

주차된 차들을 엄폐물 삼아 공격을 피하며 날다람쥐처럼 움직여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그런 내 움직임에 경비원들은 지칠 대로 지쳐 버린 듯했다.

그 틈을 타 나는 도로 지하의 투기장으로 돌아오는 데 성공했다.

그사이 다음 게임이 시작된 듯 지하는 다시 열기로 들끓는 중이었다.

나는 주저 없이 인파를 헤치고 붉은 철문으로 향했다.

그 앞을 지키고 있던 경비원이 내 등장에 놀라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 무어라 말을 꺼내기 전에 급소를 강하게 강타하자 경비원이 충격에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철문을 통과해 희민의 인기척을 찾아냈다.

방 안으로 들어선 나는 희민이 비명을 지르기 전 서둘러 그의 입을 막았다. 희민의 눈동자가 나를 완전히 인식한 후에야 그의 입을 틀어막은 손을 치웠다.

희민은 눈을 끔뻑이다가 조용히 물었다.

“제가 이 방에 있는지 어떻게 알았습니까?”

설명하기 복잡해 얼렁뚱땅 답했다.

“직감적으로요.”

내 말에 희민이 수긍했다. 갇혀 있던 충격이 큰지 그답지 않게 인정이 빨랐다.

나는 시선을 돌려 내부를 살폈다. 생각보다 더 심각한 상황에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전부 에스텔에 중독된 겁니까?”

내 물음에 희민이 놀란 듯 되물었다.

“확실치는 않지만 아마도요. 그런데 어떻게 알았습니까?”

“…….”

이것 역시 제대로 설명할 길이 없었다.

철문을 열고 들어온 순간부터 아주 더럽고 끈적한 기분이 들었다. 수백의 눈과 에너지에 짓눌리는 느낌.

게다가 이 에너지는 전에 에스텔에 취한 헌터들에게서 느낀 것과 닮아 있었다.

“일단 나가서요.”

내가 문손잡이에 손을 올리자 희민이 완전히 닫힌 문을 그제야 확인하고 이마를 쳤다.

“이게 문이 안쪽에서는 안 열립니다.”

그의 말처럼 문손잡이가 헛돌았다.

“이거 둘 다 갇히게 됐네요. 완전히.”

그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희민 가이드 혼자일 때와 저는 다르죠.”

나는 한 손을 들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힘으로 부수면 되니까.”

자신만만한 내 말에 희민의 표정이 밝아졌다.

나는 손에만 에너지를 살짝 모아 문손잡이를 가뿐하게 날릴 생각이었다.

그 생각으로 감응할 에너지 대신 성시현의 힘을 불러낸 때였다.

손끝으로 황금의 에너지가 너울거리는 순간, 시체 같은 낮으로 철창 안에 널브러져 있던 수십의 눈이 일순 내게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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